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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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온 지한은 지연을 욕실로 밀어 넣었다.

씻고 나오라는 무언의 압박을 느낀 지연이 씻고 나왔을 땐 지한이 한 상 거하게 차린 뒤였다.

상쾌하게 씻고 배까지 든든하게 채우니 지연은 어느새 기분이 좋아졌다.

누나의 상태를 확인한 지한이 무언가를 가지고 나오며 소파에 앉아 있는 지연에게 넌지시 물었다.

“회귀 전에 알던 사람이라도 만났어?”

“중학교 동창. 아니 정확하게는 중고등학교 동창?”

“그냥 동창은 아닐 테고, 예전에는 꽤 친했었어?”

“친하다고 생각했었어.”

뭔가 있는 듯한 누나의 말에 지한이 조용히 누나의 앞에 캔맥주를 밀었다.

치익-!

캔을 딴 지연이 맥주 광고라도 찍는 듯이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시원한 탄산이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꿀꺽꿀꺽

목을 축인 지연이 입을 열었다.

“잊은 줄 알았는데 얼굴 보니까 다시 생각나더라.”

“뭐가.”

“걔가 한 말. 예전에 걔가 나한테 그랬거든. 내가 너무 나대서 애들이 싫어한다고. 반 애들이 날 어떻게 깠는지 조목조목 알려줬지.”

“그렇구나. 누난 반 친구들 다 알고 있었어?”

“모를 수가 있나. 만날 때마다 인사하고 같이 수업 듣고 했던 사인데.”

지연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살짝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찰나의 순간 지연의 씁쓸한 미소를 목격한 지한이 아무렇지 않게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그런 것까지 알려줬으면서 왜 사이가 틀어졌어?”

“뭐? 어떻게 알았어?”

“방금 누나가 말했잖아. ‘친하다고 생각했었지.’라고.”

귀신같은 녀석.

하여튼 대사 외울 때 쓰는 머리 이럴 때 쓰지 말라고.

지연이 쓸데없는 말 한마디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동생을 보고 눈을 흘겼다.

“나는 걔가 정말 친구라고 생각했어. 뒷담 깐 반 친구들 버리고, 중학교 시절을 같이 보냈던 무리 애들이 날 내치고. 아. 정확하게 말하면 희연이가 혼자 대변한 거지만.”

“대변?”

“대변한 것도 아닌가? 나중에 다른 애 결혼식에서 만났는데 말 걸지 말라고 한 건 기억도 못 하더라? 그리고 결혼식 하는 애가 무리 중 한 명이었는데 자기네들은 그런 말 한 적 없다더라고. 오히려 내가 갑자기 빠지기로 했다면서 희연이가 전했다는 거야.”

“완전 이간질시켰네.”

“이간질인가? 아무튼 사람들을 쳐내고 나니까 주위에 남은 사람이 겨우 한 손에 꼽을 정도인 거야.”

그 말을 하고 지연이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왜 자꾸 목이 타는지 모르겠네.

맥주로 입술을 적신 지연이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초롱이랑 수진이만큼은 정말 끝까지 친구일 거라고 믿었거든. 다 쳐내고 겨우 남은 친구였으니까. 그런데 아니더라.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한 거였어.”

의문이 차오르는 동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지연이 고개를 숙였다.

지연의 입에서 결정적으로 틀어지게 된 계기가 흘러나왔다.

“도와준다고, 사회생활 경험하게 해 준다고 알바를 소개시켜 줬어. 일당 10만 원으로 3일을 일했는데 알바비가 안 들어오는 거야. 물론 그사이 면접 보러 돌아다니고 자소서 쓰느라 바쁘긴 했지만 한 달이 넘었는데 안 들어와서 보름을 더 기다렸어.”

“그거 이상한데.”

“그치? 나도 일당을 이렇게 오래 안 주는 곳은 처음이어서. 그래서 물었지.”

“알바비 언제 들어오냐고?”

“응. 알바생들 있는 단톡방에. 혹시 나만 못 받은 건가 싶어서.”

“누나만 못 받은 거였어?”

“아니. 다들 못 받았어. 거기 일 처리가 조금 느리더라고.”

지연이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

“그래서 그다음은?”

“그랬더니 뭐. 다음 날 갑자기 불러서 다짜고짜 깠지 뭐. 나 때문에 회사생활 완전 망했다고.”

“거기서 망할 게 뭐가 있어. 알바비도 제대로 안 주는 회산데.”

투덜거리는 동생을 보고 지연이 웃었다.

내 얘기를 한 적은 정말 오랜만인데.

오랫동안 속에 담아뒀던 얘긴데 생각보다 가볍게 뱉을 수 있었다.

“단톡방에 알바생들이랑 알바생 부른 사람이랑 다같이 있었거든. 거기에 팀장도 있었어. 자기한테 먼저 말 안 하고 바로 팀장이 있는 방에 말했다고 화내더라고.”

“본인이 총무야? 아님 재무부 소속? 아. 이건 인사부에서 관리하는 건가?”

“아니야. 걔도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인턴이었어.”

“그런데 왜 자기한테 말해? 돈 주는 사람한테 말해야지.”

“그러게 말이야.”

“다짜고짜 불러서 깐 것도 웃겨. 솔직히 그쪽이 잘한 건 없잖아. 누나가 타박받을 게 뭐 있다고.”

자신을 대신해서 화내는 듯이 눈썹이 하늘로 치솟고 미간을 좁히며 일침을 늘어놓는 동생을 보고 지연이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든든한 내 편이 함께 있는 기분이었다.

아니지. 지한이는 이미 세상에서 제일 믿을 수 있는 내 편이었지.

“내가 봤을 땐 그 사람들은 그냥 누나 상황을 보면서 우월감을 느꼈던 것 같아. 그러니까 그렇게 다짜고짜 불러내서 누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썼지.”

“그랬을지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닐 거야.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관계가 그렇게 흘러가 버렸을지도 몰라.”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됐어?”

“그날 바로 연 끊었어. 집으로 펑펑 울면서 갈 때. 전화로 따질 용기도 없어서 장문의 문자를 보내고 일방적으로 차단했었지. 혹시 그때 2호선 폭풍오열녀라고 떴을지도 몰라.”

울면서 집으로 걸어왔던 그날 밤.

돈도 없고 가족도 없던 나에게 드디어 마지막 남은 친구마저 사라졌다는 사실에 서러워져 펑펑 울었다.

그렇게 며칠을 울면서 의욕 없이 있던 것도 잠시 자신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냐면서 분노하며 여기저기 자소서를 넣었던 게 기억났다.

진짜. 어떻게 보면 참우정이야.

덕분에 며칠 만에 중소기업에 취직했으니까.

물론 인턴만 하고 짤렸지만.

“그래도 나름 걔네 덕에 취업하긴 했어. 그 분노를 그대로 취업 준비에 쏟아부었거든. 어쨌든 그 이후로는 차단해서 뭐 하고 지내는지도 몰라.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도 몰랐어. 예전에는 광고업계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일했었거든.”

덤덤하게 풀어내는 누나의 말에 지한이 맞장구를 쳐 주고 진지하게 지연의 말을 들었다.

누나가 과거 일을 먼저 말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조용히 지연이 속에 쌓아뒀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지한은 촬영장에 있던 스태프의 얼굴을 머릿속에 하나씩 새겨 넣었다.

“그때는 그렇게 화가 났었는데. 지금은 조금 이해가 가기도 해.”

“그 사람들이?”

지연의 말에 지한이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이 누나를 돌아봐다.

얼굴 가득 ‘말도 안 돼.’라고 쓰여 있는 동생을 보고 지연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과거의 자신을 묘사했다.

“예전에는 내가 좀 많이 부정적이었어. 피해망상이 쩔었거든. 그래서인지 고시 스터디도 그렇고 취업 스터디도 그렇고 잘 안되더라고. 그때 수진이란 애가 단기 알바 있다면서 이거라도 하면서 사회생활 감 좀 찾으라고 했어. 뭐, 그때의 난 그것도 잘 못 했지만.”

씁쓸하게 자신을 비하하는 지연을 보고 지한이 입술을 깨물었다가 참지 못하고 목소릴 내었다.

“아니야, 누나.”

“응?”

“그때는 누나가 힘들 때였잖아.”

“세상에는 그때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았는걸.”

“그렇다고 해서 누나의 힘듦이 줄어드는 건 아니야.”

음침하고 찌질하고 부정적이던 그때의 오지연을 지금의 동생이 변호해줬다.

동생의 말에 지연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입을 다물었다.

“누나는 멋지고 빛나는 사람이야. 다른 사람의 악의에, 갑자기 닥친 고난에 잠시 그 빛을 잃었을진 몰라도 누나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란 걸 나는 알아. 그러니까 힘들었던 시기의 자신을 너무 비난하지 말았으면 해.”

지연이 고개를 돌렸다.

날렵한 콧날과 조각가가 심혈을 기울여 깎은 듯한 턱선이 보였다.

예전과는 다른 훤칠한 미모의 동생을 보자 지연이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고마워. 이젠 괜찮아. 괜찮아졌어.”

“정말?”

“응. 정말.”

지금은 그때랑 달리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있으니까.

본인 일처럼 화를 내주고, 싸워주고, 달래줄 내 편이 있었다.

‘괜찮아.’

그때랑 달리 지금은 내 편인 사람들이 많으니까.

지연이 맥주캔을 내밀었다.

지한과 지연이 캔을 부딪쳤다.

이제야 앞만 보고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외전. 주민과 카네이션(1)

K-콘텐츠를 주도하는 탑엔터테인먼트의 정상.

그곳에는 HJ그룹의 삼남이자 탑엔터의 수장, 그리고 가정의 가장인 남자가 있었다.

사각사각

주민은 손으로는 시시때때로 올라오는 결재판들에 사인을 하면서 눈으로는 모니터를 살피고 귀로는 남 비서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손, 눈, 귀 전부 다른 일을 하고 있었지만 주민의 머리는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순조롭게 처리하고 있었다.

남 비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막힘없이 보고를 이어갔다.

“이상입니다.”

“그래. 잘하고 있군.”

남 비서의 보고를 들은 주민이 자신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주민의 말에 담긴 주어를 알아차린 남 비서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걸렸다.

“네. 지연이랑 지한이가 잘하고 있습니다. 둘 덕에 해외에서도 우리 회사가 좀 유명합니다. 국뽕 뉴튜브에서 여전히 저희 애들을 써먹고 있는 것 빼고는 아이들도 회사도 전부 이상 없습니다.”

“애국 채널에서 우리 애들 우려먹는 건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한국인에 대한 해외 반응이라든가 놀라운 활약을 한 인물로 한국인의 자긍심, 소위 말해서 국뽕을 자극하는 뉴튜버들이 있었다.

대내외 할 것 없이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지연과 지한이었다.

“게다가 우리 애들이 대한민국에서 건들면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라고 불리기까지 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자제시켜도 계속 쓰거든요.”

주민의 결재를 하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드디어 그의 시선이 아이들의 입덕 영상에서 떨어져 궁진을 쳐다보았다.

“건들면 안 되는 사람? 다른 사람은 누군데?”

“유느님, 연느님, 그리고 오오느님입니다.”

“아.”

그거?

난 또 뭐라고.

뒤에서 내가 한 짓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은 줄 알았는데 신성시해서 그런 거였군.

국민 MC인 유주석이랑 피겨여왕 김연하, 그리고 오오느님이 우리 애들이겠지.

연예계뿐만 아니라 팬들 사이에서도 아이들을 건드린 사람에게 가차 없이 철퇴를 내렸다는 것으로 유명한 주민이 남 비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고 보니 이제 곧 지연이가 말한 그 시기가 오겠군.”

“그 시기 말씀이십니까? 내일 오전에 주의사항이 한 번 더 공지될 예정입니다.”

남 비서가 스케줄을 확인했다.

D-day에 적힌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시기.

앞으로의 공연 패러다임을 바꿀 사건.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는 질병이 시작되는 시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칸에서 상을 받고 활발하게 움직여야 할 아이들이 스케줄을 비워야만 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촬영을 마치기 위해서 지한이는 드래곤 엠페러 시리즈의 마지막을 찍으러 급하게 할리우드로 향했고

지연이는 새 앨범과 온라인 콘서트를 위해서 회의와 작곡에 몰두 중이었다.

이미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했지만, 지연이 기억하는 큰 사건은 약간의 시기 차이가 있을 뿐 그대로 진행되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아마 그 질병이 유행하겠지.

“당분간은 조심해야 해. 알겠지? 해외 촬영뿐만 아니라 국내 활동도. 소속 연예인들의 불만이 나올 수 있다. 매니지먼트 부서에게 잘 달래라고 얘기해.”

“알겠습니다.”

남 비서가 주민의 지시사항을 기록했다.

미리 대비하고 있으니 별문제 없이 넘어갈 거다.

지연의 말을 듣고 허투루 준비하지 않았으니까.

“앞으로는 지연이가 볼 수 없는 일이 늘어날 거야.”

“지연이가 알고 있는 시간은 2021년까지였었죠.”

“그래.”

지연이가 예지할 수 있는, 아니 경험했던 시기.

하지만 모른다고 해서 벌벌 떨고 있을 순 없다.

이때가 올 거라 예상하고 주민은 차근차근 준비했었다.

어린아이에게 의지하는 건 어른이 할 짓이 아니니까.

그때 주민의 귓가에 어린 지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사장님은 멋진 어른이네요.’

아주 오래전 지연이 했던 말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는 걸 모르는 주민이 오랜 기억을 떠올렸다.

그래. 나는 ‘어른’이니까.

‘어른’이라면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야지.

주민의 기억이 먼 과거로 향했다.

* * *

그건 지한과 계약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지한과 계약하고 첫 작품을 무사히 끝냈다고 생각한 참에 이미란이 아이들을 버리고 도망쳤다.

앞으로의 활동을 생각하면 지한이 서울에 있는 편이 좋았기에 주민은 아이들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데려왔다.

딸이 저지른 잘못에 손주들을 볼 면목이 없던 외조부는 주민의 제안을 수락했다.

“일단 지한이 학업에 필요한 건 바로 확인하고 지원할 수 있게 준비해. 수업료 외에 다른 건 책정하지 말고.”

“그래도 되겠습니까?”

“치사하게 입고 먹고 자는 것까지 비용 처리 할 생각 없어. 그리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주민의 말에 남 비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일반 가정에서 아이들을 무사히 키우는 때까지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인지 말해주고 싶었으나 눈앞의 사장님께는 용돈 수준일 테니 나서서 말할 생각은 없었다.

‘사장님 말이 틀린 것도 아니고.’

애들한테 먹는 걸로 치사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문제가 많은 부모 아래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왔을 아이들이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는데 눈칫밥까지 먹게 할 순 없지 않은가.

“직원들한테는 미리 알려두도록 해. 앞으로 아이들이 회사 내에 드나들 거니까.”

“알겠습니다. 그런 김에 회사 내에 아이들이 편하게 있을 수 있는 휴식 공간을 만드는 건 어떨까요. 회사 내에 아이들이 편하게 머물 공간이 있으면 다른 직원도 편하게 일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좋은 생각이군. 다른 직원들의 의견 수렴해서 보고서 만들어 와. 예산은 신경 쓰지 말고.”

“네.”

이런 주민의 생각이 HJ그룹에 반영되어 ‘HJ클라쓰’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주민의 적극적인 노력 덕에 탑엔터 직원들은 회사 내에 아이가 뛰어다니는 것에 익숙해졌다.

탑엔터 로비에 책가방을 맨 아이가 들어왔다.

로비를 담당하고 있던 직원이 아이들을 보고 인사를 건넸다.

“지연이 지한이 안녕?”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직원의 인사에 아이들이 자리에 멈춰서 인사를 했다.

아이답지 않은 얼굴을 한 지연이 예의 바르게 인사했고, 지한이 활기차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오늘도 연습실?”

“네.”

“재휘 선생님이 오늘 재밌는 거 한다고 했어요!”

“그래? 잘 됐다. 오늘도 열심히 해.”

“네!”

“가자. 그럼 올라가 볼게요.”

지한이 활기차게 대답했다.

지연이 동생의 손을 잡고 연습실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인사를 잊지 않은 지연을 보고 직원이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보기 힘든 어린아이들.

한 명은 벌써 국민 최루탄이라는 별명이 붙은 연기 천재, 한 명은 연기 천재의 누나.

그런 아이들을 보고 직원들이 속닥거렸다.

“저 애가 사장님이 직접 가서 계약했다는 그 애? 역시 우리 사장님.”

“우리 사장님 보는 눈 좋은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 난리가 있었는데도 계약 무르지 않으시더니 첫 배역부터 대박 터트렸잖아.”

“난리?”

무슨 난리?

어리둥절해하는 동료를 본 직원이 주위를 살피더니 가까이 붙으며 작게 속삭였다.

“거, 왜 있잖아. 부모 중 한 명은 알코올 중독자에 가정폭력으로 잡혀가고, 나머지 한 명은 애들 계약금 들고 튀었잖아.”

“아! 그거! 그 이야기가 저 애 일이었어?”

온 국민이 분노를 터트렸던 그 사건.

가정폭력을 개인 가정사로 치부했던 이 시기여도 워낙 유명한 사건이었다.

자칫하면 대형 방화로 이어질 뻔한 사건이었으니까.

게다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연예계라지만 부모가 이제 초등학생이 된 아들의 계약금을 들고 도망친 건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고영훈 매니저가 고생하는 중이잖아. 아무리 우리가 연예인들 수발드는 신세라지만 고 매니저는 애들을 키우는 것까지 하고 있으니까.”

“고생이네.”

육아가 만만치 않은 일임을 잘 아는 동료가 이 자리에 없는 영훈을 걱정했다.

어쩐지 살이 쏙 빠진 것 같더라니 육아 때문이었나?

다음에 커피라도 한 잔 사줘야겠네.

잡담을 나누던 두 사람이 자리를 떴다.

* * *

“오늘은 여기까지.”

“흐하! 감사합니다.”

재휘의 말에 지한이 지친 숨을 토하고 인사했다.

연기도 결국은 체력.

걷는 법, 호흡하는 법, 말하는 법 등을 가르치면서 기본 체력을 기르는 법도 가르쳤다.

아직 참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계속해서 같은 것을 반복하지만 지한이는 용케 잘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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