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6 (186/296)

꼼짝도 못하고 입을 벌리는 다른 관객들이 보였다.

자신의 노래가 만든 광경이었다.

지연은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돌아오고 나서 자신은 끊임없이 의심했다.

언제 이 선물이 사라질지 모른다.

나는 동생을 잘 챙기고 있는가.

내 행동으로 미래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내가 지한이의 누나가 아니었다면 팬들이 날 좋아해줄까?

…이 모든 게 꿈은 아닐까?

끊임없이 의심하고 행동을 조심하고, 목소리의 경고를 머릿속에 새기고, 팬들의 애정을 의심하고.

그렇게 마음의 여유 없이 살아왔던 날들이었다.

그런데 믿어도 되지 않을까?

노래가 서서히 고조됐다.

파앗-!

빠바밤 빰 빰 빰 빰-!

무언가가 폭발하듯이 빛과 소리가 한꺼번에 터졌다.

지연의 성량도 그에 맞춰 폭발하듯이 커졌다.

♬Everyone’s leaving me

Don’t leave me here-!♬

모두에게서 애정을 받고 있었는데 나만 몰랐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다 보니 저들의 애정이 눈처럼 덧없이 사라질 거라 여기고 멀리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렇게 오래 날 기다려 준 팬들이 존재했다.

나에게 애정을 보내주는 팬들이 있었다.

작은 말 한마디에 용기를 얻었다며 감사하는 후배들이 있었다.

날 위해서 움직여 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떨어져 있어도 응원해주는 동생이 있었다.

모르고 있던 내가 바보였다.

‘나는 사랑받을 만한 존재구나.’

♬소리쳐 외쳐도

목 놓아 울어도

아득한 이 공간엔 아무도 없어-ah-a-!

또 나 혼자 몸을 웅크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애절한 멜로디 위에 지연의 맑은 음색이 얹어졌다.

분명 이 세상에 혼자 남아 외로움에 파묻혀 몸서리치는 노랜데 지연의 얼굴에는 후련함이 담겨 있었다.

처절해야 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슬퍼야 하는데 어쩐지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다.

“흐윽.”

“크흐.”

어느새 관객석은 눈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가슴 속에서 솟아오른 감정이 무언인지 정확하게 정의할 순 없지만 지금 전해지는 감정만으로 어쩐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물바다가 된 객석을 쳐다보는 지연의 얼굴이 다정했다.

그 다정함에 더 오열할 것 같았다.

지연이 간주 동안 내려놨던 마이크를 다시 들어 올렸다.

* * *

지연의 컴백 무대가 있었던 KBC 음악창고 방송이 있은 후, 여기저기서 10월 첫째 주 음악 방송이 화제가 되었다.

└나 왜 우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흐르네ㅠㅠㅠㅠㅠㅠㅠㅠㅠ

└헤어, 메이크업, 코디 다 완벽했다. 이번 무대는 역대그뷰ㅠㅠㅠㅠㅠㅠㅠㅠ다 필요 없고 지연이 네가 최고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는데 계속해서 듣고 있음. 마성의 노래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지연의 무대를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 사람들이 한 무더기로 나타났다.

그 영향인지 라디오 신청곡으로 지연의 노래가 줄줄이 이어졌고, 여기저기서 눈물과 응원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그때 커뮤니티에 이 사태에 대한 분석글이 올라왔다.

[인기]나 왜 지연이 무대 보고 눈물 나는지 알 거 같음!

아시다시피 지연의 이번 노래는 Alone임. 직역하면 혼자.

뮤비에서도 지연은 혼자임

잠시 뮤비 줄거리를 말해보자면 지연이 방 안에 혼자 있고, 친구, 가족, 연인, 지인 모두가 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지연을 떠나감.

그래서 혼자 방 안에서 메말라 가는 게 Alone임.

그런데 이거 보셈.

(지연 음악창고 무대 영상)

얼굴 보임?

외로워 죽을 거 같다고 처절하게 외치는 노랜데 부르는 지연의 얼굴이 너무 다정함.

다들 그런 경험 있을 거임.

친구 사이가 잘 안 풀려서, 자신에 대한 뒷담을 들어서, 회사에서 사람 때문에 힘들어서 다들 지치고 외롭고 서러웠던 경험.

그러다가 누구 한 사람이 날 이해하고 위로해주면 ‘아 세상에 누구 하나 내 편 들어줄 사람이 있구나.’하고 안심하게 됨.

지연의 무대가 그거임.

얼굴 보임? 애정과 다정함이 가득함.

그게 꼭 외롭고 힘들지만 이 세상에 날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반드시 있다고 말해주는 거 같았음.

Alone이지만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거임.

그래서 다들 지연의 무대를 보고 우는 거임.

혼자가 아니라고 위로 받아서.

이상, 내 해석은 여기까지임.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생각하셈.

└이게맞다.

└시바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내가 우는 이유는 지연이 다정해서임.

└저렇게 다정하게 웃으면서 노래 불러주면 누가 안 우러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 씨. 어제 자기 전에 지연이 컴백 무대 영상 봤음. 그런데 새벽 1시까지 잠못자고 펑펑 울었다ㅠㅠㅠㅠ저 얘기가 꼭 나 같았는데 지연이 다정하게 웃어줘서 마음속 응어리가 풀어짐.

└나 취업 안 돼서 집에서 눈치 보면서 백수로 있단 말이야. 서류 광탈하고 면접에서 계속 떨어지고 부모님한테 미안하고 오만 생각 다 들었는데 지연이 노래 듣고 어제 펑펑 울었다. 엄마아빠 깜짝 놀라서 방에 들어옴ㅠㅠㅠㅠㅠㅠ미안하다고 하니까 엄빠가 너는 잘못한 거 없다고. 우리 딸 힘낸 거 안다고 안고 같이 움ㅠㅠㅠㅠ세상에 혼자 남은 거 같았는데 아니었다.

└└너 바라기 힘내라. 좋은 곳 취직할 거다.

└└└고마워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한 팬의 분석글은 순식간에 많은 추천수를 받아 인기글에 등록되었고, 공감한 팬들에 의해서 다른 커뮤니티에 공유되었다.

예사롭지 않은 대중들의 반응에 한 교수가 뉴스에 나와 이 사태에 대해 분석하며 화제에 불을 붙였다.

“꽤 많은 현대인들이 소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훨씬 많은 관계를 접하고 바쁘게 살아가지만 현대인은 단절된 삶을 살고 있죠. 지연의 노래, Alone이 이 부분을 건드리고 있죠. 그런데 화제가 된 이 무대를 보면 노래와 어울리지 않게 편안하게 웃고 있습니다. 이 아이러니함이 사람들을 자극한 거죠. 말로는 ‘외로워 죽겠어’라고 하고 있는데 표정은 ‘고마워, 사랑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표정 때문에 사람들은 외톨이인 자신이 위로받는 것 같은 느낌에 눈물을 흘리는 거죠.”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뒷받침해주는 주장이었다.

음악 방송을 했을 뿐인데 뉴스까지 타자 지연의 노래에 대한 관심은 끝도 모르고 올라갔다.

* * *

“그래서. 오지연 씨. 그날 무대에서 왜 그렇게 다정하게 웃었던 거죠?”

은주가 지연을 보고 물었다.

음악 방송 이후 며칠째 야근을 하게 만든 범인을 보는 은주의 눈빛이 시꺼멨다.

탑엔터 식구들을 야근지옥에 빠트린 지연이 은주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슬쩍 피했다.

“네가 그 뒤로 계속 웃는 바람에 일부러 그런 컨셉인 것처럼 되어 버렸는데 어떻게 책임질 거죠?”

“화제가 되면 좋지 않…나?”

살벌해지는 은주의 눈빛에 지연이 말꼬리를 흘렸다.

좋다고 말하기에는 직원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다들 좀비 몰골로 회사를 걸어 다니는 걸 보니 여기가 마굴인지 엔테회사인지 구분이 안 갈 지경이었다.

“음악창고 무대 할 때부터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지연이 너 요즘 분위기가 달라진 거 같다.”

“내가 뭐?”

“시선에 담긴 애정농도가 너무 높은데,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너 연애해?”

“언니 나 요즘 엄청 바쁜 거 알잖아. 그런데 무슨 연애야.”

“그건, 그렇지.”

스케줄-집-스케줄-집만 오가는 지연이기에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런 눈이야.”

“내가 무슨 눈을 했다고 그래.”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여서 어쩔 줄 모르는 눈.”

이 언니 예리하네.

역시 함께한 세월이 길어서 알아차린 걸까?

“그냥, 메시아 무대 보고 깨달은 게 있어서 그래.”

“뭘?”

“대가가 없어도 날 좋아해줄 수 있다는 거?”

“그게 무슨 아리송한 말이야. 여기에도 널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가득인데. 그 사람들은 뭐, 대가를 바라고 널 좋아해 준 줄 알아?”

“…아니.”

예전에 나는 애정에도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 이유 없이 날 좋아해 주는 사람은 지한이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심지어 지한이도 의지할 만한 가족이 나밖에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세상에는 내가 꼭 뭘 보답을 안 해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바라만 봐도, 닿지 않아도 그들은 날 소중하게 대해줬다.

그것도 모르고 난 끝까지 의심을 놓지 않았지.

그게 미안해서 앞으로 날 좋아해주는 사람들에게 다정하게 대해주기로 결심했다.

그 때문일까 최근에는 팬들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아무튼 연애라니 택도 없는 소리야.”

“알았다.”

은주의 의심을 종식시킨 지연이 손을 빠르게 움직이다가 멈추었다.

“이거.”

“아, 그거? 유철왕 PD님이 새 작품 들어간대.”

“내호생 때처럼 최 작가님이랑 함께 하네?”

“응. 두 사람 죽이 잘 맞으니까. 이번 작품도 같이 하기로 한 것 같더라.”

지연이 자신을 보고 잘 부탁한다고 말했던 두 삶을 떠올렸다.

PD랑 작가님도 날 보고 도와줘서 고맙다고 했었지.

그때를 떠올린 지연이 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이랑 또 같이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지연이 시나리오 첫 장을 살폈다.

<마피아가 너무해>

손발이 없어질 것 같은 제목이었다.

181. 너무 바빠

최근 뜨고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한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날 거 같다는 영상에 전 세계 이용자들이 호기심에 들어갔다가 넋 놓고 재생하게 되는 마성의 굴레에 빠지게 됐다.

└난 아이린의 새로운 영상이 떠서 왔는데 이건 뭐야?

└왠지 모르지만 눈물이 난다.

└난 이 영상을 보고 마음이 편해졌어.

└이 영상을 보게 된 이후로 매일을 이 영상과 함께하고 있어.

가수로서의 지연이 아시아를 넘어 전 대륙에 있는 사람도 홀리고 있을 때 지연은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 * *

“으어어.”

지연은 바빴다.

어느 정도로 바빴냐고 하면

“누나 얼마 만에 얼굴 보는 건지 모르겠어.”

한 지붕 아래 같이 사는 가족이 저렇게 말할 정도였다.

지한이랑 나랑 이렇게 따로 활동했던 적이 있었을까.

내가 앨범 활동 때문에 바쁜 사이 지한이도 인터뷰와 화보 촬영 때문에 바쁜 나날을 보냈다.

아무리 자신이 그동안 체력단련을 열심히 하고, 신에게서 축복을 받았다고 하지만 이러다가 링겔이라도 맞아야 하는 게 아닐까 정신없이 굴렀다.

“끄으응. 어억.”

“말도 못 할 정도야?”

지연이 인간의 언어도 뱉지 못하지 지한이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소파에 쓰러진 누나에게 다가왔다.

끄웅

냐아

인절미가 코로 지연을 찔렀고, 모짜가 솜방망이 같은 앞발로 지연을 톡톡 건드렸다.

제 몸을 덮친 촉촉하고 말랑한 공격에 지연이 기운 없이 늘어져 있는 와중에도 푸스스 웃었다.

“누나 요새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맨날 집에 오면 기절하듯이 자고, 잠도 몇 시간 못 자고, 밥은 제대로 먹고 다녀?”

“대충?”

“대충 먹으면 어떡해.”

지한이 누나의 대답을 듣고 속상한 얼굴로 옆에 앉았다.

메이크업을 지울 생각도 안하고 눈을 감고 있는 지연을 본 지한이 얼굴을 찌푸렸다.

“요새 왜 이렇게 무리해?”

“내가 사고 친 덕에 다들 야근했대. 그런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

“원래 우리 업계가 밤낮이 없는 업종이잖아. 누나가 아니었어도 다들 야근을 하고 있었을걸.”

“그래도…나 때문에 더 고생하는 건데 최대한 많이 도와주고 싶었어.”

“정말 그게 다야?”

지한이 예리하게 물었다.

자식, 누구 동생 아니랄까 봐 촉이 좋아.

음악창고 방송 이후 은주 언니까지 내가 뭔가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지한이가 내 변화를 모를 리가 없었다.

찌르는 듯한 동생의 걱정 어린 시선에 지연이 변명하듯이 작게 목소리를 내었다.

“그냥. 요즘 내 팬들 보니까 기다려 준 게 고맙기도 하고. 뭔가 더 잘해주고 싶어서.”

“예전에도 잘해주지 않았어?”

“그렇긴 한데 더 해주고 싶어. 팬들이랑 만날 시간을 더 가지고 싶고, 더 많이 볼 수 있게 해 주고 싶고. 아무튼 그래.”

지연의 말에 지한이 수상하다는 시선을 쏘아 보냈지만 곧 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뭘 계기로 누나의 태도가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나에게 좋은 변화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누나는 주변에 강박적이고 여유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변화한 누나는 조금 더 다정하고 자신에 향한 애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가끔 누나가 어디론가 멀리 떠나거나 정착하지 못하고 붕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제야 제대로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거 같아서 지한은 좋았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는 거 같아.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몸 생각하면서 적당히 좀 해.”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데뷔하고 나서 이렇게 나 자신을 혹사한 건 처음이었다.

내 몸을 갈아서 주변 사람들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이건 아주 먼 과거의 자신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그때는 내 한 몸 갈아서 가족을 챙겼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면 울 사람들이 많으니 내 몸 챙기면서 해야지.

나도 이제 내가 행복한 게 내 사람들도 행복한 길이란 걸 안다.

“아. 그보다 너한테 주고 싶은 게 있어.”

“뭔데?”

“이거 봐.”

지연이 주섬주섬 일어나서 짐 가방을 뒤졌다.

회사에서 보고 괜찮았던 대본을 지한이에게 보여 주려고 챙겨왔었다.

“<마피아가 너무해>? 이게 뭐야?”

“유 PD님이랑 최 작가님이 같이 하는 신작. 회사에 들어온 것 중에 너한테 제일 잘 맞을 거 같아서 들고 왔어. 사실은 내가 하고 싶었는데 요즘 너무 바빠서 난 못 할 거 같아.”

“나 보고 드라마 들어가라고?”

“런피플 말고 한국에 돌아와서 팬들한테 얼굴 보여 준 적이 없잖아. 내년 초부터는 또 드래곤 엠페러 촬영이 예정되어 있고. 해외 활동도 좋지만 국내 팬들도 잘 챙겨야 오래 활동할 수 있는 거야.”

누나의 말에 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나 나나 결국 기반은 국내 팬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알았어. 살펴볼게.”

“응. 꼭 그거 하라고 강요하는 거 아니고, 너한테 잘 어울릴 거 같아서 가져온 거야.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거 들고 오면 되니까.”

“아니야. 누나가 고른 거니까 잘 맞겠지. 읽어볼게.”

지한이 그 자리에서 시나리오를 받아들고 한 장씩 넘겼다.

슥-슥-

반쯤 감긴 눈으로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듣고 있을 때 모짜와 인절미가 지연의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옆구리가 뜨뜻하니까 더 잠 오는 거 같은데.

지연이 가물가물한 눈으로 옆에 다가온 둘을 손으로 쓸었다.

지한이한테만 맡기고 못 놀아준 지 꽤 됐지.

“얘들아. 미안. 언니가 그동안 못 놀아줬지.”

지연의 말에 아이들이 괜찮다는 듯이 머리를 지연의 몸에 비볐다.

누구 집 애길래 이렇게 착해.

기특한 녀석들.

지연이 결국 상체를 일으켜 둘을 마구 쓰다듬었다.

“오구오구. 대답도 잘 해. 착하기도 하지. 누구 집 애야. 왜 이렇게 잘 해.”

아우아오아와앙

골고로로로고로골골

애정을 담은 열렬한 쓰다듬에 지연의 옆구리에 있던 두 동물들이 봄을 맞이한 눈처럼 녹아내렸다.

이 녀석들 내일 산책은 이 언니가 해 주마.

모처럼 스케줄이 없는 날이니 내일 하루 통째로 아이들에게 내줄 생각이었다.

그때 옆에서 시나리오를 전부 다 훑어본 지한이 마지막 장을 덮었다.

“재밌는데?”

“그치? 게다가 캐릭터도 이때까지 네가 해 보지 못한 돈 많고 럭셔리한 역할이야.”

“그러고 보니 나 돈 많은 역할은 안 해 봤네.”

“아마 나이 탓이 있었을 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