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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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 저거 진짜 아닌가 보네.

아들의 살벌한 눈빛을 받은 태산이 슬그머니 아들의 시선을 피했다.

* * *

“….”

“….”

“….”

숨 막힐 듯한 침묵이 가득한 곳.

주민의 가족들은 조금 있으면 도착할 주민의 ‘애들’에 굳은 얼굴로 거실에 앉아 있었다.

“몇 시냐.”

“11시 57분요.”

“아버지. 1분에 한 번씩 물어보시는 건 조금 너무하지 않습니까.”

“그 와중에 정확하게 1분에 한 번씩 물어보는 아버지가 대단하시네요.”

“크흠.”

아들의 말에 태산이 헛기침을 했다.

철이 덜 든 막내아들에게 ‘애들’을 데려오라고 했으나 막상 만날 시간이 되니 아내와 첫 데이트를 할 때보다 더 긴장됐다.

“다들 주민이가 자기 애 아니라고 한 거 까먹은 거 아니죠?”

흠칫

흠칫

흠칫

“그럴 리가요.”

“아닙니다, 어머니.”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이미 세간의 시선을 많이 받은 아이들이에요. 다들 조심해야 하는 거 잊지 마세요.”

조용한 카리스마로 공씨네 남자들을 제압한 안주인 최수경 여사가 싱긋 웃었다.

그때 도어벨이 울렸다.

“왔나 보네요. 아무쪼록 다들 행동 조심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네, 어머니.”

“넵.”

최 여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주인으로서 집에 온 손님을 앉아서 맞이할 수 없었다.

직접 현관을 연 수경이 주민과 손님을 반겼다.

“어서 오렴. 손님들도 어서 오세요.”

“다녀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최 여사를 보고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느낀 아이들이 주민의 뒤에서 서로 바짝 붙었다.

낯선 곳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는 남매를 본 수경이 몸을 틀어 안으로 안내했다.

“들어오세요.”

“실례합니다.”

“실례합니다.”

아이들이 주민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주민의 뒤를 따라가는 아이들은 거실에 입성하자마자 돌아보는 어른들로 인해서 바짝 굳은 상태였다.

지연은 갑작스럽게 자신들을 부른 주민이 한 말을 떠올렸다.

‘미안한데 괜찮으면 내 가족을 만나줄 수 있을까?’

‘사장님 가족요?’

‘왜요?’

‘으음. 다들 너희들이 누군지 궁금해해서… 이상한 오해도 풀 겸.’

‘오해요?’

‘아무것도 아니란다. 그냥 밥 한 끼 먹고 간다고 생각하렴.’

그때 무슨 오해를 하는지 물어봤어야 하는 건데.

호기심이 가득한 주민과 닮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그날 주민에게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 물어보지 않은 걸 후회했다.

그냥 가겠다고 하지 말걸.

괜히 사장님이 도와달라고 하는 바람에 섣불리 수락해 버렸다.

받은 게 있어도 이런 불명확한 부탁은 거절하는 거였는데.

지연이 자신의 손을 꼭 잡아 오는 동생의 손을 똑같이 힘주어 잡았다.

“눈.”

옆에서 들린 단호한 목소리에 지연이 고개를 돌렸다.

주민과 닮은 여성.

아마도 사장님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이 단호하게 말하자 그제야 자신을 쳐다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흩어졌다.

오오. 이 사람이 집안의 권력을 틀어쥐고 있구나.

잘 보여야겠다.

“크흠. 어서 와라. 밥은 먹었니?”

“아직입니다. 일부러 밥시간에 부르셨으면서 뭘 물어보십니까.”

태산이 눈을 부릅뜨고 주민을 쳐다봤다.

애들 앞이라 나쁜 말을 자제했지만 내용은 그대로 불량한 아들을 보고 태산이 혀를 찼다.

“와. 저놈 애들 앞이라고 말 가려서 하는 거 봐.”

“저게 가려서 하는 걸까.”

“내숭 떠는 거 처음 보네. 친조카들 앞에서도 막 나가는 놈이.”

주민의 형제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속삭였다.

속삭인다고 했지만 다 들리는 게 문제였다.

주민의 날카로운 시선이 자신들에게로 향하자 형제들이 입을 싹 닫았다.

사장님 의외로 집에서 놀림당하는 위치에 있었구나.

지연이 신기하다는 시선으로 가족들을 쳐다봤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분위기에 긴장이 풀렸는지 지한이가 지연의 귓가에 속삭였다.

“누나. 사장님 가족들도 사장님이랑 똑같은 거 같아.”

“그러게. 좋은 어른들인가 봐.”

아이들이 주민의 가족들의 첫인상을 평가하고 있을 때 집안의 권력자, 수경이 아이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밥 먹으러 가자.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일단 애들이 좋아할 만한 걸 차려보라고 했단다.”

수경이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으로 향했다.

얼떨결에 인사도 못 나눈 태산과 공 씨 남매들이 멀어지는 수경과 아이들의 등을 멀뚱히 쳐다봤다.

“밥 먹으러 가자….”

“네….”

“네에.”

“아. 공주민 때문에 다 망했어.”

힘없이 식당으로 가니 아이들이 멀찍이 앉아 있었다.

“왜 여기 앉았니?”

“여기 앉으면 안 돼요?”

“그건 아니란다. 그냥 너무 멀리 앉은 거 같아서.”

“그거야 저흰 이 집 사람이 아니라 손님이잖아요.”

아이들의 행동에 주민의 가족들이 입을 다물었다.

손님으로 초대해서 제일 좋은 자리에 앉혀도 부족할 판인데 자신들이 머뭇거린 바람에 눈칫밥 먹는 자리에 앉게 해버렸다.

자신들을 쳐다보는 수경의 시선이 따가웠다.

“다들 앉아요. 어. 서.”

수경이 무시무시한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자리에 앉아서도 아이들을 멀뚱히 상석에 앉은 태산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안 먹고 뭐 하니?”

“어른이 먼저 먹어야 해요.”

“윗사람이 먼저 먹는 거랬어요.”

식사 예절이 몸에 박힌 것 같았지만 그들은 알 수 있었다.

남매가 상석을 힐끔거리는 게 오랫동안 눈칫밥을 먹은 흔적이란 것을.

어른들이 재빨리 시선을 주고받았다.

‘얼른 숟가락 드세요.’

‘편하게. 애들이 편하게 시선 많이 주지 말거라.’

‘넵.’

‘최대한 시선 주지 말고 편한 분위기를 만들란 거죠?’

‘막내야 얼른 분위기 만들어라.’

‘안 돼. 애들이 놀라. 아영이 네가 먼저 말해.’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 허공에서 어떤 시선이 오갔는지 모르는 지연이 지한의 밥그릇 위에 계란옷을 입힌 소시지를 얹어 주었다.

“이거 먹어.”

“응. 누나도 먹어.”

“누나도 먹을 거야.”

가벼운 잡담을 하면서 어른들이 귀를 쫑긋 세워 아이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아이가 그보다 더 작은 아이를 챙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익숙해 보여서 어른들이 잠시 올라오는 무언가를 삼켰다.

어쩜 애들이 저렇게 착하지?

“저기. 사장님.”

“어? 어어. 그래.”

“저거 먹어도 돼요?”

“그럼 물론이지.”

지연이 가리킨 건 계란말이였다.

주민이 지연의 앞으로 그릇을 밀어주자 지연이 또 지한의 밥공기 위에 계란말이를 올려줬다.

‘어떡해. 나 울 거 같아.’

‘울지 마. 혀를 씹어서라도 참아.’

‘애기들 앞에 접시 좀 밀어줘.’

‘좋은 생각이야. 아버지 이거 안 드시죠?’

‘이것들이.’

‘당신이 참으세요.’

아이들 앞에 접시가 모여들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건드리는 건 몇 가지 안 됐다.

보다 못한 주민이 입을 열었다.

“왜 생선은 안 먹어? 혹시 알레르기가 있니? 있으면 말해주렴.”

“저희 알레르기 없어요.”

“그럼 왜?”

“생선은 아빠 몫이니까. 저흰 조금만 먹으니까 먼저 드세요.”

낯선 곳에서 동생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지연이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무심코 말했다.

평소의 지연이라면 이런 장소에서 섣불리 말하지 않았겠지만 주민의 가족이 주는 시선에 자신도 모르게 위축된 탓에 일어난 실수였다.

“….”

“….”

“….”

“….”

“….”

다만 그 말에 주민의 형제와 부모의 입을 전부 다 막혔다는 게 문제였다.

조용해진 식탁에 지연이 고개를 들자 어른들이 재빨리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어머니 이게 참 맛있군요. 솜씨가 느셨군요.”

“전주댁이 만들었단다.”

“아버지 이거 좀 드셔보시죠.”

“젓가락에 찍어 먹는 찌개 맛이 참 좋구나.”

“소금 뿌려 드시겠어요?”

난장판인 식탁을 본 주민이 코웃음을 참으며 지연을 돌아봤다.

“너도 좀 먹어야지.”

“먹고 있어요.”

“입맛엔 다 맞고?”

“네. 다 맛있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지연은 동생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불편한 자리에 불렀는데 맛있는 거라도 먹고 가게 해 주고 싶었다.

“좋아하는 반찬이 뭐니? 가져다줄게.”

식탁 위에 애들이 좋아할 만한 요리가 가득했기에 주민은 지연이 좋아하는 음식을 밥그릇 위에 올려줄 생각이었다.

“다 좋아해요. 감사합니다.”

“누나 잡채 좋아해요.”

“지한아.”

“웅?”

맛있는 게 들어가자 긴장이 완전히 풀린 지한이 왜 불렀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깜빡였다.

지한의 말에 어른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잡채가.’

‘없어!’

‘이렇게 먹을 게 많은데.’

‘잡채만 없어!’

세상이 무너진 듯한 얼굴로 식탁에서 잡채를 찾는 가족들을 본 주민이 한숨을 내쉬며 전주댁을 불렀다.

주민의 부름에 다가온 전주댁이 물었다.

“왜 부르세요?”

“혹시 잡채 있습니까?”

“잡채요? 만들어 놓은 건 없는데요.”

“그럼 반찬가게에서 사 올 수 있을까요.”

“다녀올 순 있는데 그러면 식사 시간에 안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어떻게서든 잡채를,”

“괜찮아요. 밥 다 먹었어요.”

이러다가 잡채 찾아온 동네를 다 뒤질 것 같은 주민의 모습에 지연이 그를 말렸다.

벌써 밥을 다 먹었다는 지연의 말에 주민이 아이의 밥그릇을 쳐다보았다.

지연의 말대로 밥그릇은 텅 비어 있었다.

‘얼른 먹고 일어나야지.’

뭐 때문에 우릴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밥만 먹으면 된다고 했으니 빨리 먹고 돌아가고 싶었다.

“아니, 아직 먹을 게 이렇게 많이 남았는데.”

“반찬보다 밥을 더 좋아해서요.”

“그렇지만.”

“밥 더 줄까?”

“괜찮아요. 배불러요.”

“그렇구나.”

지연의 대답에 수경이 아쉬워했다.

아직 먹일 게 이렇게 많았는데 벌써 밥을 다 먹었다는 말이 안타까웠다.

지연이 오물오물 잘 씹어먹는 동생을 보면서 물컵을 채웠다.

동생의 옆에 물잔을 슥 민 지연을 보고 태산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다음에 또 오렴.”

“네?”

내가 왜?

영문을 모르겠다는 지연의 시선에 태산이 머리를 굴렸다.

“잡채 먹으러 와야지. 사실 전주댁이 잡채를 잘하는데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음식만 차리느라 미처 준비 못 했구나.”

“다른 것도 맛있었어요. 괜찮아요.”

“아니다. 우리 집에 왔는데 대표 음식을 못 먹고 가다니 그럴 순 없지 않니.”

변명이 길어질수록 태산의 말이 꼬여갔다.

남매들은 아버지의 말에 묘하게 표정을 일그러트리면서도 그의 행동을 응원했기에 입을 다물었다.

“손님을 초대하면서 손님의 취향에 맞는 음식을 대접하지 못했다니. 그럴 순 없지.”

태산의 말에 지연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상류 가정에서는 그런 문화가 있는 건가?

손님 대접하는 것도 명예? 명성? 이런 거랑 관련이 있을지도.

지연은 주민의 가족들이 자신이 모르는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접 못 하면 사장님이 곤란해요?”

“그렇단다.”

태산이 재빨리 대답했다.

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이 잘못되면 회사가 위험하고, 회사가 위험하면 지한이한테 안 좋으니까.

“다음에 또 올게요.”

“그래. 그때 꼭 우리 집의 대표 메뉴를 선보이마.”

“네.”

그렇게 다음 약속이 정해졌다.

그러나 지연이 생각한 다음은 ‘언제 한번’ 정도였고, 가족들이 생각한 다음은 ‘앞으로 계속’이란 게 큰 차이였다.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상태가 아닌 가족들 덕에 주민은 재빨리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오늘 나 때문에 고생했지. 미안하구나.”

“맛있었어요!”

“저희가 도움이 됐어요?”

지연이 주민을 올려다봤다.

아이의 질문에 주민이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무척. 다음에도 날 도와줄 수 있겠니?”

“사장님이 말하면 들을게요.”

“난 너희들에게 강제로 무언가를 시킬 생각이 없어. 내키지 않는다면 안 해도 좋단다.”

“저희한테 돈이 많이 들어가도요?”

지연의 말에 주민은 또 자신이 실수했단 것을 알아차렸다.

아이들을 책임지기로 한 이상 의식주를 제공하는 것은 주민의 책임 중 하나였는데 아이는 그것을 빚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이 자리에 오게 한 것도 사실은 부탁이 아닌 명령이었음을 깨달은 주민이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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