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7 (227/296)

이제는 탈모인들이 부러워할 머리카락을 가지게 됐다.

“왜 그래?”

“아니. 그냥. 오늘 가는 곳이 소아암 아동을 후원한다고 해서.”

“갑자기 애들이 안쓰러워졌어? 누나는 예전부터 어린애한테 약하다니까.”

“지연이 개인적으로 후원하는 곳도 가정폭력이랑 아동학대 쪽이라고 했었죠. 혹시… 지연의 어린 시절 때문입니까?”

“그것도 있죠.”

지연의 트라우마를 자극할까 봐 조심스럽게 물은 말에 지연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우리 사이에 이런 걸 뭘 조심스럽게 물어요.

애런이라면 편하게 물어도 되는데.

그리고 딱히 거길 의도하고 지원한 게 아니라 남 비서님의 도움으로 믿을 수 있는 후원단체 목록에 그곳이 있어서 한 것뿐이다.

후원금을 어디 썼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니까 애초에 남는 곳이 많지 않더라고.

자선단체의 탈을 쓴 사기꾼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이번에 가면 많은 사람이 다가올 겁니다. 파티장에는 경호원도 있고, 저도 가까이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거기 사람들이랑 일일이 다 인사해야 하는 건가요?”

“다가오는 사람들이랑은 하면 되겠죠. 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굳이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구나. 이런 덴 처음이라서.”

그것 외에도 애런은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속성으로 애런에게 파티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배우고 있는 동안 차는 자선파티가 열리는 곳에 도착했다.

“윽. 벌써 카메라가 엄청 많아.”

“애런이 그랬잖아. 유명인들이 많이 와서 기자들이 죽치고 있는다고.”

“파티회장 안에는 없을 거라고 했지?”

“그러니까 들어갈 때만 표정 관리하자.”

지연이 동생을 다독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의 등장에 기자들이 술렁였다.

“세상에. 진짜 왔잖아?!”

“장난 아닌데? 나는 순간 여기가 오스카 시상식이 열리는 곳인 줄 알았어.”

“휘유. 대단한데? 앞에 들어갔던 스타들이 수수해 보일 정도야.”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을 본 기자들이 감탄하면서 부지런하게 셔터를 눌렀다.

작품 활동 외에는 공식 석상에서 얼굴을 보기 힘든 둘이었다.

가뜩이나 내년 초에 개봉될 ‘드래곤 엠페러2’ 덕에 두 사람에 관한 관심 역시 높아지고 있던 실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선파티에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이니 기자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차락차라라락

셔터음이 총성처럼 이어졌다.

기자들의 욕구를 채워 준 두 사람이 애런과 함께 파티장으로 들어왔다.

또 표정관리 해야겠네.

대외용 미소를 얼굴에 띠운 두 사람이 파티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의 시선이 지연과 지한에게 향했다.

“어머. 진짜 왔네요.”

“명단에 이름이 있을 때도 설마 했는데.”

“드디어 작품 외에 다른 활동도 하겠다는 걸까요?”

“뭐가 됐든 이번 기회에 친분을 다져놔야겠어.”

지연과 지한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가지각색으로 빛났다.

자신들을 향한 여러 종류의 시선을 마주한 둘이 자신도 모르게 몸을 꼿꼿이 세웠다.

* * *

“후우.”

정말이지 이런 자리는 내키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시달린 지연이 가늘게 숨을 뱉었다.

팬사인회를 할 때도 이 정도로 사람이 많이 몰린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순수한 애정이 대부분이었기에 이렇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오는 사람들은 전부 각자의 속내를 가지고 다가온 것이라 더욱 피곤했다.

“영화나 음악, 그림 같은 걸 묻는 거라면 이해하겠는데.”

나한테 거기에 담긴 가치나 전망, 앞으로 유망한 사업 분야 같은 건 왜 물어보는 걸까.

나름의 시험으로 이런 거에 대해서 네가 얼마나 알고 있냐를 알아보고 싶었던 걸까?

물론 나는 그 전망이라는 걸 직접 보고 듣고 온 사람이라 손쉽게 대답해 줬지만.

그걸 보고 의외라는 듯이 반응했던 사람들을 보면 내가 이걸 대답할 거라 기대를 안 하고 있던 게 보여서 불쾌했다.

사람을 떠보는 것도 정도껏이지.

자선 파티까지 와서 뭐 하자는 짓인지.

“한국이나 여기나 연예인들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는 건 똑같네. 그나저나 이제 곧 시작할 거 같은데 지한이는 언제 오는 거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운 동생이 돌아올 생각을 안 했다.

그 동생을 찾으려고 애런까지 갔는데 두 사람 다 깜깜무소식이었다.

설마 화장실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자신도 찾으러 가야 하나 자리를 뜨려던 때, 지연의 고막에 익숙하면서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먼 땅에서 들린 고향의 언어에 지연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게다가 이 목소리.

어딘가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지연이 서서히 몸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이런 자리에서 다 뵙네요.”

“…정민혁?”

슈퍼노바의 전 멤버인 정민혁이 미국에서 열린 자선파티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예상치 못한 만남에 지연이 굳어 있는 사이 민혁이 얼굴에 미소를 걸고 친근한 척 다가왔다.

“여기서 보게 될 줄 몰랐네요.”

“…그러게요. 한국에서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오셨어요?”

“어떻게 오긴요. 자선 파티에 온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않겠어요?”

네가 자선하러 여길 왔다고?

퍽이나.

학교 다닐 때도 애들한테 삥뜯고 주먹 쓰고 다니던 놈이 머나먼 미국 땅에 있는 소아암 환자들을 위한 기부 파티에 왔다니 믿을 걸 믿으라고 해라.

차라리 대놓고 ‘나 무슨 속셈이 있어요.’라고 말하지, 그래.

“민혁 씨도 소아암 아동에게 관심이 있는 줄 몰랐어요.”

“원래는 없었는데 어떤 사람 덕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민혁이 은근한 시선을 보냈다.

그 어떤 사람이 나라는 뜻인가?

네가 여기에 온 목적이 나한테 있다는 건 잘 알겠어.

아마도 연예계 은퇴하게 만든 원한이려나?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내 앞에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디 한번 들어보자고.

“관심을 가졌다니 다행이네요.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길을 내밀어 주세요.”

“물론 그럴 겁니다.”

지연과 민혁이 서로 속내를 숨기며 대화했다.

그렇게 서로를 떠보던 중에 민혁이 먼저 속내를 드러냈다.

“그런데 선배님 그거 아세요? 아. 촬영 끝나고 바로 여기 오셔서 모르시겠네요.”

내 행적에 대해 잘 알고 있네?

홍콩 촬영이 돌아오자마자 미국에 온 걸 안단 말이지?

역시 의도한 접근이었어.

“뭘요?”

“지금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요.”

민혁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눈썹을 늘어트리며 말했지만, 그딴 수작에 속아 넘어갈 줄 알고.

누구 앞에서 연기를 하려는 거야.

날 연기로 속이려면 앞으로 10년은 더 배워 오라고.

지연이 민혁의 행태에 속으로 비웃으며 물었다.

“한국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뉴스에서는 별일 없는 것 같던데요.”

“아직 뉴스에 나오진 않았지만…. 선배님의 동생. 그러니까 오지한 배우에게 곧 곤란한 일이 생길 것 같아요.”

민혁의 말에 지연이 그의 눈을 바라봤다.

내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라.

‘나중에 사장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해야겠네.’

그런 일이 생긴다면 우리 사장님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사장님이라면 이미 눈치채고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눈앞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난 이유에 집중할 때다.

굳이 미국에서 열린 자선파티에서 내 동생의 안부를 걱정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이야.

그것도 예전에 나한테 수작 걸려다가 그룹에서 퇴출당한 남자한테서.

저 남자가 하는 말은 간단했다.

정민혁 너랑 네 뒤에 있는 누군가가.

한국에서.

내 동생에게.

무슨 짓을 벌이려고 한다는 거지?

피식

“제 동생한테 곤란한 일이 생긴다니.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누군가가 아주 나.쁜 마음을 가진 게 틀림없네요. 혹시 그 일, 나.쁜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서 들은 얘기실까요? 그런 사람들이랑 어울리지 마세요.”

전혀 무섭지 않은 듯한 태도로 말하면서 자신을 가소롭게 보는 지연을 보고 민혁이 발끈했다.

민혁의 눈썹이 진정하지 못하고 격하게 꿈틀거렸다.

‘저놈이랑 지한이한테 수작 부리려는 놈들이랑 무슨 연관이 있는 줄은 모르겠지만. 정민혁 넌 일단 개인적인 원한으로 나한테 접근한 것 같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별 볼 일 없는 놈이었다.

날 이용해 보려던 게 실패한 게 쪽팔렸나?

아니면 나한테 당했다는 게 자존심 상했나?

뭐가 됐든 자기가 한 행동을 돌아보지 못하고 나한테 원한을 갖는 걸 봐서 정민혁은 변한 게 없었다.

이 자리에서 만난 건 의외지만 상대방이 어떤 놈인지 알고 있다는 점에서 대응하기 한결 수월해졌다.

“일단 저에게 이렇게 경고해주셔서 고마워요. 저도 미리 대책을 세워야겠네요. 그럼 이만 비켜주실래요? 곧 제 일행이 돌아올 거라서.”

“…혹시나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이곳으로 연락해주세요. 당분간은 미국에 있을 예정이거든요.”

“미국이라. 스케줄 때문은 아닐 텐데 휴가 오신 건가요? 아님, 도피? 뭐가 됐든 이제 정민혁 씨는 숨어다니지 않아도 괜찮지 않나요? 기자들도 흥미가 떨어진 것 같던데.”

다른 사람들은 벌써 널 잊어 버렸다.

너는 더 이상 슈퍼노바의 정민혁이 아니며 아무도 너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지연의 속내에 민혁이 주먹을 꽉 쥐었다.

“저한테 반드시 연락하게 되실 겁니다.”

민혁이 예언처럼 말했다.

연락하지 않으면 동생한테 손을 쓰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하는 짓이 예나 지금이나 양아치 같았다.

지연이 가소로운 눈빛으로 민혁에게 말하려던 찰나, 화장실에 갔던 두 사람이 돌아왔다.

“누나. 늦어서 미안.”

“사과의 의미로 마실 걸 가져왔습니다.”

“무사히 돌아왔으면 됐어요.”

두 사람이 돌아오자 어찌 됐든 전달할 걸 전부 전달한 민혁이 연락하라는 듯이 명함을 가리키곤 자리를 떴다.

그가 떠난 자리를 지켜보던 지한이 누나를 돌아봤다.

“무슨 얘기 했어?”

“구린내 나는 얘기. 조금 늦었네?”

“누가 내 발을 잡으려고 하더라고.”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 같은 정민혁과 누군가가 발목을 잡아 늦게 온 동생이라.

동생이 늦게 온 것도 다 계획이었다는 건가?

역시 정민혁한테 조력자가 있네.

“누군가가 우릴 노리고 있나 본데.”

한국을 떠나기 전 회사에서 느꼈던 어수선함이 떠올랐다.

은주 언니의 말을 듣고 그냥 회사 내부를 정리하느라 어수선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전 민혁의 말을 들으니 속사정이 있을 거란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아무래도 사장님이 일부러 우릴 한국에서 떠나보낸 거 같아.”

“사장님 선물은 유나 줘야겠다.”

지한이 사장님에게 줄 선물은 없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리 사장님이 우리를 애지중지한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우릴 둘러싸고 돌아가는 일을 당사자인 우리가 모른다는 게 말이 돼?

“일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알아봐야겠어. 사장님한테 연락해야지.”

“저 사람이 여기 어떻게 왔는지도 알아보는 게 좋을 거 같아?”

“여긴 미국이니까 애런한테 맡기면 잘 조사해 줄 거야.”

“하긴. 애런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지.”

할리우드의 CIA라고 불리는 퀸즈의 저력을 보여줘요, 애런!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자신을 돌아보는 지연과 지한에 애런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절 누구라고 생각하십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능한 에이전트가 바로 접니다.”

“믿어요, 애런.”

“역시 애런이에요.”

애초에 이런 일을 상정해 두고 두 사람을 자선파티에 오게 만들었다는 건 숨겼다.

저쪽에서 빨리 꼬리를 드러내서 다행이야.

말도 안 하고 이용했다는 약간의 양심의 가책을 느낀 애런이 확실하게 적의 정체를 알아 오겠다고 다짐했다.

226. 터트려

대한민국 서울.

K-POP의 성지이자 무수히 많은 기획사가 자리한 곳.

그중에서도 K-POP 팬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이자 연예인 지망생들이 무조건 한 번은 문을 두드려 본다는 탑엔터의 꼭대기에는 사장실이 있다.

HJ그룹의 일원으로서 계열사를 맡지 않고 유래적으로 엔터회사를 차린 탑엔터의 사장 공주민.

그는 놀라운 수완으로 세공되지 않은 보석을 데려와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어 업계에서는 전설로 불리고 있었다.

그런 그가 탑엔터의 가장 높은 곳에서 누군가에게 쩔쩔매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실망이에요.

“지연아. 그러니까 내가 그러려던 게 아니라.”

-이제 우린 필요 없다는 뜻이겠죠? 얌전히 노래하고 연기나 해야죠.

“아니야. 그런 거 아니니까 그런 생각 하지 마.”

-어릴 때도 제가 사장님 얼마나 많이 도와줬는데. 이제는 컸다고 손도 못 대게 하시고.

“내가 다 알지. 지연아, 나는 그냥,”

-이유도 다른 사람한테 듣게 하고. 이제 사장님은 우리가 돈만 벌어오면 되나 봐요. 나는 사장님을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뭐든 다 말했는데.

“…미안하다. 잘못했다.”

남 비서가 보고할 사항이 있어 사장실에 노크를 하려다가 문 너머로 들리는 주민의 목소리에 손을 멈췄다.

이런. 결국 들켰나 보군.

사장님도 참.

아무리 걱정된다고 하지만 숨길 사람한테 숨겨야지.

지연이의 눈치가 얼마나 귀신같은지 아는 남 비서가 쩔쩔매는 주민의 목소리에 속으로 혀를 찼다.

남 비서가 잽싸게 백스텝을 밟으며 비서실로 돌아갔다.

“어? 실장님. 방금 사장님한테 가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지금 통화 중이십니다. 잠시 후에 다시 가려고 합니다.”

“아하.”

비서실 직원이 돌아 나오는 남 비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때로는 윗사람이 체면 구기는 걸 못 본 척 넘어가 줘야 한다.

지연이와 지한이에게 통화로 뚜드려 맞고 있을 공 사장을 떠올린 남 비서가 다시 자리에 돌아가 내용을 살폈다.

절대 한통속이라고 같이 혼나는 게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

남 비서가 윗사람의 치부를 못 본 척 넘겨주고 있을 때, 바다 건너편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주민에게 전화해 엔터업계의 전설을 혼낸 두 사람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주민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미안하다. 다신 안 그러마.

“진짜죠?”

-그래. 아니면 스케치북에 사인이라도 할까?

주민이 신뢰의 증거로 지연의 스케치북을 들고나왔다.

지연의 몸과 마음이 지금보다 어릴 때, 누구도 섣불리 믿기 힘들었던 시절.

말로 하는 약속을 믿지 못하여 지연은 약속한 상대에게 서명을 받고 다녔었다.

모 만화의 요괴이름첩을 떠올리게 하는 행동이었지만 그 당시 지연은 나름 철저하게 약속을 계약으로 남기기 위해 애쓴 거였다.

‘사장님한테는 한 번도 쓴 적 없는데. 이걸 들고나오시네.’

예전 일이어도 전부 다 기억하고 있는 주민을 미워할 수 없었다.

그만큼 내게 미안하다는 증거겠지.

오랜만에 듣는 자신의 필사적이었던 과거에 지연이 작게 웃었다.

지연의 웃음소리에 주민의 안도한 숨소리가 옅게 들렸다.

왜 모르겠는가.

사장님이 우리에게 숨긴 건 전부 우릴 걱정해서였다는 걸.

하지만 사장님 혼자 해결하려는 건 아니었다.

이건 우리 일인 걸.

“다음번에는 이렇게 안 넘어갈 거예요. 우리 일인데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것만큼 기분 나쁜 일은 없으니까요.”

-그래. 내 생각이 짧았다. 미안해.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런 힘도 없어 타인에게 휘둘리는 삶은 싫었다.

생물학적 부모여도 우릴 마음대로 할 권리는 없었다.

그랬기에 지연은 그들을 끊어낸 것이다.

내가 나로서 살기 위해서.

“누나.”

“괜찮아.”

옆에서 같이 통화를 듣고 있던 지한이 지연의 복잡한 심경을 알아차리고 손을 잡았다.

손으로 전해지는 동생의 마음에 지연이 웃음을 흘렸다.

알았다. 더 화 안 낼 거야.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부터 논의해보자고.

“그래서 이제 그놈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저쪽에서 먼저 선전포고해 줬으니 우리도 한 대 때려줘야 하지 않겠어?

“한 대라니. 이왕 때릴 거 수소폭탄 같은 한 대 부탁드려요.”

얌전히 살아보려는 우릴 건드리려는 사람이다.

그것도 질이 안 좋아 보이는 녀석이 메시지를 전하러 왔다.

저쪽에서 먼저 더러운 수를 쓰기 전에 우리가 상대방을 공격해야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