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태어난 거야
Ah-ah-!
고마워 내게 와 줘서
사랑해 내 모든 걸 준대도
아깝지 않을 내 사랑-!
하늘이 아름답게 물들고
바람이 귓가에 속삭이고
향긋한 냄새가 코를 스쳐
고마워 내게 와 줘서
사랑해 너로 인해 내가
숨 쉴 수 있게 됐어-!♬
조명, 반주, 지연의 노래가 하모니를 이루어 클라이맥스를 만들었다.
무대 밑이 함성으로 가득 찼다.
치솟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한 팬들이 비명 같은 함성을 지르며 손을 흔들었다.
손목에 묶인 남색 손수건이 파도처럼 물결쳤다.
화려한 컴백 무대였다.
* * *
“후우.”
조금 전까지 무대를 하고 왔던 지연이 한숨을 쉬어 열기를 뱉어냈다.
이제는 싸늘하다 못해 추운 날씨였지만 함성으로 가득 찬 조명 아래는 덥기만 했다.
“누나!”
지연의 첫 컴백 무대를 축하하기 위해서 오늘도 방송국에 따라온 지한이 누나를 부르며 달려들었다.
익숙하게 동생을 받아 안은 지연이 물었다.
“나 어땠어?”
“멋졌어. 최고야. 너무 좋아.”
열렬한 동생의 반응에 지연이 뿌듯하게 웃었다.
이 앨범을 만들기 위해서 다들 열심히 노력했다.
곡이 구해지지 않아서 오랜만에 작곡 프로그램을 켠 A&R팀
의상을 제작하거나 구하느라 고생한 미나 언니
방송국을 돌아다니며 앨범을 홍보한 매니지팀
멀리서 에릭의 구박을 들어가며 곡을 만들었던 매튜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모두의 노력으로 좋은 앨범을 만들 수 있었다.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모두가 고생한 보람이 조금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자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 대기실로 가실까요?”
다른 사람들이 오가는 데 방해가 될 거라면서 지은이 아이들을 데리고 대기실로 이동했다.
대기실로 이동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게 보였다.
“이번에도 오래가겠구만.”
“정말이지 올해는 왜 이리 괴물 같은 신인들이 많지?”
“오지연 쟤는 동생 덕분이잖아.”
“빌보드 얘기 들었냐? 그거 오지한 아니었으면 어디 차트 인이라도 했겠어?”
여전히 견제하는 이들이 많군.
빌보드는 나도 그렇게 될 줄 몰랐다.
매튜랑 같이 재미로 만든 앨범이기도 했고, TV쇼에 출연하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할로윈 특집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지한의 인기가 맞물린 데다 어쩐지 라디오 신청이 많이 들어왔던 탓에 HOT100 차트 끄트머리에 간신히 얼굴을 비추었다.
며칠 동안 97~99위를 오간 순위 때문에 신문사에서 빌보드 진입이라느니 대서특필을 한 걸로 대한민국이 시끄러웠지.
‘아무튼 빌보드는 순전히 운이었다고.’
뒤에서 뒷담 까는 것들 정강이를 까주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많아서 참았다.
오늘은 컴백한 날이니까 내가 참아야지.
어차피 연예계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에게 뒷담이란 인기와 함께 따라오는 부속품에 불과했다.
하나하나 신경 쓰면 나만 손해지.
“누나. 오늘 누나는 완벽했어.”
“어? 고마워.”
“응. 진짜야. 제일 멋졌어.”
지한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아까보다 기분이 조금 가라앉은 것 같은 동생의 얼굴을 보고 지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에 칭찬할 때의 동생의 모습이랑 조금 달랐다.
그래도 뭐 어때.
내 동생이 누나 무대를 최고라고 말해줬는데.
“대기실에 가서 또 불러줄까?”
“응.”
지한이 누나의 손을 꼭 붙잡았다.
104. 연말무대
거리 여기저기에서 지연의 신곡이 흘러나왔다.
‘Dear’의 가사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는 내용이니 연말 분위기에 맞아떨어진 것이다.
거기다 여러 신문사에서 빌보드를 점령하고 온 가수의 곡이니 뭐니 해서 더더욱 주목받은 것도 있었다.
“하여튼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에서 뭐 좀 했다 하면 득달같이 달려든다니까.”
스케줄을 위해 방송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은주가 투덜거렸다.
미국에 가 있는 동안 그런 어마어마한 일이 있었다는 것에 무척 아쉬워했던 언니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영 신빙성이 없어 보였다.
“어쩔 수 없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 좋아하잖아.”
“그런데 너 대단하긴 하다. 그 빌보드 차트? 미국 사람들만 올라가는 거 아니야?”
“다른 나라 사람들도 올라가.”
“하지만 서양 사람들이 대부분이지요. 아가씨가 대단하신 게 맞습니다.”
“그쵸, 그쵸? 지은 씨도 그렇게 생각하죠?”
“네.”
이 시스터즈가.
오랜만에 만나서 아주 죽이 잘 맞는구만.
“빌보드는 내 힘으로 올라간 게 아니야. 전적으로 매튜랑 지한이 이름 덕분인걸.”
빌보드 작곡가와 할리우드 배우의 콜라보.
그 흔치 않은 타이틀 덕분에 주목 받았다.
거기다 시기가 할로윈이었으니.
할로윈을 노리고 나온 앨범이 얼마 없어서 운 좋게 차트인 한 건데.
게다가 앨범 전체가 올라간 것도 아니라 딱 한 곡.
이상하게 늑대인간을 주제로 한 곡이 인기가 많았단 말이지.
라디오 신청곡도 많이 들어오고.
“아무튼 내 실력으로 올라간 게 아니야.”
“지연이 너도 참. 운이든 뭐든 거기에 올라갔다는 게 대단한 거야. 그리고 네 실력이 정말로 형편없었으면 그런 노래도 안 나왔을 거고.”
“은주 매니저 말이 맞습니다. 빌보드에 올라간다는 것은 그 까다로운 서구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았다는 말이니까요.”
은주와 지은이 자신의 실력을 과소평가하는 지연을 보고 말했다.
아무래도 빌보드에 올라간 것에 매튜라는 작곡가와 지한이의 이름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둘의 이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곡이 형편없으면 그대로 묻혔을 거다.
한 달 동안 차트 끄트머리라도 그 언저리에 계속 머물렀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아무튼 너랑 지한이랑 묶어서 두 사람을 대한민국 연예계 대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늘었다더라.”
“우리가 대표라고?”
“일종의 국가대표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무려 미국에서 활동하는 배우와 가수니까.”
“나는 아직 미국에서 어떤 무대도 갖지 않았는데.”
“앨범을 냈잖냐. 그런 사소한 건 넘어가자고. 따지고 보면 넌 이미 미국에서 데뷔한 거나 다름없어.”
“맞습니다. 저도 알아보니 이번 ‘백귀야행’ 으로 한국의 귀신들에 대해 알리고 왔다며 국위선양을 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런 의견은 어디서 알아오는 거예요?”
“그건 비밀입니다.”
지은이 미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혹시 저 언니도 남 비서 아저씨랑 같은 능력이 있는 걸까?
정보 수집에 일가견이 있어 보이는데?
“빌보드 난 거 때문에 일본에서 난리라더라.”
“거긴 또 왜?”
“몰라. 걔들은 아닌 척하면서 우리가 뭐 하는지 되게 관심 갖더라.”
한일 간 유구한 역사를 보면 어쩔 수 없다.
일본은 나름 문화강국이기도 했고.
미래에는 갈라파고스화가 너무 심해 스스로 쌓았던 문화강국 이미지를 갉아먹긴 했지만 괜히 우리나라 가수가 일본에 가서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까지는 문화대국이거든.
“일본에서 관심이 높아져서 회사에서도 네 일본진출 알아보는 거 같더라.”
“벌써?”
“그러게 가수데뷔한 지 반년밖에 안 됐는데 벌써 그러네.”
웬만한 가수도 이 정도는 아닐 거라며 은주가 허허 웃었다.
어쩐지 회사에서 앨범 준비하면서 일본어 공부도 빡세게 시키더라니.
얼마 전 들어본 지연의 일본어가 너무 유창했기에 은주는 눈물을 머금고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일본어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한이는 중국이나 일본 안 가?”
“일단 회사에 제안이 들어오기는 하는데 워낙 할리우드 더 인지도가 좋잖냐.”
“그건 맞지.”
그래도 2010년 초까지라면 중국이랑 일본에서 활동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이후에는 워낙 두 나라가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해서 말이지.
중국은 자국의 역사를 조작하다 못해 다른 나라의 역사, 문화를 뺏기까지 했고
일본의 극장가는 애니메이션이나 실사화가 점령했다.
지한이가 활동하려면 아직까지는 두 나라가 말이 통하는 이때가 좋겠지.
두 나라에서 한류의 반응이 좋을 때기도 하니까.
“그래도 아시아 팬들을 무시할 수 없잖아. 다른 나라 팬들이 지한이 보러 우리 회사 근처로 많이 온다며?”
“맞아. 드라마랑 영화 찍은 게 몇 편 되지도 않는데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몰라.”
“‘그남그녀’에서는 이신성 선배님 덕분이고 영화는 동양계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고 홍보한 덕분이 아닐까?”
“그럴지도. 너는 그런 걸 어떻게 다 아는 거야? 지연이 네가 나보다 더 똑똑한 거 같네.”
“아가씨께서는 시험을 칠 때마다 100점을 받아오신 분입니다.”
지은 언니 그건 어떻게 안 거야?
나 학교 안 다닌 지 꽤 됐는데.
“아아. 어쩐지. 타고난 두뇌가 달랐구만.”
그건 아니다.
일단 30살에서 회귀한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뱀 새끼가 전달하고 간 선물의 영향이 더 크다.
지연이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선명한 붉은 자국을 보았다.
“그런데 지연이 너 이제 곧 14살이네. 벌써 내년에 중학교 갈 나이야.”
“아가씨 혹시 학업 생각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편하게 말씀해 주시죠.”
“지은 언니. 저번에 지한이가 학교 가는 건 반대했잖아.”
“중학교 때부터는 다르니까요. 아가씨께서는 예술중으로 가실 수도 있으시고, 왠지 아가씨라면 중학교 가서도 잘 하실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하하하. 그게 뭐예요. 지은 씨도 그런 말을 할 때가 다 있네요. 그런데 저도 그 마음 알 거 같아요. 지연이 너는 뭐라도 잘할 거라는 믿음이 있달까?”
“다들 날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야?”
“미안해. 어른으로서 할 말은 아니었는데. 아니, 그렇지만 지연이 네가 그동안 한 걸 생각해봐. 노래면 노래. 그림이면 그림. 얼굴이면 얼굴.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잖아.”
은주가 은근슬쩍 근거없는 믿음을 지연의 탓으로 돌렸다.
나 혼자 생각하는 것 치고는 회사 사람들이 모두 지연이 너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잘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나는 학교는 별로.”
지연이 단호하게 말하자 은주와 지은이 시선을 마주쳤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지연이 학교에 대해서 썩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내년에는 스케줄이 더 바쁠 테니 잘 생각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지연의 의견을 존중해줬다.
“고마워. 학교는 천천히 생각해볼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굳이 학교를 가야 할까 싶었다.
이대로 연예계 활동을 하는 것도 있었지만 이미 대학교 졸업까지 한 몸으로 다시 학교에 가는 건 싫었다.
게다가
‘학교에는 담임 선생님이 있잖아.’
담임 선생님이랑 썩 좋게 지냈던 기억이 없어서.
물론 이전과 지금의 자신은 여러모로 많이 달랐지만 더는 담임을 믿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차가 방송국에 도착했다.
* * *
음악 방송이 끝나고 곧바로 사인회를 위해서 왔다.
날 위해서 앨범을 이렇게 많이 사 준 사람들이 있다니.
보답하는 의미로 참가했던 사인회는 꽤 재밌었다.
날 보고 입을 틀어막으며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언니들을 보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내가 좋은가?
“언니 이걸로 닦아요.”
“흡. 고마워 흐으엉.”
달래려고 했는데 왜 더 우는지 모르겠다.
지연이 당황하며 눈을 깜빡이자 얼굴을 수습한 팬이 사인을 조심스럽게 품에 안아들고 나갔다.
나가는 길에 사인을 보고 더 우는 거 같던데.
추신으로 적어준 ‘언니 고마워요. 울지 말고 다음에 또 봐요.’가 별로였나?
더 좋은 문구를 생각해 봐야겠다.
헤라 언니들한테 듣기로는 팬들은 눈 잘 마주치고 잘 웃고 대답 잘해주면 된다고 하던데.
찰칵!
“찍지 마세요.”
몰래 사진을 찍던 팬을 경호원들이 막아섰다.
사진을 찍은 사람에게 다가가 사진을 삭제하게 하고 카메라는 받아가는 것이 보였다.
아마 사인회가 끝날 때 돌려주겠지.
혹시나 팬들이 밀어붙이고 과격한 행동을 하더라도 과하게 제압하지 말아달라고 지은언니한테 부탁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팬들의 행동은 조심스럽고 얌전했다.
헤라 언니들이나 다른 가수들 얘기를 들어보면 자길 봐달라고 난동부리는 팬들도 많다고 하던데 내 팬들은 다들 착하구나.
지연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팬들은 전부 뛰쳐나가려는 자아와 내 스타를 지키려는 자아가 충돌하고 있었다.
“어떡해. 지연이 너무 예뻐.”
“우리애 여신이야.”
“뭐지. 천산가. 나 벌써 죽었나 봐.”
“아직 죽지마. 지연이 사인은 받고 죽어.”
“아. 고맙다.”
친구랑 같이 온 이는 서로의 팔을 꼭 붙잡으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 외에도 지연을 보면서 엄빠미소를 짓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너 잇몸 좀 가려라.”
“티나?”
“지연이가 보고 놀라면 어떡해.”
“그건 안 되지.”
줄이 점점 줄어들 때마다 지연이와 앞에 있는 팬들의 반응이 잘 보였다.
지연이와 눈을 마주친 이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휘청거리며 지나가기도 했고,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 감탄사에 입을 틀어막기도 했다.
오늘따라 하얀 드레스 같은 원피스를 입고 느슨하게 땋은 양 갈래 머리와 머리 얹어진 하얀 화관이 지연을 천사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흐아아.”
“꺅!”
“너무 좋아…!”
사인을 받고 나온 이들은 열반에라도 든 듯이 온화한 미소를 띠우고 품에 사인을 받은 종이 또는 CD를 소중하게 꼭 안고 있었다.
“지연아. 아, 악수해 줄 수 있어?”
“그럼요.”
지연이 웃으면서 악수를 해 주자 손을 내민 팬이 앓는 소리를 하면서 입을 틀어막았다.
“하, 한 번만 웃어줘!”
“한 번만 웃어요?”
“! 아니야. 계속 웃어줘. 내가 항상 웃게 해 줄게.”
“그게 뭐예요. 고백하는 거예요?”
“아니내가감히어떻게고백을너는그냥평생결혼하지말고우리랑같이살아줘내가잘할게.”
자신의 앞에서 래퍼가 된 듯 빠른 속도로 말한 팬이 사인을 받아들고 내려갔다.
은주 언니한테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저 사람 래퍼에 소질이 있는 것 같은데.
“이거 언니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구운 거야.”
“우와. 저도 요새 베이킹하고 있는데 이거 절 위해 만든 거예요?”
“맞아. 베이킹도 하고 있었어?”
“엠마가 레시피를 알려줬거든요. 아! 엠마는 제 미술 선생님 부인이에요.”
“그렇구나.”
“자, 다음이요.”
“그럼 잘 가요, 언니.”
차례대로 팬들을 만난 지연이 지치지도 않는지 생기발랄한 얼굴로 다음 팬들을 맞이했다.
팬들이랑 만나는 거 생각보다 재밌다.
지칠 줄 모르는 지연이 줄 서 있는 이들에게도 손을 흔들어주자 팬들은 좋아 죽어났다.
“좋은 인생이었다!”
“이건 대대로 가보로 물려줄 거야.”
“뭐래. 난 무덤에 같이 묻어달라고 할 거야.”
추첨으로 뽑은 150명과의 만남이 끝나고 지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를 떠나려는 지연이 자신을 보고 있는 팬들과 눈을 맞추고 손을 흔들었다.
“모두 와줘서 고마워요. 언니오빠들 전부 사랑해요. 우리 다음에 또 만나요.”
“우리도 사랑해 지연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