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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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사이가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여파가 가신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언론사에서는 지연과 사이를 내세워 K-POP이 전 세계를 점령했다는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고 그건 또 지연의 뉴튜브 채널에 관한 관심으로 돌아왔다.

무려 두 곳에서 유의미한 기록을 세우자 그걸 본 다른 엔터테인먼트도 바쁘게 뉴튜버 진출을 준비했다.

“쯧쯧. 이쪽 업계에 있으면서 소식이 그렇게 느리면 어떡하나. 그쪽에서 모집 공고를 내렸을 때부터 우린 이미 준비하고 있었지.”

“탑엔터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될 뿐이야.”

“우리 쪽에서도 개인 채널을 준비해야겠군.”

“채널 열 만한 애들 없어?”

지연이 팬들을 위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커다란 태풍이 되어 다가오고 있었다.

* * *

밖에서 화제가 되든 말든 지연은 요즘 정신이 없었다.

무대 준비 때문에 헤어, 메이크업, 의상, 연출 등등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좋아. 의상은 이걸로 됐고. 메이크업도 이게 더 낫지?”

“응. 내가 피아노 치면서 하는 건 좌절한 피아니스트 컨셉이니까 다크한 느낌으로 가는 게 좋은 거 같아.”

“알았어. 이것도 픽스.”

이제는 코디팀의 실세가 된 미나가 지연의 동의를 받고 리스트에 이것저것 체크했다.

시상식에서는 갈아입어야 할 의상이 많았기에 평소보다 배는 바빴다.

코톡!

메시지가 온 소리에 지연이 재빨리 폰 화면을 확인했다.

[누나 잘 잤어? 난 이제 일어났어.]

[난 애들이랑 잘 잤지. 일어났으면 씻고 밥 먹어. 아침은 꼭 먹어야 한다.]

[알았어ㅋㅋ 누나는 점심 먹었어? 밥 잘 먹고 있지?]

[물론이지. 볼래?]

[(사진)]

[(사진)]

[(사진)]

사진을 보낸 지연이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미나가 안 봐도 뻔하다는 듯이 말했다.

“지한이구나?”

“응. 지금 일어났대.”

지한이는 며칠 전에 촬영을 위해서 이탈리아로 출국했다.

<마피아가 너무해>라는 너무한 가제를 가지고 있던 드라마는 이탈리아어로 복수라고 부르는 <벤데타>로 바뀌었다.

그 소식에 다른 배우들도 은연중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는 소문이 들렸으나 소문이 아닐 것이었다.

아무튼 지한이는 출국하는 날까지 나한테 밥은 꼭 챙겨 먹어야 한다면서 잔소리하고 갔다.

누가 보면 집에 10살도 안 된 애를 두고 간다고 했을 정도로 유난이었다.

“지한이가 일어났는데 내 님은 왜 소식이 없을까. 매니저 주제에 빠져가지고 담당 배우보다 늦게 일어난 건 아닐 테고.”

미나가 나지막하게 한소리 뱉었다.

이런. 영훈 오빠가 연락을 빼먹은 모양이다.

이러다가 영훈 오빠 제사상을 차릴 것 같아서 지연이 지한이가 보낸 답장을 후다닥 읽었다.

“언니, 지한이가 내 메이크업 마음에 든대. 역시 미나 누나라는데?”

“정말? 흐, 흠. 내가 좀 잘하긴 하지. 이번은 내 역작이라고 불릴 거야.”

“지난번에도 역작이라고 하지 않았어?”

“기록은 깨라고 있는 거지.”

미나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뻔뻔하게 대답했다.

휴우. 무사히 미나 언니의 주의를 다른 곳을 돌린 것 같다.

영훈 오빠의 사망 플래그를 무사히 치운 거겠지?

지연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지한이와 코톡을 계속했다.

[오늘은 몇 시부터 촬영이야?]

[오늘은 여유로워. 저녁부터 촬영이거든. 노을이 질 때가 배경이라서.]

[다행이다.]

[누나는 모레지?]

[응. 모레야.]

화면을 보던 지연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그렸다.

드디어 그동안 고생했던 것을 선보일 때였다.

* * *

힘들었던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가올 새해를 준비하는 12월.

12월 중에서도 연말은 모두가 바빴다.

오늘은 12월 28일.

바쁘고 바쁜 대한민국에서도 제일 바쁜 곳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방송국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다른 방송국들이 다른 곳으로 사옥을 이전하고, 이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 때, KBC는 여전히 여의도에서 터줏대감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새까만 밤이 내려앉은 시각.

많은 사람의 시선이 KBC를 향해 있었다.

그 안에서는 이미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여기 의상에 먼지 좀 떼 주세요.”

“얼굴 들어 봐. 메이크업 괜찮지?”

“아까 동선 확인했지? 생방송이니까 실패하면 다 끝장이야.”

생방송 시간이 다가오자 출연진들도 스태프들도 모두 정신없이 움직였다.

방송 시간이 다가오고 객석에 관객들이 차기 시작하자 대기 중이던 가수들도 긴장이 올라오는지 초조한 얼굴이 되었다.

연차가 있는 그룹들도 다들 애써 긴장을 풀기 위해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옆 사람과 수다를 떨고 있을 때, 지연이 있는 곳은 태풍의 눈처럼 고요했다.

“지연 선배님이다.”

“와. 아까도 장난 아니었는데 풀세팅 하니까 더 장난이 아니야.”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고 싶다.”

무대 위에 올라가기 위해서 대기하는 사이 별빛을 박아넣은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드레스를 입고 검게 빛나는 끈과 함께 반만 땋은 머리를 한 지연은 밤의 여신 같았다.

주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도 지연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귀는 쫑긋 세우고 있었다.

“아서라. 지연 선배님한테 함부로 다가가면 탑엔터에서 가만히 안 있는 거 몰라? 실장님이 탑엔터 애들은 조심하라고 했잖아.”

“아, 맞다. 고맙다. 네 덕에 살았다.”

“조심해. 탑엔터에 찍히면 이 바닥 떠야 해.”

“이 바닥만으로 안 끝나. 대한민국을 떠야 할지도 몰라.”

“…나 실수한 거 없지?”

도대체 연예계에서 우리 회사가 어떤 악명을 떨치고 있는 걸까.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았지만 지연은 굳이 나서서 해명하지 않았다.

이런 건 해명하려 할수록 더 망하기 마련이었고, 소속 연예인들을 건드리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악명은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지연의 옆에는 오늘 같이 무대에 올라가는 메시아밖에 없었다.

“어떡하죠? 저 너무 떨려요. 저 그동안 연말 무대에 꼭 올라가고 싶었거든요.”

“저도요.”

“저도 제가 이런 무대에 올 수 있을지 몰랐는데. 어떡해요. 저 지금 꿈꾸는 거 아니죠? 선배님 제 볼 좀 꼬집어 주세요!”

“선배님 저는 한 대 때려주세요.”

은비의 말에 지연이 화들짝 놀라며 상체를 뒤로 물렸다.

얘가 말하는 건 항상 무섭더라.

어디로 튈지 몰라서 더 무서웠다.

메시아 멤버들은 이제 그런 은비에 익숙해졌는지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고 지연을 돌아봤다.

“선배님. 오늘 진짜 예쁘세요.”

“너희들도 전부 다 예쁘다.”

“선배님 입에서 나오니까 왠지 놀리는 거 같아요.”

“맞아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얼굴로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너무 빈말인 게 티 나잖아요.”

“아닌데. 정말이야.”

돌아오기 전에는 잘 몰랐는데 연예인이 된다는 건 웬만한 끼와 재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학교 다니면서 얼짱, 여신이란 애들 얼굴은 나도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지만 그런 애들도 연예계에 오면 흔하디흔한 얼굴로 불릴 정도였다.

나는 의느님과는 비교되지 않을 기적의 도움을 받아서 이런 얼굴이지만 이 애들은 천연이지 않은가.

정말 예뻐서 예쁘다고 했는데 자신을 보는 눈빛에 불신이 가득해서 억울했다.

다들 연말 무대 준비로 고생해서인지 살이 빠지고 잔뜩 꾸민 덕분에 하나같이 반짝였다.

억울했지만 믿지 않을 걸 알았기에 지연은 더 말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이제 곧 시작한다. 올라가자.”

“앗, 넵.”

가수들이 하나둘씩 무대 위로 올라갔다.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과 자신들을 조준하듯이 겨누고 있는 카메라들이 보였다.

메시아와 함께 나란히 서 있는 사이 시계가 8시 50분을 가리켰다.

오프닝 무대를 준비한 이들이 차례대로 춤을 선보였다.

커다란 스크린이 올라가고 MC들이 출연진을 가로질러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2012 KBC 가요대축제 진행을 맡은 성서경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유나입니다.”

“반갑습니다. 정경하입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 * *

꿈꾸는 게 아니냐며 꼬집거나 뺨을 때려달라고 하던 메시아였지만 막상 방송이 시작되니 아무렇지 않게 무대를 해냈다.

쟁쟁한 가수들 사이에서 떨지 않고 무대를 잘 마친 애들을 보니 내가 다 뿌듯했다.

“어? 무대 끝났어요?”

“우리 실수한 거 없죠?”

“흐아아아. 저는 더 이상 못 서 있겠어요. 언니이. 살려줘어.”

“…끝났다.”

무대에서 후들거리면서 내려온 애들을 보니까 내가 다 뿌듯했다.

고생했다. 얘들아.

지연이 내려온 애들의 등을 토닥였다.

이 짧은 무대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았기에 지금 메시아의 심정이 어떨지 상상이 갔다.

“자, 의상 갈아입자.”

“넵.”

“예림아, 거기 아니야.”

“아, 깜빡했어. 엘리 언니 나 잊은 거 아니야.”

“그래. 우리 얼른 저기로 갈까?”

“넹.”

엘리가 나사가 빠진 멤버들을 데리고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정작 그 일을 할 맏언니이자 리더인 아린은 아직도 멍한 얼굴이었다.

그룹에 엘리가 있어서 다행이야.

나는 다시 무대 위에 집중했다.

내 무대는 2부에 있었다.

2012년에 확실히 복고가 유행하기는 했는지 스페셜 무대들이 대부분 80-90년대 노래였다.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메시아와 함께 무대를 감상하고 있으니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고 내 차례가 다가왔다.

“선배님 힘내세요!”

“응원할게요.”

“선배님 파이팅! 전부 이기고 오세요!”

“누굴 이기고 오라는 거야.”

“그래, 예림아. 이기는 게 아니야. 압살하고 오라고 해야지.”

“은비야…그것도 아니야.”

자신의 차례가 마친 아이들이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와 지연을 응원했다.

그 모습을 보니 없던 긴장도 사라질 것 같았다.

지연이 자신을 응원하는 메시아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메시아 덕에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갔다 올게.”

힐을 신은 지연이 등을 돌려 대기실을 나섰다.

지연이 떠난 자리에 남은 메시아 멤버들이 힘들게 입을 열었다.

“…얘들아. 나 방금 천국에 갔다 왔어.”

“그 옆에 나도 있었어.”

“와. 선배님 미모 미쳤다. 와! 와악!! 방금 뭐야? 미친 언니들 저 선배님 보고 심장 떨리는데 이거 정상이지?”

“미모로 압살.”

“이번에는 은비 언니 말이 맞다.”

“나도 찬성.”

지연이 믿었던 메시아의 최후의 양심, 엘리마저 고개를 끄덕였다.

메시아가 지연이 떠난 대기실에서 깜짝 놀란 심장을 달래고 있을 때 지연은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MC들의 멘트가 끝나고 지연의 머리 위로 조명이 켜졌다.

하얀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은 지연을 보고 팬들은 입을 틀어막았다.

“미친!”

“오늘 지연이 미모 미쳤어!”

“꺄아아악! 꺄악! 꺄아아아악!!!”

이미 지연의 채널을 통해서 피아노를 이용한 무대가 암시되었음에도 관객들은 피아노와 지연의 조합에 비명을 지르며 좋아했다.

거기에는 밤을 닮은 듯한 지연의 의상도 한몫했다.

지연이 손을 들자 환호성을 지르던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지연이 건반을 내리쳤다.

따다단! 딴 따라라!

건반 위에서 지연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편곡을 해 피아노 연주를 길게 늘린 도입부에 모두가 소리 내는 것도 잊고 홀린 듯이 무대를 바라봤다.

마치 마지막 남은 영혼의 불꽃을 불 싸지르는 것처럼 격정적인 연주를 하던 지연이 드디어 입술을 뗐다.

186. 천사의 저택에서 온 초대 (1)

[‘가요대축제’, 지연의 압도적인 퍼포먼스. ‘소름’]

[지연, ‘Alone’ 오케스트라 버전, 광기 어린 피아니스트의 연주]

[KBC ‘가요대축제’ vs SBC ‘가요대전’ SBC勝]

[SBC ‘가요대전’ 프로젝트 그룹 4인 4색 콜래보 그룹 격돌]

[사이가 오지 않은 무대를 지연이 장식하다]

[월드 스타인 지연이 연말가요제에 참석한 이유 ‘팬들을 위해서’]

[가요제를 영화제로 만들어버린 지연의 의상]

[사이, ‘2012 MBS 가요대제전’ 전격 출연]

연말 가요제가 하나씩 시작되면서 그에 관한 기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왔다.

가요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MBS 가요대제전에서는 말춤으로 유명한 사이의 출연이 예고되면서 빌보드에 이름을 올린 사이와 지연의 무대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대중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하지만,

“직접 나오는 것도 아니면서 나오는 것처럼 말하는 건 사기 아니야?”

다리가 드러난 무대 의상 때문에 다리에 담요를 둘둘 두르고 있던 지연이 사이가 출연할 것처럼 멘트를 하는 MC들을 보고 혼잣말했다.

사이는 가요대제전이 열리는 MBS 일산 드림센터에 오지 않는다.

그는 지금 현지 공연 때문에 한국에 없으니까.

MC들이 저렇게 말하는 것도 다 뉴튜브 조회수 10억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사이를 최대한 써먹고 싶었던 MBS의 수작이었다.

하여튼 방송국 놈들이란.

“지연아. 뭐라고 했어?”

“아, 언니.”

연말 가요제를 하면서 친해진 하나가 지연의 옆으로 다가왔다.

자신보다 한 살 많기도 했고, 몇 년께 정상의 자리에 있는 가수기에 편하게 말하자고 했다.

말 놓는 것도 이것저것 따져야 한다니 하여튼 이쪽도 선후배가 엄격하다니까.

똥군기 잡는 군대 저리가라였다.

“그냥 팬들은 사이가 나온다고 다들 기대하고 있을 텐데 사이는 지금 라스베이거스에 있잖아. 기사에서는 꼭 사이가 나올 것처럼 말해놨는데 이래도 되나 싶어서.”

“방송국이 그러는 거 한두 번도 아니고.”

지연의 말에 하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방송국 놈들이 장난질 치는 게 한두 번이던가.

이놈의 연말 무대도 가수로서는 말 그대로 몸을 갈아서 준비한다고 할 정도로 혹사당하는 일정인데 방송국 눈치 보느라 눈물을 머금고 출연하는 것이다.

며칠 전에 교통사고가 난 그룹에서도 부상이 심각한 멤버를 빼고 출연한다고 하질 않던가.

심지어 저기 임진각에서는 유배 간 가수들이 추위에 빨개진 코를 하고 무대 위에 선다.

괜히 연말 무대를 하고 앓아눕는 이들이 나오는 게 아니었다.

“그냥 넘겨 버려. 어차피 방송국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언제나 을이잖아.”

“우리는 둘째 치고 일반 사람들까지 호구로 보니까 그렇지.”

“지연이 넌 별걸 신경 다 쓰네.”

하나가 의외라는 듯이 지연을 쳐다봤다.

데뷔한 지 10년이 가까워지는 가수들도 방송국과의 관계에서는 언제나 을이었다.

아니지. 지연쯤 되면 우리랑 다르려나?

사이와 함께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가수이자 할리우드 배우니까 방송국에서도 한 수 접어 줄지도 몰랐다.

탑엔터가 방송국 국장도 한 수 접어주는 곳이라는 소문이 돌던데 사실일까?

하나가 혼자 생각하고 있을 때 지연이 하나의 팔을 톡톡 건드렸다.

“언니, 언니가 나갈 차례야.”

“아. 고마워. 어휴 진짜 특별무대를 도대체 몇 개나 하는 거야. 아주 지긋지긋하다.”

“그런 것치고는 무대 준비 엄청 열심히 한 거 같던데?”

“당연하지. 난 프로니까.”

하나의 말에서 자부심이 보였다.

역시 하나는 원래 이렇게 당당한 사람이었구나.

당당하고 멋지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화면에서 보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던 사람.

그러다 결국 몇 년 뒤에는 영상으로밖에 볼 수 없게 된 사람.

‘꼭 살리자.’

연말 무대를 하면서 하나와 자주 마주치고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문뜩 그녀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하나의 쓸쓸했던 마지막을 기억한 지연은 이번 생에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어차피 지금 있는 소속사와는 계약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소속사와의 계약이 끝나면 바로 우리 회사로 데려와야지.

‘에프와이의 설아와 라이트닝의 JH는 소속사에서 빼 오기 쉽지 않지만 하나는 지금부터 준비하면 충분히 빼 올 수 있어.’

다들 그렇게 안타깝게 갈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마지막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팬이 아닌 나도 그 소식을 듣고 한동안 그들의 영상을 찾아보면서 슬퍼했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구할 수 있으면 구하고 싶었다.

“그럼 다녀올게.”

“잘하고 와.”

지연이 무대를 준비하러 가는 하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 * *

드디어 기나긴 가요대제전의 끝이 다가왔다!

마지막 무대는 모든 출연진이 무대 위에 올라가 엔딩곡을 부르는 것이었다.

쏟아지는 꽃가루를 맞으며 출연진들이 시청자들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그럼 시청자 여러분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해피 뉴 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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