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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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카페를?”

#이게 무슨?#

나 PD가 발랄하게 말했지만 우리들의 귀에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들 경악하기 바빴거든.

정면에는 커다란 전면 유리창

측면에는 드나들 수 있는 널찍한 테라스

동화책에 나오는 2층 건물이 감귤밭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카페를 한다더니 겉으로 보이는 건물은 완벽해 보였다.

‘그래. 그 건물 외벽이 먼지투성이고 무성한 잡초들이 건물을 가리고 있지 않았다면 완벽했겠지.’

폐허나 다름없는 곳에서 우뚝 서 있는 건물을 보고 네 사람이 멍하니 쳐다봤다.

아니 지금 우리보고 여기서 카페를 열고, 잠도 자라고?

#한국은 이런 곳에서 카페를 여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냐!

저 나 PD가 아니라면 누가 몸값 높은 사람들을 데려와 이런 걸 시키겠어.

저 두 사람을 섭외했을 때부터 뭔가 불길하다고 느꼈지만 건물까지 이럴 줄 몰랐다.

원하는 카페를 직접 만들라고 했을 때부터 예상했어야 했는데.

“일단 안에 들어가죠.”

“그래. 짐부터 좀 놓고.”

“밖이 이 모양인데 안이라고 멀쩡할까요?”

#? 안에 들어가게요?#

#네. 그러니까 로건도 따라오세요#

지연이 영어로 로건에게 말하자 그가 순진하게 눈을 끔뻑이며 따라 들어갔다.

네 사람들이 폐가라도 들어가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문을 열었다.

어라? 생각보다 안은 멀쩡한데?

“휴우. 다행이다.”

“안은 깨끗한데?”

#여기 뭡니까? 왜 안에만 깨끗한 거죠?#

묻지 마.

나도 나 PD의 생각을 잘 모르니까.

채연과 로건이 입구에서 주춤거리고 있을 때, 지연과 지한을 재빨리 안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점검했다.

“누나. 여기 냉장고랑 가스레인지랑 오븐은 다 멀쩡해.”

“물도 잘 나오더라. 온수도 나와.”

“안에는 깔끔하게 해 놨는데 밖은 왜 저렇게….”

“수도랑 내부 인테리어는 전문업자의 영역이지만 풀 뽑는 건 초보도 가능하니까요.”

“아니, 카페라면서요….”

내 말이 그 말이다.

하여간 편한 꼴 못 본다니까.

그러니까 전문업자가 필요한 곳 빼고 나머지는 전부 우리가 손보라는 뜻이겠지?

혹시 이런 일이 있을까 준비를 단단히 해오길 잘했네.

짝!

지연이 손뼉을 쳐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일단. 2층에 올라가서 짐부터 풀죠. 짐을 푼 다음 작업복으로 갈아입으면 될 거 같아요.”

“작업복이요? 일단 편한 옷 챙겨오긴 했는데.”

#작업복? 무슨 옷이 필요하다는 겁니까?#

#한국에는 이럴 때 입는 복장이 있어요. 로건의 몫도 준비했으니까 위에 올라가서 드릴게요.#

지연의 말에 로건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면서도 순순히 승낙했다.

작업복을 지연이 직접 준비해줬다는 것에 로건의 얼굴이 배시시 풀렸다.

왜 저래.

로건을 제외한 세 사람이 그에게서 슬그머니 떨어졌다.

* * *

잠시 후, 최신 K-작업복을 갈아입은 네 사람이 당당하게 밖으로 나왔다.

“이야!”

“나 PD님. 이거 우리가 걱정할 필요도 없었는데요?”

“벌써 예능 착장이 나오는 걸 보니 기대해도 좋을 거 같아요.”

예능에 맞게 몸빼를 준비해 입고 나온 네 사람을 보고 나 PD가 찢어지라 웃었다.

그래, 이거지!

톱스타는 예능감도 남다른 것인가?

날고 긴다는 명품 브랜드에서 앰배서더로 삼길 희망한다는 스타가 몸빼를 입고 나온다면 시청자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지연이 작업복을 준비해 왔다고 했을 때, 뭘까 싶었는데 몸빼일 줄이야.”

“그런데 지한이랑 지연. 두 사람 몸빼 입은 거 맞죠? 왜 둘만 다른 옷 입은 거 같지?”

“역시. 오지한이랑 지연. 몸빼를 입혀놔도 떼깔이 사는구나.”

“흐음.”

나 PD의 눈이 가늘어졌다.

원래 이런 데 나오면 아무리 허우대가 멀쩡한 사람이라고 해도 망가지기 마련인데 두 사람은 망가짐이라는 걸 모르는 것처럼 독보적으로 서 있었다.

“누나, 뭐부터 할까?”

“일단 흉측한 건물 외양부터 어떻게 해 볼까?”

“좋은 생각인 거 같습니다!”

#?#

작업복 하나 입었을 뿐인데 채연이 기합이 들어간 채로 말했다.

로건은 옆에서 눈을 데굴데굴 굴리기만 했다.

어휴. 한국어를 모르니까 일일이 통역해 줘야 하는구나. 외노자를 고용한 사장님의 심정이 이런 기분이구나.

필수 작업 용어 몇 가지만 가르치고 나머지는 본인보고 배워 오라고 해야겠다.

#로건 내가 ‘밖’이라고 하면 밖으로 나가는 거예요.#

#‘밖’ 알겠습니다.#

지연이 로건에게 지시를 내리는 모습을 본 나 PD와 작가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세상에 영어 발음 봐.

너무 멋져.

작가들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밖으로 나온 세 사람이 지연을 쳐다봤다.

이거 어쩌다가 내가 작업반장이 된 거 같은데.

지한이는 둘째 치고 저 두 사람이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을 가리지만 지연이 내색하지 않고 힘차게 말했다.

“자. 나는 밭일 해 본 적 있다. 손!”

지연의 말에 지한이 옆에서 손을 들었다.

넌 안 들어도 돼.

지한이 외에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하아. 갈 길이 멀다.’

214. 옹달샘 카페에 어서 오세요 (3)

“나 PD님. 이거 처음부터 너무 힘든 거 아닐까요.”

“여러분들은 할 수 있습니다.”

믿어요, 여러분 파이팅!

카메라 밖에서 저렇게 말하는 나 PD가 얄미웠다.

자기 일 아니라고 막말하네!

“누나….”

“어쩌겠어. 해야지.”

“참고로 잡초 다 제거하시면 마당에 심을 잔디도 심으셔야 합니다!”

잡초 뽑기 전에 머리카락을 확 뽑아 버릴까 보다.

울컥한 출연진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 PD의 두피로 향했다.

과연 두피로 향한 시선이 무서웠는지 나 PD가 조용해졌다.

“해 지기 전에 끝내야 하니까 시작해 볼까요?”

“다들 힘내요.”

지연과 지한이 두 사람을 격려했다.

여기서 싫어하는 티를 내면 시청자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지연이 채연을, 지한이 로건을 맡아 잡초 뽑는 법을 가르쳤다.

“잡초는 뿌리를 제거하는 게 중요해요. 그러니까 이렇게!”

“우와! 뽑혔어요!”

“이렇게 뿌리까지 제거해 줘야 다시 안 자라요. 핵심은 뿌리라는 거 잊지 마세요.”

“네! 저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지연의 강의를 들은 채연이 의욕을 보였다.

한두 번 헛손질을 한 채연이 지연의 지도하에 성공적으로 잡초를 뽑았다.

“뽀, 뽑았어요! 내가 해냈다고요!”

겨우 한 번 성공한 거지만 채연의 얼굴은 트로피라도 딴 것처럼 잡초를 높이 들어 보였다.

“잘했어요. 처음인데 잘하시네요.”

“잘해요? 정말요? 제가 잘한다고요?”

지연의 칭찬을 들은 채연이 어색하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잘한다는 말을 몇 번 중얼거리던 채연이 이내 두 눈을 빛내며 의지를 불태웠다.

“저 열심히 할게요.”

“네. 우리 같이 힘내요.”

“같이! 좋아요. 같이 이거 다 뽑아 버려요.”

뭔가 반응이 과한데.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들었던 거지?

“우오오오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갈 길이 머니 잡초나 뽑아야지.

채연이 의욕적으로 잡초를 뽑는 모습을 보고 지연이 고개를 돌려 지한과 로건이 있는 쪽을 확인했다.

#그래요. 잘하고 있어요. 잡초 뽑기에 소질이 있는데요?#

#저, 정말?#

#네. 이거 봐요. 이거 전부 로건이 뽑은 거예요.#

#내가 벌써 이만큼? 좋았어!#

흠. 저쪽도 순조롭군.

지한이 시선을 느끼고 지연이 있는 쪽을 돌아봤다.

‘잘했어.’

‘누나도.’

남매가 엄지를 척 들었다.

이제 우리도 본격적으로 일해 볼까?

* * *

<카페 옹달샘>을 제작하는 스태프들이 신들린 것처럼 호미질하는 남매를 보고 감탄했다.

잡초 뽑는 걸 가르쳐 줄 때부터 알아봤지만 잡초를 뽑는 두 사람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저 두 사람 뭐예요? 뭔데 호미질도 잘해요?”

“나도 몰라.”

“PD님 이거 두 사람이 너무 수월하게 해서 찍을 게 없는데요?”

“묘하게 지연이랑 지한이만 빨리 감기 한 거 같지 않냐?”

누가 보면 집에서 농사하는 사람인 줄 알겠어.

예사롭지 않은 호미질에 스태프들이 웅성거렸다.

채연과 로건도 깜짝 놀랐는지 잡초 뽑던 것도 잊고 두 사람의 움직임을 구경하고 있었다. 무아지경에 빠져 잡초를 뽑고 있던 지연과 지한이 주위의 소란에 정신을 차렸다.

“? 무슨 일 있어요?”

“누나. 다들 우리만 보고 있는 거 같지 않아?”

어리둥절한 남매를 보고 나 PD가 대표로 물었다.

“두 분. 되게 능숙해 보이네요. 어디서 농사일 좀 해 보셨어요?”

아하. 다들 뭘 그렇게 멍하니 보는가 했더니.

우리가 일을 너무 잘해서 놀란 거구나.

지연이 살짝 웃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저희 할아버지가 농사하시거든요. 지한이랑 저랑 어릴 때는 할아버지 집에 가서 일손 보태기도 했어요.”

“어릴 때 밭에 가서 고구마도 캐었는데.”

“옥수수도 땄었지.”

“밭에서 남는 곳에 할아버지가 원하는 거 심어도 된다고 해서 방울토마토도 키웠던 거 기억나?”

“기억나지! 우리가 걔 키우려고 얼마나 애지중지했었는데. 나중에 토마토 엄청 많이 달려서 자랑했던 것도 기억하는걸?”

“나도 기억나. 토마토 맛있었지.”

남매의 말에 사람들은 두 사람이 농사 경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겨우 그런 걸로 이렇게 잘한다고?!’

어릴 때라면 직접 비료를 주거나 모종을 심거나 한 적은 없을 거다.

아마 물 주거나 수확할 때 일손 좀 보탰겠지.

게다가 둘 다 어릴 때부터 연예계에 뛰어들어서 그 이후로는 농사일을 접해 본 적도 없을 텐데.

‘역시 오지한.’

‘지연도 못 하는 게 없다고 하더니.’

‘인터뷰에서 이것저것 다 배워 본다고 했는데 농사일도 배웠나?’

남매의 배움 속도가 예사롭지 않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두 사람의 말에 ‘농사도 잘해!’라며 감탄할 뿐이었다.

바쁜 와중에 여러 가지를 배웠다는 감탄도 더불어서 했다.

모두의 궁금증을 풀어 준 두 사람은 다시 잡초 제거에 집중했다.

그때 남매의 뒤로 비명이 들렸다.

“꺄악! 벌레! 벌레가!”

#뭐? 벌레? 이런 미,#

#방송에서 욕하면 안 돼요!#

지한이 소리를 질러 로건의 입을 틀어막았다.

뭐야. 무슨 일이야.

지연이 손에 호미를 쥔 채 채연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아. 그거 무당벌레예요.”

“무당벌레요? 독 있는 거 아니에요? 저렇게 빨간데!”

쪼끄만 무당벌레보고 겁먹기는.

얘가 이렇게 생겨도 얼마나 좋은 벌렌데.

이렇게 생겨도 독은 없는 벌레라고.

지연이 무당벌레를 잡아 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 모습을 본 채연이 기겁했다.

“히야아악!”

#위험하다고! 독이 있을지도 몰라.#

#독 없어요. 무당벌레 몰라요?#

#뭐? 그게 무슨 벌렌데.#

왜 저런데.

어릴 때 벌레 수집 같은 거 해 본 적 없는 것처럼.

지연이 기겁하는 채연과 로건을 보고 피식 웃었다.

손에 무당벌레를 올린 지연이 근처에 있는 감귤나무로 다가가 잎사귀 위에 올려주었다.

“여긴 오지 마.”

지연의 말을 알아들은 건지 무당벌레가 잠시 날개를 비비더니 나뭇가지 쪽으로 이동했다.

짜식, 말 잘 듣네.

기특해라.

“풀어줬어?”

“응. 저기 나무 위에 올려줬어.”

“잘했어.”

태연한 남매를 본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떠올리곤 머쓱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연과 지한은 무당벌레 덕분에 잠시 상황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잡초 벌써 다 없앴네.”

“반 이상은 우리가 한 거 같지만.”

“두 사람은 처음이라 힘들었을 텐데 의외로 잘 따라와 주던데?”

“나도 중간에 힘들다고 포기할 줄 알았어.”

농사일이라는 게 웬만한 체력으로는 안 되는 일이 아니던가.

로건이 아무리 전직 프로레슬링 선수였고, 지금도 육체파 배우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지만 농사일은 운동이랑 전혀 다른 분야다.

게다가 채연은 이런 일과는 거리가 십만 년이나 떨어진 왕초보였다.

“저렇게 땡볕 아래에서 고생하는데 새참이라도 내와야겠네.”

“간식 내오려고?”

“응. 지한이 넌 저 두 사람 감독해 줄래?”

“알았어.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나보다 저 두 사람이 더 필요한 게 있지 않을까?”

“그건 그래.”

남매가 밀짚모자를 쓰고 땀을 훔치는 두 사람을 보고 작게 미소를 지었다.

다른 목적이 있어서 우리랑 같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줄 알았는데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걸 보니 조금은 다시 봐줄 만했다.

지연이 고생한 두 사람에게 선보일 음료를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 * *

“흐아아아.”

#끄으윽.#

좁다고 생각한 마당이었는데 막상 잡초를 뽑는 입장이 되니까 그렇게 좁은 것도 아니었다.

채연과 로건이 테라스 어닝 아래 그늘에 퍼져 앉았다.

달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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