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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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걔들이랑 일정 안 겹치게 OST 부르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에라, 모르겠다.

걔들 일은 이모 삼촌들이 알아서 하겠지.

“OST 부른다 치면 그다음은 앨범활동 할 거지? 이번에도 매튜랑 같이 작업할 거야?”

“매튜 지금 일 엄청 밀려서 안 될걸. 에릭이 일주일 전에 나한테 하소연했어.”

“아니 시험 치는 애한테 무슨 민폐야?”

“처음에는 시험 잘 보라는 걸로 시작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어느새 나도 모르게 에릭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있더라.

첫 만남 때도 느꼈는데 매튜는 정말 에릭 없으면 어쩔 뻔했을까.

“그런데 지한이 너는 뭐 들어가게?”

“이거 하려고. 저번에 영훈이 형이 가져온 대본 사이에 있던 건데 좋더라.”

“보자. 이거 첫사랑 얘기네. 고등학교 때 사겼던 첫사랑을 사회 나와서 다시 만나게 되는 얘기군.”

“뻔하네.”

“뻔하지만 지한이라면 다를지도.”

은주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활동기 때 지한이가 얼마나 많은 오디션을 보았던가.

떨어진 것도 있지만 적어도 지한이 오디션을 본 작품 중에 망한 작품은 없었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지한이가 오디션을 볼 작품이 뭔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건너 건너 물어보거나 영훈 오빠랑 수호 오빠한테 커피를 쏘며 물어보는 것은 양반이었다.

심한 사람은 지한이 오디션을 본 제작사에서 그 사실을 다른 매니저들에게 돈 받고 팔았다는 거?

그때 사장님이 화가 나서 제작사를 바꿨었지.

‘오디션 정보를 돈 받고 팔았다니. 이거 말 잘못하면 돈 주고 배역 매수한 걸로 기사 나는 거 몰라? 어디 감히 우리 애 이미지에 똥물을 튀기려고!’

사장님이 화내니까 시나리오랑 감독 빼오는 건 어려운 게 아니더라.

소송까지 가는데 어후.

그때 우리 사장님이 재벌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아무튼 지한이가 오랜만에 관심을 가진 대본이니까 그 작품도 대박이 날 거다.

“그런데 누나 나 하나 더 부탁해도 돼?”

“응? 무슨 부탁?”

OST 말고 더 부탁할 게 있나?

사춘기 이후로 부탁이란 걸 잘 안 하게 된 동생인데 그런 동생의 입에서 나온 부탁이란 단어에 지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동생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누나 여기 주인공 누나 역 있는데 한번 해 주면 안 돼? 짧게 나오는 역할이야.”

지한의 말에 회의실에 앉아서 배달음식을 해치우고 있던 모두의 눈이 크게 떠졌다.

지금 지한이가 뭐라고 한 거지?

나보고 연기 해 달라고 한 거?

벌떡!

“어떤 역인데!”

흥분을 한 영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한이가 제안한 역이 어떤 역인지 궁금한지 모두의 시선이 지한의 손에 들린 대본으로 향했다.

낚아채듯이 지한의 손에서 대본을 가져온 영훈이 빠르게 대본을 넘겼다.

“내가 표시해 놨어.”

영훈이 대본을 파라락 넘기다가 아기자기한 포스트잇이 붙어있는 곳을 폈다.

‘누나가 했음 좋겠다’라고 표시된 포스트잇을 본 영훈이 빠르게 배역을 살폈다.

모두가 배역을 확인한다고 머리를 맞댔다.

그 모습을 본 지연이 황당해서 입을 열었다.

“아니 다들 왜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거야?”

“배역이잖냐. 배역!”

“그래. 짧게 나오는 배역. 흔히 말해서 단역. 그게 왜.”

“길고 짧은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아니 그럼 뭐가 중요한데.”

“지연이 네가 연기를 하는 게 중요한 거지!”

답답했던 것을 터트리듯이 외친 영훈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회사 내부에 도는 지연의 연기력에 대한 소문이 얼마나 많았던가.

‘지한이에게는 가장 든든하면서도 가장 넘기 힘든 사람이 있다.’

그 말이 가리키는 사람이야 뻔했다.

지한이의 단단한 지지자이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족.

오지연이었다.

지한이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 모두가 찬사를 할 때에도 한사코 자신은 아직 멀었다고 말했다.

인기를 좀 얻은 배우들이 그렇듯 거만해질 법도 하건만 항상 겸손한 태도로 자신을 갈고닦는 지한을 탑엔터 사람들은 물론 업계 사람들 모두 좋아했다.

그러나 지한의 최측근인 영훈이나 임원들은 그 소문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지한이는 정말 자신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남들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이유였다.

2006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선정되기까지 했고 2007년에는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까지 받은 이가 뭐가 아직 멀었다는 건가?

설마 주연으로 상을 받은 게 아니라서 아직 멀었다는 건가?

그렇다면 시간문제였다.

지한이 성장하기만을 기다리는 할리우드 감독과 제작사는 발에 차고도 넘치니까.

그렇게 소문이 무성할 때 영훈이 한마디 얹었다.

‘지연이 연기는 지한이보다 한 단계 위에 있다.’

지연의 연기를 영상으로나마 본 이들은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는데 영상으로도 보지 못한 이들은 가면 갈수록 의문이 커졌다.

‘그렇게 잘하는데 왜 연기를 안 해?’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가장 답답해했던 사람은 영훈이었다.

나도 그게 궁금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도 아니고.

가수로 활동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애한테 차마 연기는 언제 할 거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그랬는데!

드디어!

우리 지연이가!

연기를!

영훈은 기뻐서 눈물이 다 나올 것 같았다.

111. 새로운 도전

영훈을 보던 지연이 고개를 돌렸다.

동생의 잘생긴 이목구비가 보였다.

동생은 자라면서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안 좋은 쪽 말고 좋은 쪽으로.

사춘기를 겪고, 많은 것을 알아가며, 숨기는 것도 생긴 동생의 모습을 지연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원래 그렇게 하면서 서서히 아이는 부모의 품에서 떠나가는 거니까.

‘너 뭐 해.’

‘아! 누나 보지 마! 들어오지 마!’

급하게 무언가를 숨기며 방문을 닫으려고 하는 동생을 본 지연은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려야했다.

사춘기를 겪으면 다 그렇게 되는 걸까.

비밀로 하는 몇 가지 빼고는 조금은 섭섭할 뻔했다.

‘누나! 나도 이제 대본 열심히 볼 거야.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해 볼래.’

‘그래. 지한이 넌 할 수 있을 거야.’

지한이는 실패도 겪고 좌절도 하면서 점점 정신적으로 성숙해져갔다.

실제로 지한은 스스로 대본을 고심해서 고르기도 했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는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쉴 때는 꼭 나와 무언가를 하려고 했다.

우리는 같이 계곡도 가고 바다도 가고 산도 갔다.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가기도 했으며 같이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기도 했다.

‘몸이 크고 정신이 성숙해도 너는 내 동생이구나.’

그래서 지연은 동생이 하는 걸 응원하면서 지켜보기만 했다.

내가 돌아오기 전과 다르게 성격도 당당하고 활발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변했다.

주눅 들어 있고, 내성적이던 이전의 동생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을 거 같았다.

자신감 넘치고 고집도 세고 애교도 많고 정도 많아졌다.

“응? 누나 해 줄 거지?”

“너어.”

그런데 이렇게 능글맞아 질 줄은 몰랐는데.

지연이 눈을 가늘게 뜨고 동생을 쳐다봤다.

뭔가 바라는 게 있을 때 짓는 표정이다.

이렇게 해 주면 넘어가 주는 걸 알고 하는 거다.

‘이런 여우 같으니.’

지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반듯한 얼굴과 뛰어난 연기력을 고작 누나한테 부탁하는 데 쓰다니.

이런 얼굴을 할 때마다 지연은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동생의 애교 섞인 부탁에 지연이 눈을 흘기면서도 오늘도 넘어갔다.

“알았다.”

“고마워, 누나.”

지한이 당연히 그 대답을 할 줄 알았다는 듯이 이겼다는 얼굴로 웃었다.

“고마워, 지연아!”

“지한이 이 녀석! 잘했어.”

“형 더 칭찬해.”

“잘했어. 이 녀석!”

“큰 결심 해줘서 고맙다.”

“지연아 잘 생각했어!”

아니 고작 단역 한 번 하는 걸로 다들 왜 이리 난린가 몰라.

그럼 나 복귀를 OST로 하는 거야, 단역으로 하는 거야?

단역으로 출연하는 거면 복귀가 아니라 이직이라고 해야 할 거 같은데.

지연이 혼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하고 있을 때 이미 회의실 안은 축제 분위기였다.

‘이 기쁜 소식을 얼른 알려야 해.’

영훈이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뛰쳐나갔다.

그가 향하는 곳은 본부장실이었다.

* * *

탑엔터는 모처럼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지한이 오랜만에 복귀야 다들 잘해 보자고.”

“네!”

팀장급 회의가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오지연과 오지한.

그 이름만으로도 든든했다.

“드라마 방영 시기는?”

“2월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OST는 어떻게 됐나?”

“지연이가 맡는 걸로 됐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주민이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뱉었다.

팀장들은 이제 주민이 아이들에게 팔불출처럼 구는 걸 그러려니 했다.

책상 위에 아이들 성장과정이 담긴 액자가 하나씩 늘어나는 걸 보고 주민이 아이들을 자신의 아이처럼 생각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모처럼 아이들이 같이 들어가는 거니까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고 실장이 직접 움직이나?”

“네. 제가 갑니다.”

배우 3실의 실장이 된 고영훈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아이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 믿고 맡겨도 될 거다.

“좋아. 은주 팀장.”

“네.”

“지연이 드라마 들어간 다음에 바로 앨범작업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고.”

“알겠습니다. 황 팀장님이랑 다른 작곡가들에게서 최대한 많은 곡 받아 두겠습니다.”

“그래. 다른 팀들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배우실부터 준비해봐.”

“최시우 씨는 곧 복귀 가능할 거 같습니다.”

“벌써 움직여도 돼?”

“네. 항암 치료 받고 의사에게서 활동해도 괜찮을 것 같단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래. 앞으로도 건강관리에 신경 쓰고, 1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 하는 거 다들 잊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때?”

“정승우 씨는 올해까지는 작품 활동을 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능 쪽에서 섭외가 들어온 게 있는데 한번 제의해 볼 생각입니다.”

“그래? 승우가 예능을 한 적 있던가?”

“저번에 한번 물어봤는데 머리도 식힐 겸 예능에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좋아. 그럼 승우 의사 물어보고 진행해.”

“네.”

지연이와 지한이의 활동을 필두로 소속 연예인들의 활동을 보고하는 팀장들의 얼굴이 오랜만에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아이들이 복을 몰고 온 건지.

아이들이 활동을 시작한다고 하니까 회사에 다시 청신호가 켜진 것 같았다.

한 명, 한 명 보고가 이어지고 회의가 끝났다.

“자, 그럼 한 번 해보자고.”

* * *

“누나누나.”

“어. 왜?”

“누나가 우리 드라마 OST 부르게 됐다며!”

지한이 위에서 듣고 왔는지 연습실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어디 갔다가 뭘 들었는데?”

“가수실 가서 누나가 OST 부르는 거 확정됐단 소릴 듣고 왔지.”

“거길 왜 갔어?”

“누나 OST 됐는지 물어보려고.”

내가 됐는지 안 됐는지 왜 물어보러 간 건데.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나도 가수 중에서는 꽤 잘 나간다.

오랜만에 복귀하는데 OST로 들어가는 걸 드라마 제작진이 안 좋아할 리 없지.

게다가 지한이랑 내가 한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이런 화젯거리를 방송국놈들이 가만 둘 리 없잖아?

제작진이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는지 안 봐도 그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노래를 부르는지 안 부르는지가 궁금했던 거야?”

지연의 물음에 지한의 앞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것도 있고. 드디어 누나랑 같이 드라마 찍는 거야. 너무 좋아.”

“뭐가 그렇게 좋아.”

“내가 나오는 장면에 누나 노래가 들린다니까 좋아. TV에 같이 나오는 것도 좋고. 누나 연기를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도 좋고. 누나가 연기 잘한다고 알려줄 수 있어서 좋아!”

“좋은 것도 많다.”

랩 하듯이 줄줄줄 부는 동생을 지연이 진정시키느라 머리를 쓰다듬었다.

알았다, 알았어.

“그럼 오랜만에 같이 놀아볼까?”

놀이 신호에 지한의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좋아. 이번엔 나도 안 질 거야!”

지한이 눈빛이 달라졌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선수를 쳐야했다.

“항상 누나가 문제야.”

“할 말은 다했니?”

지한이 연기하는 배역의 누나 역을 맡은 지연이 순식간에 차갑고 싸늘한 얼굴로 응수했다.

“하! 할 말은 다했냐고?”

“그럼? 더 남아있으면 해 보렴.”

누나가 턱을 살짝 들고 다리를 꼬았다.

여전히 여유만만한 태도에 동생이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탁 터트렸다.

“됐어. 누나와 무슨 대화를 해도 통하질 않으니 그만할래.”

“그래. 할 말이 없다면 이만 일어나도 될까?”

“누나는 누나가 완벽한 거 같지? 아니. 누나는 완벽하지 않아.”

“….”

동생의 말에 얇은 얼음이 낀 것 같은 누나의 얼굴에 미세한 금이 갔다.

자신은 언제나 완벽했다.

외모, 두뇌, 배경.

그 어떤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게 자신이었다.

자신을 며느리로 들이려고 하는 집안이 어디 한두 곳이던가.

그런데 내가 완벽하지 않다고?

“미안한데. 나는 이제 누나한테 맞춰주지 않을 거야.”

“너도 이제 다 컸으니 뭐라 하지 않으마. 어디 나가서 잘 살아보렴. 세상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달을 테니.”

“어. 그럴 거야.”

동생이 누나에게 분노를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박차고 나간 동생의 뒤로 누나가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서 쥐고 있던 주먹을 폈다.

하얗게 질린 손이 누나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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