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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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컷을 찍은 지연에게 매니저와 코디들이 후다닥 달려가 담요와 핫팩을 안겨 주었다.

담요를 돌돌 두른 지연이 걸어와 해성과 함께 모니터링했다.

자신이 찍은 영상을 보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이 이내 만족스러운 듯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오케이. 자, 다음 씬 준비합시다.”

“예에!”

감독의 신호에 사고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 스태프들이 준비했다.

고정했던 걸 풀고 장비를 들고 위치를 조정한다.

기율이 조금 전에 자신이 렌즈로 담았던 영상을 생각했다.

호흡, 눈빛, 표정.

온몸으로 연기하던 그녀를 보면서 기율은 한때 아버지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

‘기율아 저거 봐라. 멋지지?’

‘응! 멋져.’

소담에 있을 때가 아니라 작은 제작사에 있을 때였는데 한 명이 과로로 쓰러지는 바람에 아버지가 땜빵하러 갔었다.

아버지와 한 약속 때문에 모처럼 둘만의 시간을 보내던 기율도 어쩔 수 없이 갔었다.

지금처럼 열심히 연기하는 배우들과 지친 몸을 이끌고도 좋은 작품 만들겠다고 움직이는 사람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기율을 혼자 앉혀놨던 해성이 다가와 말했었다.

모처럼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는데 실망하던 것도 잠시 현장의 열기에 감화된 기율이 눈을 빛내며 즐기는 것 같자 해성이 아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신기하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 같이 힘을 모아서 멋진 작품을 만드는 거야.’

‘나도 할래!’

‘그래. 기율이 나중에 크면 아빠랑 같이 만들자.’

‘응!’

그리고 지금 자신은 그 현장에 있다.

아버지와 함께.

“강기율 감독님 무슨 일 있나?”

“몰라. 촬영 빨리 끝날 거 같아서 그런 게 아닐까?”

장비를 들고 가볍게 움직이는 기율을 보고 주변에 있던 스태프들이 의아해하며 움직였다.

253. 지한이의 전역

웅성웅성

강원도에 있는 군부대 앞.

오늘따라 이곳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수첩과 사진기, 녹음기를 필수로 달고 다니는 직업.

바로 기자들이었다.

“오늘 나오는 거 맞지?”

“맞아. 탑엔터에 문의했어. 그리고 저길 봐.”

한 기자가 가리키는 곳에 벤이 있었다.

딱 봐도 연예인들이 타고 다니는 벤에 경호원도 장난 아니었다.

그리고 오지한의 팬클럽 회원들이 그 주위를 죽치고 있었다.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었는지 무대 같은 작은 단상과 플랜카드까지 쳐져 있었다.

“저거 탑엔터 경호원들이지?”

“오지한이랑 지연 경호원. 정확하게는 HJ그룹 쪽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이고.”

“그거 예전에도 생각했지만 도대체 오지한이랑 지연이랑 HJ그룹이랑 무슨 사이야? 진짜 뭐 혼외자식이라도 돼?”

“아, 넌 오지한이랑 지연 부모에 대해서 몰라? 뭐 그런 찌라시를 진실처럼 믿고 있냐.”

“그랬지. 쩝. 아니 워낙 끼고 도니까 그런 거지.”

대한민국 연예부 기자라면, 아니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모를 리 없는 사건.

두 사람이 유명해질수록 그들의 과거도 조명되기 마련이었다.

어린 나이에 국민스타가 된 남매의 불운한 과거.

그런 불운한 삶 속에 있던 남매를 구원해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 탑엔터의 공주민 사장.

“그러니 더더욱 이해가 안 간단 말이야. 아니 HJ그룹이 도대체 왜 이 남매를 끼고 사냔 말이야.”

“그, 내가 들은 건데.”

“뭔데.”

궁금해서 다가오는 기자의 귀에 다른 기자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HJ그룹의 큰일을 결정하는데 두 사람이 공태산 회장한테 조언을 해 주는 사이라고 하더라고.”

“!!!”

다른 기자의 말을 들은 기자가 눈을 크게 떴다.

공태산이라면 지금 자리에서 물러난 HJ그룹의 명예회장이었다.

앞날을 예견한 것처럼 HJ그룹에 커다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위기에서 그룹을 건진 사람이 바로 공태산 명예회장이었다.

그런 공태산 회장에게 조언을 하는 사이라고?

“최 기자.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공태산 명예회장이 있을 때 오지한이랑 지연이 몇 살이었는데.”

“쩝. 그런가?”

“소설 좀 그만 써! 그러니까 우리가 기레기 소릴 듣는 거야.”

“아니 나도 오죽했으면 그랬겠냐고.”

“증거는 있어?”

“없지?”

“에이 텄네.”

싱거운 소릴 들었다는 듯이 기자가 자리를 옮겼다.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소리였는 듯 최 기자가 자리를 옮기는 기자를 따라갔다.

“어어! 나온다!”

“저기 오지한이다!”

멀리서 봐도 키가 훤칠한 사내가 군복을 입고 걸어 나왔다.

들어갈 땐 몰랐어도 나오는 걸 모르긴 힘들었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 몇이며 국방부랑 탑엔터에 쏟아지는 문의가 몇이던가.

결국 탑엔터에 공식적인 발표가 있고 나서 전역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사람들이었다.

“오지한 씨 1년 8개월 동안 군 생활을 다녀오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많은 팬분이 오지한 씨를 기다렸는데요 팬들에게 한마디 해 주세요.”

“앞으로의 활동은 어떠십니까? 차기작은 정해졌습니까?”

총알처럼 퍼붓는 말에 지한이 싱긋 웃고 손날을 세워 머리에 붙였다.

“충성! 병장 오지한은 2017년 1월 18일부로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찰칵찰칵차라라라락

꺄아아아아악!!!!

카메라 셔터음이 장맛비 소리처럼 들렸다.

지한이를 마중 나온 팬들이 비명 같은 함성을 질렀다.

“전역한 소감이 어떠십니까?”

“아직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하하하. 아직 말투가 딱딱하신데요. 그럼 언제 실감이 날까요?”

“내일 아침에 나팔 소리를 듣지 않으면 실감 날 것 같습니다.”

지한의 말에 군대 다녀온 남자들이 공감하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그런데 오지한 씨 정말 군대에 다녀온 거 맞습니까? 피부가 어쩜 이렇게 백옥 같으세요?”

“백옥이요?”

“사회에 있던 저보다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조금 타고난 것도 있는데 안에 있는 동료들 덕에 하루라도 피부 관리를 빼놓지 않았던 게 비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니, 군인도 피부 관리를 합니까?”

“네! 합니다!”

씩씩한 지한의 말에 또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한이 다정한 태도로 모든 질문에 대답해주자 도무지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레드카펫도 아닌데 무슨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는지.

경례를 하면서 수차례, 질의응답을 하면서 수차례, 팬들과 같이 찍는다며 수차례.

미리 질문지를 받았던 것 같은데 어째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지한이를 데리러 가지 않고 차에서 사태를 지켜보는 영훈에게 지연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오빠. 지한이 언제 끝나?”

“기자들이 저러는 것도 이해가 되잖냐. 들어갈 때는 아무도 몰랐으니까 더 저러는 거야. 그리고 곧 지한이 차기작 들어갈 텐데 이렇게 화제가 되면 좋지.”

“벌써 점심때가 다 됐는데 언제 가냐구. 나 내일 지방 촬영이라서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알지. 알지.”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으려고 장도 다 봤단 말이야. 요리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데.”

“지연아, 진정해. 곧 끝날 거야.”

이런 상황에서 지연이 나가봤자 인터뷰 시간만 길어지는 꼴이었다.

알지만, 안 끝나잖아.

인사를 하려는 지한에게 또 기자가 질문했다.

“오지한 씨, 전역 축하드립니다. 차기작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 들리던데 혹시 어떤 작품에 들어가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방금도 마지막이라면서!

지연이 차 안에서 초조하게 손목에 찬 시계를 보았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 겨우 뺀 시간이다.

지한이 전역일에 맞춘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촬영장에 있는 스태프와 다른 배우들의 배려가 아니었다면 오늘 시간 내기도 힘들었을 거다.

“그럼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도대체 그 마지막이 언제까지 계속되는지.

벌써 몇 차례 이어진 ‘마지막 질문’에 지연이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난 지한이 가족이잖아.

가족이 데리러 가는 건 괜찮지 않겠어?

기다림을 참지 못한 지연이 문손잡이에 손을 가져갔다.

“어? 지연아, 어디가?”

“지한이 데리러.”

“아니, 잠깐만.”

영훈이 손을 뻗었지만 지연이 먼저 벤에서 내렸다.

큰일 났다!

촉박한 제한 시간에 초조해진 지연이 참지 못하고 벤에서 내리자 주위에 있던 경호원들이 지연을 둘러쌌다.

영훈이 급하게 뒤따라 차에서 내려 지연의 뒤를 따라갔다.

“어? 지연이다.”

“지연 씨! 동생을 마중하기 위해 오신 겁니까?”

“동생이 전역한 소감이 어떠신지요?”

카메라 플래시와 여러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지연이 지한의 옆에서 말했다.

“오늘 하나뿐인 가족이 군대에서 전역한 날입니다. 너무 기쁘네요. 그래서 이제 동생을 집으로 데려가도 될까요? 집에 가서 밥 먹이려고 장도 봐 놨거든요.”

“앗! 잠시만요. 지연 씨 이렇게 가시면 안 되죠.”

“정말 안 돼요?”

지연이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눈망울로 물어보자 기자들이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한의 팔목을 잡고 차로 향하는 지연을 간신히 막아 세웠다.

“하하하. 동생이 와서 기쁜 건 알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대로 가시면 어떡합니까.”

“죄송해요. 요새 제가 촬영 때문에 바빠서 지한이 전역일에 겨우 시간을 냈거든요. 마음이 급해서 그만.”

“아! 지연 씨 새 영화 말씀이시죠?”

건수를 잡은 리포터와 기자가 눈을 빛내며 마이크를 들이댔다.

영훈이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지연아…!

벌써 점심시간이라는 것이 지연이를 초조하게 한 것 같았다.

전역하는 날 손수 밥 먹일 거라고 어제도 늦은 시간 촬영이 끝나고 직접 마트에 가서 장을 봐 오지 않았던가.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렇게 하면 어떡하지 지연아!

“지연아. 영화에 대해 딱 한 마디만 하고 집에 가자. 경호원분들 미리 길 터 주세요.”

영훈의 지시를 받은 경호원 아저씨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텄다.

기자와 팬들에게 잡힌 동생을 빨리 빼내고 싶었을 뿐인데 어쩌다가 영화 홍보까지 하게 된 걸까.

분주하게 지시를 내리는 영훈을 보며 지연이 그제야 조금 정신을 차렸다.

이런, 실수했네.

“지연 씨. 이렇게 된 거 새 영화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시죠.”

“<거부할 수 없는, 사랑>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여러분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좋은 모습으로 뵐게요.”

“어? 지한 씨. 지금 그 발언. 차기작이 정해졌단 말씀이신가요? 오지한 씨? 지한 씨?”

“언제 차기작이 정해졌죠?”

“드라만가요 영화인가요?”

“오지한 씨! 지연 씨!”

기자들의 질문이 따라붙었지만 남매는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벤으로 향했다.

지한의 새 작품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남매는 벤을 타고 사라졌다.

그러다 한 기자의 말에 부대 앞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여보세요? 부장님? 특종입니다. 오지한 새 작품 들어간대요!”

선수 친 한 기자의 말에 자리에 모인 기자들이 어디론가 연락하기 시작했다.

* * *

두 남매가 터트린 발언 때문에 탑엔터의 전화기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현장에 있던 영훈의 보고에 홍보팀이 발 빠르게 나섰다.

“우리 지한이요? 논의가 오간 작품이 있긴 합니다.”

“하하하. 아직 정해진 건 없어요.”

“네. 계약한 작품은 없구요. 지한이가 전역하면 캐스팅하고 싶다고 문의가 온 적은 있습니다.”

“아이고, 미리 정해지다니요. 그런 건 없어요.”

“작품이 정해지면 바로 홍보자료 드리겠습니다. 아, 저 몰라요? 제가 언제 없는 말 한 적 있습니까.”

이제는 전화응대에 프로페셔널이 된 홍보팀 직원들이 능숙하게 대처했다.

별다른 사고 한 번 친 적 없는 남매들이지만 워낙 뭐 하나 할 때마다 주목을 받다 보니 이 정도 대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베테랑이 된 홍보팀 직원을 보던 한소영 홍보팀장이 발 빠른 홍보팀의 대처를 보며 뿌듯한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 다 컸네, 우리 애들.”

“다 크긴요. 저는 지연이가 그런 사고를 칠 줄 몰랐습니다.”

“사고라니. 미리 정해진 시간을 초과해서 쓴 그 사람들이 잘못이지. 막말로 정해진 질문 하기로 했으면서 왜 현장에서 질문을 못 자른 거야?”

“국방부 홍보실에서 도와준다고 했는데 그쪽이랑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된 거 같더라고요.”

뻔하지.

입대할 때 홍보 못 했으니까 전역할 때 뽕을 뽑으려고 한 거 아니야.

합리적인 의심에 한 팀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어찌 됐건 지연이 덕에 지한이 차기작도 덩달아 주목받게 된 거지. 홍보자료 준비됐지?”

“지한이가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바로 뿌릴 수 있게 준비해 놨습니다.”

“좋아. 그러면 당분간 지한이는 집에서 푹 쉬라고 하고 감독만 정해지면 바로 계약서 쓰자고. 감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대?”

“일단 박범수 감독님이 제일 유력한 후보긴 합니다.”

부하직원의 보고에 한 팀장이 턱을 괴고 곰곰이 생각했다.

이쪽 업계에 있는지라 웬만한 감독들 이름은 전부 다 꿰고 있었다.

그들의 평가, 현장에서의 태도, 사생활, 실력, 성향, 선호하는 배우 스타일 등등.

그 속에서 박범수 감독에 대한 정보를 추린 소영이 입을 열었다.

“박 감독님이라. 그분이라면 괜찮을 거 같긴 한데 최근 성적이 안 좋지 않나? 그리고 뭔가 문제가 있었다고 한 거 같긴 한데.”

“최근 행적에 관한 걸 업데이트해서 보고하려고 했습니다.”

“그래? 되는대로 최대한 빨리 정리해서 보고 부탁해요.”

“네.”

박범수 감독은 영화 <꽃을 든 남자>, <도시 전설> 등으로 히트작을 연달아 낸 감독으로 한때 주목을 받았지만 최근에 만든 작품들은 말이 많았다.

분명 시나리오만 보면 꽤 괜찮았는데 말이지 만들어진 결과를 보면 영 꽝이었다.

시나리오를 못 살릴 감독이 아니라 모두 말이 많았지.

그 이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곧 알 수 있을 거다.

이러려고 우리 회사에서 그동안 연예계에 있는 일들을 전부 수집하고 기록해두지 않았던가.

곧 박범수 감독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리되어 올라올 것이다.

“그럼 그때까지 나는 이 일을 잘 이용해 볼까?”

모름지기 홍보부라면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전부 유용하게 써야 하는 법이었다.

소영이 폰을 들어 어디론가 연락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탑엔터 한소영이에요. 네, 네. 잘 지내셨죠?”

탑엔터를 지탱하는 기둥 중 하나인 소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254. 내일 뭐 해?

점심으로 두루치기 김치찌개, 저녁으로 갈비찜까지 푸짐하게 먹은 두 사람이 나란히 소파에 앉아서 각자 인절미랑 모짜를 쓰다듬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못 보는 일은 없을 거라고 한 뒤로 인절미의 치댐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곁에 꼭 붙어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 지한이에 모짜는 눈을 끔뻑이며 발목에 냄새를 묻히기 바빴고 하루 종일 비빈 끝에 만족했는지 지연의 품에 안겨 골골송을 불렀다.

말년에 휴가를 몰아 쓴 덕에 자주 봤으면서도 또 이러는 거 보니까 이 녀석들도 지한이를 많이 보고 싶었나 보다.

“인절미. 이제 형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팔 아파.”

슬며시 손을 떼려는 지한이의 손을 잡아 인절미가 떨어지지 못하게 하자 지한이 한숨을 푹 쉬며 다시 손을 움직였다.

이게 다 내 죄지 누구 죄겠어.

지한이가 팔이라도 바꿔보게 인절미에게 구구절절 부탁했다.

푸릉

“고맙다.”

한동안은 계속 이렇게 수발들어야 할 것 같은데.

지한이가 아연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봤다.

인절미와의 협상에서 한발 물러난 동생을 보고 지연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누나의 감정 변화를 기민하게 알아차린 지한이 옆을 보았다.

“누나. 좀 말려주지.”

“이건 네 잘못이 커.”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쪽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고.

가뜩이나 연예인이 들어왔다고 모두의 관심 대상이었는데 휴가까지 꼬박꼬박 나갔어 봐라.

물론 정당하게 쓴 거니까 뭐라 할 순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해도 트집 잡을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니 더 엄하게, 더 철저하게 군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덕에 말년에 휴가를 몰아 쓸 수 있어서 좋았지.

군대 안에서 동료들과의 관계도 꽤 괜찮았고.

밖에 나가서도 잊지 말라며 폰 번호를 주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개인 폰으로 연락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한 것도 있지만 동료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아무튼 이렇게 누구보다 열심히 군 생활을 하고 왔는데 집에 오니 가족들에게 천대받는 신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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