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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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이야. 마벨 코믹스에서 영화 스토리와 진도를 맞출 거라고 했어.

└빨리 2편도 나왔으면 좋겠다ㅠㅠㅠㅠ마벨은 당장 속편을 찍도록 해

<리벤져스> 성공 이후 단독 히어로 영화로 주목받고 있지만 스틸맨 외에는 처음부터 주목을 받은 영웅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드래곤 엠페러에서 첫 예외를 만든 것이다.

드래곤 엠페러의 흥행성적과 반응을 보고받은 에이몬드가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거 원. 이렇게 된 이상 제작을 서두르지 않으면 큰일나겠어.”

“루카스 감독이 중요한 뭔가를 보여주려던 찰나에 영화를 끝내버렸거든요.”

“알아. 내부 시사회에서도 이대로 끝인 거냐고 다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으니까.”

“그럼 속편은 언제 제작하실 예정입니까?”

“우리가 지금 내년에 예정된 게 스틸맨과 천둥신인가?”

“그렇습니다.”

“흐음. 다음 일정을 조금씩 조절해야겠군. 회의 일정을 잡도록 해.”

“네.”

지시를 받은 직원이 방을 나서자 에이몬드가 편하게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루카스가 빨리 2편을 제작해 줘야겠는걸?”

절친한 친우를 보챌 생각에 에이몬드의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 얘기를 전하면 분명 화를 낼 게 분명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속편 제작 발표를 안 하면 전 세계에 있는 팬들이 폭동을 일으킬 거 같은 분위기였으니까.

그러게 누가 그렇게 다음 편이 궁금하게 끝을 내래?

우리도 팬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고생 좀 해 줘야겠어, 루카스.

* * *

에이몬드가 루카스에게 모든 짐을 떠넘기고 웃고 있을 때, 루카스는 자신의 미래를 직감이라도 한 듯이 몸을 떨었다.

부르르

“감독님? 감기 걸리셨어요?”

“크흠. 그게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서 그만.”

비행기 안에 있던 일행들이 몸을 떠는 감독을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돌아봤다.

한여름에 감기라도 걸린 걸까?

하지만 기침이라든가 콧물 같은 증상은 전혀 보이지 않는걸.

설마 만화처럼 누군가가 감독님 흉을 보고 있기라도 한 걸까?

그거라면 예상되는 범인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감독님 등골이 오싹한 건 팬들 때문이 아닐까요? 이거 봐요. 다들 감독님한테 다음 편 내놓으라고 하고 있어요.”

“댓글이라면 저도 봤어요. 다들 다음 편 내놓으라고 난리던걸요? 한국 팬들이 쓴 댓글도 읽어 드릴까요? 아주 창의적이에요.”

“두 사람 다 말은 고맙지만 괜찮습니다. 보나마나 2편 내놓으라고 하고 있을 테죠.”

지한의 말에 루카스 감독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끈 어그로가 성공했다는 걸 안 루카스 감독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욕먹을 걸 알면서도 좋아하다니.

감독님은 변태였구나.

지연이 감독에게서 몸을 조금 떨어트렸다.

아주 미세했지만 감독과 거리를 벌린 지연이 문득 떠오른 말을 뱉었다.

“그런데 다들 왜 우리랑 같이 가는 거예요?”

드래곤 엠페러팀은 지금 홍보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이었다.

우리는 집이 한국이라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왜 같은 비행기 안에 있을까.

지연의 질문에 감독과 그 근처에 앉아있던 두 배우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야 물론 지한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서지!”

“이번 주 토요일이 지한의 생일 아닙니까. 지한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가는 겁니다.”

“맞아! 로드리오의 말대로야!”

“이번에는 나도 초대해주기로 한 걸로 기억합니다만 틀렸습니까?”

“아니요! 감독님도 초대하는 거 안 잊었어요!”

또다시 살벌해지는 감독의 얼굴을 본 지연이 잽싸게 대답했다.

감독님 은근히 자길 빼고 우리끼리 뭘 하는 거 싫어하시는구나.

팀원들 사이에 끼고 싶어 하는 팀장님 같은 느낌이다.

저 사람들을 데리고 또 서울 관광을 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잠깐 불안해진 지연이 앞에 앉은 영훈을 콕콕 찌르고 물었다.

“영훈 오빠. 우리 11일에 일정 있어?”

“아니. 없어. 너희들 생일에 스케줄 넣었다가는 바로 사장님이랑 면담이야.”

상상만 해도 끔찍한지 영훈의 얼굴색이 조금 창백해진 것 같았다.

느낌이 아니라 진짜 창백한가?

평소보다 더 퀭한 것 같은 영훈의 얼굴에 지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빠 괜찮아?”

“하하하. 괜찮아.”

안 괜찮아 보인다.

하긴 은주 언니를 두고 혼자 우리 둘을 케어하고 있으니 고생 많았지.

영훈 오빠도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는 홍보 일정은 처음이었지?

빨리 조직개편이 끝나야 영훈 오빠 안색이 돌아올 텐데.

회사에서는 은주 언니 실장 승진을 포함해 조직을 개편하는 중이었다.

지한이랑 날 담당하는 팀이 확실하게 구분되고 인사이동과 인수인계 등으로 정신이 없어서 미국 홍보 일정은 영훈 오빠 혼자 담당했다.

물론 미국에는 애런이 있으니까 업무적으로 크게 힘들지는 않았지만 몇 개 주를 돌아다녔으니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거다.

“하하하하하하. 그래도 나는 정말 기뻐. 지연이 네 첫 영화가 대박을 쳤잖니. 지한이도 마벨 히어로를 맡아 훌륭하게 인지도를 넓히고 있으니 나는 행복해. 하하하하.”

“행복한 거 맞아?”

“하하하하하. 물론이지. 너희들 데리고 전국 일주를 하다못해 세계 일주까지 했지만 난 행복해.”

“그래도 출장 수당 나오니까 힘내.”

“차라리 출장비 안 받고 한국에서 일하는 게 낫다.”

영훈이 정색하고 대답했다.

비행기 타고 이동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게다가 난 아직 신혼이라고.

내 와이프보다 너희랑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

“아무튼 지한이 생일이랑 그다음 날에는 너희 둘 다 스케줄 빼놨다. 지금 같은 시기에 두 사람 일정 빼는 게 얼마나 무리한 일이란 건 잘 알고 있지?”

“에이. 우리 그렇게 빡세게 일 시키는 곳 아니잖아.”

“다른 애들은 일이 없어서 안달이라는데 너희는 일이 들어오는데도 거절이냐.”

물론 그래도 작품 보는 눈이 좋아서 하는 것마다 대박을 터트리니까 회사에서도 잡음이 안 나오는 거지만.

특히 지연이는 회사에 들어오는 시나리오를 검토해서 분류해주는 일도 도와주고 있으니 불만이 나올 리가 없었다.

나는 이렇게 일해도 부족한데 누구는 하고 싶은 일만 해도 칭찬받네.

더러운 세상!

과로와 피로에 찌든 직장인이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세상을 저주했다.

“아무튼 이렇게 바쁜 시기에 휴일 이틀 빼주는 대신 돌아가면 바로 컴백 준비 하는 거다?”

“알았어.”

영훈 오빠의 창백한 얼굴을 보니 불쌍해서라도 열심히 해야겠다.

두 사람이 구두합의를 맺고 있을 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루카스 감독이 끼어들었다.

“두 사람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는 겁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 컴백 일정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어요.”

“컴백? 아! 지연은 원래 가수였죠.”

“맞아요. 가수가 본업이에요.”

“아니지. 누나 본업은 이제 배우야.”

“누난 아직 둘 다 할 거다.”

지한이 끼어들어 전직시키려고 했지만 지연이 재빨리 저지했다.

어디 은근슬쩍 배우로 도장 찍으려고.

지연이 방싯 웃고 있는 동생을 흘겨보았다.

“하하. 두 사람 사이가 좋군요. 그런데 영훈. 지연의 활동은 얼마나 이어집니까?”

“10월에 컴백해서 방송활동 하고 나면 바로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연말 시상식 무대를 준비할 겁니다. 시상식이 끝나면 휴식기를 가질 예정이고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휴식기는 짧게 가지겠네요.”

“…네?”

루카스의 말에 영훈이 얼빠진 소리를 뱉었다.

휴식기를, 짧게, 왜?

얼떨결한 영훈의 얼굴을 본 루카스가 웃는 얼굴로 폭탄을 터트렸다.

“에이몬드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2편 제작을 서둘러 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예, 예?”

“이번에는 CG를 많이 안 썼지만 2편에서는 드래곤 모습도 나올 예정입니다. 후반 작업이랑 촬영 기간도 모두 늘어날 겁니다.”

“에에?”

“이미 퀸즈 에이전시에 연락이 갔겠지만 아마 겨울부터 촬영할 거 같은데…다행히 지연의 일정이 없을 때 시작하겠군요.”

“예에에?”

“에이몬드가 리벤져스 촬영 때 에반을 합류시키고 싶어 하는 거 같아서 리벤져스 일정 전까지는 촬영을 끝내고 싶습니다. 내년 상반기부터 촬영, 괜찮으시죠?”

“예에에에에!?”

영훈이 결국 얼빠진 비명을 질렀다.

오빠 머릿속에서 앞으로 쏟아질 스케줄이 엉망으로 헝클어지는 게 보였다.

아아, 어쩐지 이번에도 많이 못 쉴 거 같은데?

20살이 된 이후 모터라도 단 듯이 일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나는 워라밸을 지키고 싶은데.

앞으로 쏟아질 일에 넋이 나간 영훈의 뒤에서 지연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 * *

지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던 세 사람은 자연스럽게 우리 집에 머물렀다.

귀국하고 며칠 뒤 지한의 생일 파티가 조촐하게 열렸다.

내 생일 때 직원들이 미리 지한의 생일 축하인사를 하기도 했고, 내 생일과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또 한 자리에 모이는 건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다만 거창한 자리가 아닐 뿐이지 다들 선물은 제때 건네줬다.

나도 이번에는 지한의 치수에 맞게 고급 양복을 구매해서 선물했다.

내 생일 때 받은 거에 비해서 초라한 것 같아 내년 생일 땐 힘을 빡 줄 생각이다.

루카스 감독님은 안타깝게도 2편 제작을 서둘러야 해서 지한의 생일을 축하만 해 주고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남은 두 배우는 여기서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이야. 여긴 파파라치가 없어서 좋다니까.”

“그런 것치고는 집 밖을 별로 안 나간 것 같습니다만.”

로드리오의 말은 사실이었다.

테라스에 해변처럼 긴 의자를 펴고 드러누운 케이티는 좋은 말로 표현해도 한량 같았다.

낯선 외국인에게서 익숙한 백수의 모습이 보이다니.

케이티 한국물이 많이 들었구나.

인터뷰를 하러 지한이 집에 없는데도 두 사람은 편안한 얼굴이었다.

“두 사람 다 수박화채 했으니까 먹으러 들어와.”

“지금 간다앗!”

“뛰지 마십시오.”

이 집에 사는 동물들도 잘 안 하는 짓을 하는 케이티에게 로드리오가 한숨을 내쉬며 경고했다.

어째 로드리오는 점점 케이티의 보모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혹시 두 사람…?

아니다. 정신 차려 오지연.

네가 나이 먹어간다고 아줌마처럼 젊은 남녀가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짝을 지어줄 생각을 하지 말란 말이야.

지연이 고개를 털며 불순한 생각을 털어냈다.

“맛있다!”

“고맙습니다. 지연은 정말 요리를 잘하는군요.”

“이 정도는 요리라고 할 수도 없지. 그리고 로드리오는 언제까지 그렇게 딱딱하게 말할 거야? 우리 이제 친구 아니야? 나보고는 편하게 대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으면서.”

“친구 맞습니다. 다만 제가 이게 더 편해서 그렇습니다.”

본인이 그게 더 편하다면야.

어쩔 수 없지.

지연이 로드리오의 말투 교정을 포기하고 수박을 포크로 찍어 먹었다.

다 같이 화채를 즐기고 있는 동안 지연은 회사에서 가져온 종이뭉치를 살폈다.

콘티를 보던 지연은 주위를 기웃거리는 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친 케이티가 후다닥 시선을 내리더니 다시 힐끔거렸다.

‘이게 뭔지 궁금한 건가?’

그냥 보여 달라고 하면 될 텐데 어설프게 엿보려고 하는 게 귀여웠다.

꼭 주인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기웃거리는 강아지 같았다.

생긴 건 도도한 고양인데 하는 짓은 영락없는 개군.

이게 바로 개냥이라는 건가.

“케이티, 할 말 있어?”

“지연! 뮤직 비디오 찍는다면서?”

두 사람이 우리 집에서 멋진 여름휴가를 보내는 사이 벌써 뮤직 비디오 촬영 일정이 나왔거든.

마스터링도 다 끝났는데 여기는 매튜에게서 작곡을 배운 지한의 도움이 컸다.

황 팀장님이랑 같이 작업하고 막힐 땐 매튜에게 전화도 걸더라고.

매튜가 전화를 안 받으면 에릭한테 직접 전화하더라.

“응. 9월 둘째 주에 찍을 예정이야.”

“얼마 안 남았네? 다다음 주잖아?”

“맞아. 그래서 지금 콘티 보고 있었어.”

“그게 콘티야?”

“케이티도 볼래?”

“좋아!”

케이티가 지연이 건넨 콘티를 보았다.

한 장, 한 장 종이를 넘겨 가며 진지한 얼굴로 스토리를 확인한 케이티가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지연! 나 이거 해 봐도 돼?”

“주인공을 떠나가는 친구 말이야?”

“응!”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이던 사람들이 멀어지는 건데 케이티 너는 누가 봐도 외국인이잖아?”

외국인 학교를 다니지 않는 이상 케이티가 내 오랜 친구라는 사실은 위화감을 들게 할 테니까.

지연의 말에 아쉬워하던 케이티가 곧 장난기 어린 얼굴로 외쳤다.

“혹시 이거 인종차별!?”

“케이티. 농담으로도 그런 말 하는 거 아닙니다.”

“미안.”

로드리오 네가 고생이 많다.

아무리 봐도 로드리오가 촬영이 끝날 때쯤 케이티의 보모가 되어 있을 것 같다.

꾸중을 들은 케이티가 다른 걸 요구했다.

“그럼 노래 들려줘!”

“케이티….”

로드리오가 잠시 머리가 아프다는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이러다 로드리오가 쓰러질 거 같아서 지연이 흔쾌히 대답했다.

“괜찮아. 노래 한 번 해 주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그래도 아직 미공개 곡인데 이렇게 불러줘도 되는 겁니까.”

“친구 사이에 이 정도쯤이야.”

“지연의 친구가 되길 잘했네요.”

“나도 나도!”

두 사람이 너도나도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나도 두 사람이 있으니까 더 재밌는데?

“크흠. 그럼 짧게 할게.”

케이티와 로드리오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지연의 입을 주목했다.

“창문 틈 사이로 빛이 보여

또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고 있어.”

한국어로 된 가사였지만 지연의 목소리를 타고 뜻이 전해지는 것 같은 느낌에 케이티가 눈을 감았다.

178. 음악 방송을 하는 이유

음악 방송.

많은 가수들이 출연해 자신의 곡을 부르는 방송을 뜻하는 말이다.

지상파 3사에 전문 음악 방송 프로그램이 있고, 케이블에도 프로그램이 있다.

이 음악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줄을 선 가수들은 끝도 없이 많았고, 선택받은 소수의 가수들만이 방송에 출연할 수 있었다.

옛날에는 힙합, 발라드, 트로트 등 여러 장르의 가수들이 출연했지만 2010년에 들어서는 거의 아이돌 음악이 중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 번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일어나 헤어, 코디, 메이크업을 받고 리허설과 사전녹화 후 본방송까지 무한히 대기해야 한다.

출연료 또한 적어서 음악 방송을 하면 오히려 적자를 볼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음악 방송 출연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유는 홍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연아 내일 티저 공개야.”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네.”

머리를 하기 위해서 회사에서 자주 이용하는 헤어샵에 온 지연이 은주의 말을 듣고 폰을 집어 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드래곤 엠페러를 홍보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컴백이라니.

아 참, 내가 컴백하는 것도 보고 갈 거라고 버티던 케이티와 로드리오는 뮤직 비디오 촬영 전에 떠났다.

에이바라는 케이티의 에이전시가 전화를 걸어 당장 돌아오지 않으면 직접 한국에 찾아오겠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들은 케이티가 눈물을 머금고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끊어야 했다.

로드리오는 케이티가 간다니까 따라갔고.

역시 케이티를 한국에 혼자 두기 불안했었나 보다.

“티저라니 나도 꼭 봐야겠네. 그런데 이번엔 무슨 컨셉이야?”

지연의 머리에 염색약을 바르고 있던 헤어샵 실장이 친근하게 물었다.

이 샵을 이용한 지도 벌써 5년.

그때부터 나랑 함께해서 그런지 이런 질문도 스스럼없이 하는 사이였다.

“이번에는 계절 좀 타 보기로 했어요.”

“계절? 그럼 가을에 잘 어울리는 노래라는 말이네. 이별이구나!”

퀴즈의 정답이라도 외치는 듯이 당당하게 말한 실장을 보고 지연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그 미소를 본 실장은 자신의 궁예질이 틀렸음을 직감했다.

“아닌가 보네.”

“맞을 수도 있죠.”

“지연이 네가 그런 웃음을 짓는데 딱 봐도 틀린 거지. 역시 컨셉장인에 온갖 장르를 소화하는 네가 평범한 이별을 할 리가 없지.”

“저도 이별 노래 부를 수 있어요.”

지연의 말에 실장이 염색약을 바르면서 코웃음을 쳤다.

“이번 앨범이 정규 3집이라면서? 네가 정규 앨범 내면서 평범한 걸 도전하는 걸 못 봤다. 네 앨범은 언제나 도전이 가득했잖아. 하물며 저번에 Release 발표했을 때 너 랩 도전했었지? 그때 파격이라고 다들 얼마나 난리였는지 기억해?”

“그럼요. 기억해요.”

“그런 너니까 평범한 이별 노래를 부를 거 같지 않단 말이지. 솔직히 말해봐 이번에는 또 뭘 한 거야? 어디 가서 말 안 할 테니까 나한테만 말해주면 안 돼?”

“실장님 입 무거운 거 알죠. 이번 앨범 장르만 말해 드릴게요. 발라드예요.”

“발라드? OST도 아닌데 정규 앨범으로 발라드를 부른단 말이야?”

지연의 말에 실장이 놀란 얼굴을 했다.

솔로 가수 중에 발라드를 부르는 이들은 많았지만 지연이 정규 앨범을 발라드로 채운 건 처음이었다.

이번에 또 어떻게 우릴 놀라게 해 주려고 발라드를 선택했을까?

실장이 빨리 노래를 듣고 싶은지 몸을 들썩였다.

“실장님 약 제대로 바르고 있는 거 맞아요?”

“어멋. 호호호. 은주 씨도 참. 내가 지연이 머리하는데 실수할 리가 없잖아요. 실장 달더니 예민해졌네요.”

“어쩔 수 없어요. 지연이한테 들어오는 연락이 너무 많아서 잘라내야 했거든요. 연말까지 지연이 스케줄이 빽빽하다는 데도 왜 그렇게 연락하는지.”

은주의 말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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