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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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현실이야? 꿈 아니야?

“언제 가면 됩니까?”

“로, 로드리오?”

“이번주 주말 어때요?”

“지한 씨? 저는 아직.”

“좋네. 올 때 맞춰서 식사 준비 해 놓을게요. 혹시 알레르기라든가 못 먹는 음식 있어요?”

“지연 씨까지.”

주말에 모이는 걸로 결정이 난 것 같은 분위기에 케이티가 부담스러워서 어쩔 줄 모른다는 얼굴을 했다.

미안한데 같이 출연하는 이상 절대 컨디션 난조 같은 건 용납 못 하니까.

‘뭐가 문제여서 자신감이 없는 건 모르겠지만 촬영할 땐 자신감 부족으로 NG를 내는 일 따윈 없게 해 주지.’

지연이 대외용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를 본 케이티가 차마 거절할 수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걸렸네.”

“무슨 소릴 하는 거니.”

“케이티 불쌍해. 누나가 만족할 때까지 절대 벗어나지 못할 거야.”

“오지한.”

“흡!”

나직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누나의 목소리에 지한이 어깨를 움츠렸다.

‘누나 제발 살살해. 저쪽은 일반인이라구.’

지한이 케이티를 안쓰러운 시선으로 쳐다봤다.

* * *

“피곤하지? 애들 씻기고 옷 갈아입고 와. 저녁 준비해 놓을게.”

“네에.”

“알았어, 오빠.”

집에 오자마자 영훈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이동장에서 모짜랑 인절미를 꺼낸 남매가 둘을 안고 욕실로 들어갔다.

물을 받고 샴푸를 짜 거품을 낸다.

몽글몽글한 거품이 아이들을 덮었다.

“너희들 오늘 안 심심했어? 사람들 많아서 힘들었을 텐데.”

“우린 중간중간에 너희들 봐서 좋긴 한데 걱정이야. 너희 낮잠 시간도 방해받고 쉬는 것도 방해받잖아.”

왕!

울음소리에서 전해지는 감정은 전부 ‘괜찮아’였다.

경호원도 늘리고 외부인 출입이 제한되는 곳이라 다른 곳보다 안전할 텐데도 아이들은 자신들 옆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했다.

덕분에 스턴트맨들과 트레이너들도 모짜랑 인절미에 익숙해졌다.

가끔 간식을 가져와서 혀 짧은 소리를 내며 먹여주기도 했다.

“그래. 이제 포기했다. 다른 사람들도 너희 안 오면 아쉬워하겠지.”

“어쩔 수 없잖아. 우리 애들이 이렇게 귀여운걸.”

왕!

“인절미. 헹굴 거야. 입 벌리면 안 돼.”

끄웅

쏴아아

지한이 샤워기로 덩치가 큰 인절미의 이곳저곳을 씻어주었다.

인절미를 씻기면서 지한이 누나를 힐끔 쳐다봤다.

지연이 그런 동생의 시선을 모를 리 없었다.

“왜? 할 말 있어?”

“으으응. 그냥 우리 집에 초대하는 배우가 또 생길 줄 몰랐어.”

“우리가 다른 배우들과 달리 집에서 파티를 열진 않아도 초대 같은 건 괜찮잖아?”

“그래도 케이티랑 로드리오는 이번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잖아.”

“애초에 둘의 연기를 보고 싶다고 한 건 지한이 너다?”

누나의 말에 지한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치만 케이티는 자신의 연기에 자신이 많이 없어 보였는걸. 루카스 감독님이 그냥 뽑진 않았을 테니까 조금 더 자신을 믿어도 좋을텐데.”

“그래서 그 자신감을 네가 불어넣어 주려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생각한 연기를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주말에 보면 알겠지.”

“그래도 케이티, 리사 역에 잘 어울리지 않아? 딱 보자마자 리사다! 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어떻게 대사를 할 건지가 더 중요하지. 배우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이니까.”

누나의 배우관을 들은 지한이 부드럽게 웃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

어릴 때, 누나랑 같이 연기놀이를 했던 건 바로 상상을 현실로 불러오는 것이 재밌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모르는 삶, 자신이 모르는 사람들, 자신이 모르는 가치관.

그 모든 것을 간접적으로 배우고, 체험하면서 자신의 세계는 넓어졌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 수만큼 배역이 있는 거라고.’

언젠가 누나가 했던 그 말을 잊은 적이 없었다.

지한이 샤워기를 끄며 말했다.

“둘의 연기 빨리 보고 싶다. 나랑 호흡이 잘 맞았으면 좋겠어.”

“지한이 너랑 잘 맞으면 좋지. 나보다 저 사람들이랑 더 오래 촬영해야 하잖아?”

“응? 왜? 누나는 내 누나로 나오잖아. 둘보다 누나랑 더 오래 같이 촬영하는 거 아니야?”

“글쎄.”

“뭐야, 뭔데에.”

대본에서는 누나랑 같이 촬영하는 씬의 비중이 케이티랑 로드리오랑 비슷했던 것 같은데.

혹시 속편에서는 비중이 줄어드나?

속편에 대한 얘기나 다음 편에 대한 시나리오는 아직 안 나왔을 텐데?

지한이 궁금하다는 듯이 답답함과 호기심이 담긴 얼굴로 지연을 돌아봤지만 지연은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았다.

지연도 정확하게 설명해주기 어려웠다.

돌아오기 전에는 ‘용제’라는 영화는 없었으니까.

그러니 이건 그저 감이었다.

‘아마 나는 끝까지 너와 함께하지 못할 거 같은데.’

시나리오를 분석할수록 대본을 읽을수록 선명해지는 아이린 화이트를 생각해보면 아마 중간에서 하차할 거 같은 강한 예감이 든단 말이지.

왜냐하면 아이린 화이트가 움직이는 원동력은,

‘에반 골드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이니까.’

대답 없이 혼자 생각에 잠긴 지연을 지한이 불렀다.

“누나?”

“아니야. 그냥 대본보니까 나보다 케이티랑 로드리오랑 더 많이 붙는 것 같아서.”

“뭐야, 난 또.”

누나의 대답에 조금 안심한 듯 지한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내 지한이 큰 덩치로 지연에게 치댔다.

“무거워. 너 이제 어린애 아니야.”

“몰라.”

그만 밀어라 이 녀석.

180이 넘는 거구로 달라붙으니 버티기 힘들었다.

넌 이제 품에 폭 들어오던 어린애가 아니란 말이야.

“숙제는 혼자 하는 거잖아.”

“모르면 도움을 받아도 되는 거잖아. 뭔데 가르쳐 줘어.”

몸은 누나에게 기대 있으면서 지한은 인절미의 털을 짜 물기를 털어주었다.

“얘들아~! 아직이니?!”

“다했어! 금방 갈게!”

“그래!”

밖에서 자신들을 찾는 영훈의 목소리에 지연이 대답했다.

“자, 나가자. 너희들도. 밖에 가서 드라이기로 말려줄게.”

애앩

끄웅

“싫어해도 안 돼. 감기 걸려.”

도망치려는 둘을 지연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렸다.

두 동물들의 귀와 꼬리가 추욱 쳐졌다.

* * *

케이티와 로드리오가 오기로 한 주말이 순식간에 찾아왔다.

지한은 지연을 도와 부엌에서 플레이팅을 도와주고 있었다.

누나처럼 화가활동도 겸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미적감각이 꽤 뛰어난 지한의 플레이팅은 5성 레스토랑급 요리처럼 완벽했다.

삐익-

“아, 왔나 봐.”

“내가 나갈게. 누난 마무리하고 있어.”

“미안해. 부탁할게.”

음식을 담아내고 있던 중이라 손을 뗄 수 없던 지연이 미안한 표정으로 부탁했다.

지한이 앞치마를 벗고 현관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 그동안 보던 트레이닝복 차림이 아닌 캐주얼한 복장의 두 사람이 서 있었다.

로드리오는 평소와 다름없어 보였고 케이티는 어쩐지 조금 지쳐보였다.

“어서 오세요.”

“이, 이거. 선물이에요.”

“저도 와인을 준비해 왔습니다.”

“이런 건 안 들고 오셔도 되는데. 고마워요. 와인은 아껴뒀다가 우리 촬영 끝나는 날 같이 먹어요. 케이티. 꽃 고마워요.”

선물을 받아든 지한이 식당으로 안내했다.

화려하게 차려진 상을 보고 뒤따라오던 두 사람이 살짝 놀란 얼굴을 했다.

“이걸 전부 직접 하신 건가요?”

“아! 전부 칼로리 계산해서 만든 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니, 그런 말이 아니었습니다.”

지연이 식당에 들어온 두 사람을 보고 인사했다.

“어서 와요. 배고프죠? 우선 밥부터 먹을까요?”

“네, 넵!”

화려한 상차림에 조금 압도된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자, 그럼 ‘케이티 자존감 상승 프로젝트’ 시작해 볼까?

오늘 힘들어할지도 모르니 일단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경계심을 낮춰보자.

지연이 케이티를 보며 웃었다.

* * *

지연의 계획대로 맛있는 식사를 끝낸 케이티의 경계심은 눈에 띄게 내려가 있었다.

식기를 정리하는 지한의 옆에서 지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두 사람의 연기 얼른 보고 싶지?”

“응. 둘이 찍었던 작품을 보긴 했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야.”

“지금보다 더 신인일 때 찍은 작품이니까 어쩔 수 없지. 그래서 우리 두 눈으로 보려고 초대한 거잖아?”

백문이 불여일견.

뭐든 직접 보는 게 최고지.

식탁을 정리하고 나온 둘이 거실에서 모짜랑 인절미랑 놀아주는 둘을 보았다.

케이티는 모짜와 로드리오는 인절미와 짝을 지어 놀고 있었다.

뭐야, 동족을 알아본 건가?

이건 사진으로 남겨야 해.

지연이 폰을 들어 사진을 찍자 셔터음을 들은 둘이 고개를 돌렸다.

“아! 다 하셨어요?”

“네. 손님을 모셔놓고 혼자 있게 해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이 애들이랑 노느라 재밌었습니다.”

와으앙!

로드리오의 손 아래에서 쓰다듬을 받고 있던 인절미가 만족스러운 듯이 울음소리를 냈다.

“그럼 우리 그거 하죠.”

“그거요?”

“같이 씬 연습하기로 했잖아요.”

“아.”

지연의 말에 먹고 노는 동안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린 케이티가 얼음이라도 된 것처럼 멈췄다.

160. 연기

“그! 저,”

잊고 있었던 긴장이 올라오는지 케이티의 안색이 조금 안 좋아졌다.

저러다가 체하겠네.

기껏 잘 먹여놓고 체하게 할 순 없었다.

“혼자 하는 게 부담스러우면 같이 해 볼까요?”

“같이?”

같이한다는 말에 케이티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혼자 하는 것보다는 같이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지연의 말에 옆에서 지한이 지원사격을 했다.

“나도 좋아. 우리 4명이니까 둘씩 짝지으면 될까?”

“그게 좋겠군요.”

로드리오까지 동의하자 모두 케이티를 돌아봤다.

무언의 물음에 케이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케이티까지 좋다고 했으니까 누구랑 짝을 지을지 정해볼까요?”

“가위바위보 하는 건 어때?”

“찬성.”

“좋아요!”

그렇게 해서

케이티와 나

로드리오와 지한이가 한 팀이 되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도 잘 부탁드릴게요.”

지연과 같은 팀이 된 케이티가 한결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오지한보다는 지연이 훨씬 낫지.

에이바가 지연은 이번이 첫 영화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잘해 줘야겠어.

훈련은 어쩔 수 없지만 연기는 내가 선배니까!

라고 생각하는 게 얼굴에 다 드러났다.

이거 뭐야. 너무 귀엽잖아.

올해 25살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하는 행동은 더 어려 보이는걸.

그 에이바라는 에이전트가 잘 돌봐서 그런가?

“누나, 순서는 어떻게 할까?”

“케이티 우리가 먼저 할까요?”

“옛!? 저는 그러니까,”

“우리가 뒤에 하면 지한이랑 로드리오의 연기를 먼저 볼 수 있어요.”

“헙!”

자신이 과연 오지한과 로드리오의 연기를 보고 잘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부담이 몰려오는지 케이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러면 먼저 하겠지.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한테 쉽게 영향을 받는 것 같기도 하고.

먼저 하면 원래 실력을 발휘하기 더 쉬울 것 같았는데 그 생각이 맞는 듯했다.

“그럼 가위, 바위 보!”

지연이 주먹

지한이 가위였다.

“아쉽네.”

“그럼 두 분 먼저 하시겠군요. 기대하겠습니다.”

“기대할게요. 케이티 힘내요. 누나도 살살해줘.”

“넵!”

“알았어.”

지연과 지한이 허공에서 의미심장한 눈빛을 나눴다.

씨익 웃은 지한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살살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그럼 케이티 시작하죠. 우선 리사와 아이린의 첫 대면 장면부터 해 볼까요?”

“넵! 좋아요.”

어떤 씬을 연기할지 정한 뒤 케이티가 곧바로 연기를 준비했다.

눈앞에서 케이티가 호흡을 가다듬는 게 보였다.

‘대본을 전부 숙지하고 있단 말이지? 이걸로도 자신감을 가질 이유가 충분할 텐데. 일단 연기도 봐야 하니까 조금 더 지켜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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