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한이 카페 유니폼 차림 너무 멋있다.”
“팔뚝 봤어? 힘줄 선 거 왜 이렇게 멋있냐!”
“끄흡.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서 터질 거 같아.”
“심장이 터지더라도 이건 보고 죽어야 해.”
자린고비도 아니건만 지한의 팔뚝을 보면서 커피를 음미하는 사람들이 거친 숨을 삼켰다.
“팬케이크 장식하는 지연이 봐.”
“집중한다고 입 꾹 다문 거 너무 귀여워.”
“귀여워? 저런 건 멋지다고 하는 거야.”
“뭐래. 예쁜 거지.”
“다들 그만해. 우리 지연이는 귀엽고 멋지고 예쁜 거야.”
“그게 맞다.”
“인정.”
친구들과 같이 온 연바라기 회원은 페이스트리 셰프처럼 디저트를 담는 지연을 황홀한 시선으로 지켜봤다.
카페 옹달샘을 방문한 손님들은 눈호강에 혀호강에 아주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 카페는 첫날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호황을 이루었다.
* * *
개업빨이라는 걸 무시하지 못하지만 원래 첫날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건가?
아님, 이게 유명인 효과?
그래도 우리 아직 방송으로 홍보도 안 했는데.
“Korean cafe…amaizing.”
“노, 노. 모든 카페가 다 이렇진 않다구요.”
“What?”
“Different from other Korean cafe.”
“? Okay. ‘옹달샘’ is special. right?”
“예스, 예스.”
같이 일하면서 말을 튼 두 사람이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다.
로건과 채연만 손님이 사라진 매장에 힘없이 축 늘어져 오늘 했던 고생을 되새겼다.
앞으로 프로그램 끝날 때까지 이 짓을 계속한단 말이지.
지한과 지연이란 이름에 섭외를 넙죽 받아들였는데 잘못한 걸까.
아니야. 두 사람이랑 같이하기로 한 건 잘한 거야.
그럼 뭐가 문제지.
나 PD 프로그램을 한 게 잘못인 건가.
멍한 얼굴로 무엇을 잘못했는가 고심하고 있을 때 지연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힘들었죠? 밥했으니까 먹고 씻은 다음에 자요.”
“사장님!”
“싸장림! 감솨해여.”
밥이라는 말에 반응한 두 사람이 촉촉한 눈으로 지연을 올려다봤다.
자신들보다 더 많은 일을 했는데 왜 아직도 얼굴이 쌩쌩한 것 같지?
크흑! 눈이 부셔서 쳐다보지 못할 것 같아!
비틀거리며 채연과 로건이 테이블에 앉자 지한이 요리를 담아 내왔다.
냄새만으로도 두 사람은 이미 황홀경에 빠질 것 같았다.
“흐아아아.”
#최고야…!#
오늘은 흑돼지 큐브 스테이크랑 리코타 치즈 샐러드에 해산물 파스타였다.
밥도 제때 먹지 못하고 마감까지 쉴 새 없이 일한 직원들이 홀린 듯이 음식에 달려들었다.
직원을 붙잡아 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복지를 잘해주는 거지.
그리고 최상의 복지는 역시 밥이었다.
‘그래서 나 PD가 이번에는 냉장고를 꽉꽉 채워놓은 건가?’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지연이 카메라가 있는 곳을 힐끔 쳐다보았다.
“누나도 어서 먹어. 오늘 고생했잖아.”
“너도 고생했잖아. 많이 먹어.”
카페 옹달샘의 하루가 저물어갔다.
* * *
밥 먹고 기운을 차린 옹달샘 직원들이 으쌰으쌰 하며 가게를 정리하고 위로 올라왔다.
오늘도 역시 녹초가 된 채연이 침대 위로 풀썩 쓰러졌다.
“채연 씨. 머리 말리고 자야죠.”
“흐헤헤. 저 졸려요. 이대로 자면 안 될까요?”
안 그래도 조명 때문에 머릿결이 좋지 않은 직업이건만 저대로 놔둔다면 머리가 더 상할지도 몰랐다.
지연은 오늘도 채연의 머리를 말려주기 위해서 드라이기를 들고 채연의 침대맡으로 향했다.
위이이이잉
두피는 시원하게, 머리카락은 따뜻하게.
바람을 조절하며 지연이 머리카락을 말려주자 채연이 배시시 웃었다.
“좋다.”
“뭐가요?”
“모든 게 다요.”
온종일 고생했을 텐데도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는 채연을 보고 지연이 피식 웃었다.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진 않구요?”
“힘들긴 했는데. 그래도 좋았어요.”
다행히 추노를 찍진 않아도 될 거 같은데 힘들었지만 좋았다고?
채연의 말에 지연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다 같이 열심히 일하고, 웃고, 맛있는 거 먹고, 힘내고.”
“….”
“그리고 이렇게 보살핌받고 수고했다고 칭찬받는 거. 전부 좋아요. 이런 거 처음이에요.”
“….”
대학까지는 평범하게 다녔다고 했는데 처음이라고?
의문을 삼킨 지연이 채연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방에 드라이기 소리와 채연의 목소리만 들렸다.
“사장님 정말 좋아요. 진짜 사장님이 내 언니였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제가 늦게 태어나서 힘들겠네요.”
“그럼. 지연, 이라고 불러도 돼요?”
“좋아요. 그럼 저도 채연 언니라고 부를게요.”
지연의 허락에 채연이 눈에 띄게 좋아하며 대답했다.
“응! 아, 그. 말 놔도 될까?”
“언니니까 편하게 말해요.”
“그럼, 지연이 너도.”
“네?”
“너도 편하게 말해줘. 로건, 씨랑은 말 편하게 한다며.”
“좋아요.”
목표한 바를 다 달성한 채연이 또 기뻐했다.
이런 사소한 걸로 기뻐하는 채연의 모습에 지연의 눈이 짙게 물들었다.
채연의 긴 머리칼을 말려주면서 지연이 무심한 듯이 말했다.
“그래도 일할 땐 사장님이라고 해야 해.”
“응. 그럴게.”
“언니, 내일은 뭐 먹고 싶어?”
“나 짜장면 먹고 싶어!”
“그건 시켜먹자.”
“좋아!”
두 사람이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채연의 머리가 다 마른 걸 확인한 지연이 드라이기 선을 뽑고 정리한 뒤, 침대에 누울 때까지 채연의 수다는 멈추지 않았다.
피곤해서 눈이 가물가물하는 게 보이는데도 저러는 거 보니까 대화하고 싶어서 억지로 참는 게 분명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빨리 커피를 만들 거야.”
“지금도 잘하고 있으니까 무리하지 않아도 돼.”
“응! 무리는 안 할게. 피해 주면 안 되니까.”
“피해 줘도 돼. 알바생이잖아. 언니는 원래 배운데 커피 만드는 거 실수하면 뭐 어때?”
“…정말? 하지만 지연이랑 지한이는 잘하잖아.”
“우린 그 전에도 많이 배웠었어.”
“그렇구나. 그래도 부러워. 나도 얼른 잘해야 하는데.”
아까 손님이 많이 몰려들었을 때 많이 도움이 되지 못해서 자책하는 것 같다.
첫날부터 잘할 순 없는데.
다들 원래 그러면서 일을 배우는 게 아니던가.
“원래 알바들은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그치만 빨리 배워야지. 그렇지 않으면 카페에 피해를 주잖아.”
“피해받는 거 없는데? 나 PD님이라면 실수하는 거 좋아할걸? 실수해서 허둥지둥하는 모습 찍으면서 좋아할걸?”
“예능은 무서운 거구나.”
살벌한 예능계의 생태를 들은 채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새삼 자신이 헌난한 예능계에 발을 들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채연의 귀로 지연의 다정한 위로가 들려왔다.
“오늘 힘들었을 텐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마워.”
“어? 나는 별로 한 거 없는데. 바쁠 때 파라솔 떠올린 것도 지연이 너고. 커피 빨리 만들어서 주문 한꺼번에 처리한 것도 지한이고. 나는 아무것도 못 했어.”
“언니랑 로건이 있어서 우리도 그 정도로 할 수 있었던 거야. 그리고 두 사람이 음료 만들고 서빙하고 테이블 치우고, 밖에 파라솔까지 쳤잖아. 화장실도 주기적으로 가서 청소했고. 두 사람이 홀을 관리해줘서 우리도 주문에 집중할 수 있었어.”
“어. 어.”
지연의 말에 채연의 시선이 갈 곳 잃고 허공을 맴돌았다.
채연의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보일 정도였다.
칭찬에 약한 타입인가.
자신이 한 걸 별거 아니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칭찬에 저렇게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채연의 반응을 볼 때마다 지연의 눈이 짙어졌다.
“이번 주 촬영은 내일까지니까 우리 내일까지 힘내 봐.”
“어, 응!”
“그럼 이제 잘 자.”
“응!”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채연이 지연의 말에 눈을 감았다.
억지로 버티고 있었던 건지 눈을 감은 채연이 금세 잠에 빠졌다.
잠든 채연의 얼굴을 본 지연이 아침에 받은 은주의 메시지를 떠올렸다.
[송채연, 가족은 엄마, 아빠가 전부야. 두 분 다 유명 대학의 교수님이래. 그래서 어릴 때부터 출장이 잦아서 채연이 혼자 있을 때가 많았대.]
그래서 채연이 날 보고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한 건가?
외로움이 많은 타입인 것 같으니 옆에서 잘 보살피면 걱정했던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채연에 대한 처우를 결정한 지연이 편안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219. 손님이 몰려온다!
제주도에서 첫 촬영을 하고 올라온 뒤 나 PD는 곧바로 편집실에 들어갔다.
촬영하면서 구상한 대로 짧은 예고 영상을 만들고 나온 나 PD가 곧바로 회의에 들어갔다.
다음 주 촬영은 드디어 게스트가 나올 예정이었다.
두 사람의 지인을 아르바이트생으로 부를 거라 미리 지인 목록을 작성했고 시간이 되는 사람들 섭외까지 완료했다.
“다음 주에 나올 게스트 미리 연락했지?”
“네! 걱정하지 마세요.”
역시 척하면 척이었다.
내가 이래서 좋아한다니까.
나 PD와 메인 작가가 눈빛을 교환했다.
다른 연출진들도 다음 주부터 이어질 초호화 게스트진을 보고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후후. 진짜 지한이랑 지연 두 사람만 섭외해도 대박이라고 생각했는데 게스트까지 대박이잖아?”
“이래서 오지한, 지연 하나 봐요.”
“저는 그 사람이랑 의외의 인맥이 있었다는 게 더 놀라워요.”
“나도 몰랐어. 그런데 두 사람이 예전에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있다잖아.”
“저도 그거 봤는데 그 애가 이렇게 클 줄 몰랐죠!”
촬영, 투자, 제작비, 게스트. 시청률.
무엇 하나 걱정할 게 없는 환경이 이렇게 좋은 것인가.
두 사람의 예능 출연 예고 이후, ‘카페 옹달샘’에 대한 관심은 식을 줄 몰랐다.
더군다나 벤데타에서 오지한과 송채연이 그렇게 활약해 주고 있으니 ‘카페 옹달샘’ 제작은 순조롭기만 했다.
“제작 발표회 하실 거죠?”
“이걸 안 하면 바보지.”
“언제 하실 거예요?”
“일주일 전에 할까?”
“좋네요. 티저영상은요?”
“3일 전부터 하나씩 풀자.”
회의실 열기가 사우나를 방불케 했다.
첫 촬영 때 상황 대처 능력마저 좋은 두 사람을 보니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솟아났다.
첫 촬영만으로도 이렇게 대박인데 다음 주 촬영부터는 화려한 게스트 군단이 나오니 더더욱 기대됐다.
TvM 회의실에 불이 꺼질 줄 몰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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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데타’ 경찰의 포위망을 뿌리친 오지한! 목을 조여오는 이해진에 맞선 오지한의 선택은?]
[‘벤데타’ 오지한 대신 부상당한 송채연. 순간시청률 41.7%]
카페 옹달샘의 방영이 가까워질수록 벤데타 역시 끝을 향해갔다.
옹달샘의 첫 방송 날짜는 벤데타가 끝난 다음 주.
첫 방영까지 일주일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누나. 내일 제주도 가려면 일찍 자야 하는 거 아니야?”
“공항 가면서 자면 돼. 지금 잠이 중요해? 마지막 화 보는 게 더 중요하지.”
역사적인 순간을 놓칠 수 없다며 지연이 눈을 부릅떴다.
14화가 40%를 넘긴 순간부터 벤데타는 올해의 드라마였다.
그 이후로 드라마의 시청률 상승폭은 낮았으나 계속해서 40%를 넘기며 화제의 중심에 벤데타가 있었다.
2010년 이후 영상매체들이 폭발하면서 나날이 떨어지던 시청률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40%를 넘기며 시청자들을 안방으로 불러 모으는 벤데타는 얼마나 대단한가.
그 중심에 자신의 동생이 있다고 하니 지연은 뿌듯했다.
화면 속에서 동생이 살기 넘치는 모습으로 최예준의 비밀별장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고통받으며 죽어갔던가.
그리고 서목하가 그 피해자가 될 뻔했다.
분노한 루치아노의 구두굽이 묵직하게 대지를 밟았다.
뚜벅, 뚜벅
루치아노가 당당히 현관으로 들어갔다.
그의 구두굽이 비싼 대리석을 짓밟았다.
누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대동그룹 후계자의 별장이 아니랄까 봐 별장에 있는 물건들은 하나같이 비싼 몸값을 자랑했다.
박물관에 있을 법한 물건들이 가득 장식된 가운데 어디선가 클래식 연주가 들려왔다.
길 안내를 하는듯한 음향에 루치아노가 연주가 들리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연주가 들리는 곳은 식당이었다.
대귀족의 가족 모임에서나 쓸 법한 길고 사치스러운 식탁의 상석에 최예준이 있었다.
[왔어? 앉아.]
이곳이 마지막 무대가 될 것임에도 최예준의 얼굴은 태연하기만 했다.
루치아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의 얼굴이 대조적이었다.
루치아노가 차갑게 무겁게 불꽃을 피우고 있었다면 최예준은 장난스럽고 가볍게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안 먹어? 너 온다고 해서 준비한 건데.]
[먹을 게 잘도 목구멍으로 넘어가나 보군.]
[못 먹을 게 뭐가 있나? 여긴 내 땅인데.]
상황판단이 안 되는 것 같은 최예준의 태도에 루치아노의 입술이 비대칭으로 비틀렸다.
그 모습을 본 최예준이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냅킨으로 입술을 닦았다.
[너 독 안에 든 쥐잖아. 네가 여기 들어온 건 CCTV에 다 찍혔을 거고. 내 경호팀이랑 경찰도 이곳으로 오고 있어. 내 말 한마디면 넌 여기서 죽은 목숨이야.]
최예준의 말에 루치아노가 더 해보라는 듯이 다리를 꼬고 깍지를 꼈다.
그 모습에 이번에는 최예준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내 말 못 들었어?]
[들었어. vaffanculo(병신아).]
[한국말로 해. 이 잡종아.]
날 선 말이 테이블 위를 오갔다.
이미 서로의 선을 넘어버린 상태.
최예준은 최이현의 어머니를 모욕하고 그의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만든 일원 중 하나이자 서목하를 건드린 놈이다.
최이현은 최예준에게 눈엣가시이자 그의 비밀스러운 놀이를 세상에 드러나게 해 더 이상 재미를 즐기지 못하게 만든 놈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게 둘 수 없는 상황.
최예준은 이번 기회에 자신의 어머니가 없애지 못한 화근을 자신의 손으로 없애 버릴 생각이었다.
[왜 그 경찰 말을 안 들었어. 그랬으면 목숨은 건졌을 텐데.]
[내가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푸핫. 뭐. 덕분에 나도 찝찝한 걸 처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
서로가 이 순간만을 노리고 있었다.
루치아노와 최예준이 동시에 총을 꺼내 들었다.
탕!
탕!
[으아아아악!!]
두 발의 총성.
하나의 비명.
맞은 쪽은
[크으으으윽! 이 개같은!]
[개 욕하지 마. 걔들은 너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목숨이거든.]
[빌어먹을 마피아 새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