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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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먹으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거 너무 많은 거 같아요.”

“남으면 싸 줄게. 아니다. 남는 거 주는 게 아니라 새로 줘야지. 남 비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남는 걸 줄 수 없다면서 남 비서를 찾는 주민을 보고 지연이 황급히 말렸다.

이 사람은 진짜 새 걸 사서 들려줄지 모른다.

“왜 그러니? 혹시 못 먹는 거라든가 싫어하는 게 있다면 그거 빼고 가져가도 좋아.”

“괜찮아요. 군것질 많이 안 하면 돼요.”

“맞아요. 선생님이 군것질 많이 하지 말랬어요.”

“원래 애들은 군것질도 하고 사고도 치고 하면서 자라는 거란다.”

지연의 말에 주민이 태연하게 말했다.

아니 무슨 그런 말씀을?

처음 듣는 주민의 육아론에 지연과 지한이 어색하게 굳었다.

그런 아이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민이 태연하게 쿠키를 집어 먹었다.

주민이 과자뿐만 아니라 커피까지 들고 마시자 그제야 남매가 손을 뻗어 과자를 집었다.

그런 지연을 주민이 조용히 관찰했다.

‘역시 눈치를 많이 보는군.’

주민은 자신이 과자를 집어 편하게 먹고 나서야 슬그머니 손을 뻗는 아이들을 보고 미세하게 눈썹을 꿈틀거렸다.

좋지 않아.

어린아이는 눈치 없이 사고를 치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민으로서는 좋지 못한 환경 때문에 일찍 철이 든 것 같은 아이들을 보고 심기가 불편해졌다.

주민은 지한의 재능을 위해서 또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하게 해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눈치를 봐서야 아이들이 편한 마음으로 주민이 제공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선 곤란했다.

‘고작 초등학생 주제에 벌써 철이 든 것처럼 행동하다니.’

쯧.

주민이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런 주민의 불편한 감정을 기민하게 알아차린 존재가 있었다.

달칵

“역시 바쁜 거죠? 어른은 일해야 하잖아요. 지한아, 얼른 꽃 드리고 가자.”

“응? 응!”

누나의 말에 지한이 꼭 쥐고 있던 카네이션을 내밀었다.

지연 역시 카네이션을 내밀었다.

지한의 꽃 역시 갓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만들어진 종이꽃이었지만 지연의 꽃은 더 놀라웠다.

“이걸 직접 만들었다고?”

“네. 어버이날이라고 학교에서 만들었어요.”

“학교에서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같이했어요! 재밌었어요!”

부드럽게 주름진 종이가 풍성한 카네이션 꽃잎을 재현했다.

핑킹가위를 사용했는지 삐죽빼죽한 꽃잎의 끝을 본 주민의 눈이 놀랐는지 조금 커졌다.

조금 더 좋은 재료를 썼다면 실제 꽃과 다름없는 카네이션이 완성되었을지도 몰랐다.

의외의 곳에서 발견한 지연의 재능에 주민이 꽃과 지연을 번갈아 쳐다봤다.

“마음에… 안 드세요?”

“그럴 리가. 꽃이 너무 예뻐서. 내가 이걸 받아도 될지 모르겠어.”

주민의 대답에 지한이 순수하게 대답했다.

“선생님이 카네이션은 고마운 사람한테 주는 거랬어요.”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랬어요.”

지한과 지연이 차례대로 대답했다.

“사장님이 우리 키워주시는 거죠?”

“사장님이 우리 ‘보호자’잖아요.”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인사에 주민이 가슴이 먹먹해졌다.

들었구나.

주민은 아이들의 조부와 대화할 때 아이들이 방 바로 밖에 있는 거실에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조용히 대화한다고 했지만 좁고 오래된 시골집이라 그런지 다 들린 모양이다.

자신의 실수에 이마를 치고 싶어진 주민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들에게 어른의 사정을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

부주의했다.

이 남매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안일하게 행동했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고 주민의 입술이 떨렸다.

자신의 실수에 주민이 떨리는 입가를 애써 감추며 말했다.

“내가 받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 왜요? 이거 사장님 생각해서 열심히 만들었는데.”

자신을 생각하고 만들었다는 지한의 말에 주민이 할 말을 잃었다.

괜히 물었다.

지연의 동생의 뒤를 이어서 말했다.

“이걸 줄 수 있는 ‘어른’이 사장님밖에 없어요.”

“왜 나밖에 없어. 고 매니저도 있고 다른 사람도 많지 않니.”

“영훈이 형은 벌써 줬어요!”

“영훈 오빠 울었는데. 운전 잘하고 있으려나.”

영훈을 걱정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주민이 웃음이 새어 나왔다.

피식 웃는 주민의 얼굴에 아이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받으세요.”

“받아주실 거죠?”

아이들이 카네이션을 들고 주민에게 내밀었다.

* * *

눈앞에 있는 카네이션은 종이로 만들어졌지만 살아있는 것 같았다.

아마 그건 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카네이션을 만들었는지 들어버렸기 때문일 거다.

그 때문에 주민이 선뜻 손을 뻗지 못했다.

“내가 받기에는 꽃이 너무 아까워.”

“왜요?”

“왜 아까운데요?”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남매를 돌보기로 한 건 그것이 이득이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한 행동으로 소중한 마음을 담긴 카네이션을 받을 순 없었다.

주민의 양심이 허락하지 못했다.

“이건 진짜 너흴 잘 키워준 사람이 받아야 할 거 같아서.”

“? 사장님인데요?”

“사장님이네요.”

“다른 친구들이랑 놀지도 못하고 회사로 와서 연기 수업을 받으라고 하는데? 수업이 없어도 학교 마치고 회사 오라고 하는데?”

“연기 수업 좋아요.”

“사장님이 회사에 놀이방 만들어 주셨잖아요. 회사에서 노는 거 좋은데.”

남 비서에게 내렸던 지시가 떠오른 주민이 입을 다물었다.

간신히 입술을 뗐을 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긍정이었다.

“…고 매니저가 말해줬니?”

“데스크 누나가 말해줬어요!”

“그렇구나.”

입이 싼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아니지. 아이들에게 할 말 못 할 말 다 하고 다니는 게 문제였다.

직원들의 행동을 머릿속에 메모한 주민이 화제를 돌렸다.

“그건 회사 복지 차원이란다.”

“다른 회사에는 놀이방 없대요.”

“….”

주민이 또다시 침묵했다.

가족에게도 말로 진 적이 별로 없는데 자기보다 한참 어린아이에게 말로 밀렸다.

주민의 가족과 업계 사람들이 보면 기함할 업적을 이룬 아이들이 빨리 받으라는 듯이 카네이션을 가슴 앞까지 갖다 댔다.

“영훈 오빠는 왼쪽 오른쪽 하나씩 달았어요.”

“주머니가 왼쪽에만 있어서 여기에 같이 넣어야겠구나. 괜찮을까?”

“히힛. 네! 달아드릴까요?”

“좋아요. 솔직히 아까 영훈 오빠가 양쪽에 하나씩 달았는데 완전 구렸어요.”

아이의 솔직한 감상에 주민이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나중에 고 매니저의 꼴을 한 번 봐야 할 듯싶었다.

“사장님 여기 옷핀 있는데 안 찔리게 조심해야 해요. 그리고 여기 풀이 조금 튀어나와서 끈적해요. 사장님 이름 적은 게 제 거예요.”

“고맙다.”

“헤헤. 그럼 열심히 일하세요.”

“저흰 나가 볼게요.”

“잠깐만.”

나가려는 아이들을 주민이 불러세웠다.

밖에서 남 비서를 부른 주민이 지시를 내렸다.

“고 매니저한테 오늘 저녁은 애들이랑 꼭 같이 먹으라고 해. 이왕이면 맛있는 걸로 외식하고 계산은 비용 청구하라고 하고. 아. 여기 롤 케이크랑 땅콩 쿠키는 새로 사서 아이들이 갈 때 가져갈 수 있게 준비해.”

“알겠습니다.”

옆에서 주민이 남 비서에게 지시하는 것을 들은 지연이 동생의 손을 꼭 잡았다.

먹던 거 말고 새로 사 준다고 하더니 자신이 한 말을 지키는 주민을 지연이 지켜봤다.

게다가 둘 다 동생과 자신이 골라 먹었던 것이었다.

사장님은 정말 좋은 어른이구나.

우리 행동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있어.

“사장님. 그럼 오늘 영훈이 형 일찍 퇴근하는 거예요?”

“저녁만 너희랑 같이 먹는 거야. 밤에 또 일할 거야.”

굳이 바쁜 일정 속에서 저녁 같이 먹을 시간을 준다는 뜻이었다.

“너희들끼리 저녁 먹는 건 걱정이라서.”

아이들끼리 저녁 먹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저녁은 다 같이 먹어야지.”

비록 평범한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먹는 것과는 다를지라도 누군가와 함께 저녁을 먹게 해 주겠다는 뜻이었다.

이상하게 머릿속에서 주민의 말에 담긴 뜻이 좋은 쪽으로 해석되고 있었다.

지연이 주민의 행동을 물끄러미 보다가 큰 호선을 그리며 웃었다.

“고맙습니다.”

소속 연예인의 가족에게 어느 누가 이렇게까지 해 주겠는가.

부모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아이들에게 누가 이렇게 용돈까지 챙겨주며 데리고 있을까.

지연은 알고 있었다.

보호자 없이 사회에 내쳐지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냉혹한 것인지를.

알바비를 떼먹는 사장.

부모의 유산 때문에 싸우는 자식들.

어른들의 욕심에 반목하는 아이들.

저들만의 기준으로 등급을 나누는 사람들.

그런 곳에서 지연은 처음으로 면식이 없는 타인에게 대가 없는 도움을 받았다.

피가 이어진 친인척임에도 대가 없이는 어떠한 도움도 친절도 없었는데.

주민은 고작 ‘새싹’을 보고 계약했다는 이유로 책임을 지고 있었다.

“역시 사장님은 멋진 어른이에요.”

지연의 진심이 담긴 말에 주민과 남 비서의 시선이 지연에게로 향했다.

동생과 홀로 남아 아이다우면서도 가끔 삭막한 무언가가 느껴지던 아이에게서 처음으로 벽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것이 벽 뒤에 가려진 지연의 진심.

고작 먹이고 입히고 재우기만 했을 뿐인데 아이는 멋진 어른이라며 진심이 담긴 미소를 띠어 보였다.

그것에 주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외전. 주민과 카네이션(3)

6시에 칼같이 퇴근한 주민이 집으로 돌아왔다.

“왔니.”

“일찍 오셨네요.”

“오늘은 어버이날이니까. 한 시간이라도 일찍 보내줘야지.”

가족을 중시하는 태산다운 말이었다.

IMF 이후 많은 기업이 줄줄이 도산했다.

직장을 잃은 가장들이 길거리에 정처 없이 떠돌았고, 많은 가족이 안식처를 잃었다.

그 속에서도 태산은 함께 이 위기를 이겨내자며 나중에 다시 부르겠다는 말로 직원들을 달랬다.

자신의 말을 믿고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기에 태산은 미친 듯이 일했다.

그리고 태산은 2년 만에 그 약속을 지켰을뿐더러 30대 기업 안에 순위를 올리는 업적을 이루었다.

그 모든 것은 ‘가족과 함께하는 직장’이라는 태산의 목표 때문이다.

“씻고 와라.”

“네.”

주민이 거실을 지나쳐 방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그때 태산의 시선에 주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가 보였다.

“가슴에 단 건 뭐냐?”

“아. 애들이 준 겁니다.”

“애들?”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저건 카네이션이었다.

게다가 준 사람이 애들이라고?

태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민에게 아이가 생겼나 고민했다.

그런 아버지의 고민도 모르고 주민이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위로 올라간 주민이 가슴에 달린 카네이션을 조심스럽게 빼냈다.

아이들이 준 카네이션을 손에 쥐고 빙글 돌리면서 주민은 아이들이 이 꽃을 줄 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선생님이 카네이션은 고마운 사람한테 주는 거랬어요.’

‘이걸 줄 수 있는 ‘어른’이 사장님밖에 없어요.’

‘역시 사장님은 멋진 어른이에요.’

자신이 해 준 게 뭐라고.

고작 그런 걸로 감사하다는 말을 들은 주민의 가슴이 무거워졌다.

어버이날에 부모님의 가슴에 달아주는 카네이션.

10년 가까이 함께했던 사람보다 고작 몇 개월 받은 것이 더 고맙다고 말하는 아이들.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이 세상에 너무 많군.”

주민이 씁쓸하게 웃으며 카네이션을 협탁에 두고 욕실로 향했다.

* * *

조금 전 ‘애들’ 발언 때문에 가족들 사이에 폭탄이 떨어진 것도 모르는 주민이 상쾌한 얼굴로 식당으로 내려왔다.

가족들이 주민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왜.”

“아니다.”

“뭔데. 할 말 있으면 해.”

작은형을 보는 주민의 눈이 날을 세운 칼처럼 날카로워졌다.

“크흠. 밥 먹자.”

태산이 둘을 중재하며 저녁 식사의 시작을 알렸다.

오늘 같은 날 기분 좋게 먹어야 할 밥인데 어째 다들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가족들의 머릿속에서 어떤 상상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주민이 기계적으로 입안에 들어온 걸 씹다가 입을 열었다.

주민이 고개를 돌렸다.

“형.”

“왜?”

“자식을 가진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야.”

쨍그랑

챙-!

덜그럭

주민의 말에 식사하고 있던 가족들이 하나씩 식기를 떨어트렸다.

지금 얘가 무슨 소릴 한 거야?

가족들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자식?! 그런 아까 아빠가 했던 애들이라는 말이 진짜였어?’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고 왔다고? 카네이션을 만들 정도라면 도대체 애가 몇 살인 거야?’

‘침착하자. 주민이 선택한 아이라면 나도 받아줘야지. 도대체 언제 애가 태어난 거지? 혹시 회사가 힘들 때라 말을 못 한 게 아닐까?’

가족들의 머릿속에서 아침 드라마가 대하 서사시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때, HJ일가의 수장이자 공씨 가문의 우두머리인 태산이 아들의 말을 듣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원래 그의 젓가락에 걸려있던 나물은 조금 전 주민의 말을 듣고 식탁 위에 떨어진 지 오래였다.

“데려와라.”

“? 누구를요?”

“네 애들 말이다.”

태산의 발언에 주민을 포함한 가족들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혹시나 하던 일이 역시나가 된 기분이었다.

주민이 뜬금없는 아버지의 발언에 경악하다가 무언가를 깨닫고 화가 차올랐다.

“그런 거 아닙니다.”

“괜찮다. 우린 이해할 수 있어.”

“아닙니다.”

“애들이 올해 몇 살이니.”

“아니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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