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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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여러 매체에서 두 사람의 수상 가능성이 유력하다고 말하자 대중들도 기대감이 높아졌다.

“이러다 정말 우리나라 사람이 칸에서 상 받는 게 아닐까?”

“받을 수도 있지. 이미 상 받은 적이 있잖아.”

“야! 잘 생각해 봐. 두 사람은 이제 고작 20대라고. 그럼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영화를 찍겠냐?”

“어?”

“그 작품들이 계속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다고 생각해봐!”

“에이. 모두 다 받는 건 무리겠지.”

“하지만 이때까지 우리나라 사람이 상을 받았던 것보다 두 사람이 앞으로 받을 상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지인의 말에 그제야 언론에서 시끄럽게 구는 이유를 안 친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말대로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나라 영화사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화사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만한 일이지 않은가!

“이때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 영화제에서 상 받은 게 총 몇 개야?”

“베니스, 칸, 베를린만 합치면 열 손가락은 넘지 않을까?”

“아마도? 기사로 정리한 걸 봤는데 대략 30개 정도는 된다고 해. 거기서 주요 부문만 꼽으면 10개 내외야.”

역대 전적을 정리해준 친구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입을 벌리고 소리 없이 경악했다.

3개 영화제에서 주요 부문이 그것밖에 안 된다는 건가?

최근에 한국 영화와 감독, 배우들이 주목받긴 했지만 꽤 예전에도 칸에 초청받은 작품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럼 그건 다 뭐지?

혼란스러운 사실에 어질어질하고 있을 때 제일 빨리 정신을 차린 친구가 손가락을 꼽았다.

“그럼 두 사람이 매년 한 작품씩만 찍는다고 쳐서 1년에 1개씩만 상을 받으면 앞으로 몇 개를 더 받을까.”

“못해도 10개보다는 많지 않을까? 두 사람 다 받으면 1년에 2개씩이잖아.”

“영화 찍는 기계도 아니고. 그리고 지연이랑 오지한은 철저하게 휴식기를 가지는 배우들이라고.”

“에엑? 정말? 그런데 왜 이렇게 자주 본 거 같지?”

“휴식기를 번갈아 가며 가져서 그래. 지연이 20살이 되고 나서는 휴식기가 거의 없거나 매우 짧았거든.”

조금 전 기사 내용을 정리해 준 친구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구나.

그나저나 오지한, 지연이 대단하다 했지만 이렇게 대단할 줄 몰랐다.

아직 어린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릴 때부터 오지한과 지연이 해외에서 활약하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수십 년 동안 많은 영화인과 배우들이 힘을 합쳐 이룩한 결과를 고작 20대인 두 배우들이 따라잡은 것이다.

두 사람이 이제야 해외 영화제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한 번,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 갈 기록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기록보다 더 많을 것이란 사실에 그들은 또 한 번 놀랐다.

“뭐야 그거….”

존나 멋지네.

* * *

영화를 상영하고 그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인터뷰를 했는지 모른다.

한국 잡지, 언론사뿐만 아니라 해외 언론사까지 똑같은 레퍼토리로 인터뷰를 반복했다.

“이게 뭐야. 뒤에 상영된 작품은 거의 보지도 못했어.”

“그러게 말이야. 형은 무슨 인터뷰를 이렇게 많이 잡은 거야?”

“그게 다 내가 잡은 거냐? 애런이 잡아 온 거지.”

영훈의 대답에 남매의 불만 어린 시선이 방 한쪽에 있는 소파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는 애런에게로 향했다.

오랜만에 봐서 좋긴 하지만 이렇게 일거리를 가져올 줄은 몰랐다.

시선을 느낀 애런이 고개를 돌려 남매와 시선을 부딪쳤다.

“왜 그러십니까?”

“애런. 덕분에 우리 계획이 다 어그러진 거 알아요?”

“흐음? 제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중입니다만.”

애런이 얄밉게 말했다.

아니, 애런이라면 모든 경우의 수를 상정해두고 계획을 세웠을지도 모른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계획이 플랜 A나 B가 아니라 플랜 Z일지도?

남매가 수상쩍다는 얼굴로 애런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얼굴에 방탄유리 시공이라도 했는지 남매의 시선에 꿈쩍도 안 한 애런이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어차피 남은 영화 일정 중에서 연과 한이 흥미를 느낄 만한 건 없었을 겁니다.”

“그건 모르죠.”

“글쎄요? 연이라면 이미 어떤 영화를 볼지 미리 다 결정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중에서 앞으로 남은 일정은 고작해야 한 개 정도일까요?”

귀신 같은 사람.

오늘 체크해 둔 영화가 하나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지연이 동생의 팔을 잡아끌어 애런에게서 떨어지게 했다.

그런 지연의 반응을 보고 자신이 훌륭하게 예측했음을 깨달은 애런이 잔을 입가로 가져가 미소를 가렸다.

“그보다 연. 인터뷰 잘 봤습니다.”

“인터뷰? 아. Ytv랑 한 거 말이죠? 용케 보셨네요?”

“요새는 비행기 안에서도 와이파이가 잘 터지거든요.”

비행기로 오는 중에 시청했다는 소리였다.

우리 영화가 상영된다는 소리에 바로 날아올 준비를 했단 말이었다.

심지어 인터뷰며 광고 건 같은 걸 전부 준비한 채!

“애런은 여전하네요.”

“연도 여전하구요.”

“제가요? 저 좀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겉은 바뀌었죠. 예전에는 한의 엄마였고 다음에는 빌보드를 점령하는 가수, 그다음은 칸을 정복한 여왕.”

“아직 정복은 안 했어요.”

“본인도 정복할 거란 사실을 잘 알고 계시는군요.”

차분하게 지연의 변화를 설명하는 애런의 말에 지연이 얼굴을 슬며시 가리고 영훈과 지한이 귀를 쫑긋 세웠다.

흡사 학부모 상담을 듣는 부모 같은 행동에 애런이 또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가리기 위해서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목을 축인 애런이 지연을 향해 숨길 수 없는 대견함을 드러낸 채 이어서 말했다.

“역시 연은 다정합니다.”

“아닌데요? 전 이기적이에요. 제 사람들만 챙길 거예요.”

“그렇겠죠. 그 사람들의 범위가 점점 늘어나는 게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르네요.”

“그럴 리가요.”

“아뇨. 인터뷰로 확신했습니다. 연은 거기서 그렇게 말했죠. ‘언제까지나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함께한 작품을 좋아할 수 있는 것이 목표.’라고요. 그러니 저도 연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다 기억하고 있을 필요는 없는데.

애런도 우리처럼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 아니야?

지연이 쑥스러움을 숨기며 애런을 미심쩍은 눈으로 보고 있을 때 지한이 옆에서 애런을 거들었다.

“애런의 말이 맞아요. 저도 옆에서 누나를 도울 거예요.”

“돕긴 누굴 도와. 누누이 말하지만 너넬 서포트하는 건 우리 일이야.”

“모처럼 영훈과 의견이 맞았군요. 서포트는 우리에게 맡겨 주시죠.”

“어쩌다 얘기가 여기까지 온 거지.”

지연이 아연한 얼굴로 다 포기하고 쿠션을 끌어안았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다정하다’라는 말에 부끄러워하는 게 분명했다.

그래도 조만간이었다.

날카롭게 가시를 세우고 주위를 경계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의 누나는 누군가를 받아들이고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긍정하고 누군가의 애정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며 다른 사람의 시선 속에서도 당당해졌다.

그러니 누나는 앞으로도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래도 가능하면 오랫동안 같이 가고 싶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아니야.”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언젠가 누나와 나의 길이 각자 다른 곳을 향할 때가 오겠지만 그때까지는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가고 싶었다.

갑작스러운 지한의 말에 지연과 영훈은 어리둥절한 시선을 보냈지만 애런은 지한의 말을 이해했는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자신의 별들이 원한다면.’

그걸 해 주는 게 바로 에이전트의 역할 아니겠는가?

그때 애런의 전화가 울렸다.

잠시 전화를 받기 위해 애런이 자리를 떴다.

잠시 후, 통화를 마친 애런이 돌아와 평소보다 들뜬 기색으로 말했다.

“가시죠. 폐막식.”

“네?”

“폐막식요?”

“아직 연락이 온 건 없습니다만.”

애런의 말의 어리둥절한 세 사람이 고개를 기울였다.

블레스 직원이 폐막식에 가자고 연락이 온 건 조금 뒤의 일이었다.

‘제작사보다 먼저 소식을 알다니. 무서운 사람.’

‘애런은 여전하구나.’

할리우드의 CIA라는 소문은 아직도 유효했다.

289. 칸의 제왕

칸 영화제를 맞아 프랑스에 온 사람 중에는 평범한 관광객도 있었지만, 영화제를 즐기기 위해 찾아온 영화인들도 있었다.

“폐막식이라니. 두 사람이라면 갈 줄 알았습니다.”

루카스 감독이 폐막식 레드카펫을 밟게 된 두 사람을 보고 푸근하게 웃었다.

운 좋게 초대장을 받아 두 사람의 영화를 보게 된 루카스 감독이 드레스 차림인 두 사람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보고도 두 사람을 부르지 않았다면 안구를 갈아 끼워야지.

다소 험악한 생각을 하면서 루카스 감독이 입을 뗐다.

“소감은 준비했습니까, 연?”

“소감? 글쎄요.”

“유력한 수상 후보면서 아직도 생각을 안 한 건가요?”

“솔직히 여기까지 올 거라고 생각을 못 해서요. 저는 오스카에서 상도 안 받아봤는데 지한이라면 모를까 제가 칸에서 상 받는 건 좀 힘들지 않을까요?”

“왜 비교 대상을 한으로 두는지 모르겠군요. 연과 한은 다르지 않습니까? 연이라면 충분히 상을 탈 자격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죠.”

루카스 감독의 말에 지연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게. 내가 왜 지한이를 기준에 두고 있는 거지?

회귀하고 나서 가장 먼저 변한 건 지한이었다.

지한이는 부모와 형제 중의 형제를 골랐고, 하고 싶은 길도 확실히 찾았다.

그 길을 걸으면서 한국 영화계에 다시 없을 기록을 세워나갔고,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배우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전부 내가 만든 것이었다.

우리 둘의 관계, 성장, 배경, 능력, 재능, 걸어온 길 모두 나로 인해 변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지한이를 보면서 나는 힘들 거라고 생각하다니.

‘나도 아직이네.’

내가 가진 재능을 믿고, 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들인다면서 아직도 마음 한편에는 나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곧이다.

루카스 감독을 향해 지연이 감사함을 담아 웃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미소에 루카스 감독과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잠시 넋을 놓았다.

지연의 머리를 만지던 코디가 잠시 손을 떨었지만 이내 침착하게 지연의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오랫동안 함께한 스태프마저 잠시 설레게 했던 지연의 진심이 담긴 미소는 그만큼 파괴력이 담겨 있었다.

“고마워요, 감독님. 덕분에 수상소감 어떻게 할지 정했어요.”

지연의 말에 루카스 감독이 한 박자 느리게 대답했다.

“도움이 되었다면 영광입니다.”

루카스 감독은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과연 지연은 칸에서 어떤 수상소감을 발표할 것인가.

그녀의 행보에 주목하는 많은 이들이 오늘 칸을 주목할 것이다.

* * *

칸의 폐막식이 있는 5월 19일

오늘 이곳에서 맞이할 칸의 제왕을 위해서 전 세계 언론의 시선이 이곳으로 집중했다.

차라라라락

번쩍-!

카메라 셔터음이 폭우처럼 들려오고 사람들의 함성이 배경음처럼 울려 퍼진다.

한 명씩, 한 명씩 초대받은 사람들이 폐막식 레드카펫 걸어가고 있을 때, 드디어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화제의 주인공들이 이 자리에 도착했다.

“‘거부할 수 없는, 사랑’ 팀이야.”

“지연! 그녀가 왔어.”

누군가의 말에 레드카펫을 걷는 스타들을 찍던 사람들의 시선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귀가 멎을 것 같은 함성과 함께 등장한 사람들은 먼 한국에서 온 배우들이었다.

“태석!”

“미스터 진!”

“해성 강!”

거.사의 인기를 반영하듯이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배우와 감독의 이름을 외쳤다.

낯선 외국 땅에서 이렇게 환영받으리라 상상했을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본 거.사 팀의 얼굴은 꿈을 꾸는 듯이 몽롱했다.

“감독님. 우리가 지금 꿈꾸는 게 아니죠?”

“태석아. 내 옆구리 좀 꼬집어 봐.”

“태석 씨. 저도.”

세 남자가 처음 겪는 일에 넋을 놓고 각자의 옆구리를 찌르려고 손을 올릴 때였다.

누군가를 부르는 팬들의 함성이 점점 높아졌다.

“지연-!!!!!!!!!!!!!!!!!!!!”

“연!!!!!!!!!!! 사랑해요!!!!!!!!!!!!!!”

“여길 봐 주세요!!!!!!!!!”

두말하면 잔소리 세말하면 입 아픈 거.사의 중심이자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 지연이었다.

세 남자가 고개를 돌려 자신들 옆에 나란히 선 지연을 보았다.

“세 분 다 꿈꾸는 거 아니니까 정신 차리세요. 이왕이면 팬들을 보고 웃어주시고요.”

어깨를 드러낸 롱드레스가 지연의 우아한 곡선을 드러냈다.

엉덩이 아래까지 달라붙던 드레스가 풍성하게 퍼져 지연의 다리를 감싸고 가슴부터 이어진 은색 선들이 물결이 되어 지연의 드레스 아래를 장식했다.

카메라 플래시를 받을 때마다 반짝이는 보석이 요정의 가루가 뿌려진 것처럼 하얀 드레스를 빛냈다.

하지만 이러한 드레스도 한 사람의 미모 앞에서는 태양 앞에 있는 반딧불처럼 바랬다.

“저기 한국에서 온 방송사도 있네요. 우리 지금 방송 중인가 봐요.”

수많은 시선 앞에서 압도될 법도 한데 지연은 전혀 빛을 잃지 않았다.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낸 지연이 오늘따라 한결 더 아름답게 빛나자 낯선 땅에서 받는 환호에 수그러들었던 세 사람도 어깨를 폈다.

세 남자가 지연을 중심으로 레드카펫을 걸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강림한 지연을 보고 기자들은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사람들은 목이 쉴 때까지 함성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악!!!!

시선을 즐기며 여유롭게 손을 흔들던 세 사람이 뒤에서 함성이 폭발적으로 터졌다.

잠시 등을 돌린 세 사람의 등에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네 사람이 들어왔다.

또 다른 주역, ‘장난’ 팀이 등장했다.

“와. 여기서 봐도 한눈에 알아보겠네요.”

“저게 바로 톱스타의 아우란가.”

“그냥 톱스타가 아니죠. 오지한이잖아요, 선배님!”

“흐음. 다음번에는.”

이제 막 도착하여 레드카펫 끝에 도달한 오지한, 이세아, 김성재, 박범수를 보고 거.사 팀이 자신의 감상을 늘어놓았다.

누구 동생 아니랄까 봐.

모두의 중심에 서서 당당하게 걸어오는 지한을 보고 지연이 싱긋 웃었다.

지연의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지한이 팬들에게 손을 흔들다 말고 계단 앞에 서 있는 지연을 보았다.

허공에서 남매의 시선이 부딪쳤다.

“우리 장난 팀이랑 같이 들어갈까요?”

“그래도 되는 거예요, 선배님?!”

“글쎄요.”

얼른 입장하라는 듯이 시선을 보내는 직원을 보건데 아마 힘들 것 같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지연이 동생에게 시선을 보내고 팀을 이끌어 안으로 들어갔다.

폐막식 시작이었다.

* * *

“한다. 한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새벽.

하지만 대한민국은 다른 때와 달리 환한 새벽을 맞이하고 있었다.

5년 연애하던 남친과 결혼하여 달콤한 신혼을 보내고 있던 해수가 쿠션을 안고 TV를 바라봤다.

그녀의 호들갑에 덩달아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남편이 고개를 들었다.

“여보. 폐막식 라이브라지만 주연상까지는 아직 멀었지 않아?”

“안 돼. 역사적인 순간이란 말이야. 처음부터 봐야 한다고.”

아내의 고집에 해수의 남편, 호준이 머리를 털어 잠을 쫓아내려 애썼다.

혼자 들어가서 잘 수도 있었지만

자신도 지연과 오지한을 좋아하지만

역사적인 현장을 두 눈으로 보고 싶긴 하지만

역시 이 새벽에 잠을 자지 않고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는 건 아내가 함께 이 장면을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자기, 잘 봐. 우리 지연이 너무 예쁘지 않아? 완전 여신이야.”

“여보. 누가 보면 지연이가 여보 동생인 줄 알겠어.”

“꺄악! 지한이 좀 봐. 수트핏 완전 쩔어!”

“같은 남자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결혼할 때 내 수트핏이 제일 멋지다며.”

호준이 지한에 대한 소소한 질투를 드러냈다.

그런 호준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수가 TV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자기는 앞으로 나랑 평생 함께할 내 남편이고. 지한이는 내 최애잖아. 난 둘 다 사랑해.”

최애랑 동급 취급을 당한 것에 기뻐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해수가 얼마나 지연과 오지한을 좋아하는지 아는 호준이 볼을 미미하게 물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여보.”

말 한마디로 남편을 달래 준 해수가 호준의 손을 잡았다.

손을 꼭 잡은 두 사람이 한 명, 한 명씩 불리는 수상자들을 보고 감탄했다.

한 명씩 수상자가 정해질 때마다 해수의 손바닥에는 땀이 차올랐다.

그런 해수의 반응을 알아차린 호준이 피식 웃으며 해수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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