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 게임이 개인전이라는 건 알고 계시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출발 장소를 정해주셔야 합니다.”
대기업을 다닌다는 13번 참가자가 손을 들었다.
“출발 장소를 어떻게 정하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학교에 들어가는 길은 3가지입니다. 동쪽 문, 서쪽 문, 중앙 문. 여러분들은 제비뽑기를 통해서 3가지 입구 중 하나로 들어가게 됩니다. 물론 난이도는 전부 다릅니다. 가장 먼저 출구로 나오신 분은 GAME MASTER로부터 상금을 받게 됩니다. 상금은 무려 500억!”
상금을 들은 사람들의 눈이 돌아갔다.
일반들에게 500억은 그야말로 인생을 역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진선의 말에 참가자들이 멀리 떨어진 입구를 살폈다.
그렇게 본다고 해서 난이도를 알 수 있을까.
진선이 어제 받은 사회자 안내문을 떠올리며 한쪽에 놓여 있는 상자를 가져왔다.
“자! 여기서 뽑아주세요!”
진선의 말에 사람들이 세 그룹으로 나뉘었다.
세 그룹으로 나눠진 참가자들이 진선의 안내에 따라서 START라고 적힌 원 안에 섰다.
“GAME MASTER로부터의 의뢰입니다. 이곳에서 여러분들은 그가 원하는 진실을 찾아서 출구로 나오시면 됩니다. 다만 입구마다 난이도는 전부 다릅니다.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죠. 여러분께 주어진 힌트는 총 3개. 각 그룹이 하나씩 쓸 수도 있고, 어느 한 그룹이 전부 다 쓸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 궁금한 점 있으십니까?”
13번 참가자가 또 손을 들었다.
진선이 물어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힌트는 어떻게 요구하면 되죠?”
“건물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어디서든 힌트를 원하시면 ‘힌트’라고 말씀해 주세요.”
룰을 숙지한 참가자들이 입구 앞에 섰다.
각오를 다지는 참가자들에게 진선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부디 잠들어 있는 그를 깨우지 않고 무사히 탈출하시길 바랍니다.”
상금 500억을 향해서 사람들이 폐교 안으로 들어갔다.
* * *
동쪽 문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으스스한 내부를 보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15번 참가자가 바닥을 살피며 말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일단 우리는 이곳에서 진실이란 걸 찾아야 하는 모양입니다.”
젊은 나이에 대기업 과장을 단 13번 참가자가 15번 참가자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럼 기록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구만.”
자신을 경찰이라고 소개했던 7번 참가자가 말했다.
“학교에서 기록을 찾으려면 교무실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진실이라고 했으니까 아마 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단 거겠죠?”
“학교 다닐 때 교무실은 보통 중앙에 있었습니다.”
“중앙 문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유리하겠네요.”
“찾는 것도 좋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마지막에 BJ진선 님이 한 말을 잊은 건 아니겠죠? 잠들어 있는 그를 깨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럼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13번과 7번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가야할 곳을 추리했다.
우락부락한 몸을 지닌 1번이 앞장섰다.
낡은 바닥이 삐걱이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폐교 아니랄까 봐 어둡고 으스스한 분위기에 사람들이 긴장하며 걸었다.
그때 밖에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우르르릉!!!
가뜩이나 폐교라 무서운데 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애써 담담한 척 걸음을 옮겼다.
아아아아악…!
그들이 걸어가는 중앙 문이 있는 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그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사람들이 걸음을 멈췄다.
“뭘까요?”
“천둥소리에 놀란 게 아닐까요?”
사람들의 속도가 느려졌다.
번쩍! 콰가가강!!
“흡!”
천둥 뒤에 찾아온 번개에 몇몇 참가자가 깜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하하. 그냥 번개일 뿐이에요.”
13번 참가자가 매너있게 웃으며 참가자들을 달랬다.
그때 15번 참가자가 어둠 속을 가리켰다.
“저기 누가 있는 것 같지 않아요?”
15번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였다.
쿠르르릉, 번쩍! 콰강!!
창밖에서 들어온 빛이 복도를 비췄다.
중앙 계단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똑, 똑
서 있는 누군가의 몸에서 액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 *
참가자들을 배웅한 진선이 모니터룸으로 들어왔다.
CCTV 상황실에서나 볼 법한 장비들이 모니터룸에 가득했다.
“이곳에서 참가자들을 볼 수 있네요.”
-ㅌㅎ!
-형 하이!
-와 시청자 수 봐라. 사람들 다 이것만 보고 있나 봐.
진선의 입장과 함께 시청자들이 채팅을 쳤다.
그동안 못했던 말을 전부 쏟아내기라도 하듯이 채팅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창이 갱신되었다.
시청자들에게 인사한 진선이 해설을 시작했다.
“게임 룰은 미리 들으셨죠? 리얼 공포 게임은 일종의 방탈출 게임입니다. 방탈출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단서를 얼마나 빨리 찾느냐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죠.”
-ㅇㅈㅇㅈ
-우리 오빠는 정리도 잘해.
-오빠 MC도 잘 어울려요.
진선의 한마디에 팬들이 물고 핥고 빨았다.
처음 하는 사회였는데 팬들 덕에 긴장이 풀린 진선이 조금 더 의욕적으로 중계했다.
“제가 공포 게임을 의도치 않게 해 봤는데요. 요지는 귀신이나 살인마 같은 존재에게 잡히지 않고 단서를 찾는 게 중요합니다.”
->의도치 않게<
-암. 의도치 않았지.
-미션이 좋지 않은 곳을 스쳤을 뿐.
-내가 (공포게임)고자라니!
팬들이 영상 도네를 시전하며 진선의 흑역사를 공개했다.
지금 외국에서 보고 있는 시청자도 있는데.
강제로 흑역사를 해외에 널리 알린 진선이 눈물을 삼키며 이어서 말했다.
“단서를 찾지 못하거나 선두그룹에 끼지 못한 사람들은 게임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될 겁니다.”
-우리 형 무서운 거 잘 못 보는데 중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힘없이 말하는 진선을 보고 충성도 높은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모니터룸에 있는 스피커로 비명이 들렸다.
[아아아아악…!]
“시작했나 봅니다.”
진선이 주먹을 꼭 쥐었다.
-형 우리가 함께 있잖아.
-ㅁㅈㅁㅈ
-난 우는 형도 좋아. 하앜
두려움을 쫓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시청자들의 말에 진선이 참가자들이 있는 곳을 살폈다.
재빨리 화면을 키운 진선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이런 중앙 문 팀이 벌써 ‘그’를 만난 모양입니다.”
-그?
-그가 누군데?
“저도 안내문으로 전달받은 내용인데. 학교 안에는 ‘그’가 돌아다닌다고 합니다. 공포 게임에서 귀신이나 괴물을 만나면 바로 죽잖아요? 그런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ㅎㅎㅎㅎㅎ유다희 양인가.
-현실에서 유다희 양을 만나다니.
-무서워서 지리겠네.
-팬티 10장 준비했다.
무서운 마음을 털어내기 위해서 시청자들의 채팅을 보고 있던 진선이 모니터를 보고 얼빠진 소리를 냈다.
“어?”
[으아아아아아악!!!!!!!!!!!!!!!!!!!!!]
폐교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진선의 반응에 시청자들이 의아해하며 영상을 보았다.
-어라? 뭐임? 나 팅김.
-어? 나도 팅겼는데
일부 시청자들이 갑자기 방송에서 튕겼다고 호소했다.
방송 연령이 19세로 전환된 탓이었다.
하지만 진선과 다른 시청자들은 그들의 말에 답해 줄 수 없었다.
…철퍽
모니터에 나와야 할 참가자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보이는 건 짙은 발자국을 남기는 누군가의 뒷모습이었다.
…퍽, …철퍽
그 사람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잔뜩 젖은 소리가 났다.
괴한을 보는 시청자와 방송을 진행해야 할 진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똑
괴한이 들고 있는 물건에서 짙은 색의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건 물방울이 아니었다.
[사, 살려]
퍼억!
괴한의 물건이 참가자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숫자 4가 적힌 옷을 입은 참가자의 머리가 찌그러졌다.
퍼억!
[으어어. 어.]
둔탁한 소리와 함께 4번 참가자의 머리가 원래의 형태를 잃어갔다.
머리가 움푹 들어가고 피를 뿜으며 초점이 풀린 4번 참가자의 모습에 사람들은 신화 속 메두사를 보기라도 한 듯 화면을 끄지도 못하고 지켜봤다.
머리에 무언가를 쓴 괴한이 계속 팔을 들었다.
퍼억!
한 번 더
퍼억!
또 한 번 더
콰직
둥근 형체를 잃은 머리를 계속 내리치던 하회탈은 9번 참가자가 경련마저 하지 않자 그제야 손을 멈췄다.
괴한이 모니터 너머에 있는 시선을 느낀 듯 서서히 몸을 돌렸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지켜보던 사람들이 굳어 있을 때 밖에서 들어오는 달빛에 괴한의 얼굴이 드러났다.
시청자들은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모니터 속에서 피에 젖은 하회탈이 웃고 있었다.
* * *
폐교 안 어딘가.
남성 참가자와 여성 참가자가 숨을 몰아쉬며 밖을 살피고 있었다.
“젠장!”
“다른 문으로 가야 했는데!”
하회탈을 쓴 무언가가 중앙 문으로 입장한 사람들을 맞이했다.
우두커니 서 있는 존재에 단서인 줄 알고 다가갔던 4번 참가자가 하회탈을 건드리자 그 존재가 깨어났다.
씨발, 깨우지 말라고 한 게 그 녀석이었을 줄이야!
사람의 머리가 찌그러지는 걸 목격한 6번, 14번 참가자가 거친 호흡을 내쉬며 몸을 숨겼다.
“밖에 아무도 없지?”
“씨발. 내가 어떻게 알아.”
“어떻게 좀 해 봐!”
무작정 뛰어와서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주위에 피아노와 악기들이 보이는 걸 보아 음악실로 추정됐다.
호흡을 진정시켜 보려고 했지만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뭐? 미친 싸이코패스 살인마 새끼를 나보고 어떻게 하란 거야!”
“왜! 예전에는 사람도 죽일 수 있다고 큰소리치더니!”
“그걸 네가 어떻게,”
6번 참가자의 말에 14번이 그녀를 돌아봤다.
6번이 자신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6번 참가자라 히스테릭하게 외쳤다.
“왜! 예전에 네가 그랬잖아! 사람 죽이는 거 일도 아니라고!”
“너 뭐야.”
“아직도 날 못 알아보는 거야? 나 세울중학교 2학년 7반 김미정이야!”
세울중학교 김미정.
6번의 말에 14번의 머릿속에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중학교 때 같은 무리였던 여자애 중 하나였다.
못 알아보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때와 지금이랑 얼굴이 많이 달랐다.
얼굴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14번의 시선에 6번이 자진 납세했다.
“성형 수술했어. 눈이랑 코 좀.”
“그것만 한 수준이 아닌데.”
“지금 중요한 게 그거야?!”
앙칼진 6번의 말에 14번이 잠시 주춤했다.
“빨리 저 살인마 새끼 좀 어떻게 해 봐!”
“내가 그놈을 어떻게 해!”
“하! 그럼 그렇지. 박진성 후광 좀 업고 허세 부리던 놈한테 뭘 기대하겠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6번의 얼굴에서 한심하다는 표정이 걸리자 14번이 주먹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