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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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길 봐.”

지한이 가리킨 스크린에서 영상이 재생됐다.

내가 데뷔하기 전의 모습과 방송에 나오지 않았던 장면들이 편집되어 음악과 함께 나오고 있었다.

내 성장기를 이렇게 한눈에 보고 있으니 또 목구멍을 타고 뭔가가 울컥 올라오는 것 같았다.

“대단하지? 사장님이랑 이모 삼촌들이 가지고 있던 비공개 영상이야. 오늘을 위해서 아껴놨었대.”

“편집 엄청 잘했다.”

“지연. 너무 귀여워.”

“지연의 어린 시절은 저런 모습이었군요.”

같이 시청하던 지한과, 케이티, 로드리오가 잘 만들어진 영상을 보고 감탄했다.

[지연아 사랑해. 우리 곁에 와 줘서 고마워

-탑엔터 일동-]

아, 진짜.

지연이 뜨거워진 눈가를 가렸다.

“지연아.”

“사장님.”

주민이 지연이 앉은 테이블로 걸어왔다.

어릴 때부터 탑엔터 식구들이 보살피고 소중히 키운 아이였다.

언제 이렇게 컸지.

주민이 다 큰 딸을 본 아버지의 마음으로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생일 축하한다.”

“생일 축하해!”

“지연아 생일 축하해!”

“앞으로도 우리랑 계속 같이 가자!”

“이왕이면 내 작품도 계속 같이 골라줘!”

“선배님 지연이는 제 작품도 골라줘야 한다고요.”

“뭐, 어때. 지연아 계속 함께하자!”

“지연아 언니 결혼식 때 축가 불러주기로 한 거 안 잊었지?”

“언닌 남자부터 구해.”

“뭐, 이것아?”

“아아. 제발. 지연이 생일 축하 파티까지 와서 싸우지 말라고!”

어릴 때부터 함께했던 탑엔터 이모, 삼촌들.

승우 아저씨와 같은 소속사 배우 아저씨들.

이제는 솔로 활동을 하고 있는 헤라 언니들과 가수 언니오빠들.

돌아오고 나서 새로 사귄 인연들이 귀찮은 기색 없이 내 생일 파티에 모여 축하를 해 주고 있었다.

아, 진짜.

울 거 같아.

펑! 퍼퍼퍼펑!

그때 지연의 눈물을 감춰주기라도 하듯이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 뭐야?”

“누나 생일을 축하하는 불꽃놀이.”

지한의 말에 지연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어두운 밤하늘을 불꽃이 수놓고 있었다.

그게 마치 하늘에 핀 꽃 같아서 지연은 눈이 멀 것 같았다.

“21살이 된 걸 축하해, 누나.”

지한의 말에 지연이 옆에 있던 동생을 품에 꼭 안았다.

이제는 덩치가 커서 품에 다 안을 수 없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소중한 동생을 품에 안았다.

“고마워.”

예전이나 지금이나 네가 내 동생이라서.

“나도 생일 축하해 지연!”

“생일 축하드립니다.”

케이티와 로드리오도 끼어들었다.

한 덩이가 된 네 사람이 웃음을 지으며 불꽃놀이를 감상했다.

최고의 생일 선물이었다.

176. 개봉

[‘드래곤 엠페러’ 루카스 크루거 감독 내한]

[‘드래곤 엠페러’ 케이티 로렌스, 로드리오 산토르 7월 24일 내한]

[할리우드 영화 최초 한국 촬영! ‘본 프라임’에 강남 등장]

[여름 성수기 기대작 ‘전쟁이다’]

이번 여름에도 극장가에는 기대작들이 대거 포진해서 치열한 경쟁이 시작될 조짐이 보였다.

그중에서도 ‘드래곤 엠페러’ 지연과 지한이 출연해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고 있었다.

“이건 안 되겠다.”

“지연과 오지한이라고? 김 감독. 우리 개봉 미루자.”

두 사람의 이름 때문에 많은 제작사에서 개봉을 미루는 일이 일어났다.

관계자들이 양 떼 사이 나타난 늑대를 피해 개봉을 미루고 있을 때 팬들은 마벨과 천재 남매의 콜라보에 두 손을 모으고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 지연이랑 지한이가 같이 나오는 영화라며?”

“세상에 지연이 첫 영화 데뷔가 마벨 시리즈라니. 역시 우리 지연이.”

“어흑. 우리 애 언제 이렇게 컸지?”

“누가 네 애냐.”

할리우드에 진출한 자랑스러운 국가대표 배우인 오지한과 첫 영화 데뷔를 할리우드에서 한 지연 덕분에 한국 사람들은 없던 애국심도 솟아날 지경이었다.

오지한의 할리우드 진출 이후 많은 이들이 할리우드에 도전했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내는 이들은 극소수였다.

그런데 그 속에서도 계속해서 승승장구 하는 남매라니.

모두의 기대를 반영한 듯이 ‘드래곤 엠페러’ 시사회가 열리는 샤롯시네마 잠실점은 많은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최 기자 자네도 왔어?”

“그러는 김 기자 너도 왔잖아. 대한민국 연예부 기자는 전부 다 여기 왔을걸?”

“도대체 여기 온 사람들이 몇 명이야?”

시사회에 초대된 기자들은 한정되어 있는데 여기 모인 수는 초대객의 수보다 훨씬 많았다.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기자들이 제한되어 있어도 영화관에 들어가는 이들의 사진은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을 한 건 기자뿐만이 아닌지 배우들을 보러 온 팬들도 구름 같이 몰려들었다.

샤롯시네마 대표 장정주가 홍보팀장과 함께 바글바글한 기자들을 보고 말했다.

“내가 부른 사람들보다 많은데?”

“루카스 감독의 명성도 있지만 오지한과 지연, 두 사람을 보러 온 이들이 많습니다.”

“그 천재남매?”

장정주는 재벌가의 일원이었지만 문화 사업을 하는지라 두 남매의 천재성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아시는군요.”

“주민 형이 만날 때마다 자랑하더라고. 그거 외에도 걔들 때문에 샤롯월드를 통째로 빌린 적도 있으니 알 법하지.”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응. 그 집도 참 특이하지? 피도 안 이어진 애들인데 제 새끼처럼 싸고돈다니까?”

피가 이어져도 원수처럼 물고 뜯는 샤롯 집안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하지만 우연서 홍보팀장은 꾹 참고 그 말을 뱉지 않았다.

무릇 상사 앞에서는 바른 말을 자제하는 게 좋았다.

멋진 직장인인 우 팀장이 노련한 사회인의 가면을 쓰고 있을 때 한 기자가 외쳤다.

“저기 온다!”

개미 떼처럼 모여 있던 기자들도 끊임없는 수다를 떨던 장 대표와 한 귀로 상사의 말을 흘리고 있던 우 팀장도 누군가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하안 밴이 천천히 들어왔다.

꺄아아아아아악!!

찰칵찰칵찰칵

아직 사람이 내리지도 않았건만 기자들은 이미 카메라를 대포처럼 들고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차가 정차하고 안전 요원과 개인 경호원들이 먼저 길을 정리했다.

길이 정리되자 차 문이 열렸다.

여름은 맞이해 시원한 하늘색 셔츠에 하얀 바지를 입은 지한이 차에서 내렸다.

바다를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은 형상에 눈에 불을 켜고 있던 팬들과 기자들이 잠시 주춤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 좋은 기삿거리를 놓칠 수 없던 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악!!!!!

“오지한이다!”

“오지한 씨! 여기 봐 주세요!”

“관객 수 얼마를 예상하십니까?”

“이번에 영화에서 주연을 맡으셨는데 촬영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아직 차에서 사람이 다 내리지도 않았는데 질문을 퍼부었다.

기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한마디라도 담아가기 위해서 마이크를 쥔 손을 쭉 내밀었다.

쉴 새 없이 터지는 플래시와 놓치지 않겠다는 강렬한 욕망이 담긴 눈빛에 지한은 여유롭게 웃었다.

찰,칵찰칵,찰칵

그 웃음을 뷰파인더로 보고 있던 기자들이 눈이 멀 것 같은 미소에 잠시 셔터 누르는 멈출 뻔했지만 다행히 문제없이 취재가 계속됐다.

폭풍처럼 밀려드는 질문에 지한은 대답하는 대신 안쪽을 향해서 손을 내밀었다.

지한이 내민 손을 잡고 지연이 차에서 내렸다.

하얀 블라우스에 크림색 스커트를 입고 프랑수와의 액세서리를 착용한 지연은 눈부셨다.

꺄아아아악!!

“우와아.”

“더 예뻐진 거 같은데?”

“수술한 거 같진 않지?”

“우리가 연예부 경력 한두 해냐? 저 얼굴은 자연산이야.”

완연한 성인이 되어 물이 오른 지연의 미모를 본 이들이 취재하던 것도 잊고 감탄했다.

나란히 서 있는 둘을 보니 그야말로 눈이 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건 장 대표도 다르지 않았다.

“주민 형이 싸고돌만하네.”

“대표님 입에 먼지 들어가겠습니다. 표정 관리 하시죠.”

“아. 어흠.”

체통을 잃고 입을 벌리고 있던 대표의 체면을 우 팀장이 지켜줬다.

시사회에 와 있던 이들이 남매를 보는 사이 차에서 케이티와 로드리오, 루카스 감독이 차례대로 내렸다.

#우리가 내린 걸 모르는 거 같죠?#

#하하 한국에서 두 사람이 유명하다고 했지만 저렇게 잘나갈 줄은 몰랐습니다.#

#감독님, 할리우드에서도 저 둘은 이미 유명합니다.#

#로드리오의 말이 맞아요. 지한뿐만 아니라 지연 역시 이미 할리우드에서 주목받는 배우예요.#

#이번 영화가 개봉하면 더 유명해지겠군.#

다른 이들이었다면 모두의 관심에서 소외되어 화가 날 만하지만 세 사람은 흐뭇한 얼굴로 플래시 세례 속에 있는 남매를 지켜봤다.

사람을 홀리는 구미호처럼 매력적인 두 사람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기자들이 차에서 내린 두 배우와 루카스 감독을 발견한 건 조금 더 후의 일이었다.

* * *

자칫하면 한국에서 세계적인 할리우드 거장이 홀대받았다는 기사가 날 뻔했지만 다행히 아무 일 없이 시사회가 시작됐다.

시간이 되자 초대받은 이들이 영화관 안으로 들어왔다.

조용한 영화관 내부에 들어와 드디어 관심에서 조금 벗어난 드래곤 엠페러 팀이 잠시 한숨을 돌렸다.

“이제 좀 살 거 같다.”

“케이티 괜찮아? 여기 물 좀 마셔.”

“고마워.”

“내가 팝콘 사 왔어. 한국에 왔으면 캐러멜 팝콘을 꼭 먹어 줘야지.”

“먹고 운동을 한 세트 더 해야 할 거 같은 조합이군요.”

“꽤 맛있어. 로드리오도 먹어 봐.”

“잘 먹겠습니다.”

생일 이후로 부쩍 친해진 네 사람이 편하게 대화를 하자 루카스 감독이 서운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거 원. 어째 네 사람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 더 친해진 것 같습니다.”

“앗! 감독님 그게 아니라요.”

“알고 있습니다. 제가 없는 사이 다 같이 유람선 파티를 즐겼다면서요?”

“지연의 생일이 16일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16일이라면 저도 시간이 비었는데 아쉽군요.”

“…다음에는 감독님께도 꼭 연락하겠습니다.”

“감독님 지한이 생일이 8월이에요. 그때 시간이 되세요?”

“그때는 무슨 수를 써서든 꼭 가겠습니다.”

루카스 감독이 촬영할 때처럼 날카로운 얼굴을 한 채 말했다.

생일파티에 참가한다는 말을 무슨 NG가 수십 번 난 것 같은 얼굴로 말하신데.

우리끼리만 파티해서 서운하셨나?

지연과 지한이 다음에는 감독님도 챙기자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드래곤 엠페러팀이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지고 있을 때 영화관 내부 조명이 어두워졌다.

“시작하나 보다.”

웅성웅성하던 영화관이 조용해졌다.

커다란 스크린에 배급사와 제작사의 로고가 뜬 뒤 화면이 서서히 밝아졌다.

[아아아아악!!!]

누군가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

예상치 못한 비명에 객석 여기저기에서 몸을 들썩이는 게 느껴졌다.

비명이 들린 뒤 화면이 움직이더니 불바다가 된 세상이 나타났다.

화면이 밝아진 건 거세게 번지고 있던 불 때문이었다.

[잡아!]

[놓치지 마!]

괴한의 외침에 화면이 바뀌었다.

[허억, 허억.]

사사사삭

아직 어린 아이들의 거친 숨소리.

높이 자란 풀이 스치는 소리.

등 뒤를 쫓는 괴한들의 발자국 소리.

긴박한 상황에 관객들은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침을 삼켰다.

[찾았다!]

[여기다!]

등 뒤에서 들린 소리에 아이가 뒤를 돌아봤다.

검은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제 더는 도망갈 곳은 없다.]

등 뒤는 높은 절벽, 눈앞에는 검은 옷을 입은 괴한.

아이는 선택을 해야 했다.

[에반.]

그때 아이의 앞으로 가녀린 등이 나타났다.

자신의 손을 꼭 붙잡고 있던 마지막 남은 가족이었다.

[누나….]

[내가 신호하면 뛰는 거야.]

누나의 말에 에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오는 검은 옷의 괴한들에 남매가 벼랑 끝으로 몰렸다.

더는 갈 곳이 없어졌을 때, 에반의 누나가 외쳤다.

[지금!]

[잡아!]

남매는 뒤를 돌아 거친 파도가 치는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파도가 남매를 삼켰다.

그 모습을 절벽 위에서 지켜보던 괴한 중 한 명이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쫓는다. 반드시 ‘하트 스톤’을 손에 넣어야 해.]

괴한들이 절벽에서 물러났다.

화면이 움직여 거칠게 부딪치는 파도 아래로 내려갔다.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남매가 보였다.

꼭 잡은 남매의 손에서 오색찬란한 빛무리가 새어나왔다.

어두운 바닷속으로 남매가 사라지고 화면 위로 날카로운 로고가 떠올랐다.

[Dragon Emperor: awakening]

* * *

긴박했던 초반부가 지나자 평화로운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에반! 농구하자!”

“그래!”

“에반. 오늘 학교 끝나고 뭐 할 거야?”

“아르바이트.”

“에반 도와줘! 멤버 한 명이 다치는 바람에 기타리스트가 한 명 필요해.”

“기타면 마이크야? 어디 안 다쳤대? 알았어, 도와줄게.”

미국의 작은 마을. 전교생도 적은 에반스 스쿨에서 제일가는 인기스타인 에반의 곁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에반은 잘생기고 운동신경도 좋고 공부도 잘하는 만능천재였다.

마을에서 에반 혼자 다른 세상에서 사는 이 같았다.

에반이 다른 때와 다름없이 알바를 하고 대타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이대로 집에 가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은 다음 컴퓨터 앞에 앉는다면 평소와 똑같은 하루가 되었을 것이다.

그럴 것이었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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