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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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같은 그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서 하루 빨리 대책을 찾아야했다.

회의실을 뛰쳐나가는 이들의 머릿속에는 스타작가를 찾아가 무릎이 닳도록 비는 것과 이전에 같이 작업했던 스타들의 매니저에게 연락을 돌리는 것만 가득했다.

* * *

KBC의 옥상은 PD들이 담배 한 대 피러 자주 오는 곳이었다.

승승장구하는 예능국과 달리 곤두박질치는 드라마국에 속한 유철왕은 오늘도 살벌한 드라마국을 피해 옥상으로 올라왔다.

연이어 2작품을 말아먹은 탓에 앉아 있기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후우.”

허공에 나부끼는 담배연기를 보며 새 작품을 어떻게 연출할지 생각하던 그는 이내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자신에게 그런 기회가 오는 것은 로또에 당첨되는 것만큼 힘들 것이다.

누가 연속으로 2작품을 말아먹은 PD에게 연출을 맡기겠는가.

철왕이 허탈하게 웃으며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이대로 이렇게 누군가가 나가라고 할 때까지 소품처럼 앉아 있다가 끝나겠지.

“여기 있었냐.”

“어, 왔냐.”

철왕의 어깨를 누군가가 치며 다가왔다.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선배인 동현이었다.

“오늘 회의실에서 난리였다며. 그거 때문에 지금 PD들 전부 스타작가나 매니저랑 연락한다고 바쁜 거 아니었어?”

“대본이 있어야지. 나는 지금 하고 있는 것 마무리하기도 바빠.”

“그랬지 참. 이제 곧 마지막 화지? 그럼 더 바로 다음 작품 준비해야지.”

“됐어. 국장님도 너무하시지. 애초에 사극 말고 다른 작품 지원도 덜하면서 어떻게 우리보고 비싼 작가랑 스타를 가져오라는 거야?”

“성적이 안 좋으니 돈 안 주고, 그러니 점점 작품의 질이 떨어지고. 악순환이네.”

“그런 거지.”

두 PD가 답답한 숨을 허공에 토해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숨 막힐 것 같은 드라마국에서 버티기 힘들었다.

동현이 안색이 어두운 철왕을 보고 말했다.

“너 2작품 말아먹고 작품 들어가기 너무 힘들지?”

“말이라고 하냐.”

“그거 다 너 때문이 아니잖아.”

“그게 뭐가 중요하냐. 이미 나한테는 똥물이 잔뜩 묻어버렸는데.”

“야, 막말로. 남자 주인공이 사고 친 게 왜 네 탓이야. 그거 관리 안 한 소속사가 잘못이지.”

“그래서 거기도 걔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잖아.”

“그리고 사고도 그래! 애초에 장비 망가진 것도 네 탓이냐? 누가 조명 쓰러질 줄 알았어?”

“그거 쓰러지면서 망가진 장비가 한두 개가 아니야. 하필 다른 장비들 위로 쓰러지는 바람에. 에효.”

“망할. 현장 스태프들이 잠 한숨 못자고 촬영한 게 다 누구 때문인데?”

“어찌됐든 현장에서 일어난 일은 전부 PD책임 아니겠냐.”

“너는 임마 그게 문제야. 모든 문제를 다 네가 끌어안으려고 하는 거. 요즘 세상에서 그러다간 호구 취급 당해 이놈아.”

“알아. 아는데. 어쩌겠냐. 이게 난데.”

동현은 묵묵히 제 할 일 하는 철왕에게 이어진 불행에 자신이 다 답답한 심정이 되었다.

오랜 시간 메인 달지 못하던 놈이 겨우 입봉하나 싶었더니 입봉 이후로 맡은 작품이 전부 죽 쑤고 있었다.

동현은 성실하고 책임감 넘치는 철왕에게도 행운이 찾아오길 바랐다.

그래야 이 세상이 아직까지는 살만한 곳이라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방송국 근처에 조성된 공원을 보고 있던 동현이 문뜩 누군가를 떠올렸다.

“너한테 행운의 토템이 필요할 거 같다.”

“그런 게 있으면 진짜 내가 대출을 받아서라고 사고 싶다.”

“대출을 받을 필요까진 없고, 입만 좀 털면 되는데 어때?”

동현의 말에 철왕이 의아하게 그를 바라봤다.

“행운의 토템을 고작 입 좀 턴 걸로 받을 수 있다고? 너 어디 가서 사기라도 당했냐?”

“그런 거 아니야. 표현을 이렇게 했지만 정말로 네가 노력만 하면 얻을 수있을지도 몰라. 아마 돈으로 사는 것보다 더 힘들걸?”

“그게 무슨 소리야. 좀 알아듣게 말해봐.”

“너 지연 아냐?”

“대한민국에 지연 모르는 방송국 사람도 있냐?”

국가대표 연예인으로 불리는 그 남매를 누가 모르겠는가.

그런데 지연이 왜?

철왕이 의아한 얼굴로 동현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탑엔터에서 지연을 그렇게 싸고도는 이유가 지연이 찍는 작품이나 곡이 전부 대박나서래.”

“인기가 많으니까 그런 거겠지.”

“나도 힘들게 알아본 건데. 내부에서도 다른 배우들 작품 고를 때 지연한테 물어본단다. 그리고 오지한 알지? 오지한 작품 선정할 때 유일하게 조언을 구하는 상대가 지연이래. 심지어 데뷔 초기 때는 지연이 작품을 골라줬단다.”

철왕은 동현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그 정도로 작품 보는 눈이 좋다고?

“그리고 걔 하는 거 봐라. 건드리는 것마다 다 대박 터트렸어.”

“정말?”

“그래. 그러니까 대본 들고 찾아가봐라. 회사에서도 지연 정도 급 데려오면 될지도 몰라.”

“올 초에 아이돌들로 만든 드라마 시청률 별로였잖아.”

“지연이 나온 첫 드라마 기억 안 나냐? 걔 결국 막방에 30% 넘긴 거 몰라? 요즘 같은 때 30%라니.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거 알지?”

“그거 오지한이 나와서 그런 거잖아.”

“연장했으면 35%까지 갔다는 게 업계 생각이야. 16화만 해서 아쉬웠지.”

“오지한이 예전부터 연장을 잘 안 하기로 유명했잖아. 나도 16화에서 이야기를 더 늘리면 지루해질 것 같아서 별로긴 하더라. 더 늘릴 내용도 없고.”

“그건 그렇지.”

“아무튼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지금 네가 작가나 배우 구하긴 힘들잖아. 지연은 아직 배우로서는 신인이기도 하고.”

“첫 작품이 시청률 30%을 넘겼는데 신인?”

“사소한 건 넘어가.”

동현은 태클을 거는 철왕을 조용히 시켰다.

“그럼 네가 할 수 있는 건 신인이나 아직 뜨지 못한 작가의 대본을 가지고 가서 지연을 설득시켜야 한다는 거지.”

“설득이라.”

“지연을 설득한다면 아마 탑엔터에서도 지원이 들어올 거다. PPL도 빵빵할 거고. 그 말이 뭔지는 알지?”

“제작비 걱정을 안 할 수도 있다는 거?”

“맞아! 그거야!”

제작비 걱정 없이 촬영할 수 있는 환경이라니.

그야말로 꿈과 같은 환경이 아닌가.

어느새 철왕의 두 눈은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막다른 길에 서 있는데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것만 같았다.

“자, 어서 가. 지금 다른 사람들이 전부 스타작가랑 톱스타만 찾고 있을 때 너는 다른 길을 모색해야지.”

“고맙다 동현아. 잘 되면 내가 진짜 잊지 않을게!”

“그래. 수고해!”

동현이 옥상을 뛰어나가는 철왕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진짜 잘됐으면 좋겠네.”

그래서 자신을 잊지 않아 주면 더 좋고.

쪼들리는 제작비와 살인적인 촬영환경에 지친 동현은 국장의 말에 불 붙은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PD들처럼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눈치는 보이겠지만 조금 쉬어가고 싶었다.

그 김에 저 녀석의 꼬인 인생 푸는 데 도움도 주고 싶었고.

“그런데 진짜 지연을 섭외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방송국 PD답게 머릿속으로 만약의 일을 상상하며 동현이 남은 담배를 마저 피웠다.

* * *

동현의 조언을 들은 철왕은 자신과 같이 작업했던 작가에게 연락했다.

“최 작가!!!!”

-유 PD님?

망할 남자 주인공 때문에 말아먹었던 작품의 작가인 최민경은 오랜만에 걸려온 유 PD의 연락에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남주가 스캔들이 터진 것도 문제였는데 상대가 유부녀였다.

드라마 시청자들이 젊어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주 시청자는 대부분이 주부였다.

그런데 유부녀를 상대로 스캔들이 터졌으니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은 안 봐도 뻔한 것이었다.

“최 작가 나랑 작품 하나 하자!”

-유 PD님. 저 이제 작가 안 해요.

힘없는 민경의 말에 철왕이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나랑 같이 작품 하기 싫어서 그래?”

-그게 아니라요. 그냥. 저한테는 작가가 안 어울리는 거 같아서요.

철왕은 민경의 말을 믿지 않았다.

같이 작품을 할 때 드디어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 나온다고 제 손을 잡고 눈물을 펑펑 터트렸던 민경이었다.

순조롭게 촬영이 되고 현장 분위기도 좋았다.

4화까지 시청률은 높은 각을 그리며 치솟았고 회사에서도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 주인공의 스캔들이 터지기 전까지.

그래프는 높게 솟구치던 만큼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철왕은 민경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최 작가. 하나만 물어볼게. 정말 글에서 손 뗀 거 맞아?”

-….

“아니지? 나도 작품을 2개나 말아먹었는데도 이 짓 손에서 못 놓겠더라.”

-PD님.

“이번 한 번만. 더 해 보자. 뭐든 삼세판이잖아?”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최 작가. 무작정 날 믿으라고는 못 하겠다. 그런데 최 작가가 용기를 내면 내가 내 인생 전부를 걸고 어떻게 해서든 꼭 성공시킬게.”

-무슨 인생을 걸어요.

철왕의 말에 웃음기 어린 민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좋아요. 한번 해 볼게요.

“그래. 시놉만 써 줘. 나머진 내가 할게.”

-저 사실 미리 써 놓은 대본이 있어요.

민경의 말에 철왕이 활짝 웃음을 지었다.

역시 민경이나 자신이나.

실패하고 좌절하면서도 이 판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한테 파일 보내줄 수 있어?”

-네!

첫 단계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철왕은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한 번 걸어보고 싶었다.

* * *

민경에서 받은 시놉시스를 읽어 본 철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망할 놈만 아니었으면 시청률 30%을 바라봤을 거라는 평가에 맞게 최 작가의 실력은 아직 죽지 않았다.

자신의 탓이 아니라도 망한 작품과 얽혀 있으면 꺼려하는 방송가 분위기상 다른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 못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최 작가가 자신을 믿고 제 새끼들을 맡겨주었으니 이제 나머지는 지연을 설득하는 것뿐이었다.

철왕은 있는 인맥, 없는 인맥을 다 끌어모아서 알아온 정보로 지연이 자주 출몰하는 회사 근처에 도착했다.

“쉬는 날에도 회사에 자주 온다더니 맞는 말인가 보군.”

탑엔터에 출입하는 사람들이 잘 보이게 회사 근처로 카페가 진을 치듯이 자리하고 있었다.

새벽부터 카페에 앉아 죽치고 있던 철왕이 파파라치처럼 건물 주차장 입구만 주구장창 보고 있었다.

그때 카페가 점점 소란스러워졌다.

외국어와 한국어가 섞이는 사이 철왕의 귀로 한 사람의 이름이 꽂혔다.

“저거 지연이 밴 아니야?”

“맞아! 맞는 거 같아!”

멀리서 들어오는 연예인 밴을 본 철왕이 프린트한 대본을 쥐고 카페 밖으로 달려갔다.

늦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허억, 허억.”

운동 좀 해 둘걸.

급하게 내려온 철왕은 어느새 회사 주차장 출입문 근처까지 다가온 밴을 보고 다급히 차 앞을 막았다.

서행하던 차가 앞에 뛰어든 철왕을 보고 급하게 멈춰섰다.

경비를 서던 이가 철왕을 붙잡았다.

“뭐 하시는 겁니까. 위험하게!”

주위를 보니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자신을 지켜보는 팬들이 보였다.

이런 일이 있을 경우 팬카페 제명이나 소송까지 가는 탑엔터의 성향상 회사 근처에서 이런 짓을 벌이는 이는 드물었다.

팬들이 다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때, 창문이 내려가고 은주가 사나운 얼굴로 말했다.

“저 사람 신원 확인하고, 경찰 부르세요.”

“네, 팀장님.”

다시 창문을 올리고 들어가려는 은주의 귀로 철왕의 외침이 들려왔다.

“부디! 제 드라마에 출연해 주세요!!!!!”

철왕이 길바닥 위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주위에서 구경하던 이들도, 경비원과 은주도 당황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멀뚱히 철왕이 하는 것을 지켜봤다.

차 안에 있던 지연은 당황하는 은주를 보고 고개를 힐끔 내밀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뜬금없이 나타나서 길바닥에 석고대죄하는 이 아저씨는 누구래?

지연이 머리를 땅에 박고 있는 아저씨를 보고 눈을 깜박였다.

옆에 다가온 지연의 기척을 느낀 은주가 정신을 차리고 지연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일단 여기서 이럴 게 아니고. 경비아저씨. 저 사람 신원 확인하고 로비로 데려와 주시겠어요?”

“예에.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은주가 사태를 정리하고 차를 몰아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차가 사라지는 와중에도 남겨진 자들은 아직도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가 안 되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127. 이거 나 때문인가?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같이 올라오는 사이 지연이 은주에게 물었다.

“언니 저 사람 누구야? 아는 사람이야?”

“글쎄. 갑자기 드라마 출연해 달라는 걸 보면 드라마 PD나 제작사 사람인 거 같은데.”

석고대죄하면서 말했던 걸 생각해 보면 그 둘이 제일 유력했다.

엘리베이터에 타 로비가 있는 1층을 누른 은주가 빠르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왜 여기 와서 이러고 있어?”

“나도 몰라. 최근 지상파 드라마들 시청률이 다 별로라는 말을 듣긴 했는데. 그거 때문인가?”

“그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왜 나한테 와서 저러는 거지?”

“흐음. 그러게.”

바닥까지 떨어진 시청률을 끌어올리려면 나를 찾아올게 아니라 작가를 찾아가야지 왜 하필 나야?

나 고작 드라마 한편 출연한 게 다야.

얼마 전까지 콘서트 뛰고 왔다고.

나 머리도 아직 반은 빨간색인데 이 머리로 드라마를 촬영하라고?

도대체 날 왜 찾아온 거야?

“아, 답장 왔다.”

“2팀이야?”

“응. 방금 일 보고할 겸 알아봐 달라고 했거든.”

방송국 사정을 빠르게 수집하는 회사답게 금방 입구에서 말썽을 일으킨 PD에 대한 정보가 전달됐다.

“유철왕 PD. ‘하숙집 사람들’이란 단막극으로 입봉. 입봉 후 성적은 그럭저럭. 최근 2작품 말아먹었는데 하나는 남자 주인공이 유부녀를 상대로 불륜 스캔들이 터져서 하차. 다른 하나는 조명이 다른 장비 위로 쓰러지면서 장비가 망가져서 촬영 지연. 그거 때문에 배우가 촬영 못 하겠다고 했단다.”

“와. 그 사람 진짜 불쌍하다. 이렇게 운이 없을 수가 있나?”

“그러니까 말이야. 그거 때문에 새 작품 못 들어간 지가 꽤 됐단다.”

“대충 상황 돌아가는 건 알겠는데 왜 하필 날 찾아왔냐는 거지.”

“그러게 말이다. 네 스케줄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콘서트 끝나면 지한이랑 휴가 갈 거 아니었어?”

“맞아. 지한이랑 같이 헨리 선생님 보러 갈 계획이었는데.”

“이번에도 LA?”

“응. 지한이랑 서핑 타기로 했어. 선생님 별장에서 같이 그림도 그리기로 했는데.”

“네 휴가는 지켜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언니만 믿을게.”

지연의 휴가계획까지 전부 꿰고 있는 은주가 ‘절대휴가사수’라는 구호를 이마에 써 붙인 듯이 당당한 기세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래. 뭔 드라마를 찍으려고 하기에 우리 지연이를 찾으러 왔는지는 모르지만.

우리애 휴가를 방해하기만 해 봐.

내가 아주 그냥 척추를 접어버릴 테다!

경비원의 검문 아닌 검문을 받고 신분증 검사까지 받은 유철왕 PD가 로비에 내리는 두 사람을 보고 벌떡 일어났다.

* * *

약속 없이 찾아온지라 철왕은 눈치를 보며 로비에 앉아있었다.

검문을 받고 경비원에게 신분증 검사까지 받은 뒤에야 철왕은 로비에 들어올 수 있었는데

그는 로비에 오가는 직원들과 연습생들을 곁눈질로 살피면서 손에 쥔 시놉시스를 꼭 쥐고 있었다.

일 분을 천 년처럼 앉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멀리서 봐도 연예인 포스가 철철 흘러넘치는 지연과 매니저가 걸어나왔다.

벌떡!

KBC 사장을 맞이하듯 일어난 철왕이 코앞에 다가온 두 사람을 보고 허리를 푹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조폭형님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각 잡힌 인사와 우렁찬 목소리에 잠시 로비의 시선들이 집중됐지만 은주의 날카로운 눈빛에 다들 제각기 할 일을 하러 돌아갔다.

주위의 시선을 물린 은주가 지연과 함께 철왕의 맞은편에 앉았다.

“네. 안녕하세요. 갑작스럽게 찾아오셨지만 일단 통성명 먼저 하죠. 여기 있는 사람은 잘 아시겠지만 저희 회사의 간판 중 한 명인 지연이에요.”

“안녕하세요, 지연입니다.”

“저는 지연이 소속된 가수 2실 소속 이은주라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KBC 드라마국 소속 유철왕 PD입니다.”

철왕이 대본과 함께 꼭 쥐고 있던 명함을 내밀자 은주 역시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침착하게 인사를 나눈 사람들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이렇게 찾아오시는 분은 처음이네요. 아시겠지만 방송국 국장님이라고 해도 미리 약속을 잡으셔야 하거든요.”

“죄송합니다.”

은주의 말에 철왕이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지상파 3사 출신의 PD면서도 저자세로 나오는 철왕을 보고 은주와 지연이 시선을 교환했다.

연달아 작품을 말아먹어서 그런가?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거 같은데 얘길 더 들어봐야 하나?

그런데 다른 사람도 많은데 굳이 날 찾아온 걸 보면 뭔가 이유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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