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숨기고 멤버들의 이름표를 뜯을 최종 보스 지연
멤버들 사이에 잠입하여 최종 보스를 도울 오지한
2 : 7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멤버들과 떨어져서 혼자가 된 지한이 VJ가 든 카메라를 돌아봤다.
지한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어쩐지 조금 전과 다른 분위기에 카메라를 들고 있던 VJ가 움찔했다.
“이제 누나 나왔겠죠?”
“….”
“아아. 지금은 나 혼자지. 그럼 이제 불편한 비밀요원 행세를 할 필요가 없겠네요.”
방금까지 순진무구한 햇살 청년은 어디 가고 암흑가 조직원 같은 날카로운 청년만 남아있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오지한이 맞나?
이거 연기 한 건가?
어느 쪽이 진짜 오지한의 모습이지?
VJ와 담당 PD까지 모두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지한을 바라봤다.
조금 진지하게 연기에 들어간 걸로 놀라는 스태프들을 보자 지한이 몸에서 힘을 풀었다.
“놀랐어요? 그냥 비밀요원들 사이에 잠입한 스파이가 본색을 드러내면 어떨까 해서 잠깐 연기해 본 거예요.”
“대단하시네요….”
잠깐이라고 하지만 보는 이들 모두가 지한의 연기에 쫄았다.
연기를 그만둔 지한이 다시 처음 봤던 지한이로 돌아왔다.
이게 할리우드 스타의 연기.
이게 오지한의 연기!
과연 할리우드가 주목하는 10대 배우라고 할만했다.
침을 꼴깍 삼킨 지한의 담당 PD가 지령을 전달했다.
“이 가면을 쓰고 경매가 열리는 연회장으로 가서 보스와 합류하시면 됩니다.”
“와아. 이거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가면 아닌가요?”
“맞습니다.”
PD가 건네준 가면을 받은 지한이 하얀 가면을 받아들고 웃었다.
연회장에는 비밀 경매가 열린다고 한 거 같은데.
아무튼 누나가 있다고 하니 가 봐야겠다.
지한이 연회장으로 발을 옮겼다.
그곳에는 드레스를 입고 가면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저깄네요.”
“?”
“?”
들어오자마자 지한이 누군가를 발견한 듯이 그쪽으로 당당하게 걸어갔다.
그곳에 금실과 검은 레이스로 눈만 가릴 수 있게 만들어진 가면을 쓴 여인이 서 있었다.
“왔네.”
“늦어서 미안.”
우와….
가면에 대한 사전정보를 알려준 적이 없음에도 한눈에 보고 만난 두 사람을 보고 제작진들이 작게 감탄했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걸까?
보고 있던 이들은 멀리 있어도 혈연이라 끌리는 게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지금은 일하는 중이야. 보스라고 불러.”
“네, 보스.”
“그래. 그동안 요원들 사이에 잠입해 있느라 고생이 많았다.”
“아닙니다.”
상황에 맞춰 진지하게 대사를 하는 두 사람을 본 이들은 어느새 이곳이 예능 촬영장이 아니라 느와르 영화 속이 된 거 같았다.
제작진이 숨을 죽이고 영화 속 등장인물 같은 두 사람에게 집중했다.
“보스. 제가 무슨 일을 하면 됩니까.”
“지금 나에겐 보안 센서가 있는 곳이 표시된 지도가 있어. 그 근처에 있으면서 다가오는 멤버들의 이름표를 뗀다.”
“정보를 알아내는 데 성공하셨군요!”
지연이 사전 미션을 성공했다는 말이었다.
“그래. 스파이에 대한 거짓 정보도 같이 흘릴 거야.”
“그쪽에서 저희들을 알아내기 힘들겠네요.”
가면 아래 드러난 둘의 입술이 진한 호선을 그렸다.
이제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
“그럼, 가자.”
“네, 보스.”
접선하여 정보와 런피플 멤버들의 이름표를 뜯을 계획을 세운 두 사람이 연회장을 나섰다.
스파이의 증거가 될 가면을 품에 숨기고 두 사람은 각자의 포인트로 걸어갔다.
* * *
고요한 호텔 내부에서 런피플 멤버들이 보안 센서를 찾기 위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와. 여기 진짜 좋다. 밤에도 조명 있으니까 분위기 너무 좋은 거 아니에요?”
프로 예능인답게 호텔 홍보도 잊지 않은 광해가 조명이 켜진 호텔 야외와 카라반들을 보고 감탄했다.
카라반 구석구석까지 꼼꼼히 살피며 센서를 찾고 있던 광해의 귀에 익숙한 알림이 들렸다.
[지석준 OUT, 지석준 OUT]
“뭐? 석준이 형이? 뭐야. 이거 이름표 뜯기야?”
석준의 아웃 소식에 광해가 혼란에 빠진 얼굴로 혼잣말을 했다.
최종 미션은 센서 5개를 찾아 해제하고 비밀 장부를 찾는 거였다.
하지만 방송국 놈들 아니랄까 봐 숨겨진 미션이 있는 모양이었다.
“광해 형!”
“지한아!”
멀리서 지한이 광해를 보고 달려오는 게 보였다.
조금 전까지 반가웠지만 석준의 아웃 소식과 함께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게스트였다.
“가까이 오지 마!”
“광해 형?”
“석준이 형이 아웃 됐어.”
“저도 들었어요. 석준이 형 어디 있었는지 아세요?”
“그러고 보니 형 어디 있었지?”
“저 아까부터 계속 1층만 수색하고 있었는데 석준이 형 못 봤어요.”
“나도 야외만 뒤지고 있었는데.”
둘 다 1층과 야외에 있으면서 석준을 못 봤다는 거다.
지한의 당황한 얼굴과 석준을 본 적이 없다는 경험에 둘이 곧 동맹을 맺었다.
“지한아. 일단 스파이가 있는 것 같아.”
“스파이요?”
“보통 스파이 하면 주석이 형이랑 종근이 형이 많이 하던데.”
“형은요?”
“하핫. 나도 한 경력 하지.”
특별한 역할을 맡았다는 것에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지한의 눈빛에 의심이 깃들자 광해가 말을 바꿨다.
“사실 내가 말아먹은 적이 있어서 나한테 이런 거 안 시켜.”
“혀엉….”
지한이의 안쓰러운 눈빛에 광해가 잠시 발끈했다.
아무리 자신이 말아먹었다고 하지만 게스트한테 저런 동정 섞인 눈길을 받으니 기분이 영 그랬다.
“너 형을 그런 식으로 바라볼래?”
“죄송해요.”
“됐고. 아무튼 너랑 나랑은 스파이가 아닌 거 같으니까 우리 동맹 맺자.”
“좋아요. 형. 저 배신하는 거 아니죠?”
“에헤이. 지한아, 형 그런 사람 아니야.”
“….”
그동안 런피플에서 광해가 보여준 게 있는데 쉽게 믿을 수 있을 리가.
광해의 입에서 믿음이란 말이 나오자 지한이 의심하는 건 당연했다.
“진짜 형 믿어.”
“…믿을게요.”
광해가 큰소리를 치며 지한이를 데리고 앞장섰다.
앞서가는 광해의 이름표를 지한이 서늘한 눈으로 쳐다봤다.
* * *
“지금쯤 지한이는 광해 선배님을 잘 속여 넘겼으려나.”
지한이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일부러 가장 멀리 있으면서 최약체인 선배님을 아웃시켰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목표.
바로 의심을 한 사람에게 몰게 하는 것.
의심을 받을 사람과 가장 가까이 있던 또 한 명의 런피플 멤버에게 지연이 다가갔다.
촤아악!
“어?!!!!!!!!!!”
“안녕하세요, 그리고 죄송합니다.”
에이스 천성인.
최우선순위 제거 멤버.
은밀하게 나타난 지연에게 성인이 순식간에 이름표를 뜯겼다.
경호원들에게 입이 막힌 채 멀어져 가는 성인을 보고 지연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이후로 지연과 지한은 기회를 봐서 순식간에 멤버들을 아웃시켰다.
[후후 OUT, 후후 OUT]
또 한 명
[구리 OUT, 구리 OUT]
둘은 텔레파시라도 통하는 것처럼 차례대로 혼자 있는 런피플 멤버들을 아웃시켰다.
런피플 멤버들의 반이 아웃되자 그들도 뭉치기 시작했다.
“이게 다들 어떻게 된 일이야?”
“오늘 스파이 있어?”
“여기 스파이 하면 유명한 두 분 계시네. 주석이 형, 종근이 형. 둘 중 한 명이 오늘 스파이죠?”
“광해야. 생각을 해 봐. 보통 이런 일 있으면 게스트가 스파이야.”
“종근이 형. 성인이 누나 아웃될 때 지한이 저랑 같이 있었어요. 형은 그때 어디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종근이 너 처음에 석진이 형이랑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았냐?”
“나 진짜 아니야.”
자신에게 의심의 화살이 모이자 종근이 발뺌했다.
각자가 스파이의 존재를 확신하고 종근을 추궁하고 있을 때, 종근이 날카로운 추리를 했다.
“혹시 게스트가 한 명 더 있는 거 아니야?”
“어?”
“형 또 말 돌리시는 거죠?”
“오늘 저 혼자 나오는 걸로 안고 있는데요?”
“솔직히 지한이 한 명 부르는 걸로 제작비 다 썼을걸?”
“그런가?”
지한이 뜨끔한 마음을 숨겼다.
과연 런피플 능력자라고 불릴만한 사람이었다.
근육만 울뚝불뚝한 사람이 아니란 거지?
“종근이 형 지금 의심 피할려고 하는 거죠?”
“아니야, 형 이거 봐. 나 센서 찾다가 이거 발견했어. 이거 스파이가 보낸 보고서야.”
종근이 내민 결정적인 증거에 모두가 솔깃했다.
거짓 정보도 같이 흘렸는데 저 형은 어떻게 저걸 찾았대.
증거를 본 런피플 멤버들이 스파이의 존재에 대해 확신했다.
“우리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빨리 스파이를 잡든 비밀 장부를 획득하든 해야겠다.”
“그럼 광해랑 지한이가 센서 계속 해제하고 스파이에 대한 증거도 모으자고.”
“알았어. 자, 빨리빨리 움직여.”
순식간에 포위망을 좁혀오는 멤버들에 지한이 고민했다.
어쩔 수 없지.
저 두 사람은 누나한테 맡기고 나는 광해 형만 전담해야겠어.
“형. 우리 빨리 찾으러 가요. 이제 하나 남았죠?”
“어. 그런데 웬만한 곳은 다 뒤졌는데.”
“광해 형. 진짜 스파이 아니죠?”
“나 아니야아.”
그렇게 먼저 광해를 의심하면서 지한은 광해가 자신을 의심할 틈은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뒤지던 둘이 마지막 해제 버튼을 불렀다.
“자, 빨리 가자. 가서 장부 찾아야 해.”
“네, 형.”
그렇게 말하지만 지한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대로 내가 광해 형을 뜯어야 하나?
형을 뜯고 누나랑 같이 주석이 형이랑 종근이 형을 상대해?
그렇게 생각하며 비밀 금고 앞에 온 순간이었다.
[유주석 OUT, 유주석 OUT]
[김종근 OUT, 김종근 OUT]
“뭐어?!”
누나가 해냈구나.
그 순간 지한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촤아아악!
“뭐야.”
“죄송해요, 형.”
“네가 스파이야?”
“네.”
지한이 품에서 하얀 가면을 꺼내 보였다.
그게 스파이의 표식이란 걸 안 광해가 분노했다.
“너, 너어. 안 돼에에에에에!!!”
광해의 구슬픈 목소리가 호텔에 울려 퍼졌다.
* * *
와삭와삭
엄마가 깎아준 과일을 먹으며 주말 예능을 보고 있던 해수가 소파에 벌러덩 널브러져 있었다.
짝!
“좀 바로 앉아 먹어라.”
“아, 엄마! 아파아!”
“너는 이제 나이도 먹었는데 시집갈 생각도 안 하고 언제까지 엄마 아빠한테 빌붙어 있을래?”
“그 얘기는 하지 말랬잖아. 그리고 엄마도 전 남친 마음에 안 든다며!”
“헤어진 지가 언젠데 그래. 새 남자친구 없어?”
“아직이야.”
“으이구.”
명절도 아닌데 엄마한테 잔소리를 들어버렸다.
해수가 입을 삐죽이며 먹고 있던 사과를 접시에 내려놨다.
“이제 보고 있던 것도 끝났으니까 난 방에 들어갈게.”
“한 소리 들었다고 도망가는 거야?”
“아니거든.”
그때 해수가 보고 있던 TV에서 런피플 다음화에 대한 예고가 흘러나왔다.
[뚜벅뚜벅]
사람의 귀를 잡아끄는 구두굽 소리에 해수와 홍 여사의 시선이 화면으로 모였다.
화려한 파티가 열리고 있는 파티장에 누군가의 길쭉한 다리가 보였다.
카메라가 다리를 타고 올라가자 그곳에는 하얀 팬텀 가면을 쓴 남성의 얼굴이 있었다.
[보스, 제가 무슨 일을 하면 됩니까.]
남자의 말에 그의 옆에서 레이스와 금실로 장식된 가면을 쓴 여성이 붉은 입술을 열었다.
[이름표를 뜯어버려.]
[네, 보스.]
두 사람이 연회장을 나섰다.
연회장을 나서는 두 사람이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그리고 화면이 서서히 올라가면서 두 사람의 얼굴이 드러나며 뿌옇던 화면이 서서히 선명해지려고 할 무렵,
[다음 주 런피플 ‘비밀옥션 잠입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