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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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잘 지내.”

“다행이다. 한영 언니 맨날 아파서 쓰러지곤 했었잖아. 이제는 괜찮다니까 안심이 되네.”

“응.”

“치킨 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때마침 도착한 치킨에 다온의 관심이 치킨으로 향했다.

신나는 얼굴로 치킨을 받아드는 다온을 보고 한길이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 * *

디자인이 통과된 다온이 회사에서 승승장구한다.

팀장님이 지나가면서 다음 시즌도 준비해 보라고 한 게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너 기분 좋아 보인다?”

“흐흣. 내 디자인이 통과됐어.”

“디자인? 벌써? 너 아직 신입이라며.”

“운이 좋았지.”

“이야. 축하해.”

한길이 오징어 다리를 들어 축하했다.

술잔을 부딪치는 것처럼 허공에서 오징어 다리를 부딪친 두 사람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말인데 이한길.”

“어, 응. 나?”

“뭐야. 왜 그렇게 반응하냐. 그럼 여기에 이한길이 너 말고 또 있어?”

“그렇지. 응. 왜.”

다온의 말에 한길이 잠시 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들뜬 그녀의 눈에는 그런 한길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너 앞으로도 날 도와줄 수 있어?”

“갑자기? 왜? 무슨 일인데.”

“아니. 널 보니까 영감이 마구 솟구쳐서 말이지.”

그러면서 다온이 한길의 몸을 쓸었다.

“어우. 야. 야. 너 왜 이래. 변태같이.”

“한길아 너 몸 좋다.”

“그만해.”

한길이 다온의 손길을 피해 멀찍이 떨어졌다.

겁탈이라도 당한 것처럼 손을 교차해 가슴을 가린 한길이 흔들리는 눈으로 다온을 바라봤다.

취해서 한 것치고는 다온의 눈길이 너무 멀쩡했다.

심지어 둘이 마신 건 맥주도 아니고 그냥 탄산음료였다!

“흐흐흐흐. 이리와. 내가 잘 그려줄게.”

“뭘 그려준다는 거야. 옷 디자인 한다며. 내 몸을 왜 그려!”

한길이 다온의 손길을 피해 평상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야! 내가 어릴 때 너 옷 꿰매 준 게 얼만데. 지금 갚아!”

“그때는 그런 말 없었잖아!”

“네가 말도 없이 떠나서 할 틈이 없었던 거야!”

“이사 간 건 내가 원해서 간 게 아니라고!”

“아무튼 말없이 사라졌잖아!”

옥상에서 평상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두 친구가 티격태격했다.

-얘들아 너무 달아서 내 이 다 썩겠다.

└나도 당뇨 걸림.

└이한길 신고. 죄명 심장폭행죄.

└앗 저도 신고.

└이한길 유죄. 땅땅땅.

└└판사님이세요?ㅋㅋㅋㅋㅋㅋㅋ

└└유죄 맞지.

지켜보던 이들이 전부 잇몸을 드러내며 훈훈하게 웃고 있을 때 사건이 터졌다.

“다온 씨.”

“네! 팀장님.”

회사에 출근한 다온을 팀장이 심각한 얼굴로 불렀다.

의아한 표정으로 팀장을 따라간 다온이 팀장의 입에서 나온 말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다온 씨 디자인 다온 씨가 직접 그린 게 맞아?”

“네. 맞아요. 그런데 왜 그러세요?”

“푸우.”

다온의 말에 팀장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 행동에서 불안함을 느낀 다온이 팀장을 불렀다.

“팀장님 무슨 일이신데요.”

“아니. 나도 들은 얘긴데. 다온 씨 디자인으로 다른 곳에서도 다음 시즌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무슨! 팀장님 그럴 리가 없어요. 이건 제 디자인이에요. 제가 중고등학생 때부터 하나씩 그린 제 디자인이라고요!”

“내가 다온 씨 본 지 얼마 안 됐지만 다온 씨가 누구 디자인 표절하고 그럴 사람이 아니란 건 알아. 내가 조금 더 알아볼게.”

“팀장님 전 진짜 억울해요.”

“그래. 그런데 다온 씨 이 디자인 누구한테 보여준 적 없어?”

“그런 적은….”

그때 다온의 머릿속으로 대학생 시절이 스쳐 지나갔다.

지방에 집이 있는 다온은 처음에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1학년 때 같은 방을 썼던 룸메가 자신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다 썼었다.

심지어 조별과제를 할 때 같은 조가 된 적도 있었는데 매번 제때 과제를 끝낸 적이 없었다.

“예전에 룸메가 제 노트를 함부로 본 적이 있어요.”

“그래? 이름은 기억나?”

“네. 한예나예요.”

“알았어. 나도 알아볼게.”

“감사합니다. 팀장님. 믿어 주셔서.”

“아니야. 힘내고. 가서 Q.C오면 바로 확인할 수 있게 준비해.”

“네에.”

다온이 어깨가 축 처져 밖으로 나갔다.

둘이 함께 사라져 기운이 빠진 채로 돌아오는 다온을 보고 팀원들이 슬금슬금 다가와 물었다.

“다온 씨, 무슨 일 있어요?”

“아니에요.”

“혼자 너무 참지 마요. 우리 같은 팀원 아닙니까!”

“네. 고맙습니다.”

다온이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힘든 하루가 될 거 같다.

* * *

-이거 그 룸메가 범인인 듯

└나도 그렇게 생각함.

└나도222

└와 그년이 다온이 디자인 훔쳐서 만든 거임? 완전 개xx!

└└진정하세요.

잠시 쉬는 시간에 커피를 사러 나온 다온이 어두운 얼굴로 커피를 받아 나왔다.

“으앗!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을 딴 데 두고 다녀서.”

“아니에요.”

다온이 자책하며 허리를 계속 숙였다.

쏟은 커피가 아까운 건 둘째 치고 비싸 보이는 셔츠를 입은 사람에게 커피를 쏟았다니.

세탁소 집 딸로 20여년을 살아온 다온의 눈에는 보였다.

이 셔츠는 무척 비싼 셔츠라고!

덜덜 떨며 셔츠에 묻은 커피 얼룩 지우는 법을 생각하던 다온을 부딪친 상대가 진정시켰다.

“진짜 괜찮아요.”

“아니 어떻게 괜찮아요. 이 셔츠가 얼마나 비싼 건데.”

“정말 괜찮은데.”

“아니에요. 이거 빨리 벗어주세요. 커피 얼룩은 빨리 지워야 해요.”

다온이 손을 덜덜 떨며 셔츠를 벗기려고 하자 당황한 남성이 다온의 손목을 잡았다.

“여기서 이렇게요?”

“아. 죄송합니다.”

“저는 진짜 괜찮아요. 오히려 나 때문에 커피도 못 먹고 죄송하게 됐어요.”

“제 커피 따위는 신경 쓰지 마세요. 이럴 게 아니라 절 따라오세요.”

“네?”

“어서요. 더 늦으면 얼룩 빼기 힘들어요.”

“어어.”

셔츠값에 눈이 돌아간 다온에게 말린 남성이 어물쩍하는 사이에 다온에게 붙잡혀 따라갔다.

“다온아. 커피는.”

“커피는 어디가고 사람을 사왔니?”

“그 사람은 누구셔?”

“제가 그만 이분 셔츠에 커피를 흘렸지 뭡니까. 팀장님 저 잠시 휴게실 좀 써도 될까요?”

“어? 어어. 그래.”

갑자기 들이닥쳐 휩쓸고 간 다온에 남아있는 팀원들이 멀뚱히 눈을 깜빡였다.

마네킹에 샘플로 걸려있던 옷을 건네주고 강제로 셔츠를 뺏은 다온이 커피 얼룩을 빼기 시작했다.

‘제발 빠져라. 제발! 제바알!’

빠지지 않으면 자신의 월급이랑 비슷한 가격의 셔츠가 망가지는 거다.

다온이 초조하게 손을 움직였다.

다행히 점점 사라지는 커피 얼룩에 다온이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후우.”

“다 됐나요?”

“으꺅!”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다온이 화들짝 놀랐다.

가봉만 된 상의를 입은 남자가 흥미로운 눈으로 다온을 보고 있었다.

“뭐예요. 갑자기.”

“아까부터 여기 있었는데 너무 놀라는 거 아닌가요?”

“왜, 왜. 여기 계셨는데요.”

“누가 제 옷을 가져가서요. 날개옷을 뺏긴 선녀의 심정을 알 것 같네요.”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다온이 얼굴이 빨개졌다.

-날개옷 뺏긴 선녀랰ㅋㅋㅋㅋㅋㅋ

└남자니까 선남인 듯

└와 몸 개좋아. 지한이도 몸이 좋던데 이 선남님도 몸이 아주 그냥 츄릅.

└└어우 님 침 떨어져요.

└└화면 너머로 느껴지는 침냄새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재벌의 향기 킁킁

└다온이가 기겁하며 얼룩 빼려는 거 보니까 딱 봐도 비싼 셔츠죠?

└└재벌 맞는 듯. 섭남의 등장인가.

└└지한이 라이벌이 되려면 몸이 좋아야 하는구나.

└└└그놈의 몸 얘기 좀! ㅋㅋㅋㅋㅋㅋㅋㅋㅋ님 위에서 침냄새 났던 그 분이죠?

└└└앗, 들킴?^^

└저 남자 섭남인 듯. 이제 곧 다온이 회사로 올 거 같음.

└ㅁㅈㅁㅈ

그리고 드라마 경력이 오래된 시청자들의 예상이 딱 맞아 떨어졌다.

“다음 달부터 우리 디자인팀을 관리하실 윤민호 본부장님이십니다.”

“반갑습니다. 윤민호라고 합니다.”

“무려 파슨스 스쿨을 나온 분이라고 하니까 다들 박수로 맞이해 줍시다.”

다온을 포함한 디자인 3팀은 박수도 못 치고 입을 떡 벌렸다.

날개옷을 뺏긴 선남이 무려 본부장이었다니.

한 사람, 한 사람 인사를 한 민호가 다온의 앞에 섰다.

“우리 구면이죠? 잘 부탁드려요.”

“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악!”

다온이 목청을 높여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 모습을 본 민호가 다온의 어깨를 두 번 두드리고 지나갔다.

혼이 나간 것 같은 다온의 주위로 3팀 팀원들이 모였다.

“다온아 괜찮아?”

“본부장님이 구면이라고 하던데 이게 좋은 뜻으로 말한 걸까.”

“그거 아닐까요? 넌 이미 나한테 찍혔어.”

“히익. 우리 다온이 어떡해.”

“…그러게요. 저 어떡하죠?”

디자인 통과되었다고 좋아하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새로 온 본부장님한테 제대로 찍혀버렸다.

그렇게 생각한 다온이 울상을 지었다.

* * *

“그래서. 새 본부장이 왔는데 그게 그 선남이라는 말이야?”

“맞아! 하. 내가 어쩌다가 본부장님한테 그런 짓을.”

어느새 아지트가 된 옥탑방 평상에서 다온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하소연했다.

다 먹은 맥주캔을 찌그러트린 다온을 본 한길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제니스에 새 본부장이 왔다고? 새로 본부장으로 올 만한 사람이 누가 있지?’

한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한길아?”

“어, 응?”

“너 왜 갑자기 표정이 심각해지고 그래.”

“내가 뭘.”

시치미 떼는 소꿉친구의 말에 다온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너 거짓말 하거나 숨기는 거 있을 때마다 시선 피하고 침 삼키는 거 알아?”

“내가?”

“그래. 방금도 침 삼켰지? 네 선명한 아담스 애플 덕에 다 눈치챘거든?”

다온의 말에 한길이 목을 쓸었다.

매끈한 목에 툭 튀어나온 부분을 만지자 한길이 놀랍다는 듯이 다온을 바라봤다.

“어떻게 알았어?”

“야. 내가 너랑 무려 십 년 넘게 못 봤지만 널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네가 어떻게 알아. 계속 날 봐 온 것도 아니잖아.”

한길이 알 듯 말 듯 모호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은 슬픈 것 같기도 하고 조금은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네 소꿉친구잖아.”

“…그게 다야? 소꿉친구가 뭐 탐정이라도 되나?”

한길이 조금 실망한 표정으로 오징어 다리를 씹었다.

“소꿉친구니까 내 친구의 사소한 것까지 다 관심을 가지는 거야. 다른 친구였다면 절대 이런 관심을 안 보이지.”

“그럼 나한테만 이런 관심을 가지는 거네?”

“음.”

다온이 잠시 오징어 다리를 씹으며 생각했다.

“아니.”

“왜?”

“너니까.”

한길이 눈을 크게 뛰며 다온을 쳐다봤다.

“그냥. 예전부터 한길이 너한테는 더 시선이 가더라.”

훅 들어오는 다온의 말에 한길이 당황하며 볼을 붉혔다.

“그, 그게 무슨,”

“덜렁대서 챙겨야 하는 마음이 들어서 그랬나?”

“뭐?”

“아니면 반반한 얼굴 때문일지도.”

다온의 말에 팍 식은 한길이 심통이 난 얼굴로 고개를 팍 돌렸다.

“이한길. 삐졌냐?”

“아닌데.”

“아니기는 삐졌구만.”

“아니라고오!”

야경을 배경으로 두고 티격대는 두 사람을 한 프레임에 담으며 카메라가 서서히 멀어졌다.

* * *

[‘친구 이상, 연인 미만’ 오지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 大변신!]

[오지한, 의미심장한 눈빛.]

[짐승 같은 몸 공개. 오지한 ‘친구 이상, 연인 미만’에서 채소담을 홀린 매력]

[선남(仙男) 김석현이 입은 셔츠의 가격은?]

[두 남자의 몸을 보고 반한 채소담]

[신인답지 않은 풍부한 표정 연기. 채소담, 주연 발탁 이유가 있었네.]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은 흔하디흔한 클리셰가 들어간 드라마지만 배우들의 열연에 연신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한길이 뭐 있는 거 같지 않냐.

└나도 그런 생각 함

└내 생각도 그래

└아 근데 둘이 너무 달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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