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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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매튜와 미친 재능을 가진 남매의 콜라보로 녹음의 반이 끝났을 때 애런이 도착했다.

“애런이다! 안녕!”

“애런이네.”

“안녕하십니까. 잘 지내셨나요?”

아이들이 쌩뚱맞게 등장한 애런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아니 여긴 어떻게 왔어?

뉴욕이 이렇게 빨리 올 수 있는 곳이었나?

“마침 뉴욕에서 일을 보고 있었거든요. 그 일을 마치자마자 바로 왔습니다. 지한과 지연이 앨범을 발표하겠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제가 찾아와야죠. 이렇게 된 거 저희와 정식으로 계약하는 건 어떻습니까?”

품에서 계약서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꺼내려는 애런을 영훈이 막아섰다.

“여기서 바로 대화하는 건 그렇고 회사로 계약서를 보내주시죠. 일단 정식으로 계약할지 말지부터 회의해야 하니까요.”

“한과 연이 미국에서 활동을 하게 되는 만큼 저희와 정식으로 계약을 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안 그래도 한의 팬클럽에서 계속해서 문의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무슨 문의가요?”

“지한의 활동에 대한 문의죠. 아시다시피 그동안 지한이 꽤 오래 쉬지 않았습니까?”

“1년 조금 넘는 정도로 오래 쉰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팬들의 입장에서는 아니죠. 조금 더 많이, 자주 활동해 줬으면 하는 게 팬들의 마음이니까요.”

애런이 웃는 얼굴로 조목조목 반박했다.

흡사 창과 방패의 대결!

오랜만에 만났는데 두 사람은 왜 저렇게 말다툼을 하는 거람?

“애런 우리 앨범 때문에 온 거죠?”

“네. 맞습니다. 언젠가 제가 지연까지 담당하게 될 줄 알았는데 배우가 아니라 가수로 데뷔했을 줄은 몰랐네요.”

“한국에서 데뷔한 거니까요.”

“이제 미국에서 앨범을 낼 거니 이미 데뷔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냥 개인 소장하는 느낌으로 한 거였는데.”

진짜 어쩌다가 일이 여기까지 왔지?

할로윈 특집으로 곡을 만들어도 앨범까지 낼 생각은 못했는데.

그냥 재미로 한 일이었다고.

동서양의 귀신 얘기가 어쩌다가 앨범 제작까지 온 걸까.

그래,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앨범으로 만든다고 쳐.

정작 중요한 거는

“이거 한국 유령도 있는데 사람들이 가사를 전부 이해할 수 있을 까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연의 말에 애런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 단호박인 줄.

딱 잘라 말하는 애런의 말에 지연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왜요?”

“음악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입니다.”

애런의 입에서 명언이 튀어나왔다.

그의 결연한 눈빛과 물러서지 않겠다는 기세에 지연이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애런이 그렇게 말하면 그런 거겠지.

“두 분은 최선을 다해 노래해 주시면 됩니다. 나머지 일은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영훈 오빠랑 같은 말을 하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영훈 오빠랑 애런이랑 둘 다 우릴 위해서 일하는 게 맞나 봐.

믿음직스러운 두 사람에 지연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

“앗! 나도나도. 나도 잘 부를 거야.”

“그래. 우리 같이 힘내자.”

“아자아!”

* * *

“지긋지긋한 교통체증.”

오늘도 막히는 출근길에 이사벨라가 짜증을 냈다.

“라디오나 들어야겠다.”

지지직, 지직

주파수를 맞추며 자주 듣는 채널을 켜자 강렬한 드럼 반주가 들려왔다.

그 위로 날카로운 키보드 소리와 함께 목을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얹어졌다.

[♬널 쫓고 있어

뒤돌아보지 마.

네 숨소리가 들려

잡았다

도망쳐, 내게 잡히기 전에

도망쳐, 내가 널 잡기 전에

도망쳐, 동이 틀 때까지]

짐승이 우는 것처럼 거친 목소리가 이사벨라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백미러를 힐끔거렸다.

누군가 뒤를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103. 컴백

연말 스케줄 때문에 우리는 앨범 반응을 다 보지 못하고 한국으로 떠나야 했다.

아쉬운 마음에 머뭇거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동생이 연기대상에 참석해야 하고 나 또한 신인가수로 연말 무대를 준비해야 하니까 더 미룰 수 없지.

우리는 한국을 기반을 두고 있으니 국내 팬들을 생각해야 했다.

이제 공인이 된 이상 팬들과의 약속은 꼭 지켜야지.

어느새 공항에 도착한 비행기를 보고 지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그그극. 여기저기가 다 쑤시네.”

“애들 덕분에 살았다. 장시간 비행을 이코노미석으로 타고 왔으면 어쩔 뻔했어.”

“얘들아 고맙다.”

“응? 왜 고마워?”

“너희 아니었으면 사장님이 퍼스트 클래스 끊어 주셨겠냐.”

“히힛.”

“나중에 가면 고맙다고 꼭 말해드려.”

“알았어!”

“그럴게.”

영훈의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나가시죠. 사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으악. 얼른 나가야지.”

“귀국하자마자 엄마 얼굴도 아니라 사장님 얼굴부터 봐야 하다니.”

미나가 질린 얼굴이 되었다.

출장갔다가 와서 바로 사장님과 대면식이라니.

직장인으로서 이보다 더한 부담도 없을 것이다.

미나가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인천국제공항.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던 두 아이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주민이 몸소 공항까지 행차했다.

“사장님. 저기 나왔습니다.”

남 비서가 입국장으로 들어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가리켰다.

어린 아이들은 모자에 목도리를 꽁꽁 싸매고 있었으며 어른들은 아이들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익숙한 어른들의 얼굴이 보이자 주민이 그쪽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들 고생이 많았어.”

“사장님!”

“사장님이다!”

공항에 마중 나온 주민을 보고 아이들이 달려들었다.

거의 한 달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먼 땅에서 고생하고 온 아이들을 품에 안아 준 주민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고생 많았다. 고 매니저와 미나 코디, 경호원분들도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마, 맞아요. 전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사장의 감사 인사에 영훈과 미나가 잔뜩 기합이 들어가 말했다.

형석과 지은은 주민의 인사에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자신을 보고 굳은 둘을 보고 아이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뭐 먹고 싶은 건 없니?”

“저 갈비찜 먹고 싶어요.”

“치킨이요.”

“아! 저도 치킨이요.”

누나의 말에 재빨리 대답을 바꾼 지한이 눈을 빛내며 주민을 바라봤다.

아이의 눈빛에 담긴 강렬한 신호를 알아차린 주민이 빙그레 웃으며 아이들을 풀어주었다.

“그래. 얼른 치킨 먹으러 가자.”

“네!”

“좋아요!”

헤헤. 오랜만에 치킨이다.

반반무많이로 해달라고 해야지.

주민의 손을 붙잡은 아이들이 나란히 걸어갔다.

* * *

“…엠마가 옷을 만들어 줬는데요. 저는 붕대소년이고 누나는 마녀였어요.”

“그거 재밌었겠다.”

“히히. 맞아요. 엄청 재밌었어요. 누나랑 저랑 사탕 엄청 받았는데 다 못 들고 왔어요.”

“사탕 사줄게.”

“아니요. 사탕이 먹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누나랑 같이 사탕 받으러 가는 게 재밌었어요. 받은 거 전부 먹으면 이 상할 거예요.”

지한이 치킨을 먹는 것도 잊고 주민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재잘댔다.

즐거워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며 지연이 지한의 접시에 치킨을 담아주었다.

지한의 말을 듣던 주민이 지연이에게 관심을 돌렸다.

“지연이 네 앨범도 잘 들었단다.”

“사장님도 들었어요?”

“여기서도 빌보드 차트는 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곡을 받기도 했고.”

“다행이다. 사장님한테도 들려주고 싶었는데.”

“그랬어?”

지연의 말에 주민이 얼굴 가득 웃음꽃을 피웠다.

“국내 앨범도 빨리 만들 수 있을 거야. 유능한 작곡가가 합류했으니까.”

“매튜 말하는 거예요?”

“그래. ‘Dear’ 들어봤단다. 모두가 좋대. 다음 앨범은 ‘Dear’를 타이틀로 해서 진행할 거야. 황 팀장님도 열심히 곡 만들었단다. 아마 지연이 너도 들으면 좋아할 거야.”

“빨리 듣고 싶어요.”

“그 전에 며칠 더 쉬고.”

“하지만 빨리 일해야 하지 않아요? 곧 연말인데.”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시차 적응도 하고 쌓인 피로도 풀어야지. 그래야 연말에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겠어?”

“네에.”

주민의 말에 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 말이 맞았다.

앨범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면 연말무대와 동시에 활동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100% 컨디션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활동하기 힘들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주민이 아이의 입에 묻은 튀김을 털어주었다.

잘 먹고 잘 쉬는 것만큼 아이들이 잘 해야 할 일은 없었다.

나머지는 어른들이 할 일이었다.

지한의 에이전시 계약 건이나 지연의 앨범 건.

오디션이나 방송 출연 건이든 뭐든.

아이들이 노력한 만큼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생각이다.

“지연이 너도 지한이한테만 치킨 주지 말고. 네가 먹고 싶어 했잖아.”

“네. 잘 먹고 있어요. 사장님도 드세요.”

“나도 잘 먹고 있어.”

“거짓말. 사장님 치킨 안 좋아해요?”

어떻게 치킨을 안 좋아할 수 있냐는 듯이 지연이 눈썹을 늘어트리며 말했다.

“아니야. 나는 저녁 먹고 와서 그래.”

“정말요?”

“그래. 그러니까 어서 치킨 먹어.”

“네!”

지연이 주민이 덜어준 치킨을 쥐고 한 입 물었다.

바삭한 튀김옷이 입안에서 갈라졌다.

흠. 역시 한국사람은 치킨을 먹어야지.

엠마가 해 준 음식도 맛있었지만 역시 자신은 한국 음식이 그리웠다.

치킨 존맛!

* * *

새로운 작곡 노예, 가 아니라 작곡 천재가 합류하여 지연의 앨범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Dear’의 발랄한 분위기에 맞게 이번 앨범은 발라드 곡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크리스마스에 연말, 연초가 몰려있었으니 이런 앨범으로 가도 좋을 것 같았다.

“녹음은 어느 정도 진행됐지?”

“오늘이면 끝납니다.”

“최대한 빨리 움직이자고, 12월에는 컴백해야지.”

“네, 팀장님!”

그 시각. 지연은 연습실에서 트레이너에게 칭찬을 받고 있었다.

“지연아 무슨 일 있었어? 어째 실력이 더 는 거 같은데. 빌보드 작곡가랑 앨범 하나 만들고 와서 그런가?”

“매튜의 도움이 있긴 했죠.”

내 한계를 끊임없이 부숴 줬달까.

덕분에 많은 걸 배웠지.

내가 무의식중에 그어 놓은 선이 꽤 많다는 걸 깨달았지.

이제는 의식적으로라도 저 정도는 껌이지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진짜 내가 이제 필요 없겠는걸?”

“그래도 선생님이 없으면 안 돼요.”

“그래.”

지연의 말에 기주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필요 없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뭘 더 해 주기에는 아이가 가진 재능이 넘쳤고, 자신의 실력은 아이의 재능을 갈고닦아 주기에 부족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 올 줄 몰랐는데.’

트레이너로서 실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는데 지연이 덕분에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체감하게 되었다.

“선생님?”

“아, 왜 그러니?”

“여기 이 가사. 그대로 부르기에 조금 불편해요.”

“어디 보자.”

지연이 가리킨 부분을 살핀 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어를 조금 수정할 필요성이 있겠네.

“그럼 여긴 이걸 빼고….”

기주가 문장을 다듬었다.

아직 자신이 봐 줄 게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지연이뿐만 아니라 재능 넘치는 다른 아이들을 담당하려면 실력을 더 키워야 했다.

‘나도 질 수 없지.’

모두의 노력 끝에 지연의 컴백 앨범이 완성됐다.

* * *

“…다음은 미국 빌보드 차트에 오른 가수의 컴백 무대죠?”

“오늘은 정말 기쁜 날이네요. 얼른 보고 싶어요.”

“시청자 분들을 기다리게 하면 안 되겠죠?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지연의 !”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들렸다.

스모그가 자욱한 무대 위로 조명 하나가 지연을 비췄다.

외로이 우뚝 서 있는 지연이 고개를 들었다.

♬♪♬

♬아무도 없는 거리

마른 나뭇가지가 드리운 벤치

어둠이 내려앉아 있네.

텅 빈 거리를

혼자 걸어가고 있을 때

어딘가에서 빛이 다가왔지.♬

무대 아래에서 지연의 컴백 무대를 보고 있던 관객들은 전부 소리 지르는 것도 잊고 돌이라도 된 것처럼 지연의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명 아래 하얀 원피스를 입은 지연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Stay with me

Stay with me♬

지연이 입에서 마이크를 조금 떨어트린 뒤 잠시 정적이 찾아들었다.

파앗-!

조명이 일제히 켜지며 무대 위를 환하게 비췄다.

드럼 소리가 빛과 함께 나타나 심장소리처럼 박동했다.

둥, 둥.

서서히 고조되는 분위기에서 지연의 고음이 터졌다.

♬너를 처음 만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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