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살고 싶었습니다.]
연희가 죽은 생선 같은 눈으로 관객들을 바라보았다.
* * *
청담의 한 카페.
이 근처에는 대형기획사들이 자리하고 있어 스타의 얼굴을 보기 위해 찾아온 각국의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탑엔터가 잘 보이는 이 카페는 전날부터 줄을 서야 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카페였다.
그 이유로는 다름 아닌 탑엔터의 얼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예인 중의 연예인인 오지한과 지연이 자주 찾는 단골 카페이기 때문이다.
우리 애들의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이 카페를 오전 동안 빌린 공주민 사장 덕에 Ytv 기자인 유정은 팬들이 부러워할 특등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음료 드시겠어요?”
전세를 냈지만, 주문받은 메뉴를 만들기 위해서 카페 사장은 상주하고 있었다.
두 기자가 음료를 주문했다.
“여름 특선 리얼딸기라떼 부탁드립니다.”
“리얼딸기라떼요. 알겠습니다.”
“저는 그냥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네. 사이즈는 뭘로 하시겠어요?”
“톨 사이즈요.”
“저도 같은 사이즈로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진동벨로 알려드릴게요.”
유정의 주문을 들은 사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능숙하게 주문받아 음료를 제조했다.
위에 올라가서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으니 진동벨이 울렸다.
“내가 갔다 올게. 넌 준비하고 있어.”
“고마워요.”
아래층에 다녀온 동료의 손에는 싱그러운 생딸기가 올라간 리얼딸기라떼와 얼음이 가득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들려 있었다.
언제 디저트를 시켰는지 갓 구운 스콘이 쟁반 위에 함께 올라와 있었다.
“여기 스콘 서비스로 주시더라.”
“서비스가 좋네요.”
“우리 애들 기사 잘 써 달래.”
“아.”
사장님도 오니버스 회원이시구나.
유정이 오늘 처음 본 카페 사장님과 내적 친밀함을 쌓고 있을 때 아래에서 영롱한 종소리가 들렸다.
주인의 귀가를 반기는 반려동물처럼 유정의 귀가 쫑긋 섰다.
또각또각
뚜벅뚜벅
발소리 두 개가 나란히 짝을 맞췄다.
계단으로 시크한 블랙 시스루 원피스를 입은 지연과 등이 시스루로 되어있는 블랙 셔츠를 입은 지한이 런웨이를 하듯이 걸어왔다.
우아한 흑표범을 보는 듯한 두 사람의 모습에 유정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킇.”
이상한 괴성을 뱉는 유정을 무시하고 수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음료는 뭘 드시겠습니까?”
“안녕하세요, 김 기자님. 여전히 진 기자님이랑 같이 다니시네요.”
“안녕하세요. 음료는 올라오면서 시켰어요. 사장님이 가져다주실 거예요.”
“아. 사장님이 직접요?”
우리는 가져가라고 진동벨 줬는데.
유정과 수명이 눈빛을 교환했다.
분명 그 사장님 직접 가져다 주는 게 두 사람 얼굴을 한 번 더 볼 수 있으니까 그러는 거다.
두 기자가 가장 유력한 가설로 마음이 기울고 있을 때 남매가 맞은편에 앉았다.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완벽한 남매의 모습에 두 사람이 눈 호강을 하고 있을 때, 카페 사장이 음료를 두고 갔다.
지연은 유정과 똑같은, 아니. 유정이 지연과 같은 걸 고른 게 분명한 리얼딸기라떼를 들었고, 지한은 시원한 청귤에이드를 들었다.
빨대로 음료를 마시는 모습도 화보를 찍는 것 같은 두 사람의 모습을 얼마나 보고 있었을까.
적당히 목을 축인 두 사람을 확인한 영훈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인터뷰 시작은 언제 하십니까? 벌써 시간이 된 거 같은데요.”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고 매니저님 아니었으면 하루 종일 두 분의 얼굴을 구경하느라 시간이 다 갔겠네요.”
“하하하. 다들 그러곤 합니다.”
“그런데 고 매니저님이 인터뷰에 따라오다니. 뭔가 저희가 대단해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웬만한 것이 아닌 이상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고 실장이 직접 현장에 나오는 일은 드물었다.
그런데 Ytv와의 인터뷰에 고 실장이 직접 나오다니.
그만큼 Ytv가 인정받는 것 같아서 두 사람의 어깨가 살짝 올라갔다.
“두 기자님들을 만나는데 당연히 와야죠. 저희가 두 분을 영화 시사회에 초대한 것 안 잊으셨죠?”
“물론이죠. 다들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자리에 흔쾌히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로의 얼굴에 가벼운 금칠을 해 준 뒤, 유정이 녹음기를 켜고 수명이 카메라를 들었다.
찰칵!
본격적인 인터뷰 시작하기 전 나란히 앉은 남매의 모습을 수명이 카메라에 담았다.
셔터음을 신호로 유정이 질문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칸에서 본 이후 4년 만에 뵙습니다.”
“안녕하세요. 벌써 그렇게 됐나요?”
“네 맞아요. 칸에서 두 분이 동시에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받아 화제가 된 게 벌써 4년 전이에요.”
훌쩍 지나가 버린 시간에 남매가 얼굴에 놀라운 감정을 드러냈다.
햇빛이 반짝반짝 들어오는 실내에서 4년 전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오히려 더 아름다워진 두 사람의 모습을 수명이 찍었다.
이 말로 인해서 4년 전 Ytv 칸 라이브 영상을 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겠지.
“이번에 찍은 영화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유정의 질문에 지한이 대답했다.
“이번에 제가 누나랑 함께 찍은 영화 <거스르다>는 후회 속에서 밖과 단절된 삶을 살던 여자가 우연히 가장 후회하던 시절로 돌아오게 되면서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았던 가족들이 사실은 기억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영화입니다. 거기서 저는 연수의 동생 연우 역을 맡았고, 누나는 연수 역을 맡았습니다.”
옆에서 지한의 말을 듣고 있던 지연은 동생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줄거리에 다시 한번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지연아. 류승욱 감독님이 너한테 시나리오를 보내셨는데 한번 읽어볼래?’
‘류 감독님이? 드디어 입봉하시는구나.’
어차피 박범수 감독님이랑 계약할 때 류승욱 감독님의 입봉은 예정된 것이었다.
칸에서 상을 받은 다음 날, 류승욱 감독님이 꼭 다음에 자기 영화에 출연해 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다만 출연하는 건 시나리오를 보고 결정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가져온 시나리오가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내용이라니.
솔직히 류 감독님이 시나리오 쓰면서 자료 조사나 우리랑 인터뷰하는 걸 보지 않았으면 류 감독님도 회귀자가 아닌지 의심했을 것이다.
“이런 말 하긴 조금 그렇지만 두 분께서 이런 역할을 맡는 게 쉽지 않으셨을 거 같아요.”
“아무래도 그랬죠? 하지만 몰입하기는 쉬웠어요.”
“연수와 연우의 가정사가 저희와 조금 겹치는 게 있어서 솔직히 캐릭터를 만들고 연기하는 건 수월했어요. 오히려 연기가 끝나고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게 다른 작품보다 힘들었죠.”
연기하면 할수록 흑역사를 마주하는 기분이라서 뛰쳐나가고 싶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덕에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그러면서 지금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다.
동생을 버리지 않기로 선택한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졌다.
“영화를 찍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연수와 연우 남매의 가족은 각기 다른 답을 내어놓거든요.”
“어떤 답을 내놓는지 말해주지 않으시겠죠?”
“그에 대한 답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제할게요.”
“아쉽네요. 어쩔 수 없이 영화를 보러 가야겠습니다.”
“저희 누나가 영업을 잘하죠?”
“그렇네요. 지난 작품에서 연기했던 잘나가는 엘리트 광고회사 직원을 연상하게 만드는 모습이네요.”
지연이 할리우드에서 찍었던 작품을 떠올리며 유정이 먼눈을 했다.
하지만 각자의 답은 영화의 핵심 스토리임이 분명했기에 유정은 다른 질문을 이어서 했다.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유정은 두 사람과의 인터뷰가 쉽게 오는 일이 아님을 알고 열정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4년 전에도 쉽게 볼 수 없던 두 사람인데 칸에서 수상 이후 국제무대에서 날뛰는 두 사람 덕에 이렇게 동시에 인터뷰를 잡는 건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연 씨에게 드리는 질문인데요, 4년 전 칸에서 지연 씨가 인터뷰했던 내용 기억하실까요?”
“하하핫. 네. 그때도 진유정 기자님이 칸까지 직접 와서 인터뷰하셨죠.”
시공간을 넘어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네 사람이 다시 이곳에서 만났다.
지연이 그때를 기억해줘서 고맙다는 듯이 유정이 눈을 깜빡이고 말을 이었다.
“그때 지연 씨의 목표가 참 인상적이었는데요, 지금도 그 목표에 변함은 없으신가요?”
질문을 들은 지연이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점멸하는 시야 속에서 지연의 기억이 깊이 침잠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하는 일은 전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줬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며, 노래를 부르는 것, 거기에 연기를 하는 것까지.
전부 옆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쉽게 찾을 수도, 도전할 수도 없었을 거다.
앞으로의 시간은 내가 모르는 시간들로 가득하겠지만 지한이랑, 사장님이랑, 미나 언니, 영훈 오빠, 은주 언니, 헨리 선생님 등.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전혀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람들과 모르는 시간을 어떻게 채워갈지 상상하면 두근거려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네. 앞으로도 제 목표는 변함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일
좋은 작품
모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거다.
나는 그 사람들과 함께 앞으로의 시간을 채워 나갈 거다.
지연의 선언에 유정의 입가마저 미소가 떠올랐다.
전염력 있는 지연의 미소에 유정이 들뜬 얼굴로 인터뷰를 종료했다.
“앞으로도 지연 씨와 지한 씨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네 사람이 고개를 숙여 서로에게 인사했다.
이제 새로운 미래를 살아갈 시간이었다.
외전. 과거로부터 날아온 인연(1)
20대 젊은 여성층을 대상으로 하는 화장품 광고 촬영 현장.
이곳에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가 와 있었다.
“지연 씨가 해 주겠다고 해서 얼마나 안심했는지 몰라요.”
“저도 하고 싶었어요. 저 이거 자주 쓰거든요.”
“정말?!”
광고주 측에서 온 젊은 임원이 지연의 대답을 듣고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오늘 광고 모델이 누구던가.
세계가 낳은 보석
대한민국 대표 연예인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배우
등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지연이 오늘 찍는 광고의 주인공이었다.
이번에 촬영할 제품은 피부를 맑고 투명하게 해 주는 기능을 내세우고 있었기에 자연미인이자 깐 달걀 같은 피부로 유명한 지연을 모델로 선정한 것이다.
물론 지연이 찍으면 품절은 당연하고 브랜드 이미지까지 상승한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지연 씨, 내가 말했던가요? 우리 모델이 되어줘서 고맙다고.”
“그만 감사하셔도 돼요. 저도 프로로서 돈 받고 하는 일인걸요.”
“그래도. 우리한테 기회를 줬잖아. 다른 회사에서도 연락한 거 다 알아.”
“하하하. 저희 지연이가 좀 인기가 많아서요. 다른 곳에서 더 불러 준다고 했는데도 지연이가 이 제품이 마음에 든다고 하겠다고 한 거 있죠?”
“역시!! 우리 지연 씨!”
광고주 측에서 나온 사람이 장훈의 자랑을 듣고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꽤 높은 자리에 있는 임원이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추태를 부려도 되는 건가?
지연이 광고주의 사회적 체면을 신경 쓰고 있을 때 바깥에서는 세트장 점검이 한창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몸값이 제일 높은 여배우가 촬영할 곳이었다.
만의 하나의 일로 문제가 생긴다면 전 세계에 있는 지연의 팬들로부터 무수한 협박이 쏟아질 것이다.
아니, 그 전에 탑엔터 공주민 사장이 자신들을 가만히 두지 않겠지.
밖에서 점검을 마친 스태프가 지연에게 알리러 왔다.
“지연 씨. 스탠바이 할게요.”
“아, 나갈게요.”
분장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메이크업을 받은 지연이 세트장으로 나오자 그곳은 바닷속에 온 것처럼 푸른 배경이 짙게 깔린 곳이었다.
푸른 벽을 배경으로 소품이 놓인 곳을 보고 있을 때 지연의 곁으로 감독이 다가왔다.
“지연 씨. 알고 있겠지만 여기선 물이 사람으로 빚어진 것 같은 느낌을 내는 게 중요해요.”
“네.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연기 쉽게 부탁하지 않겠지만 지연 씨니까 믿고 맡길게요.”
“믿어주셔서 감사해요.”
지연의 말에 감독이 감동했다.
어쩜. 지연 씨는 다른 사람들이랑 달리 이렇게 태도가 싹싹할까.
광고 촬영을 할 때면 별의별 사람들을 다 보게 된다.
자신이 먹던 음료가 아니면 안 된다면서 스태프에게 심부름시키는 사람.
기분이 안 좋다면서 촬영이 지연되는 사람.
콘셉트랑 다른 촬영을 원하는 사람.
낙하산으로 꽂힌 주제에 빽 믿고 오만하게 구는 사람 등등
물론 촬영이 수월하게 진행될 때도 많지만 광고 촬영이란 무수한 변수가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연은 어떠한 변수 속에서도 무사히 촬영을 끝낼 거란 믿음을 갖게 하는 배우였다.
“우리 지연이 세트장 앞에 서니까 꼭 아프로디테 같다.”
“바다 거품 속에서 태어난 여신 말이죠?”
“우리 지연이라면 당연히 미의 여신이지. 암.”
“다들 그만해 줄래?”
지연의 타박 아닌 타박에 다들 입은 다물었지만 얼굴 가득 떠오른 주접과 장난기는 숨길 수 없었다.
한 팀으로 움직인 시간이 시간인지라 주접을 떠는 것도 손발이 잘 맞는 팀원들을 보며 지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주접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10년 넘게 보고 있는 얼굴이지만 나도 가끔은 거울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단 말이지.
내 얼굴이 수술도 없이 이렇게 자연적으로 예뻐질 수 있다니.
‘이름 모를 신님 감사합니다.’
속으로 기도한 지연의 귓가에 낮게 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무튼 멋진 축복 덕에 이런 광고도 찍게 됐으니 역시 인생은 2회차가 진리지.
“드레스를 하얀색으로 하길 잘했다.”
“맞아요. 지연이가 입으니까 광채가 나는 느낌이에요.”
“수분이랑 미백. 광고 보자마자 제품이 어떤 기능을 가졌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은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민 지연을 본 팀원들이 한마디씩 했다.
이번 광고에서 찍을 것은 투명한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산뜻한 토너 제품이었다.
맑고 투명한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푸른 디자인과 촉촉함과 산뜻함을 내건 기초 제품.
그 속에서 자체 발광하는 듯한 지연의 존재.
벌써 제품이 완판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또 시작됐다.’
해도 해도 질리지 않는지 팀원들의 주접이 또 발동될 기미가 보였다.
지연이 말리는 것을 포기하고 촬영장을 둘러봤다.
“어?”
지연의 시선이 세트장 한 곳으로 향했다.
어리숙한 얼굴로 촬영장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여성.
질끈 묶은 머리와 다른 사람들이 부를 때마다 품에 무언가를 안고 바쁘게 움직이는 여성은 막내인지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잡일을 하고 있었다.
그 여성의 얼굴이 익숙했다.
지연의 시선이 한곳으로 꽂힌 걸 알아차린 장훈이 옆에 다가와서 물었다.
“왜 그래? 아는 사람이야?”
“아니.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야.”
알면 알고, 모르면 모르는 거지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라니.
알 수 없는 지연의 말에 장훈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고 있을 때 지연의 기억은 과거를 회상했다.
한때는 잘 안다고 생각했었지.
그러나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는 너무 늦은 뒤였었다.
지연의 기억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10년, 20년, 그리고 되감긴 세월까지.
* * *
네이비 색 치마에 네이비 색 카라의 교복 셔츠를 입은 여학생이 뛰어간다.
여학생이 향하는 곳에는 똑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얘들아아~!”
“아. 오지연 지각 개오바.”
“왔다. 가자.”
“오늘 점심 뭐야?”
“맨날 같은 거.”
“아.”
MBTI를 보자면 확신의 E.
지연은 누구보다 활달하고 벽을 허무는 데 거리낌이 없는 인싸다운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보는 이에게 손을 내미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모두가 나서길 머뭇거릴 때 먼저 나서며 앞장서는 이.
지연은 무리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었다.
사교성이 좋은 지연은 힘든 가정사가 있다는 걸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밝았다.
그녀의 사정을 아는 이는 친구들 뿐이었지만 가끔 담임 선생님이 특정 아이들에게만 무언가를 나눠주거나 방송으로 지연의 이름이 불리는 것 때문에 다른 아이들 역시 지연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럼에도 지연은 인기가 좋았는데 그런 지연이 평소보다 인기가 폭발할 때가 있었는데 바로 시험 기간이었다.
“지연아아아!!”
“오지연!”
“뭐야. 왜 그래.”
“머리카락 하나만 뽑자!”
“나도, 나도!”
“뭐? 앗! 야! 말도 없이 뽑냐! 아 따거! 야악! 나 대머리 되겠다!”
학원을 가지 않는 만큼 지연은 수업에 적극적이었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교무실로 달려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 덕에 성적은 상위권.
시험 기간에 반에서 1, 2등 하는 지연이 아이들에게 머리카락이 뽑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띠리리리-띠리리리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