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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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내가 이거 보려고 알람까지 맞춰 놨다. 어이가 없네 ㅋㅋ

└지금 다들 그 심정

토요일 밤 11시 40분.

원래라면 이 시간대에 KBC를 보는 시청자들은 거의 없었다.

KBC 역시 특집 같은 걸 내보내는 시간.

하지만 지금은 이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한가득 모여 있었다.

-님들 근데 이 시간에는 원래 뭐 함?

└모름

└ㅁㄹ

└게임하고 있는데?

└토요일 밤 11시에는 치킨이지!

└└ㅇㅈㅇㅈ

└└아니 그걸 물어본게 아니잖슴ㅋㅋㅋㅋㅋ

늦은 시각에도 와글와글 모여 있던 이들은 광고가 끝나고 떠오른 제목을 보고 허리를 바짝 세워 화면 앞에 모였다.

-시작한다!

* * *

[<내 호위무사는 여대생> 특별편]

물결처럼 흐르는 듯한 글씨체의 로고가 지나간 다음 화면은 어두운 수면을 비췄다.

달빛이 새어 들어오는 수면 아래.

지느러미 달린 생물들도 잠에 빠진 시간 커다란 부피를 지닌 무언가가 달빛을 가르며 헤엄쳤다.

거대한 무언가는 곧 달빛이 새어 들어오는 곳을 비집고 수면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촤아아!

어두운 밤하늘 아래.

누군가가 고개를 내밀고 고개를 털자 긴 머리카락이 반원을 그리며 물방울을 털어냈다.

달빛 아래 모습을 드러낸 여인은 밤하늘을 그러모은 듯 아름답게 빛났다.

촤악!

여인의 옆에 또 하나의 그림자가 생겨났다.

모습을 드러낸 이는 여인과 닮았지만 조금 더 선이 굵은 얼굴이었다.

“윽, 불편해.”

“폐로 숨 쉬는 건 조금 힘들긴 하지.”

“누나는 괜찮아?”

“나는 뭐. 괜찮아.”

수면 밖으로 고개를 내민 둘은 자신들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처럼 어색하게 말했다.

“하긴. 그동안 오죽했어야지. 누나가 물 밖으로 함부로 나갔다가 혼난 게 한두 번이야?”

“아니 내가 나가면 얼마나 나갔다고 그래?”

동생은 철부지 누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대체 물 밖은 위험하다고 그렇게 말했거늘.

언제나 자신들의 심장을 노리는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곳이다.

자신들의 여왕 역시 그 인간들에게 심장을 빼앗겨 지금 저렇게 시름시름 앓고 있지 않은가.

“됐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어서 여왕님의 심장을 찾으러 가자고!”

“말 돌리기는. 지금은 여왕님 심장이 더 중요하니까 참는 거야. 사고뭉치 누나.”

“고마워.”

수면 위로 상반신을 내밀었던 두 남매는 다시 수면 아래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찰랑

짧은 순간, 수면 위로 아름다운 꼬리지느러미가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졌다.

-지연 뭐야. 철부지 누나라닠ㅋㅋㅋㅋㅋ

└생각지도 못했는데 너무 잘 어울린다. 이거 완전 생활연기 아님?

└└님 <사람극장> 오지한편 다시 보고 오셈.

└└봤으면 그런 소리 못하지ㅋㅋ

-그보다 이거 약간 그거 같지 않음? 토끼 간 찾으러 육지로 간 거북이 이야기.

└토끼와 거북이?

└└그건 달리기하는 거고ㅋㅋㅋ

└별주부전!

└└이거다!

└별주부전 인어버젼이군. 이거 알아. 나 봤어.

└└선행학습 완료^^7

└└└잠깐만 별주부전에서는 결국 용왕님 치료 못하지 않았음?

└└└안 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벌써부터 시청자들이 앞에 있을 이야기를 궁예질하는 사이.

남매는 인간들의 배를 쫓아 인간 세상에 도착했다.

“다리라는 건 어색하군. 왜 두 갈래로 갈라진 거지?”

“나도 몰라. 어어, 어어!”

“누나. 중심을 잘 잡아야지.”

“으악! 볼 때는 쉬운 것 같았는데.”

“역시 인간들을 본 적이 있구나.”

“헙!”

인어가 인간 세상으로 나오는 건 금기였다.

그런데 그 사실을 들키고 말았다.

세상에서 가장 고지식할 것 같은 동생에게!

누나가 동생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고 있을 때, 누나의 팔을 잡은 동생이 한숨을 쉬었다.

“됐어. 가자.”

“잠깐! 내가 봤는데 인간은 몸에 천 조각을 걸치고 있었어!”

“천 조각? 그딴 건 왜 걸치는 거지?”

“나도 몰라. 아무튼 인간 세상에 왔으니 우리도 뭘 걸쳐야 해.”

“알았어. 나보다 인간에 대해 더 잘 아는 누나 말이니까 믿어볼게.”

그리고 누나의 말을 듣고 모래사장에서 주운 무언가를 걸친 동생은 자꾸만 자신들에게 꽂히는 시선에 불길함을 느꼈다.

“누나.”

“으, 으응?”

“아무래도 우리가 뭘 잘못 걸친 것 같은데.”

“이상하다. 내가 본 인간들은 이렇게 입고 다니던데.”

인간 세상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둘을 본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누가 비닐봉지를 걸치고 다니냐곸ㅋㅋㅋㅋㅋㅋㅋ

└얘들앜ㅋㅋㅋㅋㅋㅋㅋ나 죽엌ㅋㅋㅋㅋㅋㅋ배 아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밤 12시라 엄마아빠 자는데 크게 웃지도 못하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살려줘ㅠㅠㅠㅠㅠㅠㅠㅠ

└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아니 비닐봉지를 걸쳐도 예쁘고 잘생겼냐고ㅋㅋㅋ

└잘 생기고 예쁘긴 한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저 세상 패션이잖앜ㅋㅋㅋㅋ

└아니 우리 애들한테 왜 그러세요! 2011 머메이드 FW 신상인데!!

그때 얼굴은 멀쩡한데 하는 행동이 수상한 두 사람을 본 누군가가 웃음기를 띤 얼굴로 둘에게 다가갔다.

“저기 혹시 한국 사람? 혹시 짐 잃어버렸어요?”

“?”

“?”

어리둥절한 두 사람의 반응을 본 남자가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었다.

“하하. 아닌가? 같은 한국 사람이면 좀 도와주려고 했었는데.”

“맞습니다. 한국 사람.”

끄덕끄덕

재빠른 태세전환이 세상 물정 모르는 인어 둘을 살렸다.

외국에 놀러 온 재벌 3세는 잘생긴 둘의 얼굴을 보고 접근해 이것저것 챙겨줬다.

비닐봉지에서 벗어나 티셔츠에 바지를 입은 둘을 보니 시청자들은 마음이 편해졌다.

“혹시 연예인 해 볼 생각 없어요?”

“연예인?”

“제가 다른 형 누나들이랑 달리 가업에 관심이 없어서요. 아버지가 마지막 기회를 준다며 뭘 하고 살지 정해 오라고 했는데 제가 뭐 아는 게 있어야죠. 그런데 두 분을 보니까 엔터사업을 해 보고 싶어진 거예요!”

구구절절 자신의 사연을 읊는 남성을 두고도 남매는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도움을 받긴 했는데 자신들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지한이랑 지연이 스카웃 당함

└오지한(18세, 본업 할리우드 스타, 특이사항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

└지연(본명 오지연, 20세, 본업 가수, 부업 신인배우, 특이사항으로 빌보드 HOT100에 입성한 전적 있음, 최근 시청률 40%를 넘긴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음)

└지금 누가 누구한테 연예인 돼 볼 생각 없냐고 하는 거임ㅋㅋㅋㅋㅋㅋㅋ

└하운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 돈 많은 백수가 짱이야ㅠㅠㅠㅠㅠㅠㅠ

재벌 3세 역인 하운이 멀뚱히 앉아 있는 둘에게 조급한 얼굴로 말했다.

“저기, 생각 없어요?”

“죄송하지만 저흰 생각이 없어요.”

“해야 할 일만 하고 바로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라.”

“고향 어디요? 두 분이라면 대한민국 어딜 있어도 사람들이 가만히 둘 것 같지 않은데.”

“좀 멀어요. 많이.”

무려 바다 밑이니까.

멀긴 많이 멀지.

찾아오는 물고기들도 거의 없을 정도로.

“아쉽네요. 두 사람이라면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인 최정선만큼 클 것 같았는데.”

재벌 3세가 휴대폰 액정에 뜬 최정선의 얼굴을 보며 아쉬운 듯이 말했다.

화면에 최정선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재생되었다.

“잠깐. 할게요.”

“뭐부터 하면 되죠?”

“예, 예?”

“대신 그 화면에 뜬 사람 만나게 해 줘요.”

“이름이 최정선? 그 사람 꼭 보고 싶어요.”

“아아. 두 사람. 최정선 팬이구나. 좋아요. 계약해주면 제 힘을 써서 최정선을 만나게 해 줄 게요.”

재벌 3세의 말에 남매가 눈을 빛냈다.

찾았다!

여왕님의 심장을 뺏어간 사람!

-하운이ㅠㅠㅠㅠㅠ착한데 인어한테 호구잡히뮤ㅠㅠㅠㅠㅠㅠㅠ

└인간 세상에 나온 인어한테 당하냐고ㅋㅋㅋ

└우리 하운이는 그냥 순수한 것뿐이거든요!

└너무 순수해서 인간 세상 처음 나온 인어한테 당하고 삼

└하운아 계약서 도장 찍을 때까지 걔들 네 연예인 아니야. 왜 벌써 최정선 보여주는 거야.

└└이래서 도장 찍을 때까지 방심하면 안 되는 겁니다.

재벌 3세의 도움으로 최정선을 만난 남매는 최정선의 매니저와 재벌 3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본색을 드러냈다.

쿠당탕!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누가 할 소린지 모르겠네. 우리 여왕님 심장이나 돌려줘!”

“네가 빼앗아 간 여왕님의 심장. 지금 당장 돌려줘야겠어.”

“심장? 지금 무슨 소릴.”

“네 노래. 원래 그런 노래가 아니었잖아.”

“그게 무슨.”

어리둥절한 정선의 얼굴에 남매가 잠시 시선을 주고받았다.

이 남자는 정말로 모르는 것 같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 남자가 여왕님 심장을 뺏어 간 게 아닌가? 하지만 목소리가 분명.’

쾅!

셋만 있던 공간에 문이 벌컥 열렸다.

“여, 여왕님?”

“여긴 어떻게.”

“쯧. 갑자기 안 보인다고 했더니 여기까진 어떻게 온 거야 너희 둘.”

문을 열고 당당하게 들어온 인어여왕은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장을 입은 단정한 모습에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인어 남매가 어색할 지경이었다.

-여왕님 완전 멀쩡한데?

└누가 시름시름 앓고 있댔음?

└아니 그치만 우리 애들이 시름시름 앓고 있다고 했는데.

└여왕님 인간세상 패치 완료 됐는데? 완전 자연스러움!

└우리 연지언니 여왕포스가 장난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찐 여왕님이어서 그런 거였구나.

“죄송합니다. 제 아이들이 폐를 끼쳤네요.”

“아, 아이? 아. 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 맞으시죠? 예전에 제주도에서 만난 분.”

“네. 맞아요. 그때 들려주신 노래 정말 좋았습니다. 그 이후로 팬이 되어 최정산 씨 노래는 열심히 듣고 있었어요.”

“아아. 감사합니다. 그때 이후로 저도 용기가 생겨서 오디션에 도전했어요. 바로 앨범도 냈어요. 들으셨어요?”

“네. 항상 잘 듣고 있어요.”

여왕의 말에 최정산이 환하게 웃었다.

그런 둘 사이에서 남매는 눈만 데구르르 굴리고 있었다.

“너희들! 따라와!”

“저기, 벌써 가시는 겁니까?”

“이 녀석들이 가출을 하는 바람에 잡으러 온 거였거든요.”

“아아. 밥이라도 한 끼 대접하고 싶은데. 혹시 연락처라도 주실 수 없습니까?”

“괜찮아요. 그저 지금처럼 계속 노래를 불러 주시면 좋겠어요. 그거면 됩니다.”

“그래도.”

“그럼 실례 많았습니다.”

단호하게 말을 끊은 여왕이 남매를 데리고 나왔다.

풍덩!

뿌그르르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세 인어가 물속으로 들어갔다.

눈치를 보던 누나가 여왕에게 물었다.

“여왕님. 그, 어쩌다가 저 인간에게 심장을 뺏긴 거예요?”

“뺏긴 게 아니야. 내가 준 거란다.”

“! 왜요? 그 사람은 여왕님의 목소리를 뺏어 갔잖아요.”

“우리 심장에는 수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담겨 있긴 하지. 하지만 그 사람이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것을 줬거든.”

그러면서 여왕이 남매를 따스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그 남자와 처음 만났던 그날.

‘제주도’라고 불리는 인간들의 섬에서 그들은 만났다.

‘왜 그렇게 우울한 얼굴이에요?’

‘그러는 그쪽이야말로.’

‘하하. 저요? 제가 말하면 당신도 왜 우울한지 말해 줄 거예요?’

‘….’

‘저 오디션에서 떨어졌어요. 이번이 마지막 오디션이었는데. 저는 가수에 소질이 없나봐요.’

‘가수?’

‘노래 부르는 게 좋아서 가수가 되고 싶었는데 역시 저 같은 사람은 할 수 없나 봐요.’

‘가수가 되고 싶은 데 자격이 필요한가?’

‘누군가가 공인한 자격증 같은 건 없는데 역시 가수는 노랠 잘 불러야겠죠?’

‘불러봐.’

‘어, 어어. 갑자기요?’

‘얼마나 잘하는지 들어봐줄게.’

‘음. 그. 듣고 놀리지 마세요.’

최정산은 단 한 명의 청중을 위해서 노래를 불렀다.

‘하하. 못 불렀죠?’

‘잘하네.’

‘네?’

‘잘한다고. 적어도 내 귀에는 듣기 좋았어.’

그 말을 들은 최정산이 눈물을 또르르 흘렸다.

‘고맙, 고맙습니다.’

‘가수가 되는 데 자격이 필요하다면 내가 줄게. 그러니 가수 해.’

당황스러울 정도로 당당한 발언에 정산이 울다가 웃었다.

‘그럼 이제 그쪽이 왜 우울한 얼굴이었는지 말해 줄래요?’

‘갑자기 내가 최종 책임자가 되어버렸어.’

‘음. 그쪽이라면 잘할 거 같은데요?’

‘네가 어떻게 알아.’

‘그냥. 방금 저한테 자격증 준 걸 생각하니까 잘하실 거 같아서요.’

‘…그래. 일단 해 보고 안 되면 때려치우지 뭐.’

‘그렇게 해도 되요?’

‘어쩔 거야. 내가 최종 책임잔데.’

‘그렇네요.’

그 인간을 만난 덕분에 여왕의 자리를 승계 받은 불안이 싹 사라졌다.

그리고 소중한 아이들까지 얻었다.

“그는 잘못한 게 없어.”

“그치만.”

“괜찮아. 그보다 날 생각한다면 너나 더 이상 물 밖으로 나가지 마렴.”

“윽.”

“여왕님 말이 맞아. 누나 내가 지켜볼 거야.”

“어째 동생이 더 의젓하구나.”

“칫.”

어린애처럼 토라진 딸을 본 여왕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세 인어는 서서히 깊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얼마 후,

“누나아?”

만타가오리 대군을 이끌고 나타난 동생이 일탈한 누나를 현장에서 검거했다.

물고기들과 함께 근처에 있는 인간을 염탐하고 있던 누나가 동생의 무시무시한 눈빛에 어깨를 움츠렸다.

“하하. 여긴 어쩐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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