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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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안 나가고 뭐해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얼떨떨한 심정으로 떠밀리듯이 일어난 지연이 무대로 걸어 올라갔다.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심박수가 오르는 것 같았다.

사회자의 손짓에 몸이 입력된 값을 따르는 것처럼 움직였다.

멍하니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것처럼 움직이자 어느새 자신은 마이크 앞에 꽃다발을 안고 서 있었다.

[어. 어. 안녕하세요.]

어수룩한 인사말에 모두가 웃음을 머금고 지연을 쳐다봤다.

오늘 동생과 함께 놀라운 무대를 보여줬던 것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가수 지연입니다. 제 이름 앞에 가수라고 붙여서 말한 게 아직도 낯선데요. 이런 제가 본상을 받게 될 줄은 몰랐어요.]

말을 끝내고 침을 삼키고 있을 때 관객석에서 ‘내가 투표했어!’, ‘나도 했어!’, ‘사랑해!’ 같은 팬들의 말이 연달아 이어졌다.

여기서 무대까지 제법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마이크 없이 귀에 들리는 응원의 목소리에 지연의 몸이 서서히 풀렸다.

[고맙습니다.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건 절 응원해주신 팬언니 오빠 덕분이에요. 그리고 항상 옆에서 절 도와주시는 사장님, 영훈 매니저 오빠, 은주 매니저 언니, 미나 코디 언니, 탑엔터 식구들 고마워요. 덕분에 제가 여기 있어요.]

긴장이 풀렸는지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람들 이름에 모두가 손을 들어 박수를 쳤다.

[마지막으로 지한아. 오늘도 누나랑 같이 무대 서느라 같이 와 준 내 동생. 고마워. 항상 네가 곁에 있어서 누나가 힘이 나. 내가 열심히 할 수 있는 건 네가 내 옆에 있기 때문이야. 사랑해, 내 동생.]

지연의 마음이 담긴 인사에 TV를 통해서 밤늦게까지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못난 부모를 만나 일찍부터 의젓해야 했던 아이가 어느새 자라서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상을 받고 있었다.

‘사람극장’을 통해서 지연의 인생사를 알고 있던 이들도, 좋아하는 오빠, 누나를 보기 위해서 밤늦게까지 TV 앞에 있던 다른 가수의 팬들도 지연의 말에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삼켰다.

짧은 말 한마디에 담긴 진심에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지연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무대를 하러 중앙으로 걸어갔다.

지연의 데뷔곡 의 반주가 흘러나왔다.

* * *

신인상을 못 받은 지연은 7번째로 본상을 수상받았다.

아마 지한이 팬들까지 열심히 노력해 준 덕분이겠지.

신인상을 못 받았지만 지연의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데뷔한 해에 본상이라니.’

Rainy, VoA, LEGEND뿐만 아니라 발라드 여제 이소영, 락 가수 WHIZ, 신인가수인 이승주랑 SJ워너비 등.

내가 이런 쟁쟁한 사람들이랑 같이 활동을 하면서 상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어느새 방송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마지막 주인공을 남겨두고 있었다.

[2004 SBC 가요대상 영예의 대상! LEGEND!]

수상자를 부르고 폭죽이 터졌다.

무대 위에 올라와 있던 대상 후보들이 대상을 받은 LEGEND를 축하해줬다.

‘저 가수 알아. 중학교 1학년 때 학교 축제로 반 애들이 LEGEND 춤 커버했었어!’

커버했던 곡이 지금 수상한 곡이었다.

그때 자신은 참석하지 못하고 옆에서 바라보기만 했지만 가수처럼 무대 위에서 저런 춤을 추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그러고 보니 나도 무대를 꿈꾼 적이 있었구나.

LEGEND의 수상을 보고 자신이 잊고 있던 꿈을 떠올린 지연이 환하게 웃었다.

상을 받은 가수의 소감과 무대를 뒤로하고 지연이 내려왔다.

아쉬운 얼굴을 하고 지연이 무대 아래로 내려와 대기실로 향하자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최고의 우군이 지연을 맞이했다.

“누나….”

대기실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지한을 다른 가수들이 힐끔 보았지만 오랜 시상식에 다들 피곤한 발걸음을 옮겼다.

동생의 얼굴을 본 지연이 후다닥 달려가 동생의 얼굴을 품에 숨겼다.

“왜? 왜 울어.”

“…좋아서.”

지연의 품에서 지한이 숨을 가쁘게 들이쉬었다.

울음을 삼키는 동생의 등을 쓸며 지연이 주변을 돌아봤다.

거의 3시간 가까이 진행된 행사에 스태프들이 초주검이 된 상태로 돌아다녔지만 방송국 관계자가 많은 곳에서 이러는 건 지한이에게 안 좋을 것 같았다.

지연이 품에서 동생이 얼굴을 꺼내 보더니 손을 잡고 앞서 걸었다.

등 뒤에 동생의 모습을 숨긴 지연이 영훈에게 물었다.

“오빠. 언니. 우리 이제 끝났지?”

“어. 너희는 이제 가도 돼.”

“오빠는?”

“오빠는 아직 일이 남아서.”

이런 커다란 행사가 있었는데 마무리가 남아있지 않겠는가?

아직 어린 아이들은 집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다.

“은주 씨. 아이들 잘 부탁합니다. 미나야. 너도 오늘은 가서 푹 쉬어라.”

“으응. 이거 마시고. 오빠도 마지막까지 힘내. 고생 많았어.”

미나 언니가 퀭한 얼굴로 영훈 오빠에게 병 음료를 건넸다.

오늘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미리 챙긴 모양이다.

“팀장님 그럼 저는 아이들 데려다주고 회사로 가겠습니다.”

“네. 마지막까지 수고해 주세요.”

“형석 씨랑 지은 씨도 아이들 집에 가면 잘 부탁드립니다.”

“네.”

꾸벅

지시를 내린 영훈이 지연과 지연의 품에 안긴 지한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관계자들이 이용하는 통로 옆에서 아이들을 보내기 전에 영훈이 아직 하지 못한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지연아. 본상 축하한다. 오늘 너희 둘 모두 수고했다. 무대 너무 멋졌어. 누가 뭐래도 나한테는 너희들이 최고야.”

“나도. 어쩌다 보니까 늦어버렸네. 지연아, 본상 축하한다.”

“으이구. 이 녀석 결국 데뷔하자마자 본상을 타버리네.”

영훈이 물고를 트자 은주와 미나가 앞다투어 축하인사를 건넸다.

“고마워 오빠. 은주 언니랑 미나 언니도 고마워.”

“우리가 더 고마워. 다음에는 우리 더 힘내서 지연이 네가 대상 받을 수 있게 해 보자.”

“대상? 내가 할 수 있을까?”

“지연이 넌 대상을 받을 수 있을 거야.”

“내년에?”

“그래. 내년이 아니면 내후년이라도? 하지만 지연이 너라면 내년에 받을 수 있을 거야.”

“나 열심히 할게.”

“우선 내일 있을 무대 생각해야겠지?”

“응!”

“누나, 다음 앨범 나도 도와줄게. 누나 대상 만들어줄 거야.”

“지한이가? 지한이는 연기 안 해?”

“하지만 누나가 더 중요해.”

“누나는 지한이가 연기하는 모습을 더 보고 싶은데?”

지연의 말에 지한이 갈등했다.

동생의 얼굴 위로 복잡한 마음이 비춰지는 듯했다.

“자자. 복잡한데 여기서 이러지 말고. 너희들은 얼른 애들 챙겨서 가. 차 엄청 막힐 거야.”

“응. 오빠 힘내.”

“자고 일어나서 봐.”

“그래.”

영훈이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아이들은 차에 올라탔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지한이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누나 우리 힘내서 다음에는 꼭 대상 타자.”

“그래. 그 전에 지한이는 남우주연상 안 타고 싶어?”

“나도 타고 싶어! 그런데 요즘 내가 하고 싶은 대본이 없어.”

아마 지한이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 맞는 배역이 많이 없을 것이다.

“지한이는 주연이 하고 싶지?”

“음. 어린 배우를 주연으로 쓰는 영화나 드라마는 많이 없으니까 꼭 주연이 아니어도 괜찮아.”

“알았어. 우리 같이 찾아보자. 그래서 나는 대상을 받고 지한이 너는 남우주연상을 받는 거야.”

“좋아! 꼭 그러자! 그럴 거야!”

누나의 말이 지한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얘들아 그 전에 무대부터 생각할까? 아직 연말무대 2개나 더 남았다.”

“네!”

“응!”

SBC 시상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일도 바쁜 일정이 남아있지만 지연은 어쩐지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107. 아이들은 성장한다(1)

[LEGEND, SBC 가요대전 ‘대상’ 차지]

[‘가요대전’ 시청률 ‘연예대상’ 제쳤다.]

[지연, 배우 오지한과 함께 한 편의 뮤지컬 같은 특별무대!]

연말이 되니 기사의 연예면에는 전부 방송사의 시상식에 대한 기사가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지연의 특별무대가 주목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할리우드 배우, 오지한이라는 이름과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공연 때문이었다.

다른 가수들의 특별 공연도 주목을 받았으나 그들과 달리 스토리가 있는 공연이 차별성을 가지면서 남매가 가진 재능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어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너희들 오지한, 지연 공연 봤냐?”

“봤지! 그거 보고 새벽까지 잠 못 잤잖아.”

“대박. 어떻게 그런 무대를 만들었지? 대상 받은 가수 공연보다 더 좋았어.”

“나도. 나도!”

“또 보고 싶다.”

“역시 빌보드 올라가는 무대는 예사롭지 않구나.”

“정확하게 말해야지. 빌보드 올라간 곡은 ‘백귀야행’ 중에 ‘Growling’ 뿐이야.”

“뭐 어때. 빌보드 올라간 곡이 포함된 앨범인 건 사실이지. 어쨌든 빌보드.”

“맞아. 아무튼 빌보드. 너무 멋짐.”

아이들의 공연은 10대, 20대 할 것 없이 극찬을 받았고, SBC에 이어 KBC에 예정된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의 공연, MBS에서 선보일 마녀와 악마의 공연 역시 모두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어지간한 대상 수상자 못지않은 화제성에 방송국에서는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특별공연을 자료화면으로 틀었다.

원래도 상을 받고 나면 해당 가수와 연예인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곤 했는데 지연이의 몸값은 회사에서 예상하던 것 배 이상으로 뛰었다.

오늘도 방송국 시상식 때문에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들 때문에 회사 전체가 부산스러웠다.

똑똑

“그래.”

주민의 말에 남 비서가 사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인사를 꾸벅 한 남 비서가 주민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달했다.

“사장님. 지한의 퀸즈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한의 할리우드 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자, 이번 애런의 거머리 같은 노력에 정식으로 계약을 맺었던 곳이다.

그곳에서 온 연락인데 썩 좋지 않은 것 같은 남 비서의 얼굴에 주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슨 소식인데.”

“지한 군이 오디션에서 떨어졌다고 합니다.”

“오디션?”

“정확하게는 서류에서 떨어졌다고 전해왔습니다.”

서류에서 통과하지 못했다는 소식에 주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 *

주민은 미국에서 온 소식을 숨겼다.

그러고 있는 동안에도 지연과 지한이가 선보이는 특별무대는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KBC에 준비된 특별무대는 여러 가지.

피아니스트와 함께한 발라드 가수들의 공연.

댄스 가수들의 격동적인 공연.

원로가수와 어린이합창단의 공연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렇게 볼 게 많은데 다른 공연들 사이에서도 유독 지연의 무대가 모두의 기대를 받는 것은 전부 SBC에서 있었던 공연 덕분이었다.

모두의 기대가 집중된 만큼 KBC 2004 가요대전을 준비하는 스태프들도 전부 긴장하고 있었다.

리허설을 할 때도 기합이 들어갔던 스태프들은 곧 아이들의 공연이 다가오자 다른 가수들의 공연보다 더욱 긴장한 얼굴로 무대를 준비했다.

“카메라. 놓치면 안 돼.”

“음향 문제없어?”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전을 하며 바쁘게 움직이던 이들이 무대 뒤에서 준비하는 아이들을 쳐다봤다.

‘제발. 방송 사고는 안 된다. 리허설 때처럼만 하자.’

잘만 하면 우리도 SBC처럼 시청률 대박이 날지도 모른다.

큐시트에 맞춰 공연이 시작됐다.

[아우우우우우우~!]

늑대 울음소리가 푸른 조명 아래 울려 퍼졌다.

안개처럼 스모그가 깔린 무대 위로 웅크린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작은 그림자가 몸을 일으켰다.

무대 위

보름달이 뜨고

늑대인간이 나타났다.

[♬검은 숲에서 움직이는

어두운 그림자.

다가오지 마.

고개 숙여♬]

베이스 소리에 맞춰 지한이 어슬렁거리며 무대 앞으로 걸어왔다.

달빛처럼 머리 위를 비추는 조명 덕분에 지한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졌다.

어두운 무대 위. 일렁이는 스모그가 느릿한 반주 위를 춤추고 있을 때 밴드 연주가 하나씩 베이스 위로 겹쳐졌다.

좌우를 어슬렁거리는 지한이 관객들과 눈을 마주쳤다.

꺄아아아아아악!

오늘은 늑대인간으로 분장한 지한을 보고 팬들이 함성을 질렀다.

샛노란 눈동자를 빛낸 지한이 입을 열었다.

늑대로 분장한 지한의 어금니가 오늘따라 유독 날카로워 보였다.

[♬널 쫓고 있어

뒤돌아보지 마.

네 숨소리가 들려♬]

먹이를 노리는 듯이 집요한 시선으로 카메라 렌즈를 본 지한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검지를 입술 앞에 붙였다.

잡았다.

TV를 보고 있던 이들이 모두 목덜미가 서늘해질 만큼 날카로운 시선이 화면을 뚫고 모두를 바라봤다.

* * *

스태프들이 고생한 보람 있게 지연과 지한의 콜라보 공연은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고공 행진하는 시청률을 보고 KBC 직원들이 모두 함박웃음을 지은 것은 비밀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서양 귀신이다! KBC에서 선보인 브로드웨이급 공연!]

[눈을 땔 수 없던 공연. 모두가 넋을 놓고 봤던 지연·지한의 전설적인 무대!]

[Rainy, KBC 가요대상 먹었다.]

[[포토]에잇과 화성의 댄스파티]

[노래 따로 테이프 따로-KBC 가요대상 옥의 티]

방송사마다 돌아가면서 진행하는 가요대전의 둘째 날이 끝났을 때. 연예면에 올라오는 기사의 1/3 정도의 지분을 차지한 이는 지연과 지한이었다.

대상 수상자 못지않은 화제성을 본 이들은 하나같이 아이들이 몸값이 더 높아지기 전에 계약을 맺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HOT] KBC 가요대전 지연 특별무대 고화질 사진

지은이 내북극성지연

무대_위에_등장한_지연.jpg

뱀파이어_지연.jpg

서로_눈싸움하는_지연지한.jpg

목덜미_물_것_같은_지연.jpg

뱀파이어vs늑대인간.jpg

└내 취향은 저승사자인줄 알았는데 뱀파이어였다.

└나도

└나도2222

└저승사자냐 뱀파이어냐 그것이 문제로다.

└└뭘 고민함? 둘 다 좋아하면 됩니다.

└└└선생님 천재세요?

└우리애들 아직 어린 줄 알았는데 벌써 다 컸고요. 언니 심장 멈추겠다.

└죽으면 지연이가 데리러 올 듯

└└행복한 인생이었다…☆

└└└죽으면 오늘 무대 못 봄

└└└└못 죽어!

└지연아 올해의 가수상 축하해!

└축하해. 지연아.

└축하해!

* * *

숨 가쁘게 움직였던 연말도 곧 끝이 난다.

오늘은 더더욱 바쁜 날이었는데 지한이가 연기대상도 가야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지한이가 부담이 될 거 같아서 MBS 무대는 안 해도 된다고 했는데 그럴 수 없다며 무조건 할 거라고 했겠지.

그때 난감해하는 지연을 위해서 주민이 나섰다.

“걱정 마. 너희들 공연에는 지장이 없을 거니까.”

자신 있게 말한 주민이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한 사람은 그의 누나이자 호영호텔의 사장인 공아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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