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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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장 겸 숙식과 기타 등등을 할 수 있는 트레일러에 들어가자 오랜만에 보는 미나가 지연을 잡아 앉혔다.

“자아. 얼른 옷 갈아입고. 분장 고치자.”

“고칠 게 있어?”

“그래도 한번 봐야지.”

미나의 말에 겉옷을 벗고 똑같은 겉옷을 새로 걸쳤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지연은 지난 촬영을 회상했다.

호주에 세워진 거대한 세트장을 보면서 모두가 입을 떡 벌리며 놀랐던 일.

이때까지 찍은 작품이 몇 갠데 세트장을 보며 놀라냐며 지한을 놀렸던 일.

훈련받은 덕인지 아무런 사고 없이 한 번에 액션 씬을 끝냈던 일.

와이어에 매달린 케이티와 함께 다 같이 사진을 찍었던 일까지.

정말 놀랍게도 촬영은 아무 일 없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왕쉬엔 하나 치워버렸다고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있나.’

어마어마한 규모의 할리우드 영화답지 않게 다른 드라마나 영화보다 훨씬 쉽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날씨도 좋았고, 배우들 간의 합도 좋았고, 엑스트라들도 문제없이 촬영을 끝냈다.

소품이나 촬영장소 문제도 없었고, 촬영진들의 건강에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말 그래도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진행됐다.

“누나!”

“지여어언!”

“큰일입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트레일러를 나오자마자 옹기종기 달라붙어 지연에게 떠드는 미남미녀들을 보며 지연이 하늘을 쳐다봤다.

역시 사람은 입을 조심해야 한다.

아니 그치만 난 생각으로 했는데.

지연이 억울한 감정을 추스르고 그들에게 물었다.

“다들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오늘 출연하기로 한 엑스트라 중의 일부가 못 온다는 연락이 왔어.”

“엑스트라가 필요한 씬이라면 에반과 리사가 만날 용의 신전이 있는 마을에 사는 주민들이겠네요.”

“맞습니다. 그들이 못 오면 또 언제 촬영을 하게 될지.”

“감독님은 뭐라셔?”

“다른 씬 찍을 수 있는 거 확인 중이야.”

끄응. 촬영을 앞두고 갑자기 펑크가 나다니.

“그런데 왜 못 온대?”

“식중독이래.”

“저런.”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들도 걸리고 싶어서 걸린 건 아닐 테니 뭐라 할 수도 없고.

걱정하는 이들과 함께 감독이 있는 곳으로 가자 그의 얼굴이 조금 전과 달리 어두워져 있는 게 보였다.

“감독님.”

“아, 왔나? 이거 옷까지 갈아입고 왔는데 오늘 촬영이 잘 안 될 것 같아서 미안하군.”

“그쪽에서도 대신 보내줄 사람 없대요?”

“인원이 부족해. 후우. 어디서 모델처럼 길쭉하고 예쁘고 잘생긴 사람 더 없을까. 대사도 없는데.”

“호주 세트장 한복판에서 갑자기 그런 모델 같은 배우를 구하기가…. 음?”

“모델 같은?”

“대사 안 하고?”

지연과 지한, 로드리오의 시선이 한 쪽으로 향했다.

세 명의 배우가 한 쪽을 바라보자 감독과 조감독 등 주위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했다.

“응? 나?”

호주에서 당장 모델 같은 배우, 아니 정확하게는 모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케이티! 호주에서 촬영한 적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어, 어어? 그랬지.”

“혹시 여기 모델 에이전시 아는 곳 있습니까?”

“있어. 그때 여기 에이전시 모델들이랑 같이 촬영했으니까.”

케이티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한 줄기 빛이 스며들었다.

166. 촬영 종료

“오신 분들은 저기서 의상 받아서 갈아입어 주세요.”

“옷 다 갈아입으신 분들은 빨리 이쪽으로 와 주세요.”

“여기, 여러분들이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이거 하나씩 받으시고 어떤 씬인지 확인하세요.”

스태프들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이대로 하루를 공칠 뻔했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도움을 받았다.

케이티의 도움으로 현지 모델 에이전시에 연락, 그곳에서는 연락을 받자마자 곧바로 일정이 되는 모델을 모아서 보내줬다.

덕분에 조금 지연되기는 했지만 오늘 촬영하는 씬까지는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게 전부 다 케이티 덕이었다.

지연이 옆에서 조금 상기된 얼굴로 현장을 보고 있는 케이티를 보며 말했다.

“케이티는 대단하네요.”

“다시 봤습니다. 저도 모델 일을 하긴 했지만 금방 배우로 전환하는 바람에 케이티처럼 인맥이 넓지 않아서요.”

“그러고 보니 로드리오는 모델 일 별로 안 좋아한다고 했었죠?”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 케이티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델 일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케이티의 연락을 받고 오다니 대단하네요.”

“헤헤. 에이, 참. 그냥 일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인걸.”

바쁘게 새로 온 사람들에게 촬영할 장면을 숙지시키고 의상을 갈아입히는 스태프들을 보며 세 사람이 케이티를 추켜세웠다.

순수하게 듣는 칭찬에 케이티가 얼떨결한 얼굴로 쑥스러워했다.

케이티 덕분에 촬영이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었으니 오늘 촬영장의 히어로는 그녀다.

그때 저쪽에서 준비가 끝난 모델이 케이티를 보고 다가왔다.

“케이티!”

“케이티. 여기 있었네.”

“아멜리아! 그레이스! 와 줬구나.”

“케이티한테서 연락이 왔다고 해서 냅다 지원했지.”

“이거 마벨에서 찍는 거라면서? 케이티 대단하네.”

호주에서 만난 친구에 케이티가 환한 얼굴로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모델이라 그런지 길쭉하고 우아했다.

두 마리의 우아한 사바나 캣을 보는 것 같은 느낌에 지연이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같은 고양이 상이라 그런지 잘 지내는 거 같네.’

우리 집 냥님도 가끔씩 길냥이님을 만나면 눈인사를 하곤 했다.

더 마음에 드는 상대는 친절하게 자기 밥도 나눠줬었지.

그런 걸 보면 역시 세상에 나쁜 고양이는 없다.

지연이 고양이를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세 사람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누나? 케이티를 왜 그렇게 봐?”

“내가 뭘?”

“모짜가 길고양이랑 같이 놀고 있는 걸 보는 것 같은 눈이야.”

이런. 누가 내 동생 아니랄까봐 관찰력이 좋다니까.

지연이 재빨리 눈빛을 갈무리했다.

그런 누나의 옆에서 지한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세 사람과 그들의 중심에 있는 케이티를 보고 입을 열었다.

“케이티 다시 봤어. 인맥이 넓은 것도 그렇지만 여기 온 사람들을 훌륭하게 잘 달래고 있잖아. 나는 케이티가 낯을 많이 가리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있지만 저렇게 모두의 중심에 있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다니 과연 톱모델다워. 나도 조금 놀랐어.”

“누나가 봐도 대단해?”

지연의 입에서 드물게 나온 놀랍다는 말에 지한이 눈을 크게 떴다.

동생의 반응에 지연이 이어서 말했다.

“저기 있는 모델도 꽤 대단해 보이는데 두 사람 모두 케이티를 보고 왔다고 하잖아. 그건 케이티를 인정했다는 거야. 저 두 사람이 인정하고 케이티의 전화를 받고 왔다는 것만 봐도 케이티가 촬영장에서 얼마나 장악력 있었는지 알 수 있어.”

“그렇구나. 그걸 알아보다니 누나도 대단하네.”

“케이티가 부럽네요. 지연에게 대단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라니. 저도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지한이 누나와 케이티를 번갈아 보고 있을 때 옆에서 조용히 있던 로드리오가 무뚝뚝하게 한마디 했다.

로드리오가 이런 말을 다 하다니.

남매가 똑 닮은 얼굴로 눈을 깜빡이며 로드리오를 돌아봤다.

왠지 축 처진 강아지 귀가 보이는 것 같아서 지연이 재빨리 대답했다.

“로드리오도 멋진 배우예요. 연기에 대해서 진심이고 배우는 것도 빠르죠. 로드리오는 분명 좋은 배우가 될 거예요.”

“맞아요. 같이 연습하면서 실력이 가장 크게 는 건 로드리오잖아요. 분명 더 대단한 배우가 될 거예요.”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분발하겠습니다.”

지연의 격려에 로드리오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갔다.

휴우. 다행이다.

기분이 조금 풀렸나봐.

그렇게 모여 있을 때 조감독이 배우들에게 다가왔다.

“이제 다들 준비가 끝나서 촬영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곧 들어갈 테니 대기해주세요.”

“아, 넵.”

“알겠습니다.”

“그럼 케이티, 우리 같이 힘내자.”

“응!

케이티의 모델 친구들이 손을 흔들고 엑스트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준비가 끝난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 섰다.

“자, 그럼 이제 촬영하겠습니다.”

“네에!”

조금 소동이 있었지만 아무튼 드래곤 엠페러의 촬영은 순조로웠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 수 없을 만큼.

* * *

“오늘도 없나.”

SNS 타임라인을 살피던 여성이 한숨을 쉬었다.

거실 테이블에 휴대폰을 올려놓은 여성은 다시 빨래를 개켰다.

아이 옷과 어른 옷을 구분하여 세탁하고, 햇살 아래에서 잘 말렸다.

그 덕에 빨래에서는 섬유유연제향과 햇빛 냄새가 풍겼다.

이제는 어엿한 6년 차 주부인 인영은 ‘love한이’로 활동하는 네임드 플래닛이었지만 엄밀히 따지면 오씨남매 둘 다 파는 올팬이었다.

그룹으로 활동하는 아이돌도 아닌데 올팬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뭐 어때.

‘나는 남매 둘 다 판다!’

지한의 팬클럽인 플래닛

지연의 팬클럽인 연바라기

그리고 둘 모두를 다 파는 팬들을 오니버스라고 불렀다.

오지연, 오지한+유니버스의 줄임말이었다.

훌륭한 오니버스인 인영은 오늘도 업데이트되지 않는 남매의 소식에 시무룩하게 손을 움직였다.

띠링

“응?”

빨래를 개키던 인영은 테이블에 올려둔 휴대폰에서 알림음이 울리자 잠금을 해제했다.

탑엔터 공식 계정에서 새 글이 올라왔다.

개던 수건도 내팽개치고 인영이 게시글을 확인했다.

화면을 본 인영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건?!’

인영이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올렸다.

[email protected]

JIHAN♥JIYEON♥Marbel

마벨의 새로운 히어로가 된 두 사람을 맞이해주세요!

저희는 지금 무사히 촬영 중!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용 남매와 무녀와 대적자(사진1)

분장을 받은 채 품에 모짜와 인절미를 안고 있는 지연과 지한(사진2)

“이게 뭐야!!!!!!!!!!!!!”

인영이 모처럼 예쁘게 갠 수건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퍽! 퍽!

이게 뭐야.

너무, 너무.

“멋있잖아아아아!!!!!”

줴에에엔장.

너무 멋져. 최고야. 반할 것 같아. 아니 반했어!

우리 애들 너무 멋져.

“흐그그으그그극.”

언어가 되지 못한 아우성을 뱉으며 인영이 바닥을 부술 것처럼 수건을 내리쳤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인영이 이를 악물고 몸을 들썩이고 있을 때 어디선가 순진무구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어, 어? 혜성이 나왔어?”

“으응. 그런데 엄마 뭐해?”

“아무것도 아니야. 엄마 빨래 개키고 있잖아.”

“아닌데.”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이 방금 엄마가 한 행동에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인영이 표정을 가다듬고 웃으면서 말했다.

조금 전 모습을 봤더라도 아이 앞에서 대놓고 발광하는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다.

“정말이야. 그보다 혜성아 엄마 이거 다 하고 나면 같이 간식 먹을까?”

“웅! 좋아!”

“그래. 그럼 그때까지 혜성이 엄마 옆에서 빨래 개키는 거 보고 있을래?”

“응! 엄마 도와줄까?”

“그럼 혜성이 옷 서랍에 넣고 올래요?”

“네에!”

아이가 손을 들고 힘차게 외치며 대답했다.

대답을 마친 아이가 인영이 개켜 둔 자신의 옷을 들고 씩씩하게 방으로 걸어갔다.

양손에 옷을 들고 방으로 걸어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본 인영이 웃음을 흘렸다.

“누구 애길래 저렇게 착하고 예쁘고 귀엽나 몰라.”

태교를 우리 애들 노래랑 사진으로 해서 다행이다.

특히 지한이 첫 드라마인 ‘그 남자 그 여자’로 하길 잘했다.

거기다 애들이 나온 사람극장 ‘부모 없는 하늘 아래’. ‘별이 되다’ 본 것도 좋았지.

아! 우리 애들 첫 예능인 ‘애니멀팜’도 놓칠 수 없지.

백귀야행 연말무대도 좋았는데.

‘햇살마을 수비대’도.

지한이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던 ‘마이 라이프’도 좋았고.

그것도 괜찮았지.

태교할 겸 하루에도 몇 번이나 정주행 했는지 모를 작품들을 하나씩 떠오르며 인영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역시 태교는 최애로 하는 거다.

* * *

마벨에서도 지난 과실을 보상하기라도 하는 듯이 소속사 SNS를 통해 공식 소식이 나왔다.

촬영 종료 날짜가 점점 다가오자 벌써부터 마벨은 새 히어로 시리즈인 ‘드래곤 엠페러’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드래곤 엠페러는 벌써부터 다른 히어로 못지않은 주목을 받았다.

히어로 영화의 특징상 CG작업에 꽤 많은 시간이 들어갈 거 같은데 어쩌려고 벌써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팬의 입장으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얘들아 마벨 촬영장면 공개된 거 봤음?

└당연

└당연하지

└당연히 봤지. 하루에 3428579번 보고 있는데.

└하루에 어떻게 그만큼 보냐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나는 21957387917번 봄

└└너도 장난 아니잖아ㅋㅋㅋ

-지연이 호수 사진 본 사람?

└나

└나22222

└333333

└난 못 봄ㅠㅠㅠㅠㅠㅠㅠㅠ

└└세상에 인생의 절반 손해 봤네.

└└지금 당장 보러 가라.

└└옛다 여기 링크 http://ww..

└└└너무 눈부셔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화면에서 빛 밖에 안 보이던데.

└└└이 녀석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접 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연이가 빛인 건 당연하잖아? 화면에서 지연(빛)을 봤다면 제대로 본 게 맞음

-너희들 왜 지한이는 얘기 안 함? 로드리오랑 지한이 서로 대치할 때 지한이 눈빛 보고 나 심장마비 왔잖아.

└어디 감히 천한 입에 전하의 이름을 올리는 거냐.

└저 놈의 주리를 틀라!

└오체분시를 해야 합니다!

└감히 전하와 시선을 마주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석고대죄를 해도 시원찮거늘!

└└통촉해줘 얘들아.

└└어허!

└└크흠!

└└지금 당장 석고대죄하는 모습을 인증하면 넘어가주지.

└└(인증짤)

└└└반성할 줄 아는 놈이로다. 이번만 넘어가 주도록 하마.

사람들의 관심이 생각보다 많이 모이자 마벨에서도 빠르게 움직였다.

지연과 지한이 힘을 합쳐 현장을 이끈 덕분에 NG도 많이 나오지 않았고, 그 결과 촬영 스케줄이 줄어드는 일까지 일어났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후반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애들 촬영 끝났대!!!!!

길고도 짧았던 ‘드래곤 엠페러’의 촬영이 끝났다.

* * *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수고 많았네.”

휘익-

짝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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