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습니다.#
#더 먹어요.#
잘 먹는군.
김치찌개도 잘 먹는다면 다른 반찬을 먹여도 거부감이 없겠어.
‘크으!’ 하는 소리를 내며 로건이 밥을 잘 먹는 걸 확인한 지연의 밥 위로 계란말이가 올려졌다.
“누나도 먹어야지.”
“아. 미안. 잠시 딴생각했네.”
“셰프로서 다른 사람 밥 먹는 걸 신경 쓰는 건 이해하겠지만 누나도 잘 먹어야 하는 거 알지? 누나가 사장님이잖아.”
“너도 사장님이잖아. 밥 잘 챙겨 먹어.”
“응.”
남매가 서로를 챙기며 도란도란 식사를 하자 채연이 부러운 듯이 쳐다봤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지연이 놓칠 리 없었다.
지연이 채연의 밥 위에 계란말이를 얹어줬다.
“아침 준비하는 거 도와줘서 고마워요. 얼른 밥 먹어요.”
채연이 지연의 얼굴과 밥 위에 얹어진 계란말이를 번갈아 보더니 갑자기 활짝 웃었다.
“네! 잘 먹을게요.”
갑자기 적극적으로 계란말이를 공략하는 채연을 로건이 견제했다.
‘지연 씨가 해 준 건데. 나 먹기도 부족한 걸 나눠 먹어야 하다니.’
사라지는 계란말이를 보면서 로건이 아쉬운 마음에 손에 힘을 주었다.
모두가 먹는 반찬을 내 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계란말이를 이대로 뺏기고 싶진 않았다.
결론은 채연이 가져가기 전에 더 빨리 먹는 것뿐이었다.
우걱우걱
우물우물
두 사람의 말이 사라졌다.
갑자기 경쟁적으로 계란말이를 공략하는 두 사람을 남매는 멍하니 쳐다봤다.
“뭐야. 왜 저러지.”
“누나 계란말이가 너무 맛있었나 봐.”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지연과 지한을 제외한 두 사람에게 전쟁 같던 아침 식사 시간이었다.
* * *
아침 식사 시간 이후 ‘카페 옹달샘’의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차 한잔하는 동안 카페 메뉴가 결정됐다.
커피, 여름 과일 음료, 디저트
카테고리는 3개였지만 인원이 인원인지라 세부 메뉴는 각자 4~5가지밖에 되지 않았다.
만드는 건 간단해서 지한이 알바들의 레시피 숙지를 확인하는 사이 지연이 벽에 바니쉬를 발랐다.
커다란 롤러를 이용해 바르니 순식간에 끝났다.
“읏챠.”
어제 벽화한 것보다 더 일찍 끝난 거 같은데?
지연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자 나 PD가 재빨리 물었다.
“그런데 지연 씨. 표지판은 언제 만들어 줄 거예요?”
“아. 지금 그릴게요.”
옹달샘 지붕을 그리는 데 열중하다가 깜빡할 뻔했네.
표지판 그리는 김에 메뉴판도 만들어야겠다.
지연이 화구를 다시 가져와 표지판을 만들었다.
‘옹달샘으로 가는 표지판이라면 역시 토끼가 나와야 하지 않겠어?’
그런 생각으로 만드니 표지판에 앞발로 모은 토끼가 귀를 쫑긋 세우고 서 있었다.
그 옆에 아기자기한 글씨로 옹달샘을 써넣으니 표지판이 금방 만들어졌다.
제작진의 의뢰를 순식간에 완성한 지연이 이번에는 노트북을 빌려왔다.
포토샵을 켜 무언가를 만드는 지연을 본 나 PD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지연 씨, 포토샵도 다룰 줄 아세요?”
“네. 그래도 전문가처럼 어려운 건 못 해요.”
이게 전문가가 아니면 뭔데.
타자 조금 치고 마우스 몇 번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깔끔한 메뉴판이 만들어졌다.
‘정말, 이 사람. 못하는 게 뭐지?’
나 PD를 포함한 제작진들이 범접할 수 없는 천재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지연을 쳐다봤다.
어제 벽화 퍼포먼스를 본 이후라 제작진들의 시선에는 동경과 선망이 가득했다.
“누나.”
“왔어?”
지한이 노트북 앞에 있는 지연에게 다가왔다.
알바 교육이 무사히 끝난 모양이군.
“뭐 하고 있었어?”
“메뉴판 좀 만들고 있었어.”
지한이 화면을 보더니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거 좋다. 여기에 카페 대표메뉴 사진이랑 지도만 있으면 전단지로 뿌려도 되겠는데.”
“좋은 생각이야. 지금은 전단지 인쇄를 맡길 수 없으니까 A5 사이즈로 인쇄해서 나눠주자.”
“그럼 바로 가?”
“채연이랑 로건은 어때? 적응한 거 같아?”
“레시피는 외웠어. 둘 다 배우라서 외우는 건 금방 했는데 손이 조금 느려.”
“괜찮아. 첫날이니까 사람들이 많이 안 올 거야. 재료는 다 있어?”
“있긴 한데. 디저트는 누나 혼자 만드는데 힘들지 않겠어?”
“지한아. 나 아님 누가 만들어.”
“아.”
지연의 말에 지한이 채연과 로건을 떠올렸다.
아무리 레시피가 있다지만 두 사람이 안에 들어가서 와플을 굽는다는 게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냥 맘 편하게 내가 하는 게 낫지.
특히 채연은 절대 금지였다.
무슨 사고가 일어날지 몰랐다.
지한이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빨리 인쇄해서 홍보하러 가자.”
“그게 낫겠지?”
“응….”
말을 흐리는 동생을 보며 지연이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며 웃었다.
* * *
카페 대표메뉴를 찍기 위해서 지한과 지연이 솜씨를 선보였다.
채연과 로건의 입에서 감탄사를 터트린 두 사람이 뿌듯한 얼굴로 두 사람을 이끌고 카페를 홍보하러 나갔다.
‘전단지 몇 장 안 만들길 잘했다.’
성수기 제주도를 얕봤던 직원들이 제작진의 도움으로 겨우 카페로 돌아왔다.
카페를 홍보하러 갔다가 사진만 잔뜩 찍고 온 사람들이 녹초가 된 사람들이 힘없이 늘어졌다.
“사장님, 저 죽을 거 같아요.”
“Help.”
어제 잡초를 뽑은 것보다 이게 더 힘들었나 보다.
그래도 손님이 올지도 모르는데 저러고 있는 건 좀 아니잖아?
“다들 손님 맞을 준비 해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사장님이라고 하시죠.”
“누가 사장님이에요?”
“누나랑 저 둘 다 사장이에요.”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구별이 안 되지 않습니까?#
#누나는 연 사장님, 저는 한 사장님이라고 불러주세요.#
지한의 지시에 로건이 ‘욘 싸장림, 한 싸장림.’이라고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편하게 말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앞으로는 호칭을 명확하게 하는 게 좋았다.
두 사람은 알바고 엄연히 우리가 사장이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올까요? 오늘 첫날이고 저희는 감귤밭 사이에 있잖아요.”
“여길 보시죠.”
“?”
#?#
지연이 단호한 얼굴로 지한의 턱 밑에 손바닥을 척 갔다 댔다.
다들 홍보한 건 잊었나 보네.
그런 걸 다 따져서 우리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지 않은가.
“이 얼굴을 보고도 안 올 것 같습니까.”
“아.”
“Ah.”
같이 일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어느새 리액션까지 비슷해진 채연과 로건이 지연의 말에 입을 벌렸다.
자고로 아르바이트생의 용모를 따지는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잠시 후, 지연의 말대로 카페에 사람들이 물밀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꺄아악! 진짜 오지한이야!”
“세상에. 내가 오지한을 다 보다니. 어흑. 엄마아빠. 제주도에서 낳아줘서 고마워요.”
“얼굴 미친 실화냐. 눈이 멀 것 같다.”
“선글라스 안 챙겨왔냐? 아직 덕력이 부족하구나.”
여기가 카페인지 팬미팅 현장인지 모를 상황이 펼쳐졌다.
역시 얼굴 영업은 언제 어디서나 성공적이구나.
괜히 직접 전단지를 들고 돌아다닌 게 아니지.
전단지를 돌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지한이 카운트에서 직접 주문받고 로건과 채연이 음료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치이이익
와플을 구웠다.
“저, 저는 아메리카노요. 아이스로 부탁드려요.”
“네, 손님. 영수증 필요하세요?”
“그, 영수증에 사인 부탁드려도 돼요?”
“지금은 영업 중이라 어렵습니다.”
한 명 해 주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부탁할 거고 그렇게 되면 카운터가 마비될 거다.
카운터가 마비되면 카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지한이 웃는 얼굴로 사정을 설명하자 대부분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고 이해했다.
“그런데 수풀레 팬케이크? 이게 뭐예요?”
한 손님의 질문에 지한이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눈앞에서 직접 본 손님의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저희 가게 대표메뉴인데 한번 드셔보시겠어요?”
“네, 네에.”
지한의 얼굴 영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18. 세상에 나쁜 애는 없다 (4)
폭신폭신한 식감
코를 자극하는 달콤한 냄새
그 위에 눈이 쌓인 것처럼 풍성하게 올라간 크림과
시각을 자극하는 딸기까지.
수풀레 팬케이크를 맛본 손님들은 어느새 눈이 멀 것 같은 카페 직원들을 까맣게 잊고 입안에 퍼지는 황홀한 맛에 넋을 잃었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또는 방송국에서 촬영을 왔기에 호기심에 방문한 손님들은 어느새 자신의 미각을 자극하는 카페 옹달샘의 음료와 디저트에 감상을 늘어놓기 바빴다.
“이거 진짜 맛있다.”
“아. 사진 찍고 먹을걸.”
“하나 더 주문하면 되지.”
“좋은 생각이야. 가자.”
“롸저.”
이렇게 수플레 팬케이크를 맛본 손님들은 순식간에 해치워버린 수플레 팬케이크를 아쉬워하며 추가 주문을 하러 갔다.
거기서 또 잘생긴 카운터 직원의 미모에 감탄하고 다시 나온 수플레 팬케이크를 맛보고 감탄하며 손님들은 헤어나올 수 없는 옹달샘의 고리에 빠졌다.
그러니 바쁜 건 옹달샘의 직원이었다.
아직 카페 일에 익숙하지 않은 채연과 로건은 밀려오는 주문에 정신없이 커피를 만들고 서빙을 했다.
위태롭게 서빙하는 채연이나 덩치가 커 자꾸 손님의 옷이나 가방에 걸리는 로건은 혹시라도 실수하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웠다.
“사장님! 밖에 손님들이 계속 와요! 벌써 줄이 마당을 채웠어요.”
“싸장림 Help!”
테이블까지 가득 찬 홀에 문밖에서 부채질하며 기다리는 손님들을 보고 채연과 로건이 패닉에 빠져서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안에 있는 손님한테 빨리 먹고 나가라고 해야 하나?
밖에 있는 손님들은 어떡하지?
이대로 보내야 해?
채연과 로건이 밖과 안을 번갈아 보면서 안절부절못했다.
팬케이크를 구우면서도 상황을 확인한 지연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다른 테이블까지 빠지려면 아직 30분 정도 더 있어야 할 거 같은데. 밖은 너무 덥고 안에서 기다리라고 하기에는 내부가 복잡해져. 동선이 꼬이면 저 두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으니까 밖에 있는 손님들을 어떻게 해야 해.’
어떻게 상황을 해결할지 고민하던 지연이 말했다.
지연이 빠른 속도로 음료를 제조하던 동생의 등에 대고 말했다.
“채연 씨나 로건 씨 시켜서 나 PD님한테 파라솔 좀 빌려오라고 하자.”
“파라솔? 아. 편의점처럼?”
“응. 안에 못 들어오지만, 그늘이라도 줘야지. 밖은 꽤 더우니까. 다행히 우리 마당이 좁아도 파라솔 2~3개는 놓을 공간이 되니까 버틸 만할 거야.”
“그게 좋겠다. 밖에 손님들이 대기하기 편하게 긴 의자도 빌려올게.”
“그래. 정면 어닝 아래에 놓으면 손님들도 편할 거야. 그쪽 창가에 앉은 손님한테는 양해를 구하자.”
“그게 좋겠다.”
순식간에 지연과 지한이 대안을 내놓았다.
그 모습을 본 채연이 멍하니 눈만 깜빡이고 있을 때, 지연이 채연을 불렀다.
“채연 씨. 밖에 손님 어느 정도 있는지 확인해 주실래요?”
“넵!”
지연의 지시에 채연이 후다닥 밖으로 향했다.
나 PD라면 파라솔을 금방 구해 줄 것이다.
근처 편의점에서 빌려와도 되고, 근처에 해변도 있으니까 거기서 빌려올지도 모른다.
그럼 나머지는 오래 기다린 손님을 위해서 서비스로 뭘 대접하느냐였다.
이따 주문할 때 서비스로 아이스크림 한 스쿱 줘야겠네.
‘원래 첫날에는 예상치 못한 일이 있는 법이지. 이럴 땐 서비스를 잘해줘야 해.’
문제가 생기면 손님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리고 다음에 이런 일이 있지 않도록 하나씩 보강한다.
가게는 그런 걸 보완하면서 운영하는 것 아니겠는가.
“나 PD님이 금방 구해주신대요. 그리고 밖에! 8팀 정도 있어요. 인원은 20명 정도예요!”
“됐다. 그러면 채연 씨, 그분들 주문 먼저 받아올래요?”
“넵!”
지연의 지시에 채연이 메뉴판을 들고 밖으로 향했다.
그사이 테이블을 정리하고 온 로건이 뭘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자 지한이 지시를 내렸다.
#나 PD님이 파라솔 가져오면 그거 설치 좀 해 줄래요?#
#맡겨만 주십시오!#
지시를 받은 로건이 한결 편안한 얼굴로 밖으로 나갔다.
다들 바쁜데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몸이 바쁜 게 더 마음이 편했다.
“조금만 버티자.”
“응. 누나도 뜨거운 거 조심해.”
“그래.”
지금이야 점심시간이니까 사람들이 모여드는 거지 1-2시간 지나면 조금 숨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주문이 파도처럼 몰아쳤지만 지연과 지한은 웃으면서 척척 해냈다.
누가 보면 이 업계에 종사한 지 몇 년은 된 것으로 착각할 만큼 빠르고 숙련된 손놀림이었다.
손님에게 웃는 얼굴로 대답하고 손은 실수 없이 음료와 디저트를 만드는 지연과 지한을 카페 안에 있는 손님들이 구경했다.
“커피 내리는 남자. 너무 멋있다.”
“나도 집에서 맛있는 거 해주는 여친 있음 좋겠다.”
“자기?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이야?”
“응? 아니야. 그냥 지연, 너무 대단하지 않냐?”
“흥. 지연이니까 봐주는 줄 알아. 그리고 우리 지연이는 예전부터 요리 잘하는 걸로 유명했어.”
“진짜?”
놀라서 되묻는 남친을 보고 여친이 한심하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대단하다고 한 거야?
남친의 무지함에 혀를 차면서도 지연의 대단함에 대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여친이 콧대를 높이며 말했다.
“자기 아직도 몰라? 어휴. 안 되겠네. 내가 지연이 정리글 공유해 줄 테니까 좀 배워. 그래서 지연이 팬이라고 할 수 있겠어?”
“미, 미안.”
“알면 잘해. 자, 보냈다. 얼른 읽어봐.”
“고마워. 역시 자기 없으면 안 된다니까.”
“그러게 나 없으면 어쩔 뻔했어.”
여친을 추켜세우며 조금 전 있었던 일을 흐지부지 흘려 넘긴 남친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