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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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이 추가되며 곡의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섬뜩한 선율이 관중을 사로잡았다.

♬붉디붉은 박동이

내 손을 물들여

이젠 다시 아무도 우릴

갈라놓지 못해

내 목을 타고 넘어가는

붉음이 감미롭구나.

하나가 된 우리 둘 사이

다신 놓지 않을 거야♬

지한이 머리 위부터 서서히 붉게 물들어갔다.

그를 비추는 조명만이 피에 물든 것처럼 새빨갰다.

미소 짓는 얼굴이 몹시 아름다웠으나 조명과 기이한 음률 때문에 미묘한 거부감이 들었다.

연인의 심장을 빼먹은 구미호가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며 황홀하게 웃었다.

오싹하면서도 아름다운 광경에 수정이 넋을 잃고 지한을 바라봤다.

파앗-

붉은 조명이 사라지고 붉은 달도 사라졌다.

또다시 찾아온 어둠에 관객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아니 여기서 갑자기 끊으시면.”

둥-둥-

파앗!

어둠을 하얀 조명과 북소리가 찢어발겼다.

“어?”

“꺄아아아악”

“지연아아아!”

방송사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웅성이던 사람들이 밝아진 무대 위로 나타난 지연을 보고 함성을 질렀다.

머리에 갓을 쓰고 검은 도포를 차려입은 지연이 조명 아래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다.

해금이 날카로운 소리를 만들었다.

♬Name, Name, Name

너를 데리러 간다.

외로이 홀로 있을 널 위해서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창백한 저승사자가 연인의 얼굴을 하고 구미호를 찾아갔다.

‘백귀야행’에 수록된 또 다른 곡인 ‘Call Your Name’이었다.

검은 사신이 내민 손길을 홀로 남은 이가 멍하니 바라봤다.

지한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지연에게 다가갔다.

죽은 이에게 가장 사랑했던 이의 모습으로 다가간 저승사자의 모습은 다정하기보다는 오싹했다.

서서히 죽음의 늪으로 끌어들이는 모습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녀를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두려워하는 게 당연했다.

그녀는 죽은 자들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존재였으므로.

바이올린 현이 빠르게 움직였다.

점점 고조되는 멜로디 사이로 지연이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그래 어서 날 따라와

나는 네가 가야 할 곳을 안내하는 사자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데려다 주마♬

지연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지한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보이지 않는 포승줄이라도 거는 것처럼 시선만으로 지한을 옭아맨 지연이 지한의 뒤에서 손을 뻗어 눈을 가렸다.

♬네가 가야 할 곳은 한 곳뿐.

가자, 널 심판할 곳으로

도망갈 수 없어. 내가 널 데려다줄 테니♬

바이올린, 해금, 피아노, 첼로, 가야금 등 동서양의 악기가 어우러진 음들이 화음을 이루며 높이 올라갔다.

서서히 고조되는 음과 이리저리 일사분란하게 번쩍이던 불빛이 이윽고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을 비췄다.

♬결코 벗어날 수 없어♬

쌓았던 음들이 폭발했다.

꺄아아아아악!

오지연! 오지한! 사랑해!

무대가 끝나고 모두의 함성이 코엑스몰에 가득 찼다.

터질 것 같은 함성에 귀가 아플 만도 했지만 그것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관중들의 환호는 끝나지 않았다.

“아아아악! 지연아! 지한아! 너무 잘했어! 너무 멋져!”

“꺄아아아악! 너무 좋아!”

어느새 수정은 옆에 있던 지연의 팬과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멈출 것 같지 않은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MC를 보고 있던 이들이 어떻게 다음 코너를 진행해야 할지 난감한 기색이었다.

남겨진 자들의 고충도 모른 채 남매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무대 뒤로 사라졌다.

106. 더 높은 꿈

아아아아아악!!!

지연아!! 지한아!!

사랑해 얘들아!!

무대를 내려오는 중에도 관중들의 환호성이 끊이질 않았다.

MC가 다음 순서를 진행하기 위해서 입을 벙긋했지만 쉽사리 멘트를 치지 못했다.

“이거 방송 사고 아닌가?”

“그런가?”

지연이랑 지한이가 무대를 내려와 움직이는 동안에도 끊이질 않는 함성에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스태프들을 보니 오늘 고생이 훤한 거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무대를 잘 끝냈으니까 더 이상 신경 쓸 건 없지.

지연이 동생의 손을 앞뒤로 흔들면서 움직였다.

“너희들 기분 좋은 건 알겠는데 너무 티 내지 마라. 이것도 일종의 방송 사고니까.”

영훈이 신이 난 것 같은 아이들을 보고 말했다.

“오빠가 말 안 하면 모를걸?”

“맞아. 우린 그냥 방해 안 되게 대기실로 움직이는 중이라고.”

“어휴. 이 사고뭉치들.”

“우리는 사고 친 적 없는걸?”

“너희들이 움직일 때마다 화제가 되니까 그렇지. 오늘 이거 보고 기자들이 가만히 있겠냐? 봐라 벌써 연락 오는 거 봐.”

영훈이 부르르 떨리는 휴대폰을 보여주며 말했다.

벌써부터 기자들을 상대할 생각에 안색이 꺼멓게 죽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오빠 힘내.”

“너희들 영훈 오빠 신경 쓰지 말고 얼른 들어와. 지연이 너는 자리로 돌아가야지.”

후딱 들어오지 않고 대기실로 천천히 걸어오는 아이들과 영훈을 보고 미나가 서둘러 아이들을 불렀다.

“너희들 오늘 수고했어.”

“미나 언니 우리 무대 봤어?”

“누나 우리 진짜 잘했어! 나 연습 때보다 더 잘한 것 같아!”

“알아. 너희들은 실전에서 더 강하잖아. 그리고 여기까지 관객들 함성이 다 들리더라. 나는 무슨 사고 난 줄 알았어.”

미나의 말에 아이들이 뿌듯한 얼굴이 되었다.

밖에서 들리는 함성이 아직까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이미 다음 무대가 시작해서 함성이 들리지 않을 텐데 내 귀에는 팬들이 보내준 열광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히힛. 좋아.”

“나도. 또 하고 싶어.”

대기실에 와서도 쉽사리 진정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고 남아있던 매니저와 코디가 달려와 아이들의 땀을 말려주고 의상을 벗겨주었다.

“누나!”

지한이 아직도 무대의 여운이 남아있는지 상기된 볼로 팔을 파닥이며 지연을 불렀다.

동생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는 넓은 소매가 새 날개처럼 보였다.

“너무 좋아! 누나랑 무대 더 하고 싶어!”

“우리 내일도 하고 모레도 하는데?”

“좋아! 나 이제 춤도 잘 춰.”

“응. 지한이 잘 추더라. 선생님들이 지한이 잘해서 전부 놀랐잖아.”

“히힛.”

지한이 씩 웃더니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지연을 올려다봤다.

“이제 누나랑 같이 무대 할 수 있어.”

동생의 말에 지연이 땀에 젖은 동생의 머리를 넘겨줬다.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안다.

나랑 같은 무대에 서는 걸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이번 무대뿐만 아니라 지한이는 나와 함께 조명 아래, 카메라 앞에 서길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동생의 기다림과 바람을 아는 지연이 동생을 보고 활짝 웃어주었다.

“그래. 우리 이제 같이 무대하자.”

“!! 응!”

누나의 허락에 지한이가 크게 감동받은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힘차게 대답했다.

“예예. 두 사람 얼른 옷 갈아입고 화장 고치자.”

“알았어.”

“네에!”

아이들을 보고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미나가 끼어들어 말하자 아이들이 후다닥 옷을 벗었다.

무대가 끝났으니 다시 박수를 치러 가야했다.

텐션이 잔뜩 올라간 아이들을 달래며 미나를 필두로 코디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바쁘게 움직였다.

무대를 잘 마치고 왔으니 마무리는 그들이 해야 할 몫이었다.

순식간에 의상을 갈아입히고 메이크업을 수정한 미나가 지연을 대기실 앞까지 배웅하며 말했다.

“지연아 파이팅!”

“응! 언니 고마워.”

“누나 잘 갔다 와!”

특별무대가 끝났으니 지한이는 영훈과 같이 있을 거다.

미나와 다른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멀끔한 모습이 된 지연이 손을 흔들고 무대 아래 좌석으로 돌아갔다.

돌아오는 지연을 보고 가수들이 힐끔거리며 축하인사를 건넸다.

“무대 잘 봤어요.”

“동생도 가수 해도 되겠던데? 혹시 생각 없대요?”

“잘 모르겠어요.”

“이야. 올해 신인들은 다 무섭네.”

지연이가 자리로 가는 동안 다들 작게 한마디씩 했다.

중간중간 대답을 해 준 지연이 무대를 올려다봤다.

정리를 하고 오는 사이 상이 유력한 다른 가수들의 무대가 끝났다.

한번 보고 싶었는데 리허설 때 보고 못 봤네.

지연의 옆에 앉은 가수가 슬쩍 말을 걸었다.

“아까 무대 너무 대단하던데요. 관객들이 진정이 안 돼서 방송 사고 날 뻔했어요.”

“정말요? 코디 언니가 대기실에서도 들었다고 했어요.”

“대기실까지 들렸겠네요. 우리도 함성이 너무 커서 귀가 멍멍했으니까요.”

순수하게 무대를 보고 감탄했다고 말하는 가수를 보고 지연이 싱긋 웃어주었다.

아직 신인가수라 그런가?

무대를 보고 순수하게 축하해 주다니.

때가 덜 묻은 모습에 지연이 이 가수의 이름을 기억했다.

미래에도 TV에 얼굴을 비추는 사람이었다.

나랑 같은 년도에 데뷔했었구나.

[다음으로 2004 SBC 작사가상 수상이 있겠습니다. 수상자 발표로는…]

어? 이제 발표하나 보다.

MC의 말에 지연이 무대를 바라보자 수상자의 이름이 발표됐다.

[작사가상 수상자는, 소은진!]

[축하드립니다.]

MC들의 축하와 함께 무대 위로 나타난 수상자에게 꽃다발이 주어졌다.

수상자 발표 때부터 지연은 기계적으로 박수를 쳤다.

이제 대상 때까지 박수로봇이 되어야지.

지연이 다시 무대 위에 집중했다.

* * *

내가 준비한 공연을 끝내자 편하게 관객이 된 것처럼 무대를 구경했다.

이게 바로 과제를 끝낸 자의 여유인가.

MC의 멘트의 맞춰 웃는 얼굴로 박수만 치고 있자 MC가 신인상을 언급했다.

‘신인상!’

평생에 한 번밖에 받을 수 없다는 그 상이 아닌가.

다른 상은 몰라도 신인상이라는 말에 지연이 혹하는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이제 하나 봐요.”

“그러게요. 신인상이라니.”

“지연 씨도 신인상 노려요?”

“누가 그랬는데 신인상이 평생 한 번밖에 받을 수 없는 상이라고 해서요.”

“아아. 그러네요.”

조금 전부터 지연과 소곤소곤 수다를 나누던 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봤을 땐 저쪽도 가능성이 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연예계에도 관심을 좀 둘 걸 그랬나?

돌아오기 전에 안 보고 뭐 했지, 나?

‘아. 아빠 때문에 일찍 누웠겠구나.’

집이 풍비박산이 났는데 편하게 TV를 보고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13살에 이미란이 가출하고 다시 돌아왔었을 거다.

그리고 웬 작은 회사에서 경리로 일하다가 회삿돈에 손을 대서 구치소에 갔었을 때지.

흠. TV를 볼 수 있을 리가 없군.

어쩐지 잘 모르겠더라니.

2021년을 경험하고 왔지만 한 치 앞도 모르는 가요대전에 지연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MC가 수상자를 발표했다.

[2004 SBC 신인상대상. 솔로 부문입니다. 이승주 씨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수상자 발표에 지연의 옆에 있던 가수가 잠시 멈칫하다가 얼굴에 웃음을 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연이 진심을 담아 박수를 쳤다.

“축하해요.”

“축하드려요.”

조금 전까지 옆에서 대화를 나누던 이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건넨 지연이 살짝 아쉬운 마음으로 무대 위를 바라봤다.

어쩔 수 없지.

여름에 활동한 거 외에 다른 활동이 저조했으니까.

올해 데뷔한 다른 가수들은 싱글이며 뭐며 왕성한 활동을 했다.

꾸준히 TV에 얼굴을 비춘 그들과 달리 아쉬운 점이 있는 건 사실이니까.

‘한 번뿐인 신인상이지만 괜찮아.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이제 자신에게는 작곡 노예가 있지 않은가!

이번 앨범활동이 끝나면 매튜랑 황 팀장님이랑 또 열심히 다음 앨범을 준비해야겠다.

확실히 최근에 들어서는 여러 곡을 담은 정규앨범보다는 싱글이나 미니로 가는 추세니까.

나도 싱글 곡을 준비해서 바로 후속활동을 하자고 말해봐야지.

무대 위에서 소감을 끝내고 무대 중앙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아쉽지만 그는 상을 받을 만했다.

지연이 조용히 그의 무대를 감상했다.

‘아 이게 라이브의 맛이구나.’

거의 십여 년 뒤에도 유명할 이의 데뷔곡을 듣는 것은 색다른 느낌이었다.

이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연은 자신이 과거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짧았던 순간이 끝나고 MC가 바로 다음 순서를 언급했다.

[이제 다음 순서죠?]

[네. 2004 SBC 가요대전 7번째 본상 수상자 차롑니다.]

사회를 맡은 가요계의 전설이 8번째 본상 수상을 언급하며 큐카드를 힐끔 보았다.

잠시 뜸을 들인 사회자가 수상자의 이름을 불렀다.

[지연. 축하드립니다.]

MC의 입에서 들린 익숙한 이름에 지연이 박수를 치려던 자세 그대로 멈췄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이 전부 지연을 쳐다봤다.

멀리서 비명 같은 함성이 들려오는 것 같은데 머리에 입력되지 않았다.

“축하드려요.”

“축하해요.”

자신을 보고 축하의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낯설었다.

그러니까

지금

나 상 받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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