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발. 나도 뭔가 무기 같은 게 있으면 저딴 놈은 단숨에 해치울 수 있다고!”
14번의 말에 6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니. 6번은 14번의 말을 듣고 질린 게 아니었다.
벌벌 떨며 자신의 뒤를 보는 6번의 얼굴에 14번이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리고 대개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 법이었다.
휘익, 퍼억!!!!
실이 끊어진 듯 허물어지는 14번의 모습이 6번이 입을 벌렸다.
그녀의 목에서 비명이 튀어나오기도 전에
퍼억!!!!!
하회탈이 망치를 한 번 더 내리쳤다.
284. <장난>(3)
모니터룸에서 상황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여기저기서 하회탈에게 습격당해 죽어 나가는 참가자들을 보고 패닉에 빠졌다.
-방탈출에서 찐 살인마라고?
-미친 진짜로 죽였다고?!
-이거 짜고 친 거죠? 그쵸?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야?
-에이, 설마 방송에서 진짜로 사람을 죽였겠어?
-하지만 너무 리얼했다고.
살인 현장을 실시간으로 본 사람들이 자신들이 본 것을 부정하며 글을 올렸다.
채팅창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애써 설정이라고 무시하던 사람들은 말을 잃고 그대로 굳은 진선을 보고 현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본 것이 결코 설정이나 방송 사고 따위가 아니란 사실을.
-살인 방송이라니.
-이거 중계해도 되는 거임?
-그걸 떠나서 저 사람들 구해야지!
-진선님! 거기 어디예요!
-나 지금 112 신고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시청자들의 말대로 지금 112상황실에는 리얼 공포 게임에서 살인이 났다는 신고접수가 이어졌다.
그 수는 신고 센터가 마비될 정도였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시청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시청자들의 아우성에 진선이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 진선이 있는 곳에 빨간불이 켜졌다.
시청자들은 진선을 비춘 화면에서 빨간불이 점멸하자 다급하게 채팅을 쳤다.
-형! 정신차려!
-뭐야. 지금 무슨 일이야.
-우리 오빠한테 무슨 일 생기는 거 아니죠?
-제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오빠 정신 좀 차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112에 당장 신고를,”
탕-!
총성이 울렸다.
키보드를 치던 시청자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입을 틀어막았다.
진선의 머리 바로 옆.
그곳에 총알이 박혀 있었다.
진선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눈동자만 굴려 옆을 보았다.
총알이 스쳤는지 그의 뺨에 붉은 선이 생겼다.
-오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선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총?! 지금 대한민국에서 총 쏜 거임?
-아 제발 거기가 어디예요. 제발제발제발 진선님 죽이지 마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시청자들이 보고 있는 화면이 전환되었다.
<비밀 유지 조항을 어길 시, 즉시 게임에서 ‘배제’하겠습니다.>
GAME MASTER의 메시지였다.
배제한다는 소리가 결코 온순한 뜻이 아닐 거란 예감이 들었다.
진선의 목울대가 출렁거렸다.
* * *
중앙 문으로 들어오지 않아도 참가자들은 중앙계단에서 살인을 벌인 존재를 알아차렸다.
번개 덕에 멀리서 사람의 머리를 둔기로 내리치는 누군가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애써 실제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참가자들은 은연중에 살인이 일어났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둔기를 들고 돌아보는 하회탈의 존재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뿔뿔이 흩어졌다.
어느 교실에 몸을 숨긴 사람들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씨발. 그거 뭐야. 진짜야?”
“아마 깨우지 말라고 했던 존재겠죠.”
“아니, 깨우지 말라고 했다고 사람을 죽여?”
“아무래도 ‘리얼’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가 이것 때문인가 봅니다.”
눈앞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한 사람들이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공포 게임에 목숨을 걸 생각은 없었다.
몸을 움츠리고 있던 10번이 일어섰다.
“저는 여기서 나가야겠어요.”
“상금을 포기하겠다는 거야?”
“상금보다 내 목숨이 더 중요하다구요!”
10번이 짜증을 내면서 말했다.
문으로 향하는 10번을 보며 1번이 위협했다.
“거기. 멈춰. 네가 나가는 건 좋지만 너 때문에 하회탈 녀석이 우릴 발견하면 어떡해.”
“그럼 어떻게 하라고요!”
“창문으로 나가든가 아니면 밖에 하회탈이 없을 때 혼자 나가든가 해야지.”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그럼 창문밖에 없겠네.”
1번이 얄밉게 말하며 창문 쪽으로 턱짓했다.
문 뒤에 있을지도 모르는 살인마냐 아니면 조금 다칠지도 모르는 창문이냐.
10번의 선택은 뻔했다.
창문으로 향한 10번이 창문을 밀었다.
“어?”
“왜. 뛰어내리려니까 겁나냐?”
“그게 아니라. 이 문 고정되어 있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기로 나갈 수 없다니까요!”
10번의 말에 다른 참가자들도 창문으로 다가왔다.
그들이 보는 창문은 잘 만들어진 가짜였다.
겉보기만 창문으로 만들어진 유리벽이나 다름없었다.
“씨발 이게 뭐야.”
성질 급한 1번이 주먹으로 유리를 때렸다.
쾅!
유리는 떨리기만 할 뿐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꼼짝없이 갇힌 참가자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 * *
방송에서 사람이 죽고 사회자가 총기에 위협당하는 것을 본 시청자들이 아우성쳤다.
신고를 받고 영상을 본 경찰들도 난리가 났다.
“당장 IP추적해!”
“틀렸습니다! 해외 IP로 우회해서 당장 찾아내는 건 어렵습니다!”
“젠장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비상이 떨어졌다.
참가자가 죽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방송되자 곧바로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저들을 구해야 했다.
“참가자들 신원 확인했어?”
“예? 아, 넵! 확인하겠습니다.”
“저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내면 GM이라는 녀석의 원한도 저 섬의 위치도 알 수 있을 거야!”
“반장님은 GM이 원한에 의해서 이런 게임을 준비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게 아니고선 평범한 일반인이 아무런 이유 없이 저런 게임에 초대됐을 리가 없어. 나이, 직업, 사는 곳이 제각각인 사람들이 초대받은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피해자들을 조사해서 역으로 올라간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당장 저기 채팅방에 참가해서 BJ진선이랑 대화할 수 있게 해봐!”
“옙!”
반장의 지시에 형사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었다.
* * *
하회탈이 교내를 돌아다니며 참가자들을 쫓았다.
위협적인 존재에 모두가 숨죽이고 움직이지 못했지만 한 참가자는 달랐다.
“어서 교무실로 가보죠.”
“밖에 미친 살인마가 돌아다니고 있는데 괜찮을까요?”
“비명이 멀리서 들렸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우리가 있는 층은 아직 안전한 것 같습니다.”
13번이 리더십있게 사람들을 이끌었다.
과연 아직 젊어 보이는 데도 대기업에서 과장이라더니 다 이런 모습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럼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경찰 아저씨라면 믿을 수 있죠.”
“맞다. 7번 아저씨는 경찰이라고 하셨죠?”
직업이 주는 믿음직스러운 느낌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안색이 밝아졌다.
그가 현직 경찰의 위엄을 보여주겠다며 7번이 씩씩하게 문을 열었다.
“어?”
그것이 7번의 마지막이었다.
콰직!
중앙 복도에서 그들이 목격했던 장면이 눈앞에서 재생됐다.
하회탈에 붉은 피가 튀었다.
7번의 몸이 허물어지자 하회탈과 시선이 마주쳤다.
“꺄아아아아악!!!”
“으아아악!!!”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 * *
“하악, 하악. 이게 뭐야.”
하회탈을 피해 도망친 13번과 1번이 2층에 있는 교실로 도망쳤다.
1층 중앙계단에서 사람을 죽인 놈이 어떻게 4층에 숨어 있던 우리를 발견했을까.
진짜 사람이 맞긴 한 거야?
신출귀몰한 하회탈의 행동에 1번은 난생처음 두려움에 빠졌다.
그동안 자신의 육체로 안 되는 일이 없었는데 그놈한테는 자신의 힘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아. 씨발. 이럴 리가 없는데.”
도망치면서도 계속 말도 안 된다고, 이럴 리가 없다고 중얼거리던 13번을 보고 1번이 짜증을 냈다.
“조용히 해! 뭐가 이럴 리가 없어!”
“시끄러워. 모르면 입 닥쳐.”
“모르는 건 너도 마찬가진 거 같은데?”
1번의 비아냥에 13번의 눈에 스산한 빛이 스쳤다.
자신이 짜 놓은 판이 어그러진 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눈앞에서 개가 짖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박진성. 내가 조용히 하라고 했지.”
살벌한 13번의 얼굴에 진성이 입을 다물었다.
그 옛날 그의 위에 군림하던 때와 똑같은 표정과 말투에 학습된 몸이 13번의 명령을 수행했다.
진성이 입을 다물자 13번이 익숙한 듯 명령했다.
“확인해 볼 게 있으니 따라와.”
“…알았어.”
13번이 잠시 밖을 살피더니 복도로 나갔다.
진성이 그 뒤를 따랐다.
힌트의 위치, 참가자들의 번호, 시작 위치, 파수꾼의 존재까지.
전부 그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딱 하나의 변수가 그가 짠 판을 뒤집어버렸다.
“그러니까 이게 다 네가 한 일이라고?”
“하회탈이 정해진대로 움직이지 않는 걸 제외하면 모든 건 내가 짠 판이지.”
13번이 이 게임을 만들기로 한 날을 회상했다.
* * *
그날은 아버지에게 불려간 날이었다.
“앉아라.”
“네, 아버지.”
그룹의 수장으로 있는 아버지는 집에서도 엄한 사람이었다.
“요즘 날파리들이 네 주위에 꼬이는구나.”
아버지의 말에 13번의 몸이 굳었다.
부른 용건을 짐작하지 못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13번이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아버지를 보고 침을 삼켰다.
“12년 전 그 일이 네 발목을 잡을 거라고 했지.”
“죄송합니다. 어린 날의 치기였습니다.”
“그랬겠지. 하지만 아랫것들을 관리하지 못한 네 책임도 크다.”
아버지의 말에 13번이 입술을 깨물었다.
왜 12년전 일을 저질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일을 잘 수습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었다.
경찰과 기자, 병원장, 그리고 녀석들과 입을 맞춰 사건을 묻었다.
입막음 비용도 넉넉하게 줬는데 뇌가 없는 쥐새끼가 그날의 일을 들고 나온 모양이었다.
“아버지. 저에게 맡겨 주시죠.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당연히 네가 처리해야지.”
“네. 맡겨만 주십시오.”
아버지에게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한 13번이 자주 가던 클럽으로 향했다.
“으아아아아아!!!!! 씨발!! 씨발!!”
룸으로 들어간 13번은 방에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명령하며 들어오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 앞에서 하지 못했던 욕이 튀어나왔다.
하여튼 그놈은 죽어서도 내 발목을 잡는군.
그보다 중요한 건 다른 놈들이었다.
“돈 받았으면 조용히 기어들어가 있을 것이지 어디서 기어 나와서 일을 만들어?”
두 번 다시 찍 소리 내지 못하게 만들어야 했다.
“다 죽여버릴까?”
13번의 눈에 살기가 맴돌았다.
엘리트 과장의 가면을 쓰느라 억눌려 있던 악의가 폭주했다.
이번 기회에 그놈들을 정리하면서 스트레스도 좀 풀어야겠어.
역시 깔끔하게 죽여서 없애는 게 좋겠지?
마음을 정한 13번이 웨이터를 불렀다.
일단 오늘은 술로 욕구를 가라앉히자.
13번이 비싼 양주를 입에 퍼부었다.
“어머. 오빠 안주도 좀 먹어요.”
“힝. 우리가 있는데 술만 마실 거예요?”
“얌전히 술만 따라라. 아니면 오늘 너희 죽을지도 모른다.”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데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13번이 억누르고 있는 게 뭔지 모르는 아가씨들이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오빠 너무 정력적이잖아.”
“우리 다 죽이려면 웬만해서는 안 될 텐데?”
업소답게 성적인 농담이 오갔다.
그런 여자들을 무시하며 13번이 술을 들이마셨다.
13번이 테이블에 엎어졌다.
그가 쓰러지자 상황을 보던 아가씨들이 룸에서 나갔다.
텅 빈 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