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아웃 소식에 멤버들은 패닉에 빠졌고,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연과 지한은 멤버들이 정신을 차릴 틈을 주지 않았다.
촤아악!
[지한이 너, 설마!?]
[죄송해요, 형. 안녕히 가세요.]
후후의 이름표는 센서를 발견해 후후가 끄고 있을 때 지한이 제거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이 센서를 끈 척 공을 가로채기까지.
-훌륭하다. 누구한테서 배웠는지 모르지만 아주 잘 컸어!
└당연히 우리 지연이지요.
└어쩐지. 그래서 그런지 인사성도 밝더라니.
└가시는 길 편안하라고 손까지 흔들어주는 거 봐. 과연 내 남자.
└└누가 네 남자야. 내 자기거든?
└└뭐래. 지한이 지금 내 옆에서 자고 있는데.
└└└지연이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곧바로 지한은 다시 광해와 합류했다.
[형. 스파이 누구일 거 같아요?]
[나는 주석이 형.]
[주석이 형이 이런 거 잘해요?]
[형이 스파이 경험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야.]
[그렇구나.]
광해에게 경험담을 듣는 척 훌륭하게 스파이 혐의를 다른 사람에게 씌우는 지한을 보고 팬들이 열광했다.
지한이 내부에서 멤버들을 분열시키고 지연이 외부에서 멤버들을 사냥했다.
[어? 저기?]
구리가 복도 끝을 돌아 사라지는 지연의 뒷모습을 보고 쫓아갔다.
긴 머리칼과 함께 살짝 보였던 이름표.
게스튼가?
조심스럽게 코너를 돈 구리는 방금까지 보였던 의문의 여인이 안 보이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복도 끝으로 향했다.
스윽
그때 근처 객실 안에 숨어 있던 지연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살금살금 다가간 지연이 구리의 이름표를 빠르게 낚아챘다.
촤아악!!
[뭐야! 너?! 지연이!]
[안녕하세요, 선배님. 처음 뵙겠습니다.]
[너 왜 여기 있어?]
[자, 구리 씨 감옥으로 가시겠습니다.]
[잠깐만요!]
[안녕히 가세요, 선배님.]
지연이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더라도 결국 스파이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었다.
서서히 조여 오는 포위망에 지연이 결단을 내렸다.
두 번째 미션의 보상은 바로 가드의 도움을 받아 딱 한 명을 붙잡을 수 있는 호출권이었다.
지연이 붙잡은 사람은 당연히 종근이었다.
[뭐야, 이거!]
[종근아!]
가드들 4명이 겨우 달라붙어 종근을 붙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유주석이 당황하는 사이 커다란 가드 뒤에 숨어 있던 지연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어, 어어! 지연아!]
[선배니임!]
[형! 지연이가 스파이었어!]
당황한 주석이 몸을 잽싸게 피했지만 지연은 생각보다 더 유연했다.
몸을 트는 주석의 옆구리를 몸을 낮춰 파고들어 순식간에 이름표를 붙잡았다.
촤아악!
[형!]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안녕히 가세요, 선배님. 그리고, 처음 뵙겠습니다, 종근 선배님.]
[지연아 아니 잠깐만 있어 봐.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주석을 배웅한 지연이 등을 돌렸다.
예의 바르게 말했지만 지연의 얼굴은 싸늘하기만 했다.
서서히 지연이 한 걸음씩 종근에게 다가갔다.
체구와 힘이 비교되지 않을 상대였지만 종근이 지연에게 압도되어 움찔했다.
[안녕히 가세요.]
[잠,]
촤아악!
지연이 런피플의 능력자 김종근을 제압했다.
옆에 있던 스태프들의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새어 나왔다.
그 뒤 화면이 바로 광해와 지한이를 비췄다.
두 사람의 아웃 소식을 들은 지한의 입에 삐뚜름한 미소가 걸렸다.
앞서 있는 광수의 이름표를 보는 지한의 눈이 싸늘했다.
촤아아악!!
[뭐야.]
[죄송해요, 형.]
지한이 웃으며 광수에게 손을 흔들었다.
스파이 남매들의 승리였다.
* * *
억울한 멤버들이 리벤지를 노리는 클로징을 마지막으로 방송이 끝났다.
힐끗 본 게시판은 아우성이 가득했다.
이 정도면 잘한 거 맞지?
“재밌었다. 그치?”
“응.”
코톡!
“어? 사장님한테 코톡 왔다.”
“뭐래?”
“우리 우승한 거 축하한대. 사장님도 이름표 뜯기 하고 싶대.”
“다음에 같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해 줘야겠다.”
“그거 좋다. 요즘 사장님 연세가 있으셔서.”
주민이 들었으면 분명 슬퍼할 말이었다.
172. 앨범 준비
[런피플 ‘지연, 오지한 편’ 자체 최고 시청률 갱신!]
[런피플 24.1% 기록. 주말 예능을 이끄는 쌍두마차]
[‘런피플’ 할리우드 스타의 등장에 멤버들 환호]
[유주석, 할리우드 스타와의 친분? 오지한 ‘처음 뵙겠습니다.’]
[런피플 지연, 오지한 등장. 런피플을 접수하러 온 게스트의 대활약]
[‘런피플’ 지연 오지한 친절한 킬러로 변신 ‘예능감 폭발’]
<애니멀팜> 이후 처음으로 남매의 동반 출연한 예능이다 보니 화제성이 남달랐다.
작품 홍보차 나온 것도 아니었지만 그동안 예능에서 얼굴을 보지 못했던 지연과 지한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대중들의 시선이 집중된 탓이었다.
덕분에 런피플이 방송했던 일요일 다음 날인 월요일 오전부터 남매에 대한 관심으로 이곳저곳이 떠들썩했다.
“너희들 어제 런피플 봤어?”
“봤지! 지연이랑 오지한이 입고 나온 옷 봤어? 나 그거 사려고 엄마한테 용돈 달라고 졸랐잖아.”
“나도 사고 싶던데.”
“오지한이랑 김종근 싸우는 거 봤어? 너무 멋져~!”
“봤지봤지! 복근 봤냐?”
“꺄아아아아악!!!!”
학교에서도
“탑엔터에 문의 넣은 건 어떻게 됐어?”
“아직 답변이 없습니다.”
“빨리 전화해 봐. 이번 광고는 다른 곳에서 채가기 전에 지연과 오지한 둘 다 잡는다!”
“그럼 광고비는 어떻게 할까요?”
“최고로 불러야지!”
회사에서도
“지연이랑 오지한 차기작은 어떻게 됐어?”
“차기작 소식은 없습니다.”
“없으면 빨리 우리 작품 넣어야지!”
“네, 넵!”
“우리 3, 4분기 스케줄이 어떻게 되지?”
“이미 픽스 된 것도 있습니다.”
“그거까지 포함해서 두 사람이 들어갈 만한 대본은 싹 다 가져와!”
방송국에서도
“우리도 오지한이랑 지연 둘 다 있음 좋을 텐데.”
“아서요. 다큐 주제에 두 사람 다 출연해 달라고 하는 건 사치예요.”
“많은 거 안 바란다. 한 명만이라도 잡게 해 주세요.”
“탑엔터로 시나리오 보냈습니다!”
“제바알~!”
“한 기자! 두 사람 오늘 스케줄 뭐야!”
“없습니다!”
“그럼 집 앞이든 탑엔터든 뛰어 가지 않고 뭐 했어?!”
이곳저곳에서 전부 남매를 잡기 위해서 혈안이었다.
그리고 지금 바깥세상이 어떻게 되든 말든 둘은 모처럼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피휴우
도로롱
옆구리에 코를 고는 반려견과 반려냥을 낀 둘이 부드러운 러그가 깔린 거실 한복판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거실 한 면을 차지한 커다란 창도 레이스 커튼에 가려져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가족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그때 평화로운 한때를 방해하는 벨소리가 울렸다.
♬♪♬
“끄응.”
“누나아…전화.”
벨소리를 듣자마자 지연의 전화라는 것을 안 지한이 눈을 뜨지 않고 지연을 불렀다.
반쯤 잠에서 깬 지연이 느리게 눈꺼풀을 들었다.
끔뻑끔뻑
“끄으응….”
지연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 자신의 휴대폰을 찾았다.
폰을 찾아 전화를 받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연아!
“은주 언니?”
-미안. 자는데 깼어?
“아니야. 무슨 일이야?”
-너 다음 앨범 회의 때문에 불렀지.
“내 앨범?”
내 앨범을 벌써 준비한다고?
작년에 데뷔한 애들 컴백 활동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나랑 같이 준비해도 되는 건가?
“언니, 메시아 애들은 어쩌고?”
-걔들 다음 앨범도 내야지. 9월에.”
“그럼 나는?”
-너는 10월 예정이야.
“아항. 조금만 겹치겠네. 그런데 데뷔한 지 얼마 안 되는 애들 앨범을 그렇게 늦게 준비해도 돼?”
-그건 걱정 마. 신인 아이돌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 잡아뒀으니까.
신인 아이돌 그룹이 앨범을 준비하는 기간은 대략 3-6개월
전부 대중들에게 잊히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
아무튼 같은 회사 후배에게 문제를 안 준다면 다행이었다.
앨범 활동을 안 한 지도 꽤 오래됐고.
은주 언니는 원래 가수팀이니까 본업(?)으로 활동할 때도 됐지.
“알았어. 나 데모곡 확인하러 가면 돼?”
-괜찮을 때 회사에 한번 들러.
“네에.”
-그래. 그럼 조금 더 자.
“으응.”
은주가 아직도 잠이 묻어 있는 지연의 목소리를 듣고 먼저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지연이 다시 휴대폰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러그 위에 누워 있는 가족들을 보았다.
자신이 빈 자리가 서늘했는지 인상을 찌푸리는 모짜와 지한이가 보였다.
꿈틀꿈틀
앞발을 움직여 뭔가를 찾는 것 같은 몸짓에 지연이 졸린 와중에도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지연이 둘 사이로 다시 몸을 눕혔다.
…왜애옹옥
“나 여기 있어. 더 자.”
지연이 모짜를 옆구리와 팔 사이 끼었다.
누나의 기척을 느낀 지한이 눈을 감은 채 입만 열었다.
“은주 누나가 뭐래?”
“새 앨범 들어갈 거래.”
“그렇구나아.”
“내일 가 봐야겠다.”
“같이이.”
“그래. 혼자 안 갈게.”
“으응.”
“더 자자.”
“으응.”
피곤한지 말꼬리를 늘어트리는 동생을 보고 지연이 다른 손을 들어 배를 토닥였다.
그 손길에 웃는 건지 낮게 진동하는 뱃가죽이 손바닥으로 느껴졌다.
지한의 배를 토닥이던 지연의 손길이 서서히 느려졌다.
잠시 후, 따뜻한 온기가 감돌던 거실에는 다시 조용한 숨소리 4개만 들렸다.
* * *
“지연아 왔어?”
“네.”
“지한이도 왔구나.”
“누나 앨범이니까요.”
“역시 그렇지?”
은주가 흐린 눈으로 지한을 보았다.
그동안 지연의 앨범 제작에 사사건건 참견했던 지한이기에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이번 앨범의 주역과 이번 앨범의 최대 난관이 동시에 왔다.
은주가 닳고 닳은 미소를 띠고 둘을 데리고 움직였다.
“그래. 일단 이쪽으로 와.”
“네에.”
“누나. 우리 회의실로 바로 가요?”
“응. 다들 와 있으니까.”
은주의 말에 둘이 조금 낭패한 얼굴을 했다.
말한 시간보다 30분 일찍 왔는데 다들 우릴 기다리고 있다고?
“우리가 좀 늦었나?”
“일찍 온다고 온 건데.”
“그게 아니라, 다들 네 앨범 준비 때문에 잔뜩 기대해서 그래. 알다시피 요새 가수실 성적이 썩 좋지 않잖아?”
“아.”
“아.”
은주의 말에 둘이 동시에 탄식을 뱉었다.
MAX와 헤라의 명성을 이어받은 아이돌 그룹은 성공했으나 최근에 론칭한 새 아이돌 그룹은 그 명성을 이어받지 못했다.
이쪽 시장이 레드 오션을 넘어서 피바다가 된 덕에 선배 그룹의 명성에도 성공하기가 점점 쉽지 않아졌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메시아는 꽤 괜찮은 애들인데 생각보다 반응이 잘 안 나왔다.
기대치가 너무 높았나?
고민하는 탑엔터의 기둥들을 보고 은주가 부담을 팍팍 실어줬다.
“그래서 지연이한테 다들 기대하고 있어. 솔직히 연기 활동이 계속 이어져서 가수 그만두고 아예 배우로 전향하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니까.”
“언니 꼭 하나만 해야 해? 나 둘 다 하면 안 돼?”
지연의 말에 듣고 있던 지한의 얼굴이 활짝 폈다.
어쨌든 누나가 연기를 계속할 생각이 있다는 게 중요했다.
역시 꼬드기길 잘했어.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자신이 20살이 된다.
맡을 수 있는 배역의 범위가 몇 배로 넓어질 거다.
그때 또 같이 연기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한이 싱글벙글한 얼굴을 할 때, 은주가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될 건 없는데. 둘 다 하려면 제대로 쉬긴 힘들 거야.”
“괜찮아.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그런 걸로 힘들다고 불평할 생각 없어. 다른 사람들이 쉽게 못 가지는 기회란 걸 아니까.”
“…다른 애들도 지연이 너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은주 누나. 누가 괴롭혀?”
“우린 인성 안 좋은 애들 안 뽑는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