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예준이었다.
기껏해야 힘없이 제압된 여성을 대상으로 칼질만 해 본 놈이었다.
진짜 총을 사용해 본 적도 없는 놈이.
루치아노가 차가운 미소를 입에 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꼴에 죽는 건 무서웠나 봐. 안에 방탄복 입었네?]
[크흑!]
[내가 이래 봬도 총을 가지고 논 게 꽤 오래된 놈이라. 총구 방향만 봐도 피할 수 있지.]
[그게 말이 된다고! 으아악!]
루치아노가 최예준을 발로 차 뒤로 넘어트렸다.
최예준이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갔다.
[그래도 많이 봐준 거야. 앞으로 젓가락질하는 건 힘들겠지만 숟가락질은 할 수 있게 해줬잖아.]
총을 쥔 손이 아작 나 앞으로 평생 장애인으로 살게 될 거라는 말을 지껄이는 루치아노를 최예준이 살벌한 눈으로 올려다봤다.
[하지만 내가 자비를 베풀어 하나의 선택지를 주지.]
[시끄러! 이 개새끼! 이게 끝일 거 같아?! 내가 말했지. 지금 여기로 경찰이랑 내 경호원들이 오고 있다고!]
[아아. 그거. 네가 말한 사람들 좀 늦는 거 같지 않아?]
[뭐?]
루치아노의 말에 최예준의 시선이 식당 한쪽에 걸려 있는 시계로 향했다.
저놈이 이곳에 온 지 벌써 10분이 넘었는데 왜 아무도 안 와?
하다못해 가까운 곳에 대기 중인 경호원들도 벌써 도착해 저놈을 제압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왜?
[아무도 네가 여기 있는지 모를 거야.]
[그게 무슨 개같은 소리야.]
[너는 모르겠지만 네 폰. 내가 복제했거든.]
말도 안 돼!
저건 대포폰이라고!
그것도 최근에 내가 구한,
[너 설마.]
[네 동선 읽힌 지 오래야. 네가 구한 대포폰은 이미 내 손아귀 안이란 말이지.]
자신의 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에 최예준이 길길이 날뛰었다.
그가 발버둥을 치자 상처가 더 벌어지고 바닥에 붉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지만 그는 발버둥을 멈추지 않았다.
[여긴 내 땅이야! 내 영역이라고! 내가 뭐든지 할 수 있는 왕국이란 말이야! 그런데 네까짓 게! 이 빌어먹을 연놈들이 감히 날 모욕해?]
[누가 누굴 모욕했다는 건지 모르겠군.]
[으아아악!! 아아아아악!!]
모든 게 다 망가졌단 사실에 최예준이 악을 썼다.
[시끄러워. 내가 줄 선택지 아직 다 말하지 않았어.]
루치아노가 최예준의 목을 밟으며 머리에 총구를 겨누었다.
[너는 여기서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서서히 죽어갈 거야. 널 찾는 사람 하나 없이, 아무도 네가 여기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렇게 차갑게 식어가다가 썩겠지. 썩은 뒤에는 벌레들이 널 파먹을 거야. 파먹고 파먹다가 네가 백골이 되면 그때 세상은 널 신원미상의 백골로 알아줄 거다. 이 좁은 곳에서 넌 그렇게 홀로 썩어갈 거야.]
[최이현! 최이현!!!!!]
[구멍 하나로는 답답할지도 모르니 내가 친절하게 구멍 하나 더 내 주지.]
탕!
[끄아아아아아악!!]
[아, 부탁받은 게 한 발 더 있었어.]
탕!
[끄흡! 으아아아아아!!]
[균형이 안 맞네. 마지막 가는 길이니 내가 친절함을 베풀지.]
탕!
[흐극! 흐악! 아아악!]
양손, 양발에 총구멍이 하나씩 난 최예준이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그 모습을 본 루치아노가 자애로운 얼굴로 웃었다.
[buonanotte(잘자).]
루치아노가 등을 돌려 걸어 나갔다.
뒤에서 최예준이 가지 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걸음을 돌리지 않았다.
약자를 괴롭히고 죽음을 조롱하고 다른 자들을 기만한 자의 최후는 누구 하나 알지 못할 무(無)였다.
“지한아. 내 동생. 수고했어.”
화면을 보고 있던 지연이 열연을 한 동생의 머리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저런 멋진 연기를 하다니.
내 동생 너무 멋져.
‘루치아노’를 현실로 불러오기 위해서 고생했을 동생을 위해서 지연이 드라마 에필로그가 나오는 동안에도 동생을 품에서 놓지 않았다.
“누나. 아직 드라마 안 끝났어.”
“그래그래.”
지한의 말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꼭 끌어안아 준 지연이 동생을 풀어줬다.
화면을 보니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일을 하는 루치아노와 서목하가 보였다.
띠링
메시지가 온 소리에 루치아노가 화면을 켜 내용을 확인했다.
[나 다음 주 이탈리아 간다. 마중 안 나오면 확 신고할 거야.]
애교가 섞인 협박에 루치아노가 피식 웃었다.
누가 누굴 협박하는 건지.
[오면 보자. 각오해.]
[?]
[뭐냐.]
[뭘 각오해!]
[야! 너 읽었지! 대답해!]
서목하의 메시지가 계속됐지만 루치아노는 답장하지 않았다.
진동벨처럼 울리는 스마트폰을 본 루치아노가 폰을 엎었다.
누가 누구에게 협박하는 거란 말인가.
나쁜 일은 이쪽이 더 전문이었다.
루치아노의 미소가 화면 가득 잡혔다.
[지금까지 벤데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문구를 끝나고 길고 길었던 벤데타의 여정이 끝났다.
사전제작 촬영까지 하면 장장 10개월에 걸친 여정이었다.
그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동생이 서운하지 않을까 지연이 동생의 얼굴을 살폈다.
동생은 생각보다 후련한 얼굴이었다.
“안 섭섭해?”
“섭섭하지. 매번 작품이 끝날 때마다 소중한 친구를 하나씩 떠나보내는 느낌인걸.”
“괜찮아. 그 친구는 멀리 가는 게 아니니까.”
누나의 말에 지한이 빙그레 웃었다.
“내 친구들도 날 기억할까?”
“네가 잊지 않는다면 영원히 널 기억할 거야.”
“누나 말이니까 맞겠지.”
“그래. 그리고 우리에겐 친구도 중요하지만 직원도 중요하잖아? 내일 우리 직원들 보러 가야지.”
“그래야지.”
벤데타가 끝난 직후라 사람들이 더 몰릴지도 몰랐다.
내일을 위해 일찍 자기로 한 지연과 지한이 거실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벤데타 때문에 늦은 취침을 하느라 선택한 것이었다.
이미 이불에 한 자리 차지한 녀석들을 피해 지연과 지한이 요령 좋게 누웠다.
“그럼 사장님. 내일 봐요.”
“누나도 잘 자.”
친구를 떠나보내 서운할 지한의 옆에 가족의 온기가 머물렀다.
창밖으로 비가 조용히 내렸다.
* * *
[‘벤데타’ 마지막화, 악당의 방식으로 악을 물리치다]
[‘벤데타’ 오지한, 이해진에게 복수 성공. 시청자들 “이대로 못 보내”]
[‘벤데타’ 이해진, 악인의 처참한 최후]
[‘카페 옹달샘’ 포스터 공개!]
[‘벤데타’ 마지막 화 자체 최고 시청률 43.1% 돌파!]
[벤데타 마지막 화에서 극적인 시청률 반등! ‘태품달’보다 0.9%p↑]
[[포토] 오지한 카리스마 마피아 보스에서 훈훈한 카페 사장님으로 변신(‘카페 옹달샘’ 제작 발표회)]
[<포토> ‘카페 옹달샘’ 제작 발표회]
벤데타의 마지막 화가 방영된 다음 날이어서일까.
제작 발표회가 있었던 오전은 날이 좋지 않았음에도 많은 팬과 기자들이 방문해 ‘카페 옹달샘’에 대한 관심을 보여줬다.
눈이 멀 것 같은 플래시를 참으며 포즈를 취한 덕분일까.
기사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지한과 지연은 굴욕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루치아노 못 보낸다고 했더니!!!!!!! 제주도에 내려가서 카페 사장하고 있었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루 보스 만나러 지금 갑니다.
└└같이 가요…★
└└제주도 가실 원정대 구합니다(1/nnnnnnnnnnn)
└└다들 그 생각인가 봐ㅠㅠㅠㅠㅠㅠ비행기표 매진됨
└배 타고서라도 간다.
└└연차 내고서라도 간다.
└└└사표 내고서라도 간다.
└└└└아니, 님. 사표는 내면 안 되지. 앞으로 우리 애들 따라다니면서 덕질하려면 뇌에 힘 빡 주고 사표 참아야 함.
└└└└아, ㄱㅅㄱㅅ
└그래서 카페 주소가 뭐라고?
└제주특별시…
└지연이 원피스 너무 이쁘다ㅠㅠㅠㅠ어디 건지 아시는 분
└└여기! 정리해 놓은 거 찾아옴!(링크)
└└거마워!
‘카페 옹달샘’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하물며 일본과 중국에 벤데타가 수출될 거란 소식에 아시아 팬들의 관심 또한 집중됐다.
└지한과 지연이 여기서 카페한대.
└가까이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야.
└제주도? 가깝네.
└꺄아아아! 한 사마! 욘 쨩!
└한이 직접 주문받고, 연이 직접 디저트를 만들어 준대!(사진)
└그 얼굴이 이만한 실력? 최고야wwwwwwwwwwwww
220. 초대받지 못한 손님
벤데타의 화제성을 그대로 가져오겠다는 TvM의 노림수가 먹혀서일까.
<카페 옹달샘>의 첫 방송은 광고 완판, 시청률 10.8%로 시작하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시청자들은 실시간 불판을 달리며 <카페 옹달샘>의 1화를 시청했다.
└지한아!!!!!!!!!!!!!!!!!! 너무 조아!!!!!!!!!!!!!!!!
└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정 좀 하세요.
└세상에 지연이랑 지한이 뭐야. 뭔데 사장도 잘해? 잡초도 잘 뽑아? 얼굴도 잘해?
└아니 지금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배우들+할리우드 스타를 모셔놓고 잡초부터 뽑으라는 거임?
└로건 귀여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덩치에 비해 너무 하찮은 거 아님?
└누가 나윤석 아니랄까 봐ㅋㅋㅋㅋㅋㅋㅋㅋ할리우드 스타라도 얄짤없죠?
└잡초부터 뽑는 한국 예능 적응기ㅋㅋㅋㅋㅋ어서와. 한국 예능은 처음이지?
└자막에 외국인 노동자 뭐냐ㅋㅋㅋㅋㅋㅋ
└아. 채연이 일은 못하지만 열심히 하는구나! 원래 알바는 다 그런 거야!
└└그런데 이 집 사장님들이 일을 너무 잘해서 알바들이 할 게 없음
└└나 PD: 이, 이건 아닌데. 분량이!
└분량 걱정 안 해도 됨. 그냥 우리 애들 숨 쉬는 것만 올려도 됨.
└└ㅇㅈ
시청자들은 유명 배우들을 혹독하게 굴리는 나 PD표 예능에 열광했다.
어떻게 해서든 고생시키겠다는 제작진들의 의도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그런 제작진들의 의도를 훌륭하게 박살 내는 오사장콤비의 모습에 웃음을 지었다.
└와
└와
└와
└아니 뭔데. 다들 왜 와만 해. 나 지금 약속 때문에 밖인데 궁금하잖아!!
└└이걸 못 보다니 ㅉㅉㅉ
└└놀리지 말고 설명 좀 해 줘ㅠㅠㅠㅠㅠㅠ
└└지연이가 슥쇽샥 해서 옹달샘 지붕 만듦
└└└???? 그게 뭐야.
화면에서는 지연이 새하얀 벽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 나왔다.
가수 지연 말고 화가 지연을 애타게 기다리던 팬들을 위한 지연의 작업 모습!
새하얀 벽에 자란 거목과 나뭇가지 아래 자리 잡은 한 쌍의 창.
사다리에서 내려와 지연이 거목을 올려다보는 장면에서는 시청률마저 껑충 뛰었다.
TvM에서 환호성을 지르고 있을 무렵 화면은 또다시 지연의 놀라운 요리 솜씨를 조명했다.
그만두려는 알바도 돌아오게 만들 요리라는 자막과 함께 카메라가 지연의 음식을 멋진 구도로 잡았다.
└와 침샘 터진다.
└지연이 뭐야? 뭔데 잡초도 잘 뽑고 그림도 잘 그리고 요리도 잘해?
└└밤인데 배달 마렵다.
└└젠장 다들 배달시키나 봐. 지금 주문하면 1시간 넘게 걸린대.
└아 자막으로 침샘테러/다이어터주의 라고 써 놓으라고
제작진의 침샘테러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냉장고에 재료를 꽉꽉 채워 넣은 값을 보겠다는 듯이 카페임에도 전문요리점 못지않은 음식들을 계속 조명했다.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지금 카페 운영 예능 방송을 보는 것인지 요리 전문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조명, 구도, 색감
모든 것이 완벽했다.
└지연아! 그만, 그만해!
└다이어트 3일 차. 이번에도 훌륭하게 멸망했다^^
저녁 먹고 나니 바로 아침이었다.
잔인한 제작진 놈들!
야식 업체들이랑 모종의 커넥션이 있는 게 분명했다.
시청자들이 부들부들 떨며 배달 음식을 시키는 동안 옹달샘 직원들은 홍보까지 끝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올까요? 오늘 첫날이고 저희는 감귤밭 사이에 있잖아요.]
걱정하는 말에 시청자들이 ‘ㅋㅋㅋㅋㅋㅋ’ 웃으며 고생할 배우들을 상상했다.
드디어 우리 애들이 험난한 예능 밭에서 구르는 걸 볼 수 있는 건가!
하지만 옹달샘의 사장님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지연이 지한의 턱 아래에 손을 갖다 대며 말했다.
[여길 보시죠.]
[?]
[?]
└?
└?
└빛밖에 안 보이는데?
└뭐지? 네 시야를 없애버리겠다는 건가?
└광역기 발동! ‘시력멸살빔!’
└└앜ㅋㅋㅋㅋㅋㅋㅋ
└└미쳤나봨ㅋㅋㅋㅋㅋㅋㅋㅋ
지연의 행동에 옹달샘의 알바생들도, 보고 있던 시청자들도 의문을 표하는 사이.
절대 망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지연이 설명했다.
[이 얼굴을 보고도 안 올 것 같습니까.]
[아.]
[Ah.]
└아.
└아.
└그런 깊은 뜻이
└지연이 말이 맞다. 암튼 다 맞음
└우리 동네에 저런 미모의 사장님이 하는 카페가 있다? 직접 커피도 내려준다? 평생 단골 각
└내가 밤에 잠이 못 자는 한이 있더라도 커피 마시러 간다.
└└아니 잠을 못 잘 정도면 다른 음료 마시면 되잖아ㅋㅋㅋㅋ수박주스 마셔
팬들이 ‘과연 우리 지연이는 머리도 좋아.’, ‘수능 만점자 짬밥 어디 안 간다.’라며 웅성웅성하는 동안 자막으로 ‘설마’라는 제작진의 우려가 드러났다.
나 PD의 예능이라면 출연진들을 고생시키는 건 다반사에 예상치 못한 일로 난감해하는 걸 찍는 게 일상 아니던가.
그렇지만 무적의 옹달샘 사장은 이번에도 제작진들을 당황하게 했다.
[장사가 너무 잘된다?!]
아무리 이름값이 있어도 감귤밭 사이에 있는 카페였다.
손님들이 오더라도 얼마 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한 제작진들의 생각을 부수기라도 하듯이 팬 사인회 현장처럼 손님들이 몰아쳤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지연과 지한의 상황대처 능력이 빛났다.
└우리 애들 너무 천재야.
└빛. 그저 빛!
└뭐임? 벌써 끝났어?
└아 뭐야. 내 1시간 반 순삭됨.
└나 PD 빨리 다음 편 내놔라.
└왜 벌써 끝남? 이거 내일도 하는 거죠? 나 PD 믿는다^^
└└나도 믿어^^
└└나도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보는 거죠?ㅎㅎㅎ
기다림에 비해 빨리 끝난 방송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아우성쳤다.
이날 <카페 옹달샘>의 시청률은 동 시간대 예능 프로그램 1위를 기록하며 다시 한번 나 PD의 실력과 오지한, 지연의 파급력을 확인시켰다.
* * *
기분 좋게 첫 시작을 한 ‘카페 옹달샘’ 식구들이 속속들이 제주도에 도착했다.
일주일 만에 카페에 모인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어제 방송을 떠들었다.
“어제 봤어? 나 PD님이 시청률 말해줬는데 저는 예능에서 그런 시청률 나온 거 처음 봤어.”
“들었다. 11.9%. 1등 했다.”
“로건은 한국 프로그램 시청률에 대해서 잘 모르는 거 아니었어요?”
“내 에이전트. 일 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