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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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너희 시간 되니?”

“우리 토크쇼가 마지막 일정이에요. 저번에 못 갔던 휴가 영훈 오빠한테 졸라서 받아낼 테니까 걱정 마세요.”

“영훈을 너무 괴롭히지 마렴.”

헨리가 엄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는 장비를 닮은 헨리의 얼굴을 봐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험상궂은 얼굴 속에 담긴 다정함을 알기에 지연은 헨리의 품에 안겼다.

“헨리가 말하니까 봐줄게요.”

“녀석.”

“엠마. 저 쿠키 먹고 싶어요.”

“호호호. 그럴 줄 알고 미리 반죽을 만들어 놨단다.”

“역시 엠마예요.”

“헨리, 엠마. 우리 내일 같이 쇼핑가요.”

“호호. 그래. 그러자.”

* * *

책상 위나 바닥이나 할 것 없이 종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공간.

그곳에서 한 사람이 TV를 보고 있었다.

[좋습니다. 여기 모셨으니 이건 확인해 봐야겠죠? 차기작 준비된 게 있습니까?]

[아쉽지만 없어요.]

TV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을 들은 그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가 들고 있던 종이에 펜을 휘갈겼다.

에반 골드-오지한

아이린 화이트-지연

배역 옆에 캐스팅할 배우의 이름이 각인처럼 새겨졌다.

남자가 배부른 얼굴을 한 채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그래. 나야.”

-어쩐 일이야? 작업한다고 전화하지 말라던 사람이.

“작업 끝났어.”

-뭐?

“그리고 꼭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가 있어. 도와줄 수 있나?”

-물론이지!! 어디야? 작업실이야? 지금 내가 갈게!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요란스러운 소리를 들은 남자가 통화를 종료했다.

146. 공주님을 납치해야 하나?

“누나. 이거 봐. 잘 나왔지.”

“오? 사진 찍는 실력이 많이 늘었는데? 미나 언니, 이거 봐.”

“흐음. 실력이 꽤 늘었군. 좋다. 이만 하산하도록.”

“감사합니다. 스승님.”

“오냐.”

영훈 오빠를 조르고 졸라 휴가를 받아 낸 보람이 있었다.

래먼쇼를 마지막으로 모든 스케줄을 소화한 지연과 지한은 헨리 교수 부부와 놀 거라며 강경하게 말했고, 그 요구는 받아들여졌다.

다행히 더 늦지 않은 덕분에 남매는 휴가기간 동안 단풍놀이를 만끽할 수 있었다.

사진에는 가족처럼 단란하게 찍은 남매와 헨리, 엠마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미나가 조금 걱정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사장님이 보시면 좀 부러워할지도.”

“괜찮아. 사장님이랑도 또 놀러가기로 했어.”

“정말?”

“응. 그리고 혹시 삐질 걸 대비해서 선물도 사 왔어. 이거 봐.”

전시회 가서 산 기념품이다.

사진엽서 뒤에 작게 단풍을 그려 주면 사장님도 좋아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벌컥

“미나 너도 여기 있었구나. 너희들 한참 찾았네.”

“응? 우리는 왜?”

“형, 무슨 일 있어?”

직원용 휴게실에서 미나와 시시덕거리고 있던 둘은 자신을 찾아온 영훈을 보고 의아한 듯 바라봤다.

똑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이는 남매와 와이프를 본 영훈이 진지한 얼굴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탕!

“아, 깜짝이야. 애 떨어질 뻔했네.”

“! 애?”

“말이 그렇지 진짜 놀랐다는 뜻이야. 자기, 큰 소리 내지 말자.”

“어? 으응. 커흠.”

미나의 말에 영훈이 잠시 놀랐지만 곧 흔한 미나의 장난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헛기침을 했다.

결혼하고 나서도 영훈 오빠는 미나 언니한테 당하고 사는구나.

남매의 눈빛을 읽은 영훈이 멋쩍게 웃다가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디지니에서 연락이 왔어.”

“디지니요?”

“공주님 나오는 그 디지니요?”

“그래. 그 디지니.”

사장의 말에 지연과 지한이 눈을 깜빡였다.

거기서 우릴 왜?

진짜 인어공주라도 시키게?

“진짜로 공주 역할로 제안이 온 건 아니겠지?”

뮬란이 롤모델이고 어릴 때부터 디지니 영화로 꿈을 키워온 지한이지만 공주 역할은 조금 난감했다.

“걱정 마. 그런 건 아니니까. 디지니에서 연락이 왔지만 정확하게는 디지니 자회사 중 한 곳에서 연락이 왔는데. 지한이 널 캐스팅 하고 싶대.”

“디지니 자회사가 뭐 있었지? 애니메이션 만드는 곳 아니었나?”

“거기도 있잖아. 히어로 영화 만드는 곳.”

“응? 거긴 마벨이잖아.”

“거기 디지니한테 인수됐을걸?”

“그랬어?!”

몰랐다면서 미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짝 놀랐다.

결혼 준비 때문에 한창 바빴으니 몰랐을 수도 있지.

“아무튼 마벨에서 연락이 왔어.”

“마벨이 왜?”

“왜겠어.”

영훈이 이유를 맞춰보라는 듯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아니 ‘마벨’이라는 이름에 영훈 오빠의 저런 반응이라면 딱 하나밖에 없지 않겠는가?

“지한이 보고 새로운 영웅이 되어 달래?”

“…지연이 너. 너무 쉽게 맞추니까 재미없다. 예전에 넌 그래도 귀여운 맛이 있었는데.”

“자기, 뭔가 기억에 오류가 있는 것 같은데. 지연이는 예전에도 저랬어. 잊지 말자.”

“맞아. 저랬었지.”

흐린 눈으로 무언가를 회상하는 것 같던 영훈이지만 미나의 말에 고개를 털었다.

그래. 오래된 기억이라고 내가 너무 미화했던 것 같다.

쟤는 원래 저런 애였어.

어릴 때도 속에 모진 풍파를 겪은 늙은이 한 명 앉아 있던 애가 지연이었다.

오히려 데뷔하고 커가면서 조금 말랑해진 감이 없지 않아 있지.

음음. 그랬고말고.

“그래서 지한이한테 무슨 역 제안이 들어온 건데?”

“용.”

“용?”

“갑자기 무슨 용?”

“말 그래도 용이야. 드래곤.”

뜻밖의 역할에 남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제야 자신이 원한 반응이 나온 둘을 보고 영훈이 뿌듯한 얼굴로 폭탄을 하나 더 터트렸다.

“아, 참. 지연이 너도 들어왔어. 너도 용.”

“용?!”

공주가 아닌 건 좋았지만 사람이 아닌 역할이 들어오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한테 공주를 납치하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서 너희 또 미국 가야 할 거 같아.”

“우리 귀국한 지 고작 3일 됐는데.”

“또 미국 가면 사장님이 삐질지도 몰라.”

“…사장님도 이해해 주실 거야.”

“사장으로서 이해는 해도 개인으로서는 이해 못 할걸. 자기, 힘내.”

미나의 말에 영훈이 침울해졌다.

자신들이 아는 공 사장이라면 그러고도 남는 사람이었다.

어휴. 팔불출 사장님한테 안 시달리려면 이번 겨울 해외여행이라도 보내드려야 하나.

연말이라 바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어느덧 영훈은 상사의 비위까지 맞출 줄 아는 훌륭한 직장인이 되어있었다.

* * *

“그래,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지.”

주간회의가 있는 날은 아니지만 바다 건너 할리우드에서 넘어온 대형 소식에 팀장 이상이 모두 모인 회의가 열렸다.

특히 이번에는 마벨 유니버스로 유명한 마벨 스튜디오에서 선보이는 새로운 히어로 영화.

시나리오부터 시리즈화를 예상하고 있었기에 더욱 중요한 안건이었다.

“이번에 지한이랑 지연이 둘 모두에게 배역이 들어왔다면서.”

“네. 지한이는 주연, 지연이는 조연이지만 주인공의 누나 역할로 꽤 비중이 높은 역할입니다.”

“아무래도 이번 영상 때문에 지연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나 보군.”

“그리고 아이들이 이제 어느 정도 크지 않았습니까? 마벨이 다른 이들보다 한발 빨리 움직였다고 봐야겠죠.”

“회사로서도 잘된 일이야. 무려 할리우드 배우가 한 명 더 생긴 거니까. 그것도 마벨 시리즈 영화에 출연한 배우로.”

그런데 왜 그렇게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십니까.

비즈니스 모드로 착실하게 일하고 있는 주민이지만 여기 있는 이들은 다들 주민과 함께 일한 지 5년이 넘어가는 베테랑들.

가면 너머로 불편한 주민의 심기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마벨 시리즈 영화 주인공이라니. 지한이의 인지도를 한 층 더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횝니다. 아마 인기가 몇 단계는 상승할 겁니다.”

“그렇겠지.”

“지연이의 첫 영화로 할리우드인 건 정말 좋은 기횝니다. 사실 그동안 지연이 연기력을 보여줄 기회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보다 더 좋은 선택지는 없습니다.”

“그렇군.”

“퀸즈 에이전시에서도 둘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고 합니다.”

“그래야지.”

“….”

무겁다. 무거워!

공기가 너무 무거워!

분명 좋은 일이고 회사의 주가에도 호재인 일인데 왜 이렇게 숨이 막힐 것 같지?

“사장님. 이번 기회에 퀸즈 에이전시와 맺은 계약을 다시 검토할 기횝니다. 지난번 지한이 아카데미 수상 이후로 계약서를 다시 검토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가셔서 다시 계약을 조정하고 오시는 게 어떨까요?”

“흠, 그래?”

“네. 그리고 마벨 스튜디오에 가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괜찮다면 투자 건으로 접촉하시는 것은 어떤가요?”

“마벨이라면 투자자를 선택하는 입장일 텐데?”

“그렇기 때문에 아무 투자자를 고를 수 없는 입장이지 않겠습니까? 시나리오에 크게 간섭하지 않으면서 별다른 조건을 걸지 않는 투자자라면 그쪽에서도 환영할 겁니다.”

“맞아. 그런 투자자가 흔한 건 아니니까.”

“중요한 안건이니 지연이, 지한이와 함께 사장님께서 미국에 직접 다녀오시는 건 어떠십니까?”

임 전무의 말에 모두가 그를 마왕을 물리친 용사를 보듯이 바라봤다.

‘임 전무님!’

‘크흑, 믿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민 역시 임 전무의 제안이 솔깃한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사장으로서의 자아와 남매를 옆에 끼고 살고 싶은 팔불출 자아가 충돌했다.

하지만 임 전무의 말에 반으로 팽팽히 갈라진 자아가 타협을 맺었다.

“좋아. 그럼 이번 건은 내가 출장을 가는 걸로 하지. 연말인데 자리를 비우게 될 것 같군. 방송사 일정에 맞춰서 들어올 테니 무슨 일 있으면 임 전무에게 보고하도록.”

“네, 사장님!”

“좋아. 그럼 퀸즈 에이전시에 미팅 날짜를 잡고, 그쪽에서 넘어온 일정에 맞춰서 갈 수 있게 준비하지.”

“비행기표는 퀸즈 쪽에서 준비해 준다고 합니다.”

“나도 가야 하니 같이 명단 정리해서 그쪽에 넘겨주고, 애들이 들어갈 영화에 대한 정보는 넘겨받았나?”

“그쪽에서도 아직 정보를 모으는 중이라 간략한 내용밖에 없습니다. 저희 쪽에서도 추가로 정보를 수집 중이구요.”

“다른 건 몰라도 감독과 시나리오 분석은 제일 먼저 해야 해. 제목이 뭐라고 했지?”

주민의 말에 영훈이 시나리오의 제일 첫 장에 적혀 있는 제목을 읽었다.

“입니다.”

* * *

차락, 차락

LA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

출장 때문에 마일리지가 많이 쌓인 직장인들이 업그레이드해서 오거나 재력이 있는 이들이 아니고서는 잘 이용하지 않는 일등석 칸.

그곳에 주민과 남매들, 영훈, 경호원들까지 함께하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분석하느라 지한과 지연이 종이를 넘기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야 지금은 한국 시간으로도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으니까.

그리고 이곳에 의외의 인물이 함께하고 있었다.

“우와. 그게 시나리오구나.”

“천도진. 가만히 있어야지.”

“삼촌도 참. 제가 뭘 했다고 그래요.”

“네 엄마가 너도 데려가라고 하지 않았으면 같이 미국 가는 건 어림도 없다는 것만 알아둬.”

“알아요. 삼촌은 내가 친조카란 걸 알고는 있어요?”

“왜 몰라. 누나가 너 낳을 때 옆에 있었는데.”

“칫. 그런데 어째 남보다 더 못해 줘.”

“내가 언제.”

“맞잖아요. 맨날 지연이 누나랑 지한이만 칭찬하고.”

공아영의 아들이자 주민의 조카인 도진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저거 저거.

사춘기 때도 안 하던 짓을 하고 있네.

주민이 혀를 차며 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놨다.

“뭐가 또 불만이야. 너 할리우드 가 보고 싶다고 해서 특별히 데려가 주는 건데. 너 나중에 영화감독 되고 싶다고 했다며?”

“알고 있으면서 한 번도 영화제작 하는 데 데려가 준 적 없잖아요. 이번에도 엄마 심부름 아니었으면 안 데려갔을 거면서.”

“맞아.”

“치사해! 나 수능 끝난 고3인데. 이런 취급이고! 나도 시험 잘 봤는데! 지연이 누나는 파티도 해 줬으면서 나는 외식 한 번이 끝이고! 진짜 누가 보면 지연이 누나랑 지한이가 공씨 식구고 나는 주워온 자식인 줄 알겠어!”

“누가 그래. 너 주워왔다고. 그리고 너도 파티 크게 해 줬잖아. 호텔 식당 예약해서 가족들끼리 성대하게.”

“흥. 거긴 엄마 회사잖아요.”

우리 사장님한테 저렇게 말하는 것만 봐도 공씨 식구 맞는데 뭐가 불만일까.

물론 피도 안 이어진 우리가 가족 행사에 참석하는 거랑 그쪽 사람들 관심을 받는 게 불만일 수도 있다.

우리도 처음에 가도 될까 엄청 고민했다고.

하지만 안 가면 회장님이 직접 전화하는 걸 어떡해!

우리 같은 소시민이 대기업 회장님 전화를 받아볼 일이 얼마나 있겠어.

내가 그때 얼마나 깜짝 놀랐는데.

“도진이 형은 여전하네.”

“호텔 이모가 맨날 자기 자식 언제 철들까 하던데 도진이는 아직도 철이 덜 들었나봐.”

“요즘도 우리 사장님 놀릴 때 도진이 형이랑 비교하고 그래?”

“글쎄. 잘 모르겠는데.”

저렇게 티격태격하는 걸 보니까 지금도 그렇게 놀릴지도?

“난 도진이 형도 이나 누나처럼 유학 간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이번에 한예종 지원했다면서?”

“응. 거긴 어차피 시험 따로 쳐야 한다고 들었는데 수능은 왜 또 봤는지 모르겠네.”

“도진이 형이라면 수험표 받으려고 수능 봤을지도 몰라. 그런데 실기 준비 안 한대? 우리랑 같이 가도 돼?”

“2~3일만 있다고 돌아가는 거 같던데? 그리고 호텔 이모 성격상 미리 준비도 안 끝내놓고 보낼 리가 없잖아. 아마 예상 기출이랑 실기 준비까지 다 돼 있을걸?”

“입시는 어려운 거구나.”

“맞아. 그래서 나도 수능만 쳤잖아.”

“그런데 누난 수능 왜 치고 싶었어?”

“…예전에 누가 나보고 성적도 안 나오면서 바라는 것만 많다고 한 적이 있거든.”

“누가?”

“그런 사람이 있었어. 너는 잘 모를 거야.”

돌아오기 전에 고3 담임이 했던 말이니까.

지연은 고개를 털어 다시 시나리오를 살폈다.

그러느라 옆에서 차가운 눈으로 누나에게 헛소리를 한 놈이 누군지 잡아내겠다고 말하는 동생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147.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야.

LA 공항에 도착하자 이제 꽤 익숙한 얼굴이 그들을 마중하고 있었다.

“애런!”

“오랜만이에요.”

선글라스를 끼고 유유히 서 있는 애런에게 지연과 지한이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꽤 유능한 에이전트로 이름을 날린 애런이 이렇게 직접 마중을 나오는 것도 다 우리에게 새로 들어온 작품 때문이겠지.

무려 그 마벨의 새로운 시리즈 작품이니까.

“두 분 다 오랜만입니다. 미스터 프린, 주민도 오랜만이군요.”

애런이 주민의 째림에 금세 말을 바꿨다.

프린세스라고 하려던 거 일부러 아니야?

능청스러운 애런의 얼굴에 주민은 화를 내지 않고 응수했다.

“오랜만이군요. 아무래도 이번에는 제가 직접 출장을 와야 할 일인 것 같아서 이렇게 미국까지 찾아왔습니다.”

“미팅 건 말이군요. 저희 측도 재계약에 긍정적인 입장이란 것만 알아주시죠.”

“그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죠. 우선 숙소부터 가고 싶은데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차는 저쪽에 준비해 뒀습니다.”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바로 비즈니스에 대한 얘기부터 하는 둘을 질린 듯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진짜 옆에서 보는 사람이 다 조마조마하네.

같은 생각을 한 건지 안색이 질린 도진이 작게 말했다.

“나는 경영이랑 안 맞는 것 같아.”

“도진아 그래도 감독이 되려면 저런 것도 알아야 해. 예술만 생각할 순 없잖아.”

“이나 누나가 알아서 해 주겠지.”

“형이 그렇게 나오면 이나 누나가 안 도와 줄 텐데.”

“윽.”

냉정하고 자신이 할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주의인 이나의 성격상 지한이 말대로 안 도와 줄 가능성이 높았다.

“얘들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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