제4화
#3
다음 날 아침.
삐리릭- 삐리릭-
근처에 있던 알람이 울려 눈을 뜨니 어제 보았던 낯선 천장이 나를 반겼다. 창문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보니 아침이 밝은 모양이다. 나는 침대에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꿈이 아니네…….”
웃음기가 가득하게 생긴 장난스러운 외모, 위로 오른 반곱슬머리.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한번 이곳이 현실임을 일깨워 주었다.
나는 현실을 재인식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은 아침 일찍 몸을 단련시키기 위해 산에 오르기로 했다.
“흐아아아아아암. 음~. 쩝.”
양팔을 쫙 펼쳐 크게 기지개를 피고 몸을 움직였다.
오늘은 산에 오를 테니, 조금 추워져도 편한 저지를 입고 나가기로 했다.
언제 가져왔는지 민아 누나는 옷이나 짐들을 챙겨 와 방의 옷장과 서랍 안에 고스란히 정돈해 넣어 주셨다.
아마 자는 사이 짐 정리를 해 주신 거 같은데,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게 난 편하고 신축성 있는 검은 저지를 입고 책상 위에 올려진 손목 밴드로 내 오른 손목의 흉터를 숨겼다. 남들에게 보여 줄 만한 건 아니니 말이다.
일단은 잠시 외출하겠다고 누나에게 전하기 위해 누나를 찾기로 했다.
뭐만 하면 화들짝 놀라 걱정하는 그녀이니 말이다.
물론 안 그러는 것보다는 나은데, 솔직히 어느 정도 지속하니 조금 불편하다고 할까?
넓은 집안을 둘러봤지만 어디 계신지를 모르겠다. 그녀를 찾던 중, 어디선가 나는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나의 발걸음은 부엌으로 향했다.
“누나.”
“응. 천운아. 일어났어?”
고소한 식빵 냄새와 프라이팬에 구워지는 계란프라이. 그녀를 보니 에이프런을 몸에 걸치고 계란을 굽고 있었다.
옥 같은 피부와 아름다운 미모를 보니 다시 봐도 어머니의 친구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외모였다. 나이가 33살이라고…… 하는데 혹시 마녀인가?
“여기 앉아서 아침 먹으렴. 혹시 빵 좋아하니?”
“네. 잘 먹겠습니다.”
누나라…… 역시 익숙지 않은 울림이네. 평생 외동이여서 그런가? 여튼 본래 나이로도 그녀가 누나가 맞으니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많은 돈을 가진 그녀지만, 밥을 먹을 때는 무조건 자신이 만들어서 먹는다고 한다.
가문이 적안 가문이다 보니, 아마 어릴 때부터 여러 위협으로부터 노출되어 살아왔을 거다. 조금 걱정거리가 많아 처연해 보인 누나였다.
그 걱정 중 한구석에 내가 쏘옥 들어가 있을 거 같긴 한데…… 일단 그런 짓을 안 한다고 해도 그녀가 안 믿어 주니 어쩔 수가 없다. 난 접시 위에 올려져 있는 노릇하게 구워진 식빵 위에 계란을 올려 한입 맛을 보았다.
“후~와~!”
“맛있니?”
“네.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를 못해서요.”
“그러니…….”
아, 또 말실수를 해 버렸다. 다음부터는 조금 더 생각 후에 입을 열자.
그녀는 또다시 오해로 인해 안타까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제는 조금 익숙하다는 거다.
“예전에도 한 번씩 언니하고 여기서 밥을 먹었단다.”
“어머니요?”
“그래. 19살에 학교를 자퇴했지만 그래도 가장 친한 나하고는 간간히 연락했어.”
“그렇군요…….”
솔직히 별 감흥이 없다. 친어머니가 아니라서 그런가? 그런데 19살이라…….
아무래도 김천운의 아버지는 대단히 능력 있고 매력적인 분이신 듯하다.
어머니가 그 4대 가문과 연을 끊으면서까지 아버지를 선택했으니, 말 다 했다.
아! 그것보다 오늘 누나에게 허락받아야 하는 게 있다.
“저 오늘 좀 나갔다 와도 될까요?”
“응. 그러렴. 어디 다녀오려고?”
“산이요.”
“사, 사…… 산?”
“누나……. 오해하지 마세요. 밧줄 안 들고 갈 거예요. 잠시 오랜만에 운동 좀 하려고요.”
동공이 흔들리며 불안에 떨던 그녀가 또 오해하기 전에 차단했다.
정말로 ‘부지런한 마음으로 심신을 단련한다.’는 것도 덧붙였다.
지금 내 스탯으로는 아베타라 볼 수 없을 정도로 개복치다.
어느 정도 위험 없이 살 수 있을 체력과 몸을 길러야 한다.
그런 조건으로는 4대 가문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 내 스탯을 가문에서 보면 이단아라고 경멸하겠지만 다른 일반 각성저와 다르게 4대 가문의 피를 이은 각성자들은 높은 성장력을 중심으로 남들보다 빠르게 스탯을 올릴 수 있는 혈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다녀오겠습니다.”
“아……. 아니 천운아 그럼 약속 하나만 하자. 10분에 한 번씩 문자 보내는 거로.”
“네? 10분은 좀…….”
“그래. 그럼 30분, 30분은 괜찮지?”
“음…… 네 알겠어요.”
한민아.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며 신비주의자인 S급 아베타들 중에서도 유일한 정상인이며 마음씨 좋은 굉장히 상냥한 여인이라고 표현하기는 했는데, 이럴 때 보면 부담스럽지만 미워할 수도 없는 여인이다.
“아. 천운아. 혹시 모르니 네 이름으로 카드를 하나 만들어 놨단다. 1억 정도 들어가 있을 테니 용돈으로 쓰렴.”
“…….”
그녀가 기분 좋은 미소로 방긋 웃으며 내게 카드를 건넸다.
1억…….
누나를 절대 미워할 수 없을 거 같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녀올게요.”
* * *
‘개천산’. 100년 전 하늘에 균열이 생기고 그 사이로 환히 내리쬐는 빛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마력의 산. ‘개천산’은 아베타의 훈련 명소라고 불리기도 한다.
해발고도 600미터의 이 산은 아베타가 훈련하기 딱 좋은 산으로 지정되는 것은 1년 후. 즉, 주인공 일행이 학교에 입학한 후 나오는 연구 결과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한 길영트 학교의 학생이 기하급수적인 빠른 성장력과 높은 스탯으로 인해, 훈련하는 곳을 몰래 조사한 결과, 나온 곳이 바로 이곳 ‘개천산’이다.
그리고 그 학생을 난 이미 알고 있다.
우연히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내심 기대해서 와 본 것도 있다.
“후욱- 후-욱 허억- 허억-. 우- 우엑!!”
그런데 그전에 내가 죽을 거 같다. 목에서 숨이 차고 막혀 구역질이 난다.
김천운 이 자식은 적어도 노력파인 게 확실하긴 한데. 그러면 1년 전부터가 아니라 5년 전부터 착실히 노력해야지!
덕분에 내가 사서 고생이다.
“하아- 하아- 죽겠다.”
처음에는 자신감 있는 파워 스타트였다. 스탯은 이래도 일단은 나름 각성한 아베타다. 일반인을 뛰어넘는 신체 능력과 반사 신경과 파워를 가져야 정상인데…….
털썩-.
결국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고 말았다. 누군가 보면 꼴사나운 처지다. 아직 스타트한 지 30분도 안 됐기 때문이다.
“하……. 오늘 안에 정상에 도착할 수 있을까?”
이름 : 김천운
나이 : 16세
<스탯>
힘 : (9/50)
체력 : (5.1/30) +0.1
지능 : (1/100)
마력 : (5.1/30
행운 : (100/?)
나름 조금씩 올라가고 있는 스탯을 보니 효과 만점인 거 같긴 한데.
역시 이 나약한 정신머리로는 이런 고행을 계속해서 해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 오늘만이다. 정말 오늘 딱 한 번만 정상에 도착해 불굴의 산삼을 먹으면 어느 정도의 부지런함 마음가짐이 생길 것이다.
이런 나약한 마음 때문에 아이템에 의지하는 내가 조금 부끄럽지만.
“하……. 휴……. 출발하자.”
날씨가 쌀쌀한 겨울이다 보니, 가만히 있으니 추워지기도 해서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산은 심할 정도로 가파르지 않아 천천히 페이스를 유지하며 오르면 3, 4시간 안에 정상에 도착할 수 있을 거다. 이제 다시는 멍청하게 초반에 달리지 말자.
탁- 탁- 탁-
“어?”
내가 천천히 걸으며 산을 오르려 하니, 뒤에서 누군가 빠르게 땅을 박차며 전속력으로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빠르게 나를 제친 후, 살짝 뒤돌아 나를 흘겨보더니 이내 무시하고 다시 산을 달리며 올랐다.
“누나?”
아…… 아니, 누나가 아니다. 일단 여기 있을 리는 절대 없을 테고, 그렇다면 유일하게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설마 예상은 했지만 저렇게 생겼을 줄이야. 한민아와 완전히 붕어빵이다. 성격은 반대겠지만…….
한설아.
내 소설의 메인 히로인이자, 까칠하며 도도한 성격의 소유자.
설마 이렇게 우연히 만날 줄이야.
내가 바라면 모든 게 이루어지는 듯한 기분은 압도적인 행운 덕분인가?
여튼 나를 제치고 빠르게 올라가는 그녀를 보니 아마 몇 시간도 안 돼서 산 정상에 도착할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그녀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이 산을 오르며 스탯을 올렸을 것이다.
“후……. 나도 힘내 보자.”
그녀의 빠른 스피드에 나도 자극을 받았는지, 그녀와 똑같이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10분도 안 돼서 힘이 빠지고 기진맥진으로 헥헥거리며 천천히 산을 올랐다.
역시 아직 난 범인(凡人)인가 보다.
* * *
“헥……. 헥……. 우욱. 하……. 도착했다.”
끼익 끼익 거리는 발을 억지로 움직여 겨우 도착한 정상은 거대한 바위 하나 있는 평지에 가까웠다. 하지만 느껴진다. 마력의 농도가. 밑에 와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마력 밀도가 지금 이곳이 정상이라고 말해 주는 거 같았다. 여기서 숨만 쉬어도 마력이 점점 늘어나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이름 : 김천운
나이 : 16세
<스탯>
힘 : (9/50)
체력 : (5.3/30) +0.2
지능 : (1/100)
마력 : (5.6/30) +0.3
행운 : (100/?)
아……. 기분이 아니라 정말 늘고 있었네?
가만히 숨쉬기만 해도 0.3 정도가 늘어나는 걸 보면 그만큼 산의 정상은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마소들이 밀집해 있다는 거겠지. 물론 초반 스탯은 올리는 게 쉽다지만, 그걸 놔두고도 생각보다 빠른 성장력이었다.
“어디 있지?”
난 산의 정상을 둘러보았다. 나보다 먼저 이곳에 올라온 그녀가 어딘가 있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산의 정상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하늘과 가까운 바위 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바람으로 인해 나부끼는 젖은 산발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추위를 못 느끼는지 평정심을 유지하며 조용히 명상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 쪽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고 옆에 있는 절벽 끝에 섰다.
“야!!! 호!!!!”
산이 산과 부딪쳐 되돌아오는 메아리. 내가 오른 개천산에 내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에게 다시 되돌아왔다.
“시끄러워요!”
“아. 죄송합니다.”
그녀가 감던 눈을 부릅뜨며 화를 내듯 소리쳤다.
물론 저 가부좌 훈련법은 몸에 깃든 마력을 전신으로 고스란히 퍼트려 자신의 몸의 마력 통로를 확장하는 훈련법일 것이다.
물론 그만큼 많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근데 내가 옆에서 고양된 마음으로 소리를 질러 방해했으니 아마 그녀가 성낼 만했을 거다. 하지만 난 일부러라도 그랬어야 했다.
조금 민폐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녀는 나를 흘겨보지도 않았을 거다.
‘일단 얼굴은 봤고…… 그다음은…….’
난 절벽 근처에 자리를 잡아 들고 온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아. 달다.”
정상에 도착하면 추운 몸을 녹이기 위해 따뜻한 핫초코를 타 보온병에 담아 뒀다. 솔직히 내 취향은 커피지만 일부러 핫초코를 타 온 이유도 있다.
진득하고 달콤한 향기가 보온병에서 퍼져 이내 거대한 바위에서 면상하던 그녀의 코끝으로 들어갔다.
“윽.”
냄새를 맡았는지 그녀의 미간이 움찔거리며 작게나마 이를 으득- 가는 소리가 들렸다.
한설아, 그녀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진귀한 산해진미를 먹으며 심신과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며 귀한 음식만 먹고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그녀에게 참을 수 없는 매혹적인 음식이 있었다.
“하……. 맛있네. 따뜻하다. 혹시 그쪽도 좀 마실래요?”
한설아는 여전히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며 내 말을 무시했다. 하지만 보인다. 그녀의 미간이 흔들리고 앉아 있는 다리는 안절부절못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그녀한테서 초콜릿이란 마약과도 같은 유혹이었다.
“맛있는데……. 좀 많이 가져와서요. 그쪽도 좀 드시지…….”
“이!!”
이 말의 끝으로 그녀가 바위 위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고개를 돌려 휙- 하고 나를 노려봤다.
눈빛 새삼 참 차갑고 서늘하다. 안 그래도 추운데 그녀 덕분에 온도가 더욱 내려간 느낌이다.
이내 그녀는 내가 들고 있던 핫초코로 시선이 갔다. 한순간 보였지만, 동공이 지진이 난 듯 흔들리고 있었다. 아주 한순간이었다. 한설아가 바로 고개를 돌려 잠깐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린 김에 산에서 내려가려는 듯 자리를 옮겼다. 오늘 결국 그녀와 대화한 첫마디가 ‘천박하게’였다. 앞날이 정말 걱정이다. 산에 내려가려는 그녀를 향해 난 손을 흔들며 한마디 덧붙였다.
“내일도 만나요!!”
표정을 보지 못했지만, 아마 이때 보였던 표정 중 가장 싸늘했을 것이다. 그래도 노력은 해 봐야지. 어차피 지금의 그녀는 주인공이 와도 태도가 변하는 일은 없을 거다.
그것보다 정상이다. 일단 정상에 온 목적은 정해져 있다.
주위에 아주 작은 정말로 미세하게 보일 정도로 작은 하트모양의 풀이 있을 거다. 혹시 몰라서 돋보기까지 준비했다. 이 아주 작은 하트모양의 풀 밑 줄기에서는 어마어마한 100년 산삼이 잠들어 있을 거다.
“좋아. 시작해 보자.”
난 가방에서 곡괭이와 돋보기를 꺼낸 후, 평지에 가까운 땅을 돌아다니며 하트모양 풀을 찾아 사방을 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