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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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정재계 스캔들을 연예계 이슈로 묻어버리는 것 같은 발언이었지만 누나의 말이 나쁜 건 아니었다.

지금 사람들은 우릴 보면 그 사건을 덩달아 떠올릴 테니까.

“그럼 케이티랑 로드리오를 따라가는 거네.”

“그래. 할리우드로 가자.”

“오랜만에 가겠다. 가면 청소부터 해야겠지?”

“애런이 신경 쓴댔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혹시 모르니까 가기 전에 말해보자.”

“좋은 생각이야.”

“나도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해!”

“역시 휴가를 오길 잘한 것 같습니다.”

티격태격하던 것도 잊고 지한과 지연의 대화에 끼어든 두 사람이 목적을 달성한 것처럼 상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라, 이거 우리가 당한 건가?

조금 전에 다투던 모습을 어디 가고 같이 간다면서 좋아하는 두 사람을 보니 어쩐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 * *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몰디브에서의 휴가를 끝내고 귀국한 두 사람에게 은주와 영훈이 찾아왔다.

“지연아! 우리, 가자!”

“어, 어? 어딜 가?”

“지한아! 너도 가자!”

“나도?”

당분간 LA 집에 가겠다고 하고 짐을 싸고 있었는데 갑자기 집에 와서 어딜 가자고 하는 은주와 영훈을 보고 남매가 갸우뚱 고개를 기울였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은주와 영훈이 폭탄을 터트렸다.

“어디긴 어디야. 칸이지!”

“지연아, 우리 칸에 가보자!”

어째 휴가 때부터 우리한테 어디 가자고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 기분인데.

지연과 지한이 나란히 앉아 큰 눈을 깜빡였다.

276. 칸으로

칸 영화제.

베를린 국제 영화제와 베니스 국제 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영화제로서 대중들은 흔히 다른 두 곳보다 칸의 권위를 더 높게 쳐 주기도 한다.

최근에는 한국 영화들이 경쟁 부문에 추천되는 경우도 많고,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린 감독들도 많이 나와 칸에서 상을 받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예정대로라면 내년에 봉찬호 감독이 대한민국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게 된다.

언니랑 오빠는 그런 칸에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지연이 의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언니. 우리 영화가 칸에 갈 수 있을까?”

“내부적으로는 가능성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

“그래도 우리 감독님은 신인 감독인 데다가 내가 칸에 갈 수 있을까?”

“당연히 가고도 남지.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지한이도 백인들의 잔치로 유명한 오스카에서 상을 받았는데.”

맞다. 그랬지.

옆을 돌아보자 보이는 동생의 반듯한 얼굴에 지연이 머쓱하게 웃었다.

지한이가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건 당연하게 생각되는데 내가 국제무대에 가는 건 아직 안 익숙해서.

게다가 내가 가수로 먼저 데뷔해서 무의식 중에 그런 곳을 너무 어렵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내가 그런 곳에서 상을 받을 수 있을까?”

“못 받을 게 뭐 있어. 이미 백상에서 상도 받으신 몸이?”

“그거랑 칸이랑은 무게가 다르잖아.”

“안 달라. 그리고 나는 지연이 너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본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지한이도 받았는데 뭘 어렵게 생각해. 이 바닥에서 지한이 처음 연기 입문시킨 거 너라는 사실 모르는 사람 없어.”

언제적 일을 가지고 말하는 거야.

그때는 배우 하나가 펑크 나서 현장에서 캐스팅된 거고.

연기의 ‘ㅇ’도 모르는 사람들보다는 그래도 내가 인터넷에서 보고 들은 거 얘기해 준 것밖에 없는데 너무 과하게 올려치기 하는 것 같았다.

동생이 배우가 되고 나서 배우란 무엇인가,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가를 도서관에서 안 찾아본 건 아니지만 동생의 연기는 99%의 노력과 1%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지한이야 워낙 혼자 잘한 거고.”

“얼씨구? 그럼 백상에서 상 받은 건 다른 사람이 잘해서냐?”

지연의 말에 영훈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옆에 있던 은주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지연아. 우리가 그동안 지켜봐 온 게 있는데 그런 변명 안 통한다.”

“그래. 너답지 않게 왜 그래?”

“누나. 칸에 대해서 뭐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어?”

평소와 다른 지연의 반응에 세 사람이 이제는 조금 걱정스러운 듯이 지연을 보았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나?

악플이라도 본 건가?

세 사람이 걱정하는 것을 본 지연이 결백하다는 듯이 손을 들며 말했다.

“아니. 솔직히. 나는 본업이 가순데 그런 자리에 가서 상을 바라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곳에 한 번이라도 칸에 가기 위해서 평생을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잖아. 그런데 이제 겨우 배우로 활동한 지 8년밖에 안 되는 내가 가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말이 8년이지 작품 활동도 별로 없었잖아? 괜히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노력이 저평가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고.”

지연의 말이 이어질수록 세 사람의 눈이 동태눈이 되어갔다.

얘(누나)가 지금 뭐라는 거지?

“누가 그런 걸로 널 뭐라 그래?”

“그래. 그리고 가수랑 배우 겸직하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아?”

“누나가 간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노력이 저평가되는 일은 없을 거야. 오히려 누나가 그곳에 초청된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의 노력이 인정받는 게 아닐까?”

“지한이 말이 맞아. 그리고 잊었나 본데. 세계에서 우리나라 콘텐츠가 주목받을 수 있었던 건 지연이 너랑 지한이 덕이 커.”

“고 실장님 말대로야. 솔직히 너희 둘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에 이런 배우, 이런 영화, 이런 감독이 있다고 사람들이 알아줬겠니?”

지연의 말에 영훈과 은주, 지한이 반박하고 나섰다.

조목조목 반박하는 세 사람에 지연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상은 노력한 순위로만 주는 게 아니야. 잘하는 순으로 주는 거지.”

“지한이가 상 받은 게 노력을 많이 해서 준 거 같아?”

“그건! 지한이가 잘해서 준 거지!”

“그래 맞아. 그걸 아는 애가 쓸데없는 걸로 걱정하고 있었어?”

“쓸데없는 거라니.”

“어휴. 이럴 줄 알았으면 방송국을 압박해서 지연이 상 좀 달라고 하는 건데.”

“그러게 말이에요. 왜 안 했어요, 이 실장님? 했으면 지연이가 지금처럼 자기가 받아도 되는 거냐면서 쓸데없는 생각은 안 했을지도 모르는데.”

“가수로 상을 많이 받아봐서 익숙할 줄 알았죠.”

아니, 국제 영화제인데.

그렇게 생각 좀 할 수 있는 거지.

뭘 그렇게 상 못 받아서 자신감이 떨어진 애 취급하고 있어.

“그만해. 나도 이제 내가 쓸모없는 걱정했다는 거 알겠으니까.”

살짝 토라진 것 같은 지연의 말에 은주와 영훈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제 알았으면 됐다.”

“너는 이제 수상소감을 어떻게 할지만 생각해.”

“너무 김칫국 들이켜는 거 아니야?”

“뭐 어때? 간절히 바라면 신이 들어줄지?”

“내가 아는 신이 있는데 바라기만 해선 들어주지 않는대.”

“뭐야. 농담을 너무 진담처럼 말하는 거 아니야?”

영훈과 은주가 진짜 아는 신이 있는 줄 알겠다면서 깔깔 웃었다.

옆에서 동생만이 ‘그 신이 지니처럼 소원을 들어주진 않지.’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무튼 지연이 너는 수상소감이나 작성하고 있어.”

“지한아. 너도 수상소감 A4용지 100장으로 준비해.”

“형. 시간제한이 있는데 100장을 어떻게 다 말해.”

“그럼 100가지.”

학생도 아닌데 숙제를 내주는 영훈을 보고 지한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 * *

감독님들의 작업 속도에 불이 붙었다.

첫 영화라 갈팡질팡하며 고민하던 강해성 감독도 칸이라는 구체적인 목표에 숲속에서 표지판을 찾은 것처럼 거침없이 나아갔다.

박범수 감독은 그런 강해성 감독의 행동에 덩달아 불이 붙었는지 끼니도 거르고 작업실에서 죽치고 있다고 한다.

아니, 류승욱 조감독이 입에 먹을 걸 넣어준다고 하니 끼니를 거르는 건 아닌가?

아무튼 두 감독의 열정에 블레스 스튜디오에서는 묘한 열기가 맴돌았다.

“후우우우.”

작업실에 틀어박혀 편집본을 확인한 해성이 막힌 숨을 토해내듯 깊은숨을 뱉었다.

하얗게 불태웠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모든 걸 다 쏟아부어 만든 영화를 본 해성이 피곤한 얼굴임에도 밝게 웃었다.

똑똑

“들어오세요.”

작업실을 두드리는 노크소리에 해성이 밖에 있는 사람에게 안으로 들어와도 된다고 허락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세상에서 아내 다음으로 소중한 아들이었다.

“웬일로 대답해주시네요.”

“지금 막 영상 확인이 끝났거든.”

“정말요?”

“그래. 이대로 출품하려고.”

해성의 말에 기율이 가까이 다가와 모니터를 확인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막힌 곳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아버지의 얼굴이 밝았다.

원하는 컷을 찾아낸 모양이었다.

“저도 봐도 돼요?”

“그럼. 이 작품은 아들과 함께 만든 작품이니까.”

많은 일과 많은 도움이 있었지만 시나리오 썼을 때 다짐했던 대로 아들과 함께 완성한 작품이었다.

그러기까지 많은 일과, 많은 도움이 있었지만 바라던 대로 아들과 완성한 작품이었다.

모니터를 보는 해성의 시선이 아들을 보는 것처럼 애틋했다.

“누가 보면 모니터에 제 사진이라도 있는 줄 알겠어요.”

“그, 그래 보이니?”

아들의 말에 뜨끔한 해성이 기율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옆에 있는 아들을 두고 모니터에 아들이 있는 것처럼 바라보다니.

기율의 앞에서 할 짓이 아니었다.

아직도 가족의 앞에서 죄인처럼 눈치를 살피는 아버지를 보고 기율이 태연하게 말했다.

“이거 처음부터 보고 싶은데.”

“아! 내가 틀어주마.”

기율이 말없이 아버지가 영상을 틀어주기를 기다렸다.

보고 듣고 배우고 일한 시간을 합치면 십여 년이 넘어가는데 영상 하나 재생 못 할까.

처음부터 보고 싶다고 해성에게 말을 건 것은 핑계에 불과했다.

아버지가 엄한 생각을 하지 않도록.

바라던 대로 아버지와 함께 만든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율의 의도대로 머릿속에서 잡생각을 몰아낸 해성이 영상을 틀었다.

아버지와 단둘만 있는 편집실에서 기율은 어릴 때 꿈꿨던 대로 아버지와 함께 만든 작품을 감상했다.

기율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 * *

근래 들어서 한국 영화감독들이 국제무대에서 주목받고 있었다.

2월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한국이 자랑하는 감독, 박준욱 감독의 영화가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으며.

홍하수 감독과 김기동 감독의 신작이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올해 처음으로 개최되는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에는 전 세계 130여 개의 드라마 중에 유일한 아시아 작품으로 한국의 ‘엄마’가 초청되었다.

물론 해외에서 날아다닌다고 해서 전부 긍정적으로 보는 건 아니었다.

[검찰, 김기동 감독 여배우 폭행·강요혐의로 소환조사]

[김기동 감독, 여배우 폭력 사건에 대해 입을 열다]

[싸늘한 여론, 베를린 영화제의 오점]

[홍하수-김민지, 이대로 정말 괜찮을까]

[홍하수 감독, 김민지와 결별]

[홍하수·김민지 결별? No. 베를린 영화제 동반 참석]

[김기동, 홍하수 문제적 韓감독들]

-김기동 감독 작품은 묘하게 찝찝해. 나체 보려고 만든 거 같음

-욕도 아깝다

-인권 유린을 통한 예술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한때 좋아했던 감독인데 지금은 영

-또 김민지랑 같이 만든 작품이야? 페르소나라지만 저렇게 당당하게 불륜하는데 보기 좀 그럼

-소오름

-역겨운 사이를 그렇게 인정받고 싶을까

-나이 많은 감독이랑 연애한게 잘못이라는 모지리들. 아직까지도 조선시대에서 살고 있냐.

-저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는 짓을 예술이라는 이름하에 도취되어 당당하게 미화하고 있다. 그걸 영화까지 찍었다니 매우 괘씸함

일부 감독들의 문제가 되는 행동에 국민들은 그들의 성과를 곱게 바라볼 수 없었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지만 이렇게 국제무대에서 K콘텐츠가 활약하고 있을 때, 사람들의 입에 국뽕을 치사량으로 들이붓는 기사가 올라왔다.

[박범수×오지한 칸 가나?]

[박범수·오지한, 칸 사로잡을까]

[칸 노리는 오지한, 짧은 예고편 속에서 분위기 갑]

[지연, 레드카펫 밟나?…영화 ‘거부할 수 없는, 사랑’ 칸 출품 준비]

[지연 ‘거부할 수 없는, 사랑’, 오지한 ‘장난(The Game)’ 칸의 5월을 달굴 것인가?…러브콜 기대]

[칸 영화제, 12일 초청작 발표…지연, 오지한 낭보 받을까]

칸의 초청작이 발표되는 4월 12일.

전 세계 영화팬들의 시선이 칸으로 집중됐다.

방송사들은 스포츠 경기처럼 칸의 초청작이 발표되는 것을 중계하기 위해서 기를 쓰고 달라붙었다.

TV에서 칸 초청작 발표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일은 드물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무려 대한민국의 자부심, 세계가 낳은 보석, 지상에 강림한 신으로 불리는 지연과 지한의 작품이 칸에 출품되었기 때문이다.

TV와 모니터 앞에 모인 팬들이 떨리는 가슴을 붙잡고 초조하게 발표를 기다렸다.

-아. 떨린다.

-나도 너무 떨려서 잠 못 잠.

-우리 애들 갈 수 있을까?

-우리 애들이 안 가면 누가 가?

-우리 나연 언니 칸 가게 해 주세요!

-칸 가즈아-!!!!!!!!!!

-제발 우리 오빠. 제발! 유아연 오빠 칸 보내주세요.

-지연이 가지 않으면 누가 갈 것?

-나는 믿는다. 지연, 오지한 초청.

-내가 미래에서 보고 옴. 우리 애들 전부 칸에서 상 받을거임!

└뇌피셜 쓰지 말고 기도해라.

게시판이 난장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본인 일도 아닌데 왜 걱정을 사서 하냐고 하겠지만, 배우가 잘되길 바라는 것이 팬의 마음 아니겠는가?

자기 배우의 이름을 부르며 목욕재계하는 팬, 모니터 앞에서 절을 하는 팬,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하는 팬까지 다양한 팬들이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 발표를 기다렸다.

-떴다!!!!!!!!!!!!!!

-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

-ㅈㅂㅈㅂㅈㅂㅈㅂ

현지시간으로 오전 11시, 한국 시간으로는 저녁 6시에 초청작 리스트들이 발표됐다.

그리고 그 속에

[…강해성의 ‘거부할 수 없는, 사랑’…박범수, ‘장난(The Game)’…]

지연과 지한의 작품이 있었다.

277. 레드카펫을 밟다

[지연 ‘거부할 수 없는, 사랑’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박범수×오지한 ‘장난’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올해 칸 영화제 한국 초청작 총 4개]

-으아아아아아아!!!!!!!!!!!!!!!!!!

-지연이랑 지한이 동시 진출!!!!!!!!!!!!!!!!!!

-심지어 전부 경쟁부문이야!!!!!!!!!

-이거지! 심지어 범죄자랑 불륜남 떨어짐!!!!

-이게 나라다!

속보가 이어졌다.

칸에 초청받은 작품의 수가 4개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남매의 동시 진출이 더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월드컵 진출했을 때나, 금메달을 딴 것처럼 남매의 칸 초청이 확인되는 순간 아파트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지진이 일어난 것이라고 착각할 만큼 대한민국이 떠들썩할 때, 지연은 집에서 축하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실 당연한 일입니다.

“네? 왜요?”

-그거야. 우리 모두 연과 한을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스피커 너머에서 들려오는 ‘드래곤 엠페러’ 시리즈의 아버지이자 할리우드의 거장인 루카스 감독의 말에 지연이 의아한 목소리를 내었다.

옆에서 누나의 통화를 듣고 있던 지한이 바짝 붙어 귀를 갖다 댔다.

“왜 그래? 감독님이 뭐라셔?”

“아니. 당연한 결과라고. 그러시는데?”

“왜?”

“그러게 왜일까?”

왜 당연한 결과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똑같이 고개를 기울이는 남매에게 루카스 감독이 작게 웃었다.

아직도 자신들이 이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실감하지 못하는 두 사람을 보고 루카스 감독이 웃었다.

그런 점이 두 사람의 매력이기도 했다.

-두 사람이 감독들 사이에서 얼마나 핫한 배우인지 잘 모르시는군요.

“지한이라면 알겠는데 저는 왜요?”

-왜긴요. 이미 감독들 사이에서는 유명합니다. 연이 한을 어릴 때부터 연기를 지도해 왔고, 연의 연기 실력이 한 못지않다는 사실이요.

아아. 할리우드에서 떠돈다는 그 소문 말이구나?

지연이 이제 이해가 갔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그게 왜?

지도하는 것과 실제 연기를 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이전에 나왔던 건 전부 지연이 제대로 돋보이지 못한 작품 아닙니까. 연이 이전에 찍었던 영화는 드래곤 엠페러가 다니까요. 드래곤 엠페러에서도 일부러 한을 돋보였던 거죠?

“그게 조연의 역할이니까요.”

조연으로서 주연의 자리를 넘보지 않는 것.

주연이 돋보일 수 있게 존재감을 낮추면서도 이야기를 생생하게 하는 것.

주연의 스토리가 폭발할 수 있게 트리거가 되는 것.

드래곤 엠페러에서 지연의 역할이란 그런 것이었다.

전부 계산했다는 지연의 발언에 루카스 감독이 감탄하며 말했다.

-그걸 전부 계산하고 한에게 맞췄다는 거 자체가 대단한 일입니다. 아무튼 지금 감독들 사이에선 연도 한 못지않게 유명합니다. 지연을 찍어보겠다는 감독만 제 주위에 벌써 10명이 넘어요.

할리우드에서도 한의 연기는 정평이 나 있었다.

오죽하면 그 마벨에서 최초로 동양인을 주인공으로 한 히어로를 만들고, 그 주인공이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입대했을 때도 기다려줬겠는가.

그건 전부 다 지한이 ‘대체불가능한’ 배우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지한이 전력으로 다한 연기에 계산한 연기를 맞춰서 더 돋보이게 하는 건 보통 실력으로는 힘든 일이었다.

지연이 등장했던 짧은 순간, 그 순간을 압도하는 아우라에 많은 감독이 엉덩이를 들썩였다는 걸 모르겠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연을 보고 루카스가 지구 반대편에서 허탈한 웃음을 내었다.

-아무튼 한과 연을 동시에 칸에서 볼 수 있겠군요. 정말로 축제 같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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