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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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화려한 황금 의자를 본 남매가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

“와아.”

“벌써 그림 나오는데요?”

스태프들이 자리에 앉은 둘을 보고 감탄했다.

“그럼 준비되시면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감독의 말에 아이들의 눈빛이 변했다.

“Oh God!”

연기에 몰입한 남매를 보고 안젤라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었다.

흡사 믿지 못할 기적이라도 본 것처럼 앓듯이 내뱉는 탄성에 평소였다면 촬영장에서 시끄럽게 하지 말라는 호통이 따라왔어야 했건만 그 호통을 지를 사람마저 넋을 놓고 있었다.

순식간에 변한 분위기에 압도된 감독이 겨우 신호를 보냈다.

“들어갑니다. 3, 2, 1. 큐!”

반사적으로 촬영에 들어간 스태프들이 몸은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남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곳에

신이 있었다.

There is a God

* * *

“아까 스태프들 반응 봤어?”

“나는 거기 사장님이 더 웃기더라. 마지막에 나올 때 애들 손 안 놓는 거 봤지?”

“봤지, 봤지.”

영훈오빠와 미나언니가 자식자랑을 하는 부모처럼 뿌듯한 얼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얼른 빠져나와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오늘 집에 못 갈 뻔했겠어.’

촬영이 끝나고 자신들을 경이로운 눈으로 환송하는 촬영 스태프들을 뒤로 한 채, 남매는 차에 올라탔다.

스케줄 끝나고 따라오는 팬을 보는 것처럼 졸졸졸 따라오는 사람들을 보고 빨리 자리를 떠나 주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후우.”

지연이 지친 몸을 늘어트렸다.

옆을 보니 지한이도 지쳤는지 고개를 꾸벅이고 있었다.

목소리가 주었던 그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서 엄청 집중했더니 체력이 좋은 남매라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자동차 좌석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는데 어디선가 찌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오빠. 왜 그렇게 봐.”

“…너희들 사람 맞지?”

“형 또 왜 그래.”

“오빠. 우리 피곤해.”

헛소리하지 말라는 뜻이 담긴 아이들의 말에 영훈이 ‘내가 아는 애들이 맞는데’라고 중얼거리며 다시 앞을 바라봤다.

“아니 오늘 너희들 보는데 뭐랄까. 경외감? 그런 게 느껴지더라. 왜 그 옛날에 사람들이 신을 숭배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

감히 자신과 같은 차원에 있는 것 같지 않은 존재감이었다.

“너희 상대 배우 기억하지? 내가 리허설 할 때 봤는데 그 배우 그 정도로 잘하진 않았어.”

“그랬어? 본방에서 잘하는 스타일인가 봐.”

“글쎄. 내 생각에는 아마 연기라는 것도 잊고 진짜 너희들을 보고 경배한 거 같던데. 나도 무릎 꿇을 뻔했잖아.”

“오빠 너무 띄워주지 마. 이러다 대기권 밖으로 나가겠어.”

“아니 내 말 좀 들어봐.”

“네네. 형. 우리 좀 쉬자. 오늘은 진짜 힘들어.”

아이들의 말에 영훈이 알겠다며 담요를 덮어 주었다.

덮어주고 돌아서면서도 ‘역시 인간세상에서 힘을 써서 지친 게 분명해.’라고 헛소리를 말하는 것이 들렸다.

‘미나 언니한테 물들었나.’

망상하는 것이 미나 못지않았다.

잠에 빠져들면서도 흐린 시야 속에서 우리를 힐끔거리며 속닥이는 두 사람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았다.

120. 아시아투어 (1)

서연은 연바라기 회원이다.

그것도 초창기 회원.

다른 남자 아이돌 그룹을 보러 음방을 갔다가 지연의 무대를 보고 그대로 입덕해 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스펙이니 뭐니 신경 쓰느라 바빴지만 서연은 아직 조금 더 청춘을 즐기고 싶었다.

대학생의 미덕이자 꿀팁인 금요 공강 덕에 늦잠을 자고 아침 일찍부터 뒹굴고 있던 서연은 폰을 쥐고 화면을 움직였다.

“우리 지연이는 앨범 안 내나? 이대로 연기로 빠지는 건 아니겠지?”

지연이 연기도 잘하는 걸 보고 역시 내 새끼라며 흐뭇해하던 것도 잠시.

연이은 지연의 드라마 캡쳐 기사와 사진들, 지연의 연기활동을 응원하는 글들을 보면서 서연은 불안했다.

우리 지연이가 이제 노래 안 부르고 연기만 하겠다고 하면 어쩌지?

가수로 데뷔해서 연기자의 길로 빠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하물며 우리 애는 다른 애들과 달리 연기도 잘한다!

“나는 더 이상 우리 지연이 노래를 못 들으면 잠이 안 온다고!”

중학생 때부터 지연의 노래를 자기 전에 계속 들었는데 그게 습관이 되어버렸는지 이제 자기 전에 지연의 노래를 듣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

“날 이렇게 길들여 놨으니까 책임을 져 줘! 새 노래! 새 앨범! 새 티저!”

물론 지연의 데뷔 앨범인 나 , 지한이랑 같이 불렀던 백귀야행의 이랑 , 그다음에 나온 도 또 그다음에 나온 곡들도 전부 좋았다.

하지만 난 새 곡을 듣고 싶다고!

이번 드라마에서 지연이가 소화할 수 있는 새로운 컨셉을 발견했단 말이야.

여왕님 컨셉도 해 줘, 지연아!

이별 노래도 불러줘!

빌런 주제곡 같은 노래도 불러줘!

“끄아아아아앙!”

원하는 컨셉이 너무 많아서 서연이 침대 위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우리 애는 어쩜 이렇게 모든 컨셉이 다 찰떡이지?

금손님이 포토샵으로 만든 앨범컨셉 ver.한영 자켓사진이 너무 멋있었다.

누워있던 서연은 혹시나 지연의 다음 활동에 대한 떡밥이 없나 인터넷을 뒤졌다.

[새로운 변신에 성공한 지연, 차기작은?]

[연이은 호평. 연기도 완벽했다!]

[지연의 앞으로의 행보는?]

“뭐야. 죄다 연기 얘기네. 우리 애 컴백 얘기는 없는 거야?”

안 되는데.

지연이 노래해야 하는데.

시무룩하게 휴대폰 화면을 보던 서연이 초조하게 손가락으로 화면을 움직였다.

“어?”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찾아보던 서연이 자신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냈다.

[email protected]

JIHAN♥JIYEON♥Francois

신의 보석상이라 불린 프랑수와와 함께

지한과 지연의 신이 된 모습을 봐주세요.

인피니티 브레이슬릿(동영상1)

마누엘 산토스 프랑수와 워치(동영상2)

“어억!? 어어어어어어!?!!!!!! 이건 뭐야!”

서연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매트리스 때문에 발이 푸욱 들어가 균형 잡기 힘든 와중에도 서연의 시선은 화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탑엔터 공식 SNS 계정에 지연의 소식이 올라왔다.

동영상 썸네일에 있는 지연이와 지한이의 모습이 어쩐지 인간이 글에서 말한 것처럼 신적인 존재처럼 보였다.

“뭐야. 뭐야.”

방금까지만 해도 지연이가 새 앨범 안 내주나 아쉬워하고 있던 서연이 공식 계정에 뜬 영상을 보고 입을 가렸다.

가리지 않았으면 귀까지 찢어진 입을 드러낼 뻔했다.

룸메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기숙사에서 그럴 수 없지.

자신의 사회적 체면을 지킨 서연이 경건한 마음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책상으로 향했다.

이렇게 좋은 건 큰 화면으로 봐야 했다.

노트북을 켠 서연이 조금 전 찾은 게시글을 읽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큼, 큼!”

노래 부르는 것도 아니고 발표를 하는 것도 아닌데 목을 푼 서연이 마우스에 손을 조심스럽게 얹었다.

벌써 설레는 마음에 떨리는 손가락으로 동영상을 힘겹게 재생했다.

달칵!

잔잔하게 시작된 피아노와 바이올린 협주가 느리게 재생됐다.

화면 속에는 신전처럼 웅장하고 거대한 내부가 비춰지고 있었다.

신전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들로 이루어져서 화려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곳의 가장 깊은 곳에

신이 있었다.

“흡!!”

서연이 자신도 모르게 흘린 숨소리를 참았다.

동영상 썸네일에 있었던 그 장면이었다.

높은 곳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는 이의 얼굴은 그야말로 아름다움이란 단어를 형상화한 듯 화려하고 우아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으로 만든 것 같은 두 눈동자

대리석으로 조각한 것처럼 곱고 하얀 피부

비단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머리카락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압도적인 존재감

“흐아아.”

서연이 앓는 소리를 냈다.

저도 모르게 나온 소리였지만 서연은 지금 자신이 소리를 내고 있는지도 몰랐다.

신이 있다면 이런 존재이리라.

이렇게 보기만 해도 압도되는 존재가 있다면 신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의 신들은 몸에 화려한 의상과 보석들을 걸치고 있었지만 그것이 전혀 과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보석들이 둘의 아름다움과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을 돋아주고 있었다.

그때 영상이 두 신들의 손목을 조명했다.

서서히 고조되는 음악과 함께 화면이 전환됐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앵글에 물결처럼 흘러내린 드레스자락이 비춰졌다.

‘지연이구나!’

얼마나 봤다고 드레스 자락만 봐도 서연이 지연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마치 신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인간의 시선처럼 움직인 화면에 지연이 가득 잡혔다.

한쪽 눈썹을 올려 흥미로움을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자비를

눈을 한 번 깜빡이며 승낙을 한 여신이 도움을 구하러 온 인간에게 선물을 내렸다.

여신이 손목에 착용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브레이슬릿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인피니티 브레이슬릿]

지연의 유혹적인 음성이 영상을 마무리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영상이 끝나자 서연이 막힌 숨을 토해내듯이 비명을 질렀다.

“이건 다시 봐야 해!”

세상에 우리 애가 여신이라니!

완전 찰떡이잖아?

드레스를 입고 황금 의자에 앉아 있는 지연은 절로 무릎을 꿇어야 할 만큼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었다.

“이걸 실제로 봤어야 했는데!”

나도 광고촬영현장에 직접 있고 싶다.

나도 지연이가 촬영할 때마다 직접 보고 싶다!

“어, 벌써 1만 넘었네.”

넋 놓고 보고 있으니 벌써 조회수가 10K를 넘었다.

보는 순간에도 숫자는 순식간에 몇 배씩 늘었다.

“이건 다시 봐야 해.”

서연이 다시 동영상을 재생하려고 할 때 마음이 급한 나머지 실수로 화면을 내렸다.

자신의 실수에 서연이 안타까운 음성을 냈다.

“아, 안 돼.”

새로고침 표시가 돌아가는 화면을 보고 그 시간조차 아까워 안달하던 서연이 곧 위에 뜬 새 글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맞는 거야?

[email protected]

JIYEON 1ST ASIA TOUR ‘Release’

SEOUL 2011.4.30

티켓오픈일 : 4월 1일 금요일 오후7시

곧 지연이 찾아갑니다.

(사진1)(사진2)

“콘서트윽?!”

오늘 무슨 날인가?

내 생일이야?

만우절은 아니지?

달력을 보고 두 눈도 비비던 서연이 현실을 실감하고 소리를 질렀다.

“콘서트!!!!!!!!!”

벌컥!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콘서트으으으!!”

“어어.”

문밖에서 만난 지 한 달도 안 된 룸메이트의 비명을 들은 서연의 룸메가 방으로 놀라며 들어왔다.

허겁지겁 들어왔는데 콘서트라는 말만 하며 소리를 지르는 서연을 보고 룸메가 조심히 다시 뒷걸음질 쳐 방에서 나갔다.

‘룸메가 아이돌 팬인가 봐.’

룸메의 사생활을 존중해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문을 닫은 서연의 룸메는 다시 기숙사 밖으로 향했다.

* * *

[오지한·지연×프랑수와, 광고 영상 공개!]

[神과 神의 보석상의 만남, 오지한·지연 신의 미모]

[지연, 여신 같은 완벽한 미모]

[‘남성미 물씬’, 오지한 성숙한 매력 발산]

[데뷔 8주년 기념 콘서트. 지연 아시아 투어 개최]

[지연, 컴백과 동시에 아시아 투어?]

└우리 지연이 콘서트라니. 이게 무슨 일이야!

└계속 연기할 줄 알았는데 콘서트라니 너무 좋구여.

└└연기력 딸리니까 다시 팬들한테 들러붙으려고 왔네ㅋ

└지연아 쉬엄쉬엄해(입을 틀어먹고 있는 짤.jpg)

└└님 손 치워 봐요.

└└(웃고 있는 짤.jpg)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님 잇몸 마르겠어요.

└└└앗. 감사감사. 하지만 어떻게 안 웃을 수 있어여ㅋㅋㅋㅋ

└세상에 우리 애들 광고 무슨 일이고.

└└미의 신이라니 너무 찰떡이구요. 얘들아 누나 녹는다.

└└앗. 저도 녹았음. 함께 해여.

└└여기가 축축한 습기가 남아있는 행성이와 바라기들의 무덤인가요.

└└└어서오세요.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곳입니다.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화제가 채 가시기 전에 공개된 프랑수와 광고에 대중들은 다시 열광했다.

그동안의 기다림을 보상하듯이 쏟아진 영상과 사진에 모두들 열광하면서 기뻐하고 있었다.

“언니, 뭐 해?”

“응? 모니터링.”

“왜?”

“아니 네 기사에 악플 다는 놈들 캡쳐하게.”

“그걸 왜 언니가 해.”

“내가 아님 누가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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