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세 사람이 대치했다.
이현민과 박진성, 그리고 하회탈.
호기롭게 상대하기로 했지만 막상 하회탈을 앞에 두니 두려움이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대치 상황을 참다못한 진성이 소리 질렀다.
“씨발! 도대체 우리한테 왜 이래!”
“입 닥쳐, 박진성.”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옥상에서 뛰어내린 건 김진선이잖아! 우리가 민 것도 아닌데 왜 우리한테 이러는 거야!”
죽음의 공포 앞에서 가뜩이나 얄팍하던 이성이 더 얇아진 진성이 발작하듯이 말했다.
시끄럽게 떠드는 진성을 보고 현민이 눈살을 찌푸렸다.
악을 쓰듯이 소리를 지르던 진성은 진이 빠졌는지 어깨를 들썩였다.
진성이 조용해질 때까지 지켜보던 하회탈 안에서 사람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음성을 변조한 듯 귀를 긁는 목소리였다.
처음으로 하회탈이 그들의 말에 반응하자 진성과 현민의 얼굴에서 한 줄기 희망이 피어올랐다.
외국 용병인 줄 알았는데 한국말을 할 줄 아나?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하회탈이 대화할 의사가 있다는 것이었다.
하회탈이 마지막으로 그들이 고해성사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김진선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솔직하게 말해.>
“그걸 말하면 살려 줄 건가?”
<들어보고 판단하겠다.>
하회탈의 말에 두 사람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렸다.
이미 숨기기에는 많이 늦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실수를 제 입으로 말하는 것이 껄끄러웠다.
그들의 행동에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를 낸 하회탈이 그들의 행동을 하나씩 조목조목 짚어줬다.
<거지 냄새난다면서 변기 물로 세수하라고 했었지.>
진선의 머리를 잡아 변기에 처박았던 진성이 입술을 깨물었다.
<펀치 놀이를 한다며 김진선을 때리고 펀치 기계처럼 점수를 말하도록 했고.>
가장 높은 점수를 말하게 한 놈한테 최신 게임 기계를 사 준다면서 돈다발을 흔들었던 현민이 조용히 하회탈을 응시했다.
<미니홈피에 매일 김진선 욕을 하라고 했고, 인증하라고 했던가?>
“그건, 장난으로!”
<인증을 안 보낸 학생을 찾아가 때리고 집으로 간 김진선에게 전화해서 접속하라고 했으면서?>
아이들을 위협하며 인증을 확인했던 진성과 김진선에게 연락해 미니홈피를 강제로 들여다보게 만든 현민이 주춤거렸다.
어떻게 그걸 하회탈이 전부 알고 있는 거지?
<눈앞에서 자위하라고 하고 개처럼 목줄을 채우고 오밤중에 불러내 기분 나쁜 일이 있다면서 따귀를 때리고….>
하회탈 입에서 나온 말에 두 사람이 경악했다.
어떻게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전부 알고 있는 거지?
그 사실은 그걸 시킨 본인들과 죽은 김진선밖에 모르는 일일 텐데.
<이래도 잘못한 것이 없나?>
달빛 아래에서 붉은 하회탈이 두 사람을 응시했다.
죽음의 공포가 두 사람을 감쌌다.
“사, 살려.”
“장난이었다고. 아무것도 모를 때 한 일이란 말이야.”
<틀렸다.>
하회탈이 현민의 말을 단호하게 부인했다.
물러날 곳이 없음을 안 현민은 협상하려 했다.
“이봐. 도대체 김진선의 지인이 너한테 얼마를 줬는지 모르지만 내가 그 돈의 세 배를 주지. 그러니까 날 살려줘!”
이런 상황에도 본인만 살려 달라는 이현민의 모습에 하회탈이 소름 끼치는 모습으로 웃었다.
<역시 너희는 그냥 죽어야겠다.>
“원하는 게 뭐야. 돈? 돈을 더 준다고 하잖아!”
현민이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자신은 여기서 죽을 수 없었다.
세정그룹의 후계자인 이 몸이 이딴 곳에서?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야.>
“그럼 뭔데. 뭐든 말해봐. 세정그룹의 힘이면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줄 수 있다고!”
<김진선을 살려내. 그리고 용서를 빌어.>
하회탈의 말에 현민이 멈칫했다.
말을 잃은 현민을 보고 하회탈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졌다.
<뭐든 들어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죽은 김진선에게 직접 사과해라. 내가 원하는 건 그것뿐이다.>
“도대체 김진선이랑 무슨 사이길래.”
“죽은 사람을 어떻게 살려내라는 거야. 젠장! 저 새끼는 처음부터 우릴 살려줄 생각이 없었다고!”
진성이 봉을 꽉 쥐며 하회탈을 노려봤다.
그의 말대로 하회탈은 그들을 살려줄 생각이 없었다.
현민은 이렇게까지 하는 하회탈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돈을 몇 배로 더 준다고 해도 거절한다고?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너, 도대체 누구야. 김진선이랑 무슨 관계야!”
“이현민 지금 그게 중요해!?”
“말해! 말하지 않으면 내 모든 힘을 써서 김진선이랑 관련된 모든 사람을 죽여버릴 거야!”
현민은 진심이었다.
여기서 살아나가기만 한다면 김진선에 대한 모든 걸 다 지워버릴 생각이었다.
지긋지긋한 새끼.
애미애비도 없는 새끼가 잊을 만하면 나타나 자신의 발목을 잡았다.
나가면 잡초를 제거하듯이 김진선에 대한 건 뿌리부터 모조리 없애버릴 것이다.
악의가 가득한 현민의 말에 하회탈이 잠시 멈췄다.
<좋아. 말해주지.>
현민의 마지막 발악이 통한 것일까?
하회탈이 손을 들어 탈에 묶은 끈을 풀었다.
서서히 드러난 하회탈의 얼굴을 보고 두 사람이 경악했다.
* * *
참가자들이 향한 섬을 알아낸 군과 경찰이 합동해서 움직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옥상을 비춘 영상을 모니터링 하던 팀장이 초조하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의 옆에서 부하가 어두운 안색으로 물었다.
“팀장님. 정말 하회탈의 정체가 그 사람일까요?”
부하의 말에 팀장이 그 사람의 정보를 떠올렸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과거가 없던 그 사람.
그 사람의 과거를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냈을 때 얼마나 경악했던가.
“맞을 거야. 방금 인터폴에서 확인 연락을 받았어.”
팀장의 말에 부하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팀장님. 우리가 그 사람을 체포하러 가는 게 맞을까요?”
“체포해야지. 어찌 됐든 죄를 지었잖냐.”
“우리가 일을 제대로 했으면 그 사람이 죄를 짓지 않았을 지도 몰라요.”
하회탈의 정체를 알고 나서 팀원들의 얼굴이 죄다 저런 얼굴이었다.
본인이 다 억울하다는 표정.
죄책감, 미안함, 그런데도 그를 잡아야 한다는 사명감, 정의감 등이 뒤섞인 얼굴은 이 일을 하면서 못 볼 꼴을 다 본 팀장도 봐주기 힘든 일이었다.
그래. 우리가 제대로 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지.
팀장이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켰다.
“저기! 보입니다!”
불을 붙이지 못한 담배를 그대로 집어넣었다.
누군가가 가리킨 곳에 구름이 짙게 드리운 섬이 있었다.
* * *
하회탈이 탈을 벗었다.
마지막 순간에 정체를 알아낸 두 사람이 떨리는 눈으로 하회탈 밖에 드러난 얼굴을 보며 경악했다.
“BJ진선!”
“…미친!”
얼굴이 반반한 사회자 녀석이었다.
겁에 질린 채로 힌트를 전해주러 왔던 그.
바깥과 연락할 방법을 찾았다며 몰래 쪽지를 손에 쥐여준 그.
룰을 어긴 게 들통나 게임에서 배제되었다던 그.
‘아니. 배제됐다는 건 방송으로 나왔을 뿐이잖아.’
‘BJ진선의 입을 막을 생각이긴 했지만 모니터룸 밖에는 그를 죽일 장치가 없어. 그런데 어떻게 배제된 거지?’
왜 몰랐을까!
그의 닉네임이 죽은 김진선과 똑같은 BJ진선일 때 의심 해야 했는데!
하회탈이라는 존재 때문에 잊고 있었다.
그제야 BJ진선이 죽은 걸 눈으로 본 사람이 없단 사실을 깨달은 두 사람이 소리 없이 경악했다.
서늘하게 빛나는 진선의 눈동자에 두 사람의 등을 타고 소름이 돋아났다.
“말도 안 돼. 너 도대체 누구야.”
“잘 생각해 봐. 내가 누군지.”
BJ진선이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그때 현민이 무언가를 발견한 듯 눈을 크게 떴다.
탈을 쓰고 있어 달라붙은 머리카락 사이로 상처가 보였다.
“설마 너, 네가 구해인이냐?”
구해인이 입꼬리가 귀에 닿을 것처럼 찢어지게 웃었다.
몸으로 진선을 감싸다가 저들이 낸 상처.
그걸 보고 자신의 정체를 알아낸 두 사람을 칭찬하듯 구해인이 박수쳤다.
“그래. 이제 날 알아보네.”
“이럴 리가 없는데. 이럴 리가.”
“씨발. 네가 어떻게 구해인이야. 얼굴이 완전 다르잖아.”
“얼굴을 싹 갈아엎긴 했지.”
구해인이 여유롭게 웃으며 두 사람의 질문에 대답했다.
해인이 충격에 빠진 두 사람을 향해 선언했다.
“너희들은 여기서 나갈 수 없어. 이곳이 너희들의 마지막이거든.”
해인이 입술을 비틀었다.
삐뚜름한 입매가 저들의 희망을 짓밟으며 비웃고 있었다.
마침 하늘도 도와주네.
해인이 고개를 들어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을 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기억 안 나? 진선이가 죽던 날도 이렇게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이었잖아.”
진선이 추억을 회상하듯 아련한 얼굴로 옥상을 둘러봤다.
* * *
그날은 비가 올 것처럼 먹구름이 가득 낀 날이었다.
해인은 유서를 쓰고 나갔다는 보육원 동생들의 말에 땀에 흠뻑 젖어가며 친구를 찾았다.
‘그 새끼들이 또 진선이를 불러낸 건가?’
그 녀석들이 자주 부르던 장소, 녀석들의 집 근처, 진선이의 보육원 근처, 진선이가 자주 가던 곳까지 모조리 돌았지만 친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때 묘한 예감이 들었다.
“학교… 문 열었으려나.”
해인이 학교로 향했다.
학교가 끔찍하다며 방과 후에는 학교로 가지 않던 진선이었는데 해인은 왠지 진선이가 그곳에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진선이 학교에 도착했을 때 옥상에 누군가가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맞았다.
해인이 마지막 힘을 짜 내 옥상을 단숨에 올라갔다.
옥상 문을 막은 자물쇠가 부숴져 있었다.
가슴을 들썩이며 옥상에 도착하자 인기척을 느낀 진선이 해인을 돌아봤다.
“해인아.”
해인을 부른 진선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무언가를 내려놓은 진선의 모습에 해인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진선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이 세상에 신이 존재하는 걸까.”
“김진선! 너 왜, 왜 그래.”
해인이 한 걸음 다가가자 진선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는 친구의 모습에 해인이 안타까운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다가가지 못한 해인이 애타는 목소리로 친구를 불렀다.
“진선아. 그러지, 마. …제발.”
“나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하나는 알 것 같아.”
“제발, 제발!!”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진선의 말에 참지 못한 해인이 진선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해인이 진선을 붙잡는 것보다 진선이 허공에 몸을 눕히는 것이 더 빨랐다.
“이 세상에는 악마가 존재한다는 걸.”
“김진선!!!”
추락은 빨랐다.
진선이 없는 허공을 움켜쥔 진선이 입만 벙긋거리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곳에 지상으로 떨어진 친구가 있었다.
“아… 아, 아아아아아악!!!!!!!!!!!!!”
허물어지듯 바닥에 주저앉은 해인이 바닥을 긁으며 오열했다.
* * *
“진선이가 죽던 날도 이런 날씨였는데 정말 몰라?”
“씨발. 그, 그걸 어떻게 기억해.”
두려움에 떠는 몸을 감추듯 진성이 변명했다.
진성의 말에 진선이 삐뚜름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하하하. 역시 기억 못 하네. …그럴 줄 알았지만.”
미친 듯이 웃던 진선이 갑자기 정색했다.
“너희들은 말로 해서는 떠올리지 못하더라고.”
그래서 한 명 한 명 뼈에 새겨줬다.
진선을 때리고 괴롭혔던 일진놈들의 머리를 박살 내고.
도와달라고 내민 손을 뭉개버린 담임의 손을 마디마디 부쉈다.
우리 아들은 그럴 리 없다면서 보육원에 찾아와 괴롭히던 아줌마의 턱을 부숴 두 번 다시 그런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 줬고,
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경찰의 머리는 깨버렸다.
펜대로 의혹을 묻어버린 기자의 눈과 손은 쓸모가 없어서 자르고 불태웠다.
그렇게 모두의 몸에 뼈저리게 기억을 새겨줬다.
그걸 보란 듯이 중계했다.
두 번 다시는 진선이의 일이 묻히지 않게끔.
“너희도 두 번 다시 잊지 못하게 해 줄게.”
다시 광기 어린 살인마의 모습이 된 진선을 보고 두 사람이 움찔했다.
들어줄 가치도 없다는 듯이 살인마의 얼굴이 된 해인을 보고 진성이 현민과 시선을 교환했다.
‘덥치자.’
‘지금!’
두 사람이 달려들었다.
맨주먹으로 달려드는 두 사람을 본 해인이 입꼬리가 귀에 닿을 듯이 웃었다.
그 기괴한 웃음에 두 사람이 잠시 멈칫했다.
탕, 타앙-!
“커헉!”
“크흑!”
총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몸이 허물어졌다.
“멍청하네. 아직도 예전처럼 맨몸으로 달려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