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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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사람 신경 쓰지 말고 다음 씬 준비해.”

“걱정 마. 나도 아까부터 대본 열심히 봤다고.”

“그냥 보기만 한 건 아니지?”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대본분석 열심히 하고, 캐릭터 설정도 다시 한번 꼼꼼히 봤어.”

지한이 어깨를 펴고 턱을 들었다.

어릴 때에도 자랑할 일이 있으면 가슴을 내밀었는데 커서도 하는 짓이 다를 바 없었다.

몸이 훌쩍 자랐음에도 곳곳에 묻어 있는 어릴 때의 모습에 지연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네가 누구라니. 내 동생이지.”

“어허. 누나 나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배우야.”

“겨우 열 손가락?”

“…다섯 손가락.”

“다섯 손가락?”

“아, 나 연기 잘한다고. 집밖에 나오면 나도 연기 잘 한다는 소리 들어.”

그냥 연기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수준이 아니었지만 남매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아무튼 빨리 누나랑 같이 연기하고 싶어.”

“집에서도 하잖아.”

“그 말 아닌 거 알잖아.”

“같이 카메라 앞에서 대사를 주고받고 싶다는 말이지.”

“바로 그 말이야!”

자신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누나의 말에 지한이 손가락을 부딪쳐 소리를 냈다.

경쾌한 스냅에 지연이도 덩달아 웃었다.

“그럼 곧 하겠네. 7화에 바로 나오잖아.”

“응. 나오지. 그땐 야외촬영이겠네.”

“현장 통제한다고 우리 제작진분들 엄청 고생하시겠네.”

“저 사람은 고생 좀 했으면 좋겠다.”

아까부터 계속 일하면서도 누나를 째려보고 있는 조명 스태프를 보고 지한이 불쾌한 듯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언제부턴가 나한테 오는 불편한 시선들을 지한이가 불쾌해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나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막아주는 동생을 보고 지연이 묘한 얼굴을 했다.

이제 조금 컸다고 나를 지키겠다고 그러는 걸까?

그랬다면 기분 좋으면서도 조금 서운하다.

누나를 지켜줘야 할 대상으로 보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누나가 네 보호자야.

내가 널 지켜줘야지.

“지한아.”

“응.”

“우리 집에 가면 같이 야외촬영 씬 맞춰볼래?”

“! 좋아.”

누나의 말에 잠시 조명 스태프에게서 관심이 멀어진 지한이 몸을 들썩이며 같이 촬영하는 씬에 대해 신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때 누나를 오랜만에 만나는 거잖아.”

“응. 그렇지.”

“그런데 누나가 여기서 근무한다는 거 알고 있었던 거지?”

“맞아. 여기서 지한인 넌 소담 씨가 여기서 일하는 거 알고 있었잖아.”

“응. 편의점에서 들었으니까.”

“그리고 소담 씨가 나에 대해서 쫑알쫑알 말할 때 ‘한길, 다온의 말을 듣고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라고 써져 있잖아. 이걸 보면 알 수 있지.”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한길은 집을 떠나 있어도 누나의 소식에 대해 알고 있던 거지?”

“맞아. 왜 그랬을 거 같아?”

“나는 한길이 누나를 존경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해.”

“좋은 생각이야.”

동생의 대답에 지연이 지한의 머리를 쓸어넘겼다.

“머리 망가져.”

누나의 칭찬에 지한이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지연의 손길을 떨치지 않았다.

오랜만이네.

내 동생 친찬하면서 머리 쓰다듬어주는 거.

“악! 지연아. 지한이 머리!”

“언니 미안.”

근처에서 보고 있던 미나가 지연의 행동에 경악을 하며 외쳤다.

나 이래서 지한이 머리 쓸어주는 거 잘 안 하게 됐었지?

기겁하면서 달려와 지한이 머리를 다시 만지는 미나를 보고 지연이 미안한 표정이 되어 조금 떨어졌다.

누나의 손길을 받다가 얼떨결에 같이 혼이 난 지한이 조금 억울한 표정으로 가만히 미나의 잔소리를 들었다.

지연이 동생의 처량한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114. <친구 이상, 연인 미만>

[SBC “오지한·오지연” ‘친구 이상, 연인 미만’ 출연 확정]

[드라마에서 한 호흡을 맞추는 천재 남매]

[2011학년도 불수능 만점자의 연기 실력은? SBC ‘친구 이상, 연인 미만’ 1월 27일 첫방송!]

└우리 지연이가 연기를 한다고?!

└1년 동안 활동 안 해서 타는 목마름으로 기다렸는데

└그랬는데 갑자기 수능만점자로 뉴스 나왔을 때 놀랐고요.

└└우리 애 천잰줄 알았는데 본업(가수) 외에 공부도 잘할 줄 몰랐네요.

└└본업(현 고3, 후 재수생)도 못하는 난 대체….

└└└울지 마요. 아마 내년에도 그 성적일거야.

└└└└너 이!

└경 지연이 배우 데뷔 축 by연바라기 일동

└ㅋㅋㅋㅋㅋㅋㅋㅋㅋ동생 덕에 낙하산으로 들어갔나 보네.

└└무슨 소리죠? 우리 지연이 연기도 잘 하거든요?

└└└응. 아니야.

└어그로 먹이 주지 마세요.

└--------(병먹금)--------

지연의 드라마 촬영 소식에 남매가 출연하는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아직 연기가 검증되지 않았기에 동반 출연에 대해 우려하고 악의적인 의견이 많았지만 SBC 홍보팀과 드라마 제작팀, 탑엔터에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곧 저들의 시선이 바뀌게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오늘 회사에서 다 같이 드라마 첫방 사수할 거 같은데 너희들은 안 가도 되겠어?”

“가면 좋겠지만 오늘은 지한이랑 조용히 집에서 볼래.”

“왜? 다들 좋아할 텐데.”

“조금 쑥스럽네. 지한이 넌 어떻게 넘겼어? 내가 한 연기를 본다는 거 엄청 그렇네.”

“우리 지연이. 뭘 쑥스러워하고 그래.”

미나가 시선을 피하는 지연의 옆에 바짝 앉아 놀렸다.

연기도 잘하면서 왜 자꾸 부끄러워하는지.

음방에 나오는 자기 모습을 보는 것도 소리를 지르면서 봤었지.

“왜 그렇게 널 부끄러워하는 거야. 언니가 네 얼굴이라면 24시간 자랑하고 다닐 텐데.”

“아니 음방은 너무 끼 부리는 거 같고, 드라마는 잘 모르겠어. 그냥 낯설어서?”

“흐흐흐흐흐흐. 낯설 게 뭐가 있어. 네 얼굴인데. 아. 그래도 좀 놀랍긴 하더라. 우리 지연이 첫 촬영에다가 첫 성인 연기데 너어무 잘해서. 너무 잘해서 누가 보면 회사 좀 다녀본 줄 알겠어.”

뜨끔.

이 언니는 99.9% 엉뚱한 생각을 하긴 하던데 가끔 0.1%가 예리하단 말이지.

나 회사 좀 다녀 본 걸 어떻게 알았지.

지연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화제를 돌렸다.

“아, 시작한다.”

“어? 그러게.”

지연의 말에 부엌에서 주전부리를 가지러 간 영훈이 후다닥 걸어왔다.

“얘들아. 쉿.”

인절미랑 모짜랑 놀아주고 있던 지한이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단번에 얌전해진 아이들이 엉덩이를 붙이고 각자의 주인의 품에 안겼다.

긴 광고가 끝나고 드디어 지한이의 첫 로맨스 드라마이자 지연의 첫 드라마가 방영했다.

* * *

-시작한다!

└엄청 기네.

└광고란 광고는 다 나온 것 같은데.

└드디어 하는구나.

└시작한대서 치킨 받자마자 달려옴.

└└치킨 맛있겠다.

└└어디 치킨임.

└└└BKC!

무려 1년 만의 복귀였다.

지연이가 활동하면 지한이가 활동하고, 지한이가 활동하면 지연이가 활동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TV나 스크린에 얼굴을 비추던 아이들이었는데 이렇게 떡밥이 없었던 적은 지한이가 이가 빠진 이후 처음이었다.

└이번 주는 지연이 안 나오겠죠?

└듣기로는 6화부터 나온다고 함.

└지한아 사랑해 지한아 사랑해 지한아 사랑해 지한아 사랑해 지한아 사랑해 지한아 사랑해

└└윗분 시끄러워요. 드라마 보게 조용히 해 주세요.

“한길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어린 남자아이가 뒤를 돌아봤다.

책가방을 메고 뛰어온 여자아이가 한길의 옆에 멈춰 섰다.

“너 왜 혼자 가고 그래.”

“미안미안.”

나란히 걸어가는 아이들은 사이가 좋아 보였다.

-애기들 귀엽네

└꽁냥꽁냥하는 게 보기 좋구만

└저 애가 지한이 아역이겠죠?

└그럴 거예요.

어린 시절부터 나온 모습에 시청자들이 푸근한 미소를 띠며 화면을 바라봤다.

“너 또 사고 칠 생각은 아니겠지?”

“너는 내가 맨날 사고치고 다니는 줄 알아?”

“그동안 네가 옷에 구멍 내 올 때마다 기워 준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해?”

“헤헤헤. 고마워.”

“말은! 너 또 이상한데 놀러 가서 옷에 구멍 내고 오기만 해 봐! 다신 안 기워 줄 거야!”

“다온아아아.”

“그렇게 말해도 안 돼.”

나란히 걸어간 아이들이 도착한 곳은 상가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었다.

아이들은 나란히 붙어 있는 세탁소와 미용실로 각각 들어갔다.

“다온이 왔니?”

“응!”

“그래. 가방 올려놓고 와.”

“네에.”

다온이 방으로 가방을 올려두려고 올라갔다.

똑똑!

침대에 가방을 던져둔 다온의 창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작게 난 창문을 열자 한길이가 보였다.

“다온아! 우리 내일 학교 같이 갈래?”

“맨날 같이 갔잖아.”

“그러네. 헤헷.”

“너나 약속 깜빡하고 혼자 가지 마.”

저번에 다른 친구들이랑 약속했다며 먼저 학교를 갔던 한길을 떠올린 다온이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한길이 손바닥을 모으고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땐 실수!”

“약속해.”

“무슨 약속?”

“날 두고 먼저 가지 않겠다고.”

“그래.”

거의 맞닿아 있다시피 한 건물 덕에 창밖으로 뻗은 아이들의 손이 맞닿았다.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아이들의 얼굴이 천진난만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한길아?”

어제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고 있던 미용실은 엉망이 된 채 한길이네 가족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야반도주 했나봐ㅠㅠㅠㅠㅠ

└한길아 어디갔어ㅠㅠㅠㅠ

└무슨 일이야. 잘 지내고 있었잖아.

└편안하게 보고 있었는데 뒤통수 맞음.

그리고 어린 다온은 자라 어른이 되었다.

삐삐삐, 삑-

“헉! 늦었다!”

알람 시계를 끄고 시간을 보던 여성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익숙한 풍경

└다들 알람은 잘 맞춰놨죠?

└하하 다온이 덕에 내일은 지각 안 하겠네.

└└그리고 그는 지각을 했다고 한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침! 은 오늘도 못 먹겠구나.”

시간을 본 다온이 허겁지겁 뛰어나왔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뭐라도 사려고 했지만 바글바글한 편의점 내부를 보고 오늘도 포기했다.

“저긴 왜 저렇게 사람들이 많은 거야?”

출근하느라 정신없는 다온은 항상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동네 편의점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바쁜 출퇴근 시간에 아침도 못 먹은 다온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라도 사려고 할 때마다 밖까지 나온 줄에 포기하고 돌아가곤 했다.

오늘도 편의점을 들리지 못한 다온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회사로 출근했다.

다온이 지나간 뒤 카메라가 사람들이 몰려드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손님이 들어온 것처럼 카메라가 유리문을 지나고 종소리가 들리자 계산대 앞에 있던 직원이 카메라를 보고 인사했다.

딸랑

“어서 오세요.”

한길이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인사했다.

└지한아!!!!!!!!!!!!!

└오빠악!!!!!!!!!!!!!!!

└사랑해!!!!!!!!!!!!!!

└미친미친미친미친미친미친

└뭐지? 방금 화면에 빛밖에 안 보임

└└선글라스를 끼셨어야죠. 행성이들 카페 주의사항 모름?

└└지한이 볼 땐 선글라스 껴야 함. 안 그럼 눈 멈

잔잔한 목소리와 함께 등장한 지한의 얼굴에 보고 있던 시청자들이 함성을 질렀다.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 딸 또는 아내의 목소리에 놀란 남편과 아들이 뛰어나왔다가 화면 가득 클로즈업된 지한의 얼굴에 넋을 놓고 바라봤다.

성장한 만큼 더욱 잘생겨진 얼굴은 흡사 무기 수준이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얼굴에 시작부터 시청률이 고공행진을 했다.

그건 드라마 속 상황도 마찬가지인지 잘생긴 편돌이를 보기 위해 아침부터 편의점 안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오빠. 저 오빠 보려고 버스 돌아가는 거 타요.”

“그럼 학교 지각하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뛰어가면 세이프 할 수 있어요.”

“나는 저녁교대 올 때까지 있으니까 갔다 와서 보면 되는데.”

“아침에 오빠 얼굴 보는 걸로 시작해야 한단 말이에요.”

어린 학생들의 팬심을 받아준 알바생이 소녀들을 걱정하며 버스정류장으로 보냈다.

“계산해 주세요.”

어린 학생들이 가니 이제는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모여들었다.

아침으로 간단하게 때울 샌드위치나 김밥 등을 들고 준 선 여직원들이 편돌이에게 시선을 떼지 않으며 카드를 내밀었다.

카드를 가져가는 편돌이의 손가락이 여직원의 손을 스치자 서 있던 직원이 잠시 비틀거렸다.

“괜찮으세요?”

“더, 더!”

“예? 구급차 부를까요?”

걱정하느라 가까이 다가온 편돌이의 얼굴에 여직원의 얼굴이 빨개졌다.

“흐아아.”

다리가 풀려 주저앉은 회사원을 보고 편돌이가 익숙하다는 듯이 휴대폰을 들었다.

“거기 119죠? 여기 사람이 쓰러졌어요.”

-또요?

이제는 하도 불러서 익숙한지 상황실 직원이 지겹다는 듯이 응답했다.

“네.”

-곧 갑니다.

“네. 빨리 와주세요.”

쓰러진 직원을 편하게 눕힌 편돌이가 가볍게 상황을 정리했다.

이제는 편의점 명물이 된 것 같은 아침 풍경에 손님들도 그러려니 하며 옆으로 줄을 옮겼다.

한길은 편의점 에이스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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