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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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도 지나지 않은 거 같은데 준비가 끝났다.

원래 이런 게 빨리 설치되는 건가?

애초에 장비가 너무 일찍 도착했는데?

이 사람들 알고 보면 저 장비 가지고 따라오고 있던 거 아니야?

그런 불합리한 의심을 그만뒀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버스킹 준비가 끝난 걸 안 사람들이 지연이 있는 쪽을 쳐다보며 폰을 들고 있었다.

“여기 마이크까지 준비 됐습니다. 한 번 확인해 보시죠.”

노신사가 건넨 마이크를 보고 지연이 화들짝 놀랐다.

팬들이 생일 선물로 커스텀해준 마이크랑 똑같은 기종이었다.

마이크까지 손에 익은 걸 준비한 철저함을 보고 지연은 소름이 돋았다.

찝찝함을 누르고 마이크를 든 지연이 소리를 냈다.

“아, 아.”

웅성웅성

짝짝짝짝짝

마이크 테스트만 했을 뿐인데 이미 반응이 뜨거웠다.

몇 가지를 더 확인한 지연이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세요.”

와아아아아!

휘익, 휙-!

아이린!

사랑해요, 오지연!

혹시나 했는데 진짜 날 아는 사람들이었다.

콘서트 투어할 때는 전부 내 팬들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여기는 평범한 관광지이지 않은가.

관광지에서 날 알아볼 해외 팬들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중간에 아이린이라고 하는 걸 보면 마벨 영화에 출연한 게 한몫한 것 같았다.

지연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제가 누군지 아세요?”

아이린!

오지연!

“아시네요. 관광하러 왔다가 절 알아보는 분들을 만날 줄 몰랐어요. 어떻게 알아봤지?”

지연의 말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도 자신의 인기를 잘 모르는 지연이 귀여웠다.

지금 자신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에 사람들이 웃으면서 지연을 지켜봤다.

“아무튼 제가 오늘 이렇게 버스킹을 하려고 한 건 다 여러분 때문이에요. 아까부터 절 따라다니신 분 어디 계세요?”

저요!!!!!!!!!

“어디서 오셨어요?”

미국!!!!!!!!!

“관광하셔야지 절 따라다니시면 어떡해요.”

네 얼굴 보는 게 더 좋아!!!

사람들 사이에서 튀어나온 말에 지연이 결국 참지 못하고 빵 터졌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전부 웃음을 터트렸다.

누가 봐도 지연의 열성팬인 것 같았다.

“좋아요. 관광지에 와서 제 얼굴을 보는 게 더 좋다는 분. 왠지 관광도 제대로 못 한 게 제 탓인거 같아서 제가 그 책임을 지려고 버스킹하기로 했습니다.”

꺄아아아아아!!!!!!!!

사랑해요!!!!!

“저분께 첫 곡을 선택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미국에서 오신 팬분. 제가 뭘 불러드릴까요?”

지연의 말에 사람들이 부럽다는 듯이 그 사람을 쳐다봤다.

첫 선곡의 영광을 안은 그 사람은 전부 다 좋다며 울상을 했다.

몇몇 곡을 고민하더니 그가 겨우 한 곡을 선택했다.

‘Blossom’!!

“좋습니다. 첫 곡은 Blossom입니다.”

* * *

스피커에 MR이 흘러나왔다.

리드미컬한 밴드 사운드가 시작되자 지연이 팔을 움직였다.

댄서 없이 제 자리에서 손동작만 했음에도 관객들은 신이 나 몸을 들썩였다.

♬기억나니 네가 내 이름을 불러줬을 때

그전까지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아무 생각도 없는 작은 인형이었어♬

인형이었어!

자신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들을 보며 지연이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미국에서 온 열성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지연의 노래를 알고 따라 부른 것이었다.

마치 자신만의 작은 콘서트가 열린 것 같은 기분에 지연이 새어 나오는 웃음을 꾹 참으며 다음 소절을 불렀다.

♬네가 내 이름을 불러줬을 때

나는 두 발로 일어서 네게 다가가

한 송이 꽃이 된 거야♬

이제는 외국인들도 노래를 따라 불렀다.

설마 여기서 떼창을 들을 수 있을까?

지연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이크를 그들에게 내밀었다.

사람들이 그에 보답하듯이 지연의 노래를 불렀다.

내 이름을 불러줘

난 네게 다가가

한 송이 꽃이 될 테니

Blossom, Oh Blooming

관광을 포기하고 자신을 따라다닌 팬들을 위한 공연이었는데 어느새 지연이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신기해하며 관중들과 같이 노래를 부르니 어느새 순식간에 노래 한 곡이 끝나있었다.

노래가 끝날 때쯤엔 공원에 모여든 인파가 어느새 배로 불어나 있었다.

와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악!!!

사랑해요, 아이린!!

몰래카메라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자신을 환호해주는 사람들에 지연은 하늘로 날아오를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이탈리아에 오길 잘한 것 같아.

“우와. 진짜. 감사합니다.”

열렬히 호응해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자 그들이 박수로 응답했다.

그때 지연의 시야에 자신의 굿즈를 하고 온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어린 팬을 본 지연이 아이를 가리켰다.

“안녕?”

“안녕.”

“이름이 뭐예요?”

지연의 말의 아이의 아버지가 통역해줬다.

아빠의 말을 들은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루아나.”

“안녕, 루아나. 혹시 루아나는 제 팬인가요?”

“응!”

루아나가 활짝 웃으며 남색 손수건이 예쁘게 묶인 손을 흔들었다.

배꼽에도 못 올 것 같은 어린아이가 팬이라고 말하자 지연이 화사하게 웃었다.

“어린 팬을 만나서 기쁘네요. 루아나는 제가 뭘 해줬으면 좋겠어요?”

아빠의 통역을 거쳐 지연의 말을 들은 루아나가 폴짝폴짝 뛰면서 말했다.

“안아주세요.”

아이의 요청을 들은 지연이 팔을 벌렸다.

아빠가 아이를 내려주자 루아나가 달려왔다.

경호원들을 지나친 루아나가 지연의 품에 안겼다.

“꺄아아아악!!”

짝짝짝짝

루아나의 부모가 지연의 목에 팔을 두르고 꼭 안긴 딸을 부러워했다.

팬서비스한 지연이 루아나에게 물었다.

“루아나는 제가 뭘 부르면 좋겠어요?”

“‘작은 별’ 부르면서 피아노 쳐 주세요.”

“피아노요?”

“네! 저는 피아노 치는 게 좋아요. 그래서 아이린도 피아노를 쳤으면 좋겠어요.”

피아노 치는 게 즐겁다.

그러니 아이린도 피아노를 치면서 즐거웠으면 좋겠다.

단순한 사고에서 나온 아이의 진심 어린 바람에 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아나보다 못 쳐도 이해해 줄 거죠?”

“네! 아이린이니까 봐줄게요.”

하하하하하하하

아이의 말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어린 팬이 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지.

지연과 루아나가 같이 피아노 의자 위에 앉았다.

두 사람이 함께 건반을 내리쳤다.

* * *

며칠 뒤, 지연의 뉴튜브에 한 영상이 올라왔다.

[일상] 이탈리아 여행 중, 팬들을 만났다 feat. 최초! 버스킹 공연

이미 여기저기서 목격담이 올라와 화제가 되던 참이었다.

해외뉴스에서도 보도된 일이라 전국민이 지금 이탈리아에서 지연이 관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탑엔터에서는 이 화제를 이어가기 위해서 재빨리 영상을 받아 편집했고, 버스킹이 있던 날로부터 3일이 지난 오늘 영상을 올릴 수 있었다.

구독을 누른 사람들은 새로 업로드된 영상 알림이 뜨자 기다렸다는 듯이 뉴튜브에 들어와 영상을 클릭했다.

마음이 몸과 수명을 갈아 편집한 영상이 재생됐다.

[안녕하세요.]

└안녕!!!

└이렇게 불러도 모르겠지만 지연아 사랑해!!!!!!!!!!!!!!!!!

영상을 재생한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댓글을 달았다.

조회수와 함께 댓글이 빠른 속도로 쌓여갔다.

[저분께 첫 곡을 선택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미국에서 오신 팬분. 제가 뭘 불러드릴까요?]

└지금 자기 때문에 관광 못 해서 미안하다고 버스킹한 거야? 지연은 천사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

└부럽다. 네가 있는 그 자리가 내 자리였어야 했다.

└덕계못이라며!!! 덕계못이라며!!!

└저 사람 선택장애 온 것 봐. 사실 나도 그랬을 듯. 지연아. 한 곡만 고르라는 건 너무 잔인한 요구야.

이윽고 영상 속에서 ‘Blossom’을 비롯해 ‘작은 별’, ‘Bloody Moon’, ‘가을 바다’ 등과 같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전부 다 내 최애곡이야ㅠㅠㅠㅠㅠㅠㅠㅠ

└지연은 신이다ㅠㅠㅠㅠㅠㅠㅠㅠ

└루아나 귀여워.

└이탈리아에서 떼창을 듣게 될 줄이야. 이게 월드스타다!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연이가 노래를 시작하면 모두 집중하는 게 너무 신기하다.

└바람, 지연의 얼굴, 귀여운 팬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지연아 사랑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좋아서 계속 듣고 있어.

└내 고막 녹아서 흘러내린 듯. 너무 조아…

└믿듣연. 믿고 듣는 지연.

빠른 속도로 올라오는 댓글 속에서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까지 나타났다.

└난 저 자리에 있었어. 처음에 아이린이 가족과 같이 여행하는 것 같아서 모르는 척 할까 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장비들이 나타나더라고. 그래서 잽싸게 자리를 잡았지. 내 인생에 제일 잘한 선택인 거 같아:D

└└부럽다.

└└외국 팬들도 지연을 보는데 나는 왜ㅠㅠㅠㅠㅠㅠㅠㅠ

└나도 저기 있었어. 사실 나는 그전까지 지연을 몰랐는데 저기서 공연을 보고 바로 팬이 됐어. 지연은 신이야.

└└연바라기가 된 걸 환영합니다, 동지.

뉴튜브 영상이 업로드되자 다시 한번 지연의 개인채널이 화제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지연이 관광했던 코스는 ‘오지연 투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여행사에서는 발빠르게 이탈리아 관광 코스를 만들었고, 이탈리아에서는 때아닌 외국인 관광객들의 증가에 대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장님. 직원들이 살려달랍니다. 이제 회사로 세계 각국의 관광부에서 연락이 오고 있답니다.”

“…일단 이번 일이 진정되면 보너스 준다고 진정시켜 봐.”

“알겠습니다.”

이러다가는 엔터 회사 최초로 파업 얘기가 나올지도 몰랐다.

주민이 남 비서의 보고를 들으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확실히 노인 덕에 이번 일로 지연의 인지도가 한 단계 더 상승했음은 부인할 수 없었다.

“도움을 받는 건 이번 한 번뿐이야.”

그래도 역시 지연이를 서포트하는 건 자신의 일이었다.

이제 와서 정체도 모를 놈이 제 자리를 빼앗아 가게 둘 순 없지.

주민이 노신사를 떠올리며 의지를 불태웠다.

194. 금방 해결하고 올게

한국에서 난리가 나건 말건 이탈리아에 있는 지한과 지연은 평화로웠다.

물론 그건 우리 얘기였고, 같이 따라온 사장님은 쉴 틈이 없었다.

남 비서님의 전화기는 쉴 새 없이 울렸고, 사장님은 항상 업무용 패드를 들고 다니면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일어나서 밤새 쌓인 일들을 처리하고 있는 주민을 보고 지연이 입술을 뗐다.

“정말 한국에 안 가도 괜찮겠어요?”

“괜찮아. 지연이 네 말대로라면 앞으로의 일을 대비해서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유럽에 왔을 때 해야 하는 일도 있고 이때 처리하지 않으면 언제 또 이렇게 장기간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생기겠어.”

아무래도 내가 말해준 것 때문인가 보다.

사장님은 그날 이후 이것저것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회귀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이후 사장님은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남 비서 아저씨랑 속닥속닥 뭐라고 하더니 그날 이후 아침에 눈 뜨자마자 패드를 보는 걸로 하루일과를 시작했다.

저렇게 열심히 준비할 줄은 몰랐는데.

지연이 죄책감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마세요.”

“그래. 알았다.”

걱정하는 지연의 말에 주민이 미소를 띤 얼굴로 대답했다.

여진 팀장님도 쉬다 오라고 했는데 이런 기회가 왔을 때 좀 쉬지.

아. 그 여진 팀장님도 몰려드는 업무에 사장님보고 빨리 돌아오라고 난리였다.

유나 잠든 얼굴만 본 지 벌써 3일째란다.

죄송해요, 팀장님.

지한이 촬영 끝나면 빨리 돌아갈게요. 사장님만.

계속 일만 했으니까 우린 며칠 정도는 관광하게 해 주세요.

“누나. 준비 다 했어?”

“응. 나야 뭐 그냥 가면 되지.”

방에서 나온 지한의 말에 지연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나는 가서 촬영할 것도 아닌데 이대로 가면 되지.

“머리는 가서 하는 거지?”

“응.”

지한의 머리 위에 지연이 모자를 씌워줬다.

어차피 머리랑 메이크업은 거기서 할 테니까 모자 씌워도 상관없었다.

이 정도면 됐겠지?

나머지는 영훈 오빠랑 코디 언니가 해 줄 거야.

갑자기 온 사장님과 나 때문에 다른 방을 써야 했던 영훈이 스태프들을 데리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준비를 마친 둘을 보고 주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 비서. 이만 가지.”

“네. 고 실장이 밑에서 대기 중입니다.”

오늘 촬영장에는 사장님도 따라간다.

졸지에 사장과 오늘 같이 있게 된 매니저 오빠와 코디 언니들한테는 미안했지만 어쩌겠는가.

사장님이 갑인걸.

‘그나저나 사장님은 왜 따라가시는 거지?’

오늘은 그냥 촬영장 가는 거니까 호텔에서 쉬어도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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