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5 (225/296)

“그게 아닙니다. 내부적으로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저쪽에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쉽지 않습니다. 방해도 있는 것 같고요.”

-누가 감히 높으신 분의 지시를 방해한단 말입니까.

“아무래도 탑엔터 공 사장이 저희 제안을 중간에서 거절하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어떤 식으로 접촉하려고 해도 쉽지 않습니다.”

-공 사장이라면 HJ그룹 삼남 말입니까?

HJ그룹이 국내에서 손꼽는 대기업이 된 이후, 그 집안의 삼남이 엔터 업계에 몸을 담그고 있다는 건 꽤 화두에 올랐었다.

집안의 도움 없이 가진 돈만으로 회사를 차려 차근차근 성장시킨 일화는 정재계 인물들에게 꽤 화제가 되곤 했었다.

하물며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오지한과 지연이 있는 곳이 아닌가.

그 덕에 공 회장의 안목을 가장 잘 물려받은 게 삼남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떠돌았다.

물론 그 이후에 HJ그룹 역시 크게 도약해 공 회장 일가의 자제들이 하나같이 유능하다는 말로 바뀌었지만.

“계속 일정이 있다며 제안을 거절하네요.”

-그거 하나 하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제가 알아본 바로는 아직 확정된 일정 역시 많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임 부사장의 말대로 뭔가 핑계를 대고 공 사장이 중간에서 훼방을 놓고 있는 것 같군요.

“예. 저도 어떻게 해 보려고 했습니다만 공 사장은 제가 움직이기 쉽지 않은 인물이라 이렇게 부끄럼 무릅쓰고 연락드렸습니다.”

-알겠습니다. 그 일은 이쪽에서도 방법을 찾아보지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일만 잘 끝나면 제가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하하하.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임 부사장 일인데 저도 도와야지요. 조만간 한번 봅시다.

“네. 그럼 들어가십시오.”

통화가 끊어졌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서 조만간 한번 보자고 하는 것이 우스웠다.

하지만 이걸로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다면야 10번을 더 줘도 아깝지 않았다.

“이번 일이 성공하면 나도 이 사람과 같은, 아니지.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는 거야.”

사내의 눈에 숨기지 못한 욕망이 들끓었다.

* * *

‘뭐지?’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오랜만에 지연이 회사에 방문했다.

우리는 알바를 해서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는 컨셉에 맞게 가까운 곳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설문조사를 통해 대학생들이 가고 싶은 해외 여행지 순위를 뽑았고, 그중에서 선택된 게 바로 홍콩이었다.

홍콩에서 마지막으로 5박 6일의 여행을 촬영하고 돌아온 지연과 지한은 묘한 분위기를 느겼다.

“언니. 회사에 무슨 일 있어?”

“응? 아니. 아무 일도 없어. 요즘 너희 때문에 바쁘다는 것 빼고?”

“나랑 지한이 앞으로 들어오는 게 많나 봐?”

“그렇지. 그거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전화 받느라 보조배터리가 닳아 없어질 지경이야.”

“그런데 왜 이렇게 바쁜 시국에 우리 보고 쉬다 오라는 걸까.”

“….”

은주가 지연의 시선을 피했다.

뭔가 있구나!

그것도 우리랑 관련된 게 틀림없는 일이!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바쁠 시기에 갑자기 미국에 가서 쉬다 오라고 할 리가 없었다.

지연의 따가운 시선에 은주가 다른 곳을 보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했다.

“에이. 우리 회사 방침이 그렇잖아. 일하고 난 자, 쉬어라!”

“그렇지만 지금 CF나 인터뷰 들어오는 거 아니야? 그거 안 하고 우리보고 촬영 끝나자마자 떠나라고?”

“크흠.”

언니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논리적인 지연의 말에 은주가 대답하지 못하고 헛기침했다.

“저번부터 경호원 수도 늘고, 촬영 때 가까이 있던 것도 그렇고. 수상해. 요새 회사 내부도 어수선하고 묘하게 매니저들이 정신없어 보인단 말이지.”

“지연아, 너희 회사에 오랜만에 온 거잖아.”

“우리가 회사에 자주 안 온다고 돌아가는 사정도 모를 것 같아?”

“…감도 좋은 녀석.”

은주는 속일 사람을 속여야 했다며 한탄했다.

어릴 때부터 눈치 빠르기로는 귀신 못지않던 지연이었는데 그 앞에서 속일 생각을 하니 다 티가 났던 게 분명했다.

“후우. 너희한텐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사실 너희 부모에 관한 얘기가 요 근래 찌라시로 들리기 시작해서 조심했던 거야.”

“….”

그 사람들이 인제 와서?

사장님이 힘써서 우리에 대한 건 포기한 줄 알았는데.

하긴, 예전에도 그놈의 핏줄 타령하면서 끈질기게 빌붙었었지.

“그 사람들에 대한 건 궁금하지도 않아. 아무런 감정도 없어.”

“그렇지?”

“혹시 회사로 그 사람들이 찾아오거나 연락이 오면 돌려보내라고 해 줘.”

“응. 알아서 할게. 너무 걱정하지 마. 회사도 곧 금방 정리될 거야. 이참에 다른 연예인들 가족과 친척에 대해서도 점검하기로 했거든.”

“그래서 어수선했구나. 알았어. 그럼 우린 언니 말대로 잠시 쉴게.”

그래서 사장님이 이렇게 바쁜 시기에 우리보고 잠시 해외에 있다 오라고 한 거구나.

우리가 얼마나 그 사람들을 싫어하는지 알아서 말도 안 했던 거였어.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쉬는 것도 일이라는 거 알지? 추진력을 위해서 무릎을 꿇었다고 생각해. 아. 그리고 지한이 쪽에는 마벨에서 연락이 온 거 같더라. 자세한 건 고 실장님이 전달할 거야.”

“알았어. 그럼 짐 싸러 가야겠다. 풀자마자 다시 싸게 생겼네.”

“벌써 다 풀었어? 부지런하기는.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말하고.”

“고마워. 해외 촬영까지 따라갔다 오느라 고생했을 텐데 언니도 좀 쉬어.”

“에구. 그래야지. 이제 나이가 나이다 보니 힘드네.”

“아직 젊으면서 늙은이처럼 말하기는.”

30대 주제에 할 소리를 아니다!

실장 달았지만 언닌 아직 쌩쌩한 현역이라고.

“나도 이제 고인물이다 이거야.”

“그동안 수고가 많았어.”

“훗. 이게 다 너 덕분이지.”

“언니가 열심히 한 건데 뭐. 아무튼 언니 말대로 당분간 지한이랑 같이 쉬다 올게. 회사 정리되면 알려줘.”

“그래. 갔다 오면 일이 산더미일 거다.”

은주가 무서운 예언을 남겼다.

진짜 갔다 오면 일이 산더미일 것 같아서 조금 오싹했다.

223. 리턴

띠링

[(사진)]

[사장님 어떤 게 좋아요?]

디즈니랜드에 간 듯, 아이들이 캐릭터 기념품을 들고 찍은 사진이 보였다.

둘 중 하나를 고르란 건가?

내 기념품으로?

회사에 대한 공격을 방어하고 아이들을 보호하느라 날카로워진 신경이 누그러지는 게 느껴졌다.

‘역시 우리 애들이 최고야.’

주민이 손가락을 움직여 답장을 보냈다.

[나는 지한이가 들고 있는 게 더 좋구나.]

[그럼 사장님은 지한이 거, 유나는 제 것으로 사 갈게요.]

[여기 오니까 사장님이랑 이 팀장님이랑 유나도 같이 오고 싶어졌어요.]

[다음에 사장님이랑 이 팀장님이랑 유나랑 다 같이 와요!]

먼 땅에서도 나와 내 가족들을 생각해주는 아이들이라니.

크흑! 우리 애들은 천사야!

감동받은 주민의 가슴이 찌잉 울렸다.

일 때문에 고단했던 영훈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그려졌다.

똑똑

“들어와.”

아이들의 메시지를 읽고 풀어져 있던 주민이 노크 소리에 표정을 바로 했다.

곧 사장실 문을 열고 남 비서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정보팀에서 보고가 왔습니다.”

기업은 자신들만의 정보팀이 있다.

이름을 숨기거나 비밀리에 조직하는 식으로 보유하고 있는 이 정보팀에는 대한민국의 온갖 정보가 수집된다.

HJ그룹 역시 기획전략실이란 이름 속에 숨겨져 있지만 주민 역시 개인적으로 정보팀을 운영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번 일은 구린 냄새가 많이 났기 때문에 정보팀에 일을 맡겼는데 뭔가 걸린 것 같군.

“확인해보지.”

“네.”

남 비서가 깔끔하게 정리된 문서를 주민의 앞에 가져갔다.

꽤 두툼한 문서를 본 주민이 무의식중에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구린 게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 정도 양이라니.

주민이 차근차근히 한 장씩 종이를 넘겼다.

차락, 스륵

종이가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주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마침내 마지막 종이를 넘긴 주민이 탁 막힌 숨을 뱉었다.

“하! 그러니까 이게 다 ‘그 여자’ 때문이라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이 미친 여자가.”

주민이 이를 빠득빠득 악물었다.

이게 다 이 여자의 개인적인 욕망 때문에 진행되고 있는 일이라는 것에 구역질이 났다.

이런 여자가 권력 뒤에서 모든 걸 다 조종하고 있다니.

지연이 경고한 일이 일어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차라리 이 여자를 없애는 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막는 데 도움이 되겠어.”

“저도 보고서 내용을 보고 놀랐습니다. 나랏일을 이렇게 개인적인 목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라스푸틴도 아니고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군요. 지연이의 말을 듣고도 미심쩍었는데 이로써 확신했습니다.”

“그래. 하! 정말 어이가 없군. 몇 년 뒤에 일어날 일이라 주의만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랬는데 벌써 이 여자의 손이 안 닿은 곳이 없었다.

게다가 이 보고서를 보고 여자가 노리는 게 분명해졌다.

“어디 감히 우리 지한이를 노려.”

“자기 자식뻘인 호스트를 끼고 놀던 게 어디 가겠습니까. 게다가 지금 권력을 손에 쥐고 있으니 간이 커진 모양입니다.”

남 비서가 드물게 경멸을 드러내며 말했다.

가끔 남매에 대한 주접을 숨기지 못할 때가 있긴 했지만 그가 이렇게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건 거의 처음이었다.

“머리가 이쪽이란 건 알아냈다. 결국 여기서 내린 지시가 흘러 내려가 관광공사 부사장에게 닿았군.”

“네. 실행을 부사장에게 맡기고 뒤에서 작은 지원을 해 준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부모나 소속 연예인들의 친인척에 접근한 것은 그들이 도와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주민의 검지가 테이블을 두드렸다.

고민이 있을 때마다 나오는 주민의 버릇이었다.

“터트려야겠어.”

“찌라시부터 흘릴까요?”

“이건 고구마 줄기를 캐내듯이 연쇄적으로 터트려야 해.”

“알겠습니다.”

“우선은 의혹, 다음은 작은 단서, 그다음은 큰 덩어리. 그렇게 몸통으로 이어지는 거다.”

“네. 그런데 사장님 그렇게 하면 나중에 애들 이름이 오르내릴 수 있습니다.”

남 비서의 말에 지시를 내리던 주민이 잠시 고민했다.

이미 그 여자가 연예계에 손을 뻗은 지 오래됐다.

그 여자가 한 일에 대해서 전부 드러나게 되면 지한이에 대한 것도 언급될지도 몰랐다.

“그건 최대한 나중에 터트리면 돼. 그리고 일이 일어나기 전에 막으면 되니까. 그래서 애들을 미국에 보내 놓은 거잖아.”

“속도전이군요. 알겠습니다.”

“게다가 심지가 곧고 제대로 된 기자도 알아 오고. 한 명의 힘으로는 안 될 거야. 믿을만한 언론인도 필요해.”

“알아 오겠습니다.”

“그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번 일은 속도전이야.”

“네.”

남 비서가 고개를 숙이고 사장실을 나섰다.

지금 지시를 내린 사항을 이행하려면 돈, 시간, 인력 모든 게 필요했다.

시간이 없으니 나머지를 갈아서 해야겠지.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다치기 전에 끝을 낼 수 있다면 얼마를 써도 아깝지 않았다.

이제 20살이 된 지한이에게 손을 댔다는 것도 어이가 없었는데 그걸 위해서 아이들 부모에게까지 손을 써?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두 손가락질하는 그 부모들을 건드렸단 말이지?

넌 선을 넘었어.

“추악한 인간이 감히 누굴 넘봐.”

주민의 눈이 시린 안광을 띠었다.

회사에 들어오는 공격과 아이들을 노리는 추악한 여자의 존재에 주민이 유례없이 전의를 불태웠다.

* * *

“하! 그러니까 우리가 접근하려고 하니까 탑엔터에서 해외로 빼돌렸다 이거지?”

붉은 립스틱을 짙게 바른 여성이 기분 나쁘다는 듯이 말했다.

기분 좋게 외출하려고 했던 여성은 중간 보고를 듣고 금세 불쾌해져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한바탕 소동을 치른 여성은 자신을 피해 오지한을 빼돌린 것 같단 말을 듣고는 화를 참지 못했다.

“야. 너는 그런 일 있으면 출국하지 못하게 알아서 처리했어야지 그걸 보내?”

-죄송합니다. 손 쓰기 전에 보내는 바람에 알았을 때는 한발 늦은 뒤였습니다.

“아니 너희들한테 사람 빌려준 건데 그거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뭐 했어? 쓸모없기는. 제대로 일도 못 하는데 그냥 죽지 뻔뻔하게 실패했다는 말을 해? 네가 그러고도 돈 받아 처먹을 가치가 있는 거야?”

여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끊임없이 몰아붙였다.

자신을 향한 모욕과 욕설, 폭언 등이 쏟아졌지만 수화기 너머에 있는 상대는 묵묵히 받아들였다.

아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대였다.

지금 대한민국의 권력 서열 1위는 이 여자였으니까.

“진짜 짜증 나네. 빡대가리들밖에 없어!”

-어떻게 할까요. 오지한은 포기하시겠습니까?

“포기? 무슨 포기. 나는 내가 원하는 걸 한 번도 포기해 본 적 없는 사람이야. 당장 오지한 내 앞에 데려와. 귀여워해 주려고 했더니 감히 도망을 쳐?”

-해외에 있는지라 쉽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마벨의 차기작을 함께한다는 말이 있어서 당분간 국내로 안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지금 내 앞에서 쉽지 않다는 말이 나와? 무슨 수를 쓰든 불러와! 알았어?”

-…죄송합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전화를 끊기 전 여성은 한 번 더 상대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그렇게 해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감히, 감히 날 피해서 도망쳤다 이거지?

잘생긴 얼굴을 보고 설렜던 마음도 잠시 자신에게서 도망갔다는 것에 기분이 상한 여성이 삐뚤어진 마음을 품었다.

여성의 욕망이 끝도 모르고 뒤틀리고 비대해져 갔다.

“그래 봤자 넌 내 손바닥 위야. 일 못 하는 것들 때문에 기분만 잡쳤네. 바람 좀 쐬러 가야겠어.”

조금 전까지 오지한에 대해 더러운 욕망을 드러내던 그녀가 향한 곳은 유명 호스트바였다.

* * *

여성이 자주 오는 단골 호스트바.

그곳에서 여성은 대리만족하고 있었다.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게 잘생긴 어린 남자들을 옆에 끼고 자신의 비위를 맞추는 말만 듣고 있다 보니 어느새 기분이 점점 풀어졌다.

“에이. 누님. 저희가 있잖아요.”

“그래. 알지. 그래도 기분 나쁜 건 기분 나쁜 거야. 내가 오라는데 안 오다니 간도 크지.”

여성의 말에 그녀의 비위를 맞춰주던 호스트들이 잠시 몸을 떨었다.

그녀의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고 들은 게 있기 때문이었다.

가끔 통화하는 걸 들어보면 통화하는 상대방의 위치가 꽤 높은 자리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 높은 사람들에게 폭언과 욕설을 퍼부으며 자신이 하라는 대로 하라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 이 여성의 위치가 그들보다 높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싫다고 거절해도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여성의 앞에 끌려오게 만든다.

그 뒤, 어떻게 되는지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여성은 여기서 폭군이자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누님 기분 좋게 한잔하고 있는데 그런 얘기는 잠시 잊으세요.”

“제가 한 곡 부를게요. 기분 푸세요.”

“호호호. 그럼 해원이 노래 한 곡 들어볼까?”

고상한 척하는 웃음소리가 거슬렸지만 말할 수 없었다.

가게의 에이스들답게 표정 관리를 한 호스트들이 재롱을 떨며 여성의 기분을 풀어주었다.

“누님. 꼭 그렇게 오지한이 갖고 싶어요?”

애써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려놨는데 저 눈치 없는 놈이.

호스트들의 시선이 다시 오지한을 화두에 올린 한 명에게 향했다.

“그래. 처음에는 반반한 얼굴 때문에 관심이 갔는데 이제는 괘씸해서라도 내 앞에 무릎을 꿇려야겠어.”

“그러면 좋은 방법이 있는데 들어보실래요?”

간지러운 곳을 긁는 말에 여성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주위에 있던 다른 호스트들이 그 광경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봤다.

“오지한 걔 약점을 건드리는 거예요.”

“약점?”

“네. 하나뿐인 가족의 약점을 틀어쥐고 목줄을 채우면 어떨까요?”

“호오?”

여성이 흥미를 보였다.

그래. 이런 걸 원했어.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 그런 말을 듣는 것보다 이런 확실한 방법을 원했다고.

이런저런 수들이 다 막혔다고?

그럼 안 막힌 쪽을 공략하면 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오지한의 하나뿐인 가족은 지금 그와 함께 머나먼 미국 땅에 있었다.

자신을 피해 도망친 게 도리어 약점을 드러낸 꼴이라니.

여성이 유쾌하게 웃었다.

“그래서 어떻게 약점을 쥘 건데?”

“연예인에게 치명적인 게 3가지 있다죠. 여자, 도박, 마약.”

“지연은 여자니까 남자, 도박, 마약이겠네.”

“맞아요. 역시 누님은 똑똑하시다니까! 척하면 척이시네요.”

“호호호. 뭘 이 정도로.”

자신을 추켜세워주는 말인지도 모르고 여성이 크게 웃었다.

그 꼴이 우스웠지만, 제안한 호스트는 꾹 참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다시 입을 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