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1
몸이 불편하다. 분명히 누워 있었는데 몸이 서 있는 듯 발에 힘이 들어간다.
그래. 이건 꿈일 거야.
아직 눈을 감고 있어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난 지금 무언가에 올라타 있는 듯하다. 손에도 감각이 느껴진다.
뭐지? 무슨 밧줄인가? 여튼 지금 상황으로 봤을 때는 아마 난 어제의 극심한 충격으로 몽유병에 걸린 듯하다. 상황 파악을 위해 천천히 감긴 눈을 떴다.
“어…… 어!!! 뭐야 X발!! 악!!”
쿵!
밧줄을 본 순간 깜짝 놀라 뒤로 자빠졌다. 성대하게 뒤로 엎어지니 허리의 통증이 극심했다.
조금 높은 곳에서 떨어진 듯하다. 그리고 내 시선은 곧 내가 서 있던 곳으로 향했다.
‘뭐야…… 저게…….’
난 지금 내가 서 있던 사다리를 보았다. 등에서 소름이 돋아 온몸으로 천천히 퍼져 나갔다.
숨이 가쁘며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다.
“윽!”
통증은 허리뿐만이 아니었다.
손목.
뒤로 자빠지면 땅에 손을 받치니 오른쪽 손목에서 극심한 통증이 왔다.
“뭐야 이건…….”
내 손목을 보니 또다시 털이 곤두서며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손목에 흰색 붕대.
그 흰색 붕대에서는 붉은 피가 서서히 번지고 있었다.
내 시선은 다시 사다리 끝을 향했다.
“이게 대체…….”
사다리의 끝.
천창에는 아까의 밧줄이 있었다. 그 밧줄의 매듭을 보니 온몸이 떨렸다.
도넛처럼 동그란 모양의 매듭.
그렇다.
자살 매듭이다.
띵동-
“헉!”
상황 파악을 위해 사다리 쪽으로 향했지만, 어디선가 들려오는 초인종 소리에 문 쪽으로 돌아봤다.
“우리 집 초인종 고장 났는데…….”
자세히 주변을 살피니 자신의 집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 일단 우리 집은 이렇게 크지도 않고 또한 2층도 없다. 상황을 파악하니 어안이 벙벙하다. 몽유병으로 남의 집에 들어가서 자살 시도라니……. 세상천지에 민폐도 이런 민폐는 없을 거다. 난 혹시 모르니 조심스레 다가가 문에 붙어 있는 5밀리의 작은 렌즈로 밖을 확인했다.
‘누구지?’
문 앞에는 한 미모의 여인이 서 있었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 일단 내 집이 아니기도 하고……. 여튼 초인종을 누른 걸 보니 이 여인도 집주인이 아닌 모양이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일단 문을 열었다.
“천운아…….”
윤기 나는 검은색의 롱 헤어. 조각 같은 아름다운 외모와 무엇보다 돋보이는 이국적인 붉은 눈 색. 살면서 처음 보는 아름다운 여인이 내 앞에서 서글픈 듯 울며 누군가를 불렀다.
“저…… 그게 사정이…….”
뭐라도 변명해야 한다. 일단 현재 상황을 짚어 보면 주택 무단 침범으로 경찰서에 가도 할 말이 없다. 더군다나 자살이라니…… ‘남의 집 무단 침입 후 자살 시도.’ 뭐, 이런 상상도 하기 싫은 기사가 뜨는 내 인생에 결말이 날 거 같다.
“그게…….”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내 앞에 있던 여인은 내 손목을 한번 보고 왈칵 눈물을 흘리며 나를 슬며시 안아 주었다.
“괜찮아. 천운아……. 다 괜찮을 거야…….”
“……에?”
나도 모르게 입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 뭐가 괜찮다는 거고 댁은 누구길래 막, 안기며 달래는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이 여인도 어찌 보면 제정신이 아닐 수도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안으며 위로하고 있으니 말이다.
남의 집에 침범한 사람이 물어볼 게 아니지만, 일단 물어볼 건 물어보자.
“누구세요?”
“…….”
그녀의 표정은 당황한 듯 떨리며 안색이 파래졌다.
이게 아닌가?
분위기가 더욱 무거워졌다.
아니, 내가 실수했나? 사실 이 여인은 과거에 내가 한번 만난 여인이며 오랜만에 만났는데 내가 기억이 안 난다고 하니 충격을 받아 저런 표정을 짓는 건가?
그렇다면 앞뒤가 맞을 수도…….
“저기…….”
“천운아. 일단 배고프지? 도시락 사 왔으니까 안에서 먹자.”
아니, 도대체 천운이는 누구야?
왠지 이 여인한테는 더 얘기해도 말이 안 통할 듯하다.
아니, 천운이가 물론 누군지 알긴 아는데, 그럴 일은 절대 없을 테고……. 일단 그녀가 말한 데로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당연히 그녀가 앞장섰다. 내 집도 아닌데 ‘어서 옵쇼’ 하고 안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툭-
그리고 동시에 앞장서며 걸어가던 그녀는 무언가를 본 후, 스르륵- 힘이 풀려 들고 있던 도시락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아…… 맞다…….’
까먹고 있었다. 거실의 사다리와 밧줄. 나도 너무 어이없는 상황의 연속이라 잊고 있었다.
“저기…… 이건…… 그게…….”
할 말이 안 나온다. 하지만 변명을 해야 한다. 못하면 지금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이다.
현재 상황을 변명할 가장 믿음직스러운 내 두뇌한테 물어봤다.
하지만 돌아온 건 자기도 이 상황은 무리란다.
‘끝났다…….’
지금 당장 제2의 나를 눕혀서 두들겨 패고 싶을 지경이다. 왜 남에게 민폐 안 끼치고 평범하게 살던 나에게 이런 시련을 겪게 하는가…….
솔직히 내가 더 억울하다.
물론 내가 잠을 자면 일어나는 자각 없는 제2의 내가 이런 건 분명한데. 어떻게 보면 피해자는 난데 말이다.
“천운아……. 흐아아아앙!”
“네?”
또다시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녀의 행동에 이상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내 생각과는 다르게 그녀는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달려들어 안겼다.
그녀의 눈에서 나오는 방울들이 쉴 새 없이 떨어지고 나를 바라봤다.
‘아니…… 진짜…… 뭐지?’
순간 골을 때리듯 어이가 없었다.
물론 이런 미모의 여인이 안기니까 나쁘지는 않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여인은 내 기억에 없었다. 그것은 의문에서 확신으로 변했다. 난 적색 눈의 외국인 같은 그녀를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난 당황스러운 시선으로 근처를 둘러보다 탁자 위의 거울로 시선이 갔다.
그녀와 내가 비친다.
아니 내가 아니야.
누구야? 너?
* * *
“저기 진정 좀 되셨나요?”
“응.”
내 앞 소파에 앉은 그녀는 어디서 꺼낸 고급스러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녀가 이성을 잃고 엉엉 소리를 지를 거 같기에 일단 그녀 앞에 진정하라고 차를 내왔다.
부엌에 가니 바로 보이는 위치에 있어, 금방 차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다.
“그러니까. 분명……?”
“응. 민아 누나라고 부르렴.”
“아. 네.”
분명…… 이 몸의 부모님과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하던데. 어머니의 후배? 동생? 물론 친동생은 아니고 듣기로는 과거 어머니가 학교 다녔을 적 후배라고 한다. 그리고 그 미모가 너무 젊다. 또래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조각 같은 외모의 소유자다.
여튼 이유는 모르겠지만 걱정되는 마음에 이 집에 불쑥- 찾아왔다고 그녀가 말했다.
손목의 붕대 또한 그녀가 해 준 모양이다.
근데 아무리 어머니의 친한 동생이라도 누나는…… 왠지 외모 때문인지 어색하지가 않을 거 같다.
“편하게 존댓말은 할 필요 없어 천운아. 예전처럼 그냥 편하게 말하렴.”
“아, 응.”
아무래도 아까의 ‘누구세요?’로 인해 내가 기억을 잃은 줄 아는 모양이다.
현재 사태가 조금 파악이 된다. 아무래도 난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간 모양이다. 군대 다녀온 23살의 외모라기엔 너무 젊고 애초의 난 이런 반곱슬머리가 아니다.
여튼 내 외모를 보니 한 가지는 확실하다. 군대를 또 가야 한다.
‘X발.’
개 같은 군대.
군대에서 소설 쓸 때, 선임들한테 까이던 게 생각난다. 소설만 끄적이던 내가 처음으로 개고생하여 트라우마가 생긴 곳이 군대다. 그런 곳을 또 가고 싶지 않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니 내 앞에 여인이 말을 걸었다.
“천운아. 아무리 힘들어도 자살은 안 돼……. 물론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야. 하지만 그래도 살아야지…….”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그녀도 갈피를 못 잡는 모양이다. ‘무슨 말을 해도 지금의 나에게는 위로가 안 된다’라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문제는 나도 지금 왜 위로받고 있는지를 모른다.
“저기요.”
그녀가 억지로 밝게 웃으며 나를 보았다.
“응? 왜 그래 천운아?”
“저기 무슨 일이 있던 거예요?”
딸그락-
그녀가 마시려던 차가 손에서 떨어지며 바닥에 쏟았다.
‘이런…….’
그녀의 눈가가 금세 또 촉촉해졌다. 눈물샘이 고장 난 줄 알았다. 그녀에게 이유를 듣는 건 그녀가 조금 진정한 후의 얘기였다.
* * *
100년 전, 전 세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세계를 일변시킨 사건이 일어났다. 하늘에서 내리쬔 빛과 땅에서 기어 나온 어둠. 하늘에서 내리쬔 빛은 마력이라 불렸으며 땅에서 슬며시 기어 나온 어둠은 마기라 불렸다.
일변한 세계에서 마기로 인해 발생한 마물과 마수는 화기가 통하지 않았고, 마기의 영역은 서서히 땅을 넓혀 가며 사람들을 학살했다.
인류는 절망했다. 그 누구도 그 마물과 마수한테서 도망칠 수 없을 거라고.
그때였다.
누군가 검을 들고 마물에게 달려드는 것은. 심지어 화기가 통하지 않는 마물의 상대로 검을 든 그였다.
사람들은 그가 죽을 작정으로 자포자기로 뛰어든 줄 알았지만, 그의 행위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냥 좀 기다란 장검, 그는 장검을 들고 6미터 가까이 되는 거대한 마물을 향해 달렸다.
스걱.
일섬一閃. 빛이 한번 번쩍이니 마물의 몸이 반으로 갈리며 두 동강 났다. 그 전설적인 처음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들을 ‘인류를 초월한 인간’. 마력을 받은 초인.
아베타라고 불렀다.
이것은 내가 쓴 소설의 테마다. 왜 내 소설 내용이 생각났냐면 나도 모르는 내 사정을 그녀에게 들으니 한순간 떠오르듯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상상하기 힘든 비현실적인 내용을.
“그러니까…….”
현재 내 부모인 아버지는 마물의 습격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지금 혼수상태라고 하신다.
그것도 마물이라는 존재에게 말이다. 이런 비현실적인 사정사에 내 소설이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야기가 너무 무겁다.
지금 이 몸의 본 주인인 소년이 감당할 만한 내용이 아닌 게 확실하다. 눈 뜨기 전 자살하려고 한 것도 이해가 가능 내용이다. 그만큼 충격이 컸을 테니 말이다.
“천운아, 앞으로 나랑 같이 살자.”
문득 그런 말을 한 그녀였다.
방금 그녀는 거실의 사다리와 자살 매듭을 보았으니 불안할 만도 하다. 그리고 현재 상태로 보아 원래 몸으로 돌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원래대로 돌아간다 해도 이 자식은 다시 자살하려고 할 테고. 그녀의 말에 동의하는 게 좋을 듯하다. 하지만 그전에 조사할 건 하고 가자.
“알겠어요. 누나. 하지만 그 전에 잠시 짐 좀 챙겨도 될까요?”
“응. 그러렴.”
일단.
내 이름은 김천운, 나이는 16살.
지금 나에 대한 정보가 너무 적으니 나에 대해 알 필요가 있을 거 같다.
거기서 좋은 게 현재 김천운의 방이다.
분명 자신의 방이니 이 녀석에 대한 정보가 있을 거다.
근데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이네.
똑같은 이름의 김천운 이 자식 때문에 슬럼프가 생겼는데…….
여튼 내일까지 준비한다고 하고 그녀를 돌려보냈다.
같이 있으면 분위기만 무거워질 뿐이니까.
“여긴가?”
방문 앞에 딱 봐도 ‘김천운’이라고 적힌 방이 보였다. 그 방의 문을 여니 건전한 16살 방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방이 깨끗했다. 아마 거실에 그것 때문이겠지……. 난 방의 서랍이나 옷장을 열어 그에 대한 정보를 샅샅이 뒤져 봤다. 하지만 보이는 거라고는 신문지 쪼가리 하나뿐. 김천운이 거실에 가기 전, 자신에 대한 모든 걸 정리한 모양이다.
“응? 뭐야?”
[S급 아베타 한우성. A급 던전 단 일인으로 격파.]
아베타? 분명 어디서 들어 본…… 아니 들어 본 정도가 아니다. 내가 쓰는 소설의 각성자들을 칭하는 말이다. 그리고 한우성. 이 사람은 분명 내 소설의 아베타 세계 랭킹 1위의 회귀자 한우성이다.
“……설마!”
나는 허겁지겁 달려 근처의 거울을 보았다. 아까도 보았지만 설마? 라는 생각에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거울에 비친 뭔가 깐죽거릴 거 같은 장난스러운 외모. 그리고 황갈색의 반곱슬머리.
“허…….”
나이에 맞지 않는 침음이 흘러나왔다.
김천운.
난 지금 소설 속 김천운이 되었다.
* * *
그 후 사태의 파악은 빨랐다. 방에 있는 노트북을 켜 보고 조사했다. 아베타, 길드, 영웅, 트레져 헌터, 던전, 탑, 미로 그리고 김천운이 곧 다니게 될 길영트 아카데미. 모든 게 현실로 존재했다. 그러니까 소설이 시작하기 1년 전, 지금 난 16살 학교를 가기 전 김천운이다.
그리고 어이없는 건, 난 천운에게 부모님이 사고로 죽거나 혼수상태가 되는 설정을 만든 적이 없었다.
“…….”
갑자기 이렇게 되니 김천운한테 미안해지네.
그런 힘든 과거가 있는 애를 행복한 일생을 살게 해도 모자랄 판인데 죽이다니.
살짝 댓글한테 욕먹어도 싼 거 같긴 한데…….
아니, 생각해 보니 독자들도 이런 설정은 모를 것이니 심하게 욕한 애들은 제외하자.
여튼 간에 지금 난 김천운이다.
그리고 4년 뒤.
세계를 뒤흔드는 대재해가 일어나며 김천운은 죽는다.
“X발.”
순간 욱해서 근처의 마우스를 던질 뻔했다. 아니 어찌 보면 내 목에 칼을 들이댄 셈이긴 한데, 이럴 줄 알았으면 김천운을 세계관 최강자 + 갑부 설정으로 만들 걸 그랬다.
지금 후회해 봤자 늦었지만…….
“후…… 그래 일단 진정하자.”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다. 어떻게 보면 이득일 수도 있는 메리트를 가지고 있다. S급을 뛰어넘는 행운 스탯. 그리고 세계 곳곳에 있는 전설급 유물들. 그것을 잘 활용하면 스토리를 뒤바꿀 수 있을 거다. 처음부터 치트 키를 가지고 시작했다 생각하자.
그래. 살 수 있다!
누구도 죽이지 못할 정도로 강해지면 된다!
지금의 나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나의 몸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자.
작가로 살며 번 돈이 너무 아깝다.
“좋아.”
목표는 정해졌다. 일단 대재해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해지자!
정확히 4년 뒤에 일어날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