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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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에 맞은 덕에 리쯔웨이의 머리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찢어진 머리를 지혈할 생각도 하지 않은 리쯔웨이가 변함없는 자세로 왕쉬엔을 달랬다.

“걱정 마십시오 아가씨. 이미 위원님이 다음 수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정말이야?”

“네. 다만 지금 본토에서 급한 일이 생겨 곧바로 움직이는 건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는 게 어떠십니까?”

“뭐야, 지금 당장 해 달란 말이야!”

지금 바로 안 된다는 말에 왕쉬엔이 화를 내며 왕웨이에게 전화하려고 하자 리쯔웨이가 그녀를 막았다.

조금 전, 중국에 있던 아버지, 리신에게서 온 연락에 의하면 지금 WW인베스트먼트에서 일이 터져 위원님이 그걸 수습하느라 바쁘다고 하셨다.

아무리 딸을 아끼는 위원님이지만 지금 딸의 떼를 들으면 좋게 넘어갈 리 없었다.

“뭐야, 리쯔웨이. 지금 날 막은 거야?”

“위원님께서 아가씨를 위해서 바쁘게 움직이고 계십니다. 그것을 생각해서 조금 기다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 어차피 소국의 배우가 대국의 배우인 아가씨의 뜻을 이길 수 없을 겁니다.”

“…이번 한 번만 봐주는 거야.”

리쯔웨이의 말을 들은 왕쉬엔이 드디어 화를 억눌렀다.

그의 말대로 그동안 자신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 다 들어주던 아빠였으니까.

그리고

‘소국이 대국을 이길 수 없으니까.’

그 말 한마디로 왕쉬엔은 조금 전까지 불안하던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래 제까짓게 버텨봤자 얼마나 버티겠어.

리쯔웨이가 지금도 마벨 측 인사들과 접촉하고 있으니까 지연이란 계집애한테 조금이라도 흠집이 생기는 즉시 바로 배역이 자신의 손에 떨어질 거다.

“리쯔웨이. 나갈 준비를 하자. 병원에 가야겠어. 아까는 내가 너무 흥분했네. 미안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가씨.”

“됐어. 아랫사람 하나 챙기지 못해서 대인이라고 할 수 있겠어?”

조금 전까지 소인처럼 행동하던 것도 잊은 왕쉬엔을 보고 리쯔웨이는 고개를 숙였다.

“네 병원도 가고 나도 피부 관리 좀 받아야겠어. 명색이 백룡인데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준비해야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바로 외출 준비를 하겠습니다.”

왕쉬엔이 외출복으로 갈아입으려 방으로 올라갔다.

리쯔웨이는 가정부를 불러 어질러진 거실을 치우게 명령하고 손수건으로 상처를 지혈했다.

잠시 후, 왕웨이의 별장에서 한 대의 차량이 빠져나왔다.

“네. 지금 밖으로 나왔습니다. 네. 네. 추적하겠습니다.”

저택에서 나온 왕쉬엔의 차 뒤로 한 대의 차가 따라붙었다.

156. 믿음

약 일주일 동안 몸통 박치기 아닌 박치기에 시달렸던 지연은 그날 꿈속에서 오랜만에 목소리와 만난 이후 편안한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닥친 위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과 그 위기는 내가 바꾼 사람들 덕에 발생한 것이란 얘기를 들었을 땐 당황스럽기만 하던데 이제는 받아들이려고 한다.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날 이후 정말 무슨 일이 있었냐는 것처럼 아무 일 없는 나날이 지속됐다.

‘정말로 아직 안 끝난 거 맞아?’

마음 같아서는 왕쉬엔이 이대로 물러나줬으면 좋겠는데 저번에 그 성깔 보니까 쉽게 물러날 거 같진 않았다.

일단 영훈 오빠가 어딘가로 자주 통화를 하거나 로빈 팀장님이 굳은 얼굴로 우리를 경호하는 걸 보면 아직 조심해야 할 거 같긴 한데.

이거 원, 너무 평화로워서 말이지.

‘어쨌든 나는 내가 할 일에만 집중하자.’

예전과 달리 지금은 내 편이 되어줄 사람들이 많으니까.

도움을 요청할 때 손 내밀 곳이 있다는 걸 생각하니 내가 이전보다는 확실히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건 맞는 모양이다.

“후욱, 훅.”

“인절미야. 조금만 천천히.”

컹! 헥헥헥

도대체 언제까지 뛰어다닐 셈이냐.

요 녀석 안전 때문에 산책도 못 하고 정원에서 뛰어놀기만 했더니 그걸론 부족했던 건가?

산책이랑 정원에서 뛰어다니는 거랑 많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 놀아줬던 것 같은데.

지연이 앞서나가는 인절미의 뒤통수를 조금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우리가 그래도 체력이 좋기로 유명한데 이 넓은 공원을 이렇게 빠른 속도로 벌써 10바퀴 가까이 뛰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니?

“오늘은, 간식, 없을 줄, 알아.”

헥헥헥헥

지연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아니면 듣고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인절미는 계속해서 앞만 보고 뛰었다.

겨울인데도 땀이 속눈썹에 맺혀 또르르 떨어졌다.

이 녀석 그만 좀 뛰어!

우리만 뛰는 것도 아니잖아!

지연이 눈동자만 움직여 옆을 보았다.

구보 뛰듯이 옆에서 나란히 뛰고 있는 덩치 큰 아저씨들이 보였다.

“저희 때문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경호하러 와서 같이 운동하고 있는데 괜찮은 건가?

물론 우리가 산책하는 길은 미리 확인이 다 끝났다.

지금도 밀착경호 중인 아저씨들만 같이 뛰고 있지 다른 경호원들은 포인트마다 자리 잡고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운동도 되고, 좋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이제 운동이 되는 것 같다며 오히려 개운해 보이는 경호원들의 얼굴을 본 지연이 조금 떨떠름해졌다.

왠지 헬창, 이 아니라 형석 아저씨랑 비슷한 타입인 것 같네.

관리직으로 물러났어도 여전히 한 근육 하는 형석을 떠올린 지연이 형석이 자신과 비슷한 경호팀을 골랐다는 의심을 하고 있을 때 드디어 달리기를 끝낸 인절미가 나무에 마킹을 하고 있었다.

“후우. 하아.”

“인절미 때문에 엄청 뛰었네. 오늘 목욕 빡세게 시키자.”

“찬성이야.”

말없이 뛰던 지한이도 조금 지쳤는지 인절미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너 이 녀석.

한국이랑 미국은 땅덩어리 크기가 다르다고.

같은 공원이라도 사이즈가 얼마나 차이 나는 줄 알아?

실컷 달렸는지 이제 냄새를 맡으며 마킹을 하는 인절미의 리드줄을 잡고 지연과 지한이 천천히 걸었다.

“그나저나 지한이 너도 나도 훈련 들어가는 건 처음이다. 그치?”

“응. 한국은 액션씬 있으면 개인적으로 액션스쿨 가서 훈련한다고 듣긴 했는데 할리우드는 조금 다른 가봐.”

“액션씬이라…. 역시 인원도 많고 CG도 많이 들어가니까 다같이 훈련을 받는 건가?”

“할리우드잖아.”

판타지랑 히어로 장르가 아무래도 몸 쓰는 장면이 많다 보니 단체로 훈련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내가 아는 드래곤은 몸보다는 마법을 더 잘 쓰는 종족이었는데

역시 활자랑 현실은 다른 건가 보다.

현실에서는 드래곤도 히어로 무비에 나오는 이상 액션 씬을 찍기 위해서 몸을 움직여야 했다.

“다 같이 하는 훈련 재밌겠다.”

“응. 캐스팅도 이제 다 됐다고 하니까 곧 볼 수 있을 거야.”

“처음부터 다 합류할까?”

“스케줄이 되는 사람부터 오지 않을까?”

“마벨이니까 다른 스케줄 다 취소하고 올지도 몰라. 감독도 루카스 감독님이잖아.”

루카스는 할리우드에서도 열 손가락에 꼽히는 감독인 데다가 시나리오 작업에도 직접 참가했다.

마벨에서는 새로운 히어로의 설정에 대해서 모든 것을 그에게 일임했고, 그의 시나리오와 설정을 토대로 코믹스 작업까지 진행됐다.

그러고 보니 코믹스도 연재가 곧 시작된다고 했었지?

할리우드에서는 시나리오와 연출을 전부 담당하는 일이 드문데 둘 다 하다니 대단해.

“루카스 감독은 정말 천재야.”

“마벨의 느낌을 살리면서 자신만의 길도 확실히 지켰어.”

“나는 루카스 감독님이 보는 인간관이 좋더라. 뭐랄까 따뜻해.”

“고난과 역경이 사람을 좌절시키더라도 인간은 결국 그걸 이겨낼 거란 그런 거 말이지? 나도 그래서 루카스 감독님이 좋아.”

돌아오기 전에도, 돌아오고 나서도 나는 인간의 선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는 스토리가 좋았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결국 마지막에는 그런 사람 따윈 없다며 주저앉아 있었지만 그때 날 믿어주는 이가 사람이 아니라 초월적인 존재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항상 지켜보고 있으마.]

지연의 입가에 본인도 모르는 미소가 걸렸다.

갑자기 기분 좋게 웃는 누나를 본 지한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지연을 불렀다.

“누나?”

“응?”

“뭐 기분 좋은 일 있어?”

“그냥. 좋아서.”

“뭐가?”

“날 믿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게.”

“여기 있잖아.”

“어?”

지한이 아무렇지 않게 뱉은 말에 지연이 퍼뜩 고개를 들고 동생을 쳐다봤다.

“누굴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 있잖아. 난 누나를 믿어.”

동생의 눈에는 한 점의 의심도 묻어 있지 않았다.

그 눈을 본 지연이 어쩐지 조금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홱 돌렸다.

“…가족이라고 너무 믿는 거 아냐?”

“가족인 것도 있겠지만 그냥 누나를 오래 봐 와서 알아. 누나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너 그렇게 다른 사람 믿다가 뒤통수 맞을 거야.”

세상에 못 믿을 놈이 얼마나 많은데.

특히 우리 같이 젊은데 돈 많은 애들은 경계 순위 1위가 친인척이라고.

우리가 왜 명절에도 못 내려가는데.

그게 다 요새 일은 잘 하고 있냐, 사인 좀 해 달라, 혼자서 돈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냐 등등

사사건건 간섭하는 친척들 때문이잖아.

잠시 머릿속에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친척들을 떠올린 지연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나 다른 사람 잘 안 믿는데? 누나니까 믿는 거야.”

“어?”

“누나는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구나. 나 말고도 우리 회사에 누나 믿는 사람 많아.”

“왜?”

동생의 말에 지연이 멍하니 그를 쳐다보자 지한이 환하게 웃었다.

“본인이 한 말은 꼭 지키는 사람이니까. 약속도 잘 지키고 스스로 정한 건 꼭 지키려고 하고, 함부로 다른 사람을 해치지도 않고. 또,”

“그만해라.”

금칠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지연은 겨울임에도 화끈해진 것 같은 양 볼을 느끼고 목도리를 끌어 올렸다.

“…도…어.”

턱까지 끌어올린 탓일까 지연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누나 뭐라고 했어?”

“나도 널 믿는다고.”

어린 나이에 세상에 던져졌음에도 너는 끝까지 날 따라왔어.

부모라고 부르기 아까운 것들이어도 너에게는 소중한 부모였을 텐데

날 미워하지 않고 누나라고 부르며 지금까지 옆에 있어줬다.

고마워.

“어어.”

지연의 목소리에 담긴 묵직한 감정에 지한이 눈을 깜빡이며 어눌한 목소리만 내자 지연이 피식 웃었다.

“안 가? 얼른 우리 집에 가자. 점심 먹어야지.”

“어, 응. 가자. 우리 집.”

두 사람이 빠르게 걸어갔다.

둘의 뒤를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이 뒤따랐다.

집으로 향하는 동안 정겨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오늘은 뭐 먹을까?”

“겨울이니까 호떡 먹고 싶다.”

“호떡은 간식이잖아.”

“그럼 샤브샤브 해 먹을까?”

“그거 좋지.”

왕!

“인절미 너는 오늘 사료만 먹어.”

끄웅

* * *

“이거이거. 우리 새 히어로들을 맞이할 준비는 잘 되고 있겠지, 루카스?”

에이몬드가 루카스의 작업실에 들어오면서 말했다.

또 예고도 없이 찾아온 친우에 루카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말 좀 하고 와.”

“작업에 들어가면 연락도 잘 안 되는 게 누구더라? 작업실 비밀번호를 알려준 것도 그거 때문이었지?”

“알려주는 게 아니었어.”

“이런. 자네를 생각해서 한스 씨네 가서 햄버거를 사왔는데 어쩔 수 없군. 나 혼자 먹어야겠어.”

“내 작업실에서 누구 마음대로.”

루카스가 에이몬드의 손에 들려 있던 햄버거를 낚아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도 에이몬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루카스를 보고 짙은 미소를 지었다.

작업실 한편에 놓인 소파로 가서 한스 씨의 정성이 가득 담긴 버거를 맛있게 먹은 둘이 배를 두드리며 소파에 기댔다.

“어이 루카스.”

“왜.”

“내일이라며?”

“뭐가?”

“모두 모이는 날 말이야.”

“맞아. 일정이 촉박했을텐데도 다들 용케 다 모인다고 하더군.”

지연과 지한이 교통사고 운전자를 구한 덕에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마벨에서는 이 화제를 이어 최대한 빨리 촬영에 들어가기를 원했고 그 덕에 배우들은 캐스팅되자마자 훈련에 들어가야 했다.

급한 일정에 모두가 첫날부터 모일 수 있다는 건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루카스의 말에 에이몬드가 조금 걱정 어린 얼굴로 물었다.

“괜찮겠어? 아직 젊은 배우들이 대부분이잖아.”

“어쩔 수 없지. 캐릭터 설정상 영원한 젊음을 가진 이들이잖나.”

“그렇다고 해도 외양을 너무 어리게 설정한 거 아니야?”

“동안에 경험이 많은 이들이 오면 좋겠지만 그런 이들은 다들 바쁜 걸 어쩌겠나.”

그러게 내가 촬영 들어가는 건 조금 미루자고 했잖아!

지금 있는 이들도 좋다며 끝끝내 강행하더니.

에이몬드가 입을 조금 삐죽였다.

“왜에. 너도 저번에 지연의 연기를 보고 빨리 들어가자며.”

“내 말은 최대한 빨리였지 무조건 올해 안에 들어가자는 건 아니었어.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나!”

“말은.”

그때 분명히 빨리 보고 싶다면서 캐스팅하라고 보챘으면서.

본인이 얼마 전에 했던 행동을 잊은 척 하는 친구를 보고 루카스가 눈을 샐쭉하게 떴다.

친구가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모르는 에이몬드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왜 캐릭터들을 다들 젊고 어린 외양으로 잡은 거야? 그 덕에 그에 맞는 배우들을 찾느라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

“당연히 필요하니까지. 캐스팅 맡기길 잘했지. 이럴 때 마벨의 이름을 빌리지 언제 빌리겠어.”

둘의 나이가 적지 않음에도 에이몬드는 루카스의 말이 얄미워 잠시 주먹을 불끈 쥐었다.

후우, 참자 참어.

주먹다짐할 나이는 다 지났잖아?

에이몬드가 침착하게 말했다.

“캐릭터 설정을 고칠 생각은 없던 거야? 조금만 연령을 올리면 연기가 되는 배우들을 많이 고려할 수 있었을 텐데.”

“왜? 내가 설정한 게 좋다며. 이미 코믹스도 그렇게 연재될 예정 아니었어?”

“아니, 좋지. 좋은데. 젊은 외양에 노숙한 연기를 할 수 있는 이가 드무니까 그렇지. 그건 연륜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경험이 있어야 되는 거잖아.”

“그래서 오디션까지 봤잖아. 좋다고 할 땐 언제고.”

자신의 설정에 맞는 배우를 이미 고르지 않았냐는 듯한 시선에 에이몬드가 답답한지 가슴을 쳤다.

오디션을 보고 뽑긴 했어도 전부 젊은 배우들이기 때문에 중심을 잡아줄 오랜 경력의 배우도 없었고, 흥행을 보장할 인물도 드물었다.

루카스의 요구대로 캐릭터 설정에 맞는 이들을 겨우겨우 찾았으나 솔직히 에이몬드는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지연과 연기력이 보장된 지한 빼고 불안했다.

오디션에서 보여준 연기를 현장에서도 잘 보여줄지 의문이었다.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루카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영화가 잘 안 나올까봐 걱정되나?”

“솔직히 루카스 자네라도 아직 경험이 별로 없는 젊은 배우들을 잘 이끌 수 있을지 걱정되네. 촬영이 지연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걱정하는 거 아네. 그래서 나도 이번에 다들 모여서 훈련을 받기로 한 거야. 몸을 만드는 법, 손발을 맞추는 법, 크로마키 앞에서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를.”

“그걸로 될까? 특히 크로마키 앞에서 연기 하는 게 쉽지 않지 않나.”

“자네, 왜 쉽지 않은지 아나?”

“그야. 아무래도 상상만으로 연기하는 게 쉽지 않으니까. 눈앞에 없는 존재와 대사를 주고받는 법, 몸을 움직이는 법, 타이밍. 그런 걸 전부 혼자 해야 하니까.”

“그럼 말이야.”

루카스가 곧 다가올 선물을 기대하는 어린아이처럼 신나고 들뜬 얼굴로 말했다.

“그 상상을 현실에 불러줄 존재가 있으면 어떻게 하겠나?”

“! 자네 혹시?”

“그래. 내가 같이 훈련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 오지한과 지연의 연기로 상상을 현실로 불러올 걸세. 그러면 그들도 연기하기 편하지 않겠어?”

루카스의 말에 에이몬드는 황당하면서도 그럴싸한 얘기라 혹하는 걸 멈춤 수 없었다.

직접 보지 않았던가.

인간의 가죽을 쓴 인간 같지 않은 존재를.

“에이몬드. 나는 아주 기대가 돼. 과연 이번 훈련에서 모두 얼마나 성장할지.”

루카스가 입꼬리가 귀에 닿을 것처럼 웃었다.

그는 두 사람이라면 충분히 상상을 현실로 불러올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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