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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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었겠네요.”

“저도 한 번쯤은 친구들이랑 그렇게 놀고 싶었는데.”

데보라의 말에 지연과 지한이 말했다.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저런 경험을 했던 건 평생 잊지 못할 일이니까.

나는 빨리 그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지한이는 어릴 때부터 남들이 걷지 못한 길을 걸었다.

지금 와서 그걸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데보라의 말을 듣고 부러움이 샘솟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얘들아.”

그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내내 조용히 있던 주민이 입을 열었다.

사장님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을 알아차린 남매가 뒤를 돌아보며 괜찮다는 듯이 웃었다.

“우리는 재밌었지만 어른들은 고생 많이 하셨어요. 허구한 날 우릴 찾으러 돌아다니거나 다치고 온 우리를 병원으로 데려가느라 바빴거든요. 그래도 우린 모험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여기도 우리가 몰래 밤에 빠져나왔던 날 발견한 장소예요.”

“어른들 말 안 듣는 건 전 세계 어딜 가든 다 똑같네요.”

“맞아요. 우린 전부 붉은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잖아요?”

“멋진 말이에요, 데보라.”

지한의 칭찬에 데보라는 배시시 웃었다.

그녀의 뒤만 보고 가는지라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미소를 볼 수 없었다.

“아무튼 그날 숲에 손전등 하나 들고 온 우리는 숲의 비밀을 밝히기로 했어요.”

“이 숲에 비밀이 있나요?”

“아니요. 없어요.”

그런데 무슨 비밀?

“어른들이 들어가지 말라고 한 이유가 숲에 비밀이 있어서라고 생각했거든요. 우리는 보물이 있을 거다, 귀신이 나올 거다, 괴물이 살고 있다 등등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비밀을 알기 위해서 숲으로 떠났죠.”

“데보라는 그중 어떤 의견이었는데요?”

“숲에는 괴물이 산다! 예요.”

그녀의 씩씩한 대답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데보라는 모두를 웃게 해 주는 사람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린 마침내!”

“마침내?”

“숲에서 길을 잃었어요.”

“아하하하하하!”

“푸핫! 하하하.”

당연했다.

밤이 된 숲은 달빛과 손전등 불빛이 아니었다면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이곳을 비밀을 찾겠답시고 돌아다녔다간 길을 잃기 좋아 보였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우린 절벽에 난 동굴을 발견했어요. 다들 지쳐서 거기서 쉬고 가자고 했죠.”

“데보라는 정말 대단하네요.”

“헤헤.”

“데보라의 부모님도 대단하고요.”

이렇게 말썽을 부렸는데 포기하지 않고 데보라를 잘 키웠으니 성인(聖人)이 아니면 뭐겠는가.

속에 사리가 생겼을지도 몰랐다.

지연이 웃음기 어린 얼굴로 머리카락이 찰랑이는 데보라의 등을 쳐다봤다.

“그래서 동굴에 들어갔는데 안쪽에서 빛이 나오는 거예요. 그걸 보고 안심이 돼서 다들 안쪽으로 들어갔어요. 그곳에 들어간 우린 깜짝 놀랐어요.”

“왜요?”

“괴물이라도 발견한 건가요?”

깊은 밤 숲속을 탐험한 이유를 떠올리며 남매가 물었다.

데보라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천장이 뚫린 동굴이었는데 천장에서 달빛이 한가득 들어와서 동굴이 반짝반짝 빛나는 거예요. 마치 동굴 전체가 달빛에 물든 것처럼요. 그때 생각했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은 처음이야!”

“그때 몇 살이었어요, 데보라?”

“9살요.”

“9살 평생 처음 본 광경이라 궁금하네요.”

“그러게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9살 평생 처음이라고 했을까요.”

“정말이에요!”

남매가 반쯤 놀리는 말에 데보라가 믿어달라는 듯이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귀여운 데보라의 반응에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지연은 생각했다.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데보라가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우리한테 보여준다고 했을까.

“아무튼 제 생에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었어요. 그날도 오늘처럼 보름달이 뜬 날이라는 걸 떠올리고 여러분들에게 그날의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데려온 거예요.”

“고마워요. 데보라가 9살 평생 처음 본 광경을 저희도 꼭 보고 싶어요.”

“맞아요.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9살 평생 그렇게 아름다운 광경은 처음이라고 했을지 궁금해요.”

“지연 씨, 지한 씨…!”

데보라가 눈썹을 늘어트리며 두 사람의 이름을 애처롭게 불렀다.

목소리만 들으면 배신이라도 당한 비련의 여인인 줄 알 것이다.

유쾌한 데보라의 리액션에 조금 더 놀리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데보라가 친구들과 함께 모험하면서 발견했을 동굴 앞에 도착했다.

“어두우니까 발밑을 조심하세요.”

“알았어요. 데보라도 조심해요.”

“누나 손 잡아.”

“응. 사장님이랑 남 비서님도 조심해서 오세요.”

“그래.”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선가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누나 안 추워?”

“생각보다 따뜻한데?”

아직 날이 쌀쌀할 때고, 동굴이라 조금 추울 줄 알았는데 동굴 안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신기하죠? 저도 왠지는 몰라요. 숲보다 동굴이 더 따뜻하더라고요.”

“그래서 데보라 아까 얘기는 더 해 주셔야죠. 동굴에 들어와서 어떻게 됐어요?”

“길을 잃어버렸다면서 집은 어떻게 갔어요?”

“아! 동굴이 반짝반짝 빛나는 걸 보고 예뻐서 우린 거기서 쉬기로 했어요. 밖보다 안이 따뜻했기도 했고, 더는 움직일 힘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그리고?”

“그다음은요?”

데보라는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전달하는 재주가 있었다.

지금도 애매한 곳에서 말꼬리를 늘어트려 사람을 궁금하게 하지 않은가.

할리우드 톱스타가 자신의 입술만 쳐다보고 있다는 것에 데보라는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데보라가 이어서 말했다.

“제가 지쳐서 그런 건지 아니면 반쯤 꿈나라에 가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목소리가 들렸어요.”

“목소리요?”

“무슨 목소리요?”

“‘자고 일어나면 집에 돌아가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목소리에요.”

잠결에 잘못 들은 거 아니야?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애매한 것일지도?

“동굴에 다른 사람이 있었어요?”

“그건 아니에요.”

“데보라와 친구들을 찾으러 온 어른들이 했던 말일지도 모르죠.”

“어른들은 그런 말 한 적 없대요.”

“그냥 헛걸 들은 거 같은데.”

데보라도 주민의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잘못 들은 걸까?

그땐 분명 들은 거 같았는데.

이 얘기까진 하지 말걸.

데보라가 입을 내밀었다.

그때 지연과 지한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와아. 데보라 다 온 거 같은데요?”

“진짜 데보라의 말대로 동굴이 반짝반짝 빛나네요.”

지연과 지한이 빛이 새어 나오는 안쪽을 보고 말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천장 아래 고인 작은 호수가 보였다.

“이런 곳이 다 있네요.”

“데보라의 말이 맞아요.”

천장에서 달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어두운 동굴을 달빛이 밝혔다.

동굴 안에 밤하늘이 펼쳐진 것처럼 반짝였다.

천장에서 들어온 달빛에 호수 표면과 여기저기 고인 작은 웅덩이들이 반사되어 그렇게 보이는 것이었지만 데보라가 9살 때 느꼈던 감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멋진 곳이군요.”

주민은 입을 다물었고, 내내 묵묵히 있던 남 비서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진짜 멋진 곳이야.

“데보라 말이 맞았어요. 정말 평생 볼 수 있을지 모르는 아름다운 광경이에요.”

“아까 그렇게 말해서 미안해요. 데보라의 말대로 평생 처음 본 광경이네요.”

지연과 지한이 조금 전의 일을 사과했다.

데보라도 두 사람이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란 사실을 알았기에 괜찮다고 말했다.

그때 작고 익숙한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쉬익

지연과 지한이 고개를 돌려 서로를 마주 봤다.

199. 항상 지켜보고 있단다

바람 빠지는 소리에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둘의 머릿속에 한 동물이 스쳐 지나갔다.

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친 지연과 지한이 눈빛만으로 대화를 나눴다.

‘누나 저 소리.’

‘에이 설마.’

여기서 뱀이 나올 리가 없잖아.

우리가 바람 소리를 잘못 들었을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소리가 들린 곳에 시선이 향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지연과 지한에게 확신을 주듯이 소리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쉬익…!

“….”

“….”

빼박인 거 같은데.

지연과 지한의 시선이 허공에서 흔들렸다.

여기서 왜 뱀 소리가 들려.

두 사람이 당황하면서 일행들을 둘러봤다.

사장님과 남 비서님은 달빛이 내려오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감탄하고 있었고, 데보라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어릴 때의 추억을 회상하는지 흐릿한 눈을 하고 있었다.

일단은 다른 사람들이 놀라기 전에 빨리 동굴을 나가야 할 거 같은데.

“데보라. 여기 데려와 줘서 고마워요. 오늘은 늦은 거 같은데 우리 이제 돌아갈까요?”

“누나 말처럼 더 어두워지기 전에 가요.”

“조금 더 있다 가도 되는데….”

“더 늦으면 위험해요. 자, 사장님이랑 남 비서님도 빨리.”

“천천히. 미끄럽다, 얘들아.”

누가 보면 두 사람이 현지민이고 세 사람이 관광객인 줄 알 것이다.

지연이 데보라의 팔짱을 끼고 이끌었고, 지한이 주민과 남 비서와 나란히 길을 나섰다.

갑자기 구경하다 말고 돌아가자는 남매의 말에 일행들은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순순히 따라나섰다.

그때 뒤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쉭! 쉬익! 쉭!

“어?”

“이게 무슨 소리야?”

“뱀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도 정체불명의 소리를 듣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래도 들어 봐서 익숙한 소리라고, 뱀인 걸 안 지한과 지연은 사람들이 놀라기 전에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뱀인 걸 알면 다들 놀랄 테니까.

따라오지 마.

따라오지 마.

제발 다른 데 가라.

다른 동물이라면 남매의 말을 잘 따라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뒤를 따라오는 동물은 어딘가 달랐다.

“꺄악!”

데보라가 발밑을 지나가는 무언가에 화들짝 놀라며 폴짝 뛰었다.

뭔가가 빠르게 발목을 건드리고 지나간 거 같은데.

데보라의 비명에 같이 걸어가던 다른 사람들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뭐야?”

“뭔가가 제 발 옆으로 지나갔어요.”

“벌레인가?”

“아까 그 소리까지 고려하면 뱀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소리 지르지 마세요. 뱀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남 비서가 침착하게 말했다.

하지만 뱀이라는 말에 놀란 데보라가 어깨를 좁히며 몸을 떨고 있었다.

뱀이 무서운가 본데.

이럴까 봐 빨리 이 동굴에서 나가려고 했던 건데.

지연이 차가워진 데보라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데보라, 진정해요. 뱀이 아닐지도 몰라요.”

“하지만 뱀일 수도 있잖아요. 독이 있으면 어떡해요? 혹시 바다뱀? 미안해요. 저 때문에 괜히 위험해진 거 같아요.”

“바다뱀이 동굴에 있을 리 없잖아요. 우린 데보라의 소중한 비밀 장소에 와서 정말 기쁜걸요. 자, 여길 나가면 괜찮을 거예요. 얼른 가요.”

“소, 손 꼭 잡아주세요.”

“네.”

“뱀 보면 바로 말씀해 주셔야 해요.”

“알았어요.”

뱀이라는 소리에 놀란 데보라의 손을 꽉 잡아주며 지연이 그녀를 이끌었다.

지한과 주민, 남 비서도 발밑을 조심하며 걸음을 옮겼다.

손전등을 들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던 다섯 사람은 손전등이 비친 곳에서 소리 없이 움직이는 하얀 무언가를 보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

“ㄲ, 읍.”

“!!”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려는 데보라의 입을 지연이 황급히 틀어막았다.

옆에서 온갖 꺾기를 선보이는 데보라의 기척이 느껴졌다.

주민과 남 비서님이 있는 쪽에도 만만찮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하긴 우리도 처음 뱀 봤을 때 그렇게 놀랐었지.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한 지연과 지한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뱀을 보았다.

“어?”

“음?”

왠지 뱀이 반가워하는 거 같았다.

잘못 본 거라고 생각하기에는 조금 뒤에 있는 지한의 목소리도 심상찮았다.

애교 부리는 게 꼭 내가 아는 뱀이랑 닮은 거 같은데.

아니겠지?

지연이 불안한 눈으로 뱀을 쳐다봤다.

찡긋

너 맞구나….

어쩐지 우리가 오지 마라고 했는데도 다가오는 거 같더라니.

지연이 익숙한 윙크에 익숙한 하얀 몸을 보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 * *

하얀 비늘에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윙크까지 할 수 있는 뱀이 또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어릴 때 외갓집 논밭 가는 길에 본 이후로 처음 현실에서 본 거 같은데 여기서 또 보게 될 줄이야.

아니, 근데 너 여긴 어떻게 왔어?

비행기라도 탄 거야?

신묘한(?) 뱀이니까 바다 건너올 수 있나?

지연이 뱀에게 다가가자 데보라가 기겁하며 지연의 팔을 붙잡았다.

“지, 지연. 가지 마요. 위험하잖아요.”

“괜찮아요. 아는 뱀인 거 같아요.”

“아는 뱀이요?”

아는 뱀도 있나?

여기 이탈리안데?

그럼 저 뱀은 한국 뱀인가?

친한 뱀이면 다가가도 괜찮으려나?

뱀을 보고 놀란 마음과 두려움 때문에 데보라의 사고가 엉망진창이 되었다.

지연이 그런 데보라를 진정시키고 뱀한테 다가갔다.

손전등을 비추자 뱀이 눈이 부신 듯 눈을 깜빡였다.

“너 왜 여깄어?”

쉬익

“집에 가.”

도리도리

“그럼 우리 갈 테니까 잘 있어.”

도리도리

어쩌라고.

지연의 미간이 좁아졌다.

지연의 심기가 좋지 않음을 느낀 하얀 뱀이 열심히 꼬리를 씰룩거리면서 뭐라고 말하는 거 같은데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너 힘 좀 빨리 키워야겠다. 뭐라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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