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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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주에 맞춰 직접 만든 가사로 노래를 부른 아이들이 긴장되는 마음으로 모두의 평가를 기다렸다.

어쩌다 거창한 발표회처럼 되어 버렸을까.

심사위원으로 앉은 매튜, 엠마, 영훈, 미나가 진지한 자세로 아이들의 곡을 평가했다.

긴장한 아이들을 본 영훈이 피식 웃었다.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

“하지만 작사는 처음이야.”

“그래. 너희 작사는 처음이었지.”

영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해서인지 영훈의 말이 불길하게 들렸다.

처음 하는 게 왜.

나 잘 못 했어?

지연이 손가락을 가만두지 못하고 꼼지락거렸다.

‘더 놀렸다가는 며칠 동안 안 보겠네.’

영훈이 모두를 대표해서 입을 열었다.

“너무 좋다. 전부 통과. 만장일치로 결정했어.”

“아싸!”

“했다아!”

아이들이 팔을 번쩍 들고 좋아했다.

서로를 껴안고 방방 뛰는 아이들을 보고 매튜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진짜로 해 올 줄 몰랐는데. 그것도 한 번에 통과할 줄이야.”

“우리 애들은 다른 사람들이랑 다르다고요.”

“그래도 수정할 부분이 없는 건 아니라고. 멜로디에 맞게 조금 바꿔야 하는 단어도 있습니다.”

영훈의 자랑에 매튜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 정도야 수정하면 되죠.”

대수롭지 않게 매튜의 말에 대꾸한 영훈이 시원하게 웃었다.

뭐, 초심자가 이 정도로 열심히 써 왔는데 내가 더 뭐라고 하겠어.

이 정도면 통과가 맞지.

아이들이 작사도 잘 하는 것은 좋았으면 좋았지 나쁠 건 없었다.

“좋아! 그럼 녹음만 하면 되는 건가?”

“그런데 매튜. 이거 녹음하면 할로윈 지나는 거 아니에요?”

“후후. 너희들이 한 방에 녹음을 끝내주면 금세 만들 수 있지.”

“또 밤새우려는 건 아니죠? 각서 쓴 거 잊지 마요.”

“며칠만 새면 되는데.”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지연의 단호한 말에 매튜가 풀이 죽었다.

하여간 조금도 방심할 수 없다니까.

“그럼 타이틀은 뭐라고 할까?”

음. 동서양의 귀신들이 다 모인 자리니까.

귀신들이 모이면 뭐였지?

이매망량?

이매망량은 도깨비들 아니야?

조금 더 적절한 게 뭐가 있을까.

“할로윈?”

“고스트 퍼레이드는 어때?”

“촌스럽다.”

“싸우자, 고영훈.”

지연이 또 티격대는 두 사람을 보았다.

미나와 영훈을 번갈아 보던 지연이 곧 한 단어를 떠올렸다.

“아! 백귀야행!”

“응?”

“그게 뭐야?”

“언니랑 같이 본 애니 있잖아. 거기서 나온 거.”

“애니? 나 최근에 뭐 봤더라? 이누아사?”

“응. 그거.”

조각난 구슬 조각을 모으러 전국을 돌아다니며 요괴를 때려잡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지연의 말에 어디서 영감을 받았는지 알게 된 영훈이 이마를 쳤다.

“한국귀신에 서양유령들에 이제는 일본 요괴까지.”

“진정한 동서양의 콜라보레이션이지.”

“퍽이나.”

영훈이 미나의 말을 비웃었다.

울컥한 미나가 곧바로 영훈의 등짝을 내리쳤다.

짝!

“악! 너 요즘 들어 오빠한테 손 함부로 대는 거 같다!”

“오빠가 자꾸 날 만만하게 보니까 그렇지.”

“만만한 게 아니라 우습게 보는 거다!”

“뭐라고!”

저 두 사람.

여기 와서는 한동안 안 싸우고 조용히 있는다 싶었더니 결국 싸우는구나.

“어머나.”

싸우는 두 사람을 보고 엠마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저 두 사람 사이가 좋네.”

“네? 아아. 싸울 만큼 사이가 좋긴 하네요.”

옛말에 싸우면서 정든다는 말이 있지.

지연이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엠마가 지연의 말에 미세하게 입술을 일그러트렸다.

“그런 의미로 좋다는 게 아니란다.”

“그럼 어떤 의미로 좋은 건데요?”

“후훗. 지연이 너는 잘 모르겠지. 크면 알게 될 거란다.”

아니 나도 속은 다 큰 어른인데요.

엠마 저 이래 봬도 30살까지 살다가 왔어요.

정확하게는 만 29세.

지연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102. 일이 점점 커진다.

한국에서 연락이 왔다.

지한이랑 지연이 함께 참여해 앨범을 만든다는 소식에 기뻐하면서도 갑자기 늘어난 업무 때문에 비명을 지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 녹음하러 갈 건데. 내 작업실로 갈래?”

“매튜 작업실이 어디에 있는데요?”

“뉴욕?”

그렇게 멀리 있어?

LA에서 만나 시카고에서 재회하고 뉴욕에서 작업을 한다라.

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이렇게 만날 수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갤러리 나가봐야 하는데.”

“뭐, 잠깐 녹음하고 오는 거라면 괜찮겠지.”

“뉴욕까지 갔다 오는 건데?”

“서울에서 부산으로 행사 갔다 오는 거라고 생각하면 편하지 않을까?”

“아.”

영훈의 비유에 지연이 대번에 납득했다.

생각해보면 지한이 촬영할 때도 지방으로 내려가기도 했었는데 뭘 그리 어렵게 생각했을까.

“영훈 오빠 우리 가자.”

“형, 나 녹음하고 싶어.”

“그래그래. 일단 비행기표부터 예매하고.”

“엠마 우리 다녀올게요.”

“그래. 언제 갈 거니?”

“최대한 빨리?”

“그럼 간식을 준비해야겠구나.”

아이들의 말에 엠마가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말했다.

미국에서 하는 녹음은 처음인데.

한국이랑 많이 다를까?

조금 궁금하네.

“지한아 미국에서 촬영할 때랑 한국에서 촬영할 때랑 다른 점이 뭐야?”

“응? 갑자기 왜?”

“누나도 미국에서 녹음하는 건 처음이라서.”

누나의 말에 골똘히 생각하던 지한이 간결한 대답을 내놓았다.

“외국인들이 많아.”

“그건 알아.”

“그리고 좀 뭔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것 같아.”

확실히 그런 면이 있었지.

한국에서는 권위 있는 감독이나 PD의 말에 꼼짝도 못 하고 따르는 분위기였는데 미국은 디렉팅에 대해 조금 더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오케이. 그렇단 말이지.

“누나, 너무 걱정하지 마. 매튜가 있잖아.”

“매튜가 제일 못미더운데.”

“아.”

누나의 말에 지한이 고개를 끄덕이려는 것을 참았다.

할 수 있다면서 우리를 몰아세울 것이 분명했다.

작곡을 할 때도,

이거 할 수 있어?→이 정도는 어때?→ 너희라면 할 수 있어

로 점점 태도를 바꿨다.

“형석 아저씨한테 지켜보고 있어 달라고 할까. 매튜, 아저씨 무서워하잖아.”

“그럴까.”

두 사람이 있다면 매튜를 말릴 수 있겠지.

그런데 매튜랑 작업하다 보면 은근히 꽤 잘 맞아서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한계에 한계를 끄집어내고 있었단 말이지.

확실히 매튜의 디렉팅은 정확했다.

나도 모르게 그어놨던 한계를 무너트렸던 매튜를 돌아본 지연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매튜라면 내 실력을 다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으음. 그건 그래.”

“그냥 들어줄까?”

“어쩔 수 없지.”

아이들이 어깨를 으쓱였다.

* * *

최대한 빨리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잡아타고 온 우리는 곧바로 매튜의 작업실로 향했다.

“우와 이거 다 매튜 거예요?”

“후후후. 맞아. 다 내 거야. 장비 사는 데 아끼는 주의가 아니라서.”

전문가용으로 보이는 작업도구에 아이들이 눈을 빛냈다.

회사도 아니고 개인 작업실에 이런 장비를 가지고 있다니.

작곡가는 다 이런 건가?

“그럼 이제 작업을 해 볼,”

타다다다다닥, 벌컥!

실실 웃으며 장비를 켠 매튜가 의자에 앉으려고 할 때 거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을 연 사람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매튜를 포착하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너 이 자식!”

“하하. 에릭 안, 꽥!”

에릭이라는 사람이 다짜고짜 매튜의 멱살을 잡았다.

저 사람이 에릭이야?

말로만 듣던 그 인물!

매튜가 온 걸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저 사람한테 매튜를 찾는 전용 레이더라도 있는 건가?

“너 갑자기 앨범을 만들었다니 이게 무슨 말이야! 거기다 할로윈에 맞춰서 낼 거라고? 장난하냐!? 앨범이 어린애 장난이야? 왜 말도 없이 일을 벌려? 이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야지. 갑자기 연락 와서 곡을 만들었고 노래 부를 사람도 섭외해서 녹음만 하면 된다니. 통보만 하면 다냐!”

화났다.

그런데 나라도 화나기도 하지만 황당했을 것 같다.

지금 에릭이 바로 지연이 묘사한 그 심정이었다.

작업실에 박혀 있는 놈 쉬라고 여행을 보내놨더니 할로윈 앨범을 만들었는데 누군지도 모를 사람에게 곡을 주었단다.

노래를 부를 사람을 섭외했는데 그게 할리우드 배우 오지한이랑 다른 나라에서 가수로 데뷔한 오지한의 누나란다.

이미 곡도 다 만들었고, 녹음만 하고 싶다는데 뒷목을 잡고 쓰러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앨범 홍보며 제작이며 전혀 생각하지 않는 친구의 태도를 보고 에릭이 분노를 터트렸다.

서릿발 같은 오래된 친구의 분노를 온몸으로 받으며 매튜가 애써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했다.

“아니 뮤즈와 함께 있는 덕분에 영감이 샘솟듯이 솟는 걸 어떡해. 그래도 나 곡 다 만들었다. 잘했지?”

“인간아!”

에릭이 매튜의 멱살을 짤짤 흔들었다.

멱살을 쥔 손에 핏줄이 설 정도로 힘들여 쥔 게 다른 이들이 없었으면 당장 주먹이라도 날릴 것 같았다.

“꾸에엑. 에릭, 저기 애들도 있,”

“시끄러워!”

멱살을 잡고 두 번 더 흔들어준 에릭이 손에서 힘을 풀었다.

드디어 매튜의 멱살을 풀어준 에릭이 작업실 한쪽에 앉아있는 일행들을 보고 정중히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친구 때문에 못난 모습을 보여드렸네요. 에릭 스미스라고 합니다.”

“오지한이에요.”

“오지연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이들 매니저인 고영훈입니다. 이쪽은 미나, 형석, 지은입니다.”

“안녕하세요?”

꾸벅

꾸벅

영훈의 소개에 미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경호를 맡은 두 사람은 아이들 옆에 바짝 붙어 고개만 끄덕였다.

“첫 만남에 못난 모습을 보여드렸네요. 죄송하지만 일정이 급박해서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으면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일정이 급박하다고요?”

“저 녀석이 할로윈에 맞춰서 꼭 발매를 하고 싶다고 해서요.”

할로윈까지 일주일 정도밖에 안 남은 시점이었다.

도저히 제시간에 앨범을 완성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했단 말이야?

대책 없는 매튜의 행동을 보고 지연이 속으로 경악했다.

악우가 친 사고에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에릭이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미국에 에이전시가 있습니까?”

“직접 계약을 맺은 곳은 없고 에이전시 계약을 맺은 곳은 있습니다만.”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 사람을 통해서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어딘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여기, 명함이 있습니다.”

영훈이 품에서 애런의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명함을 받아든 에릭이 잠시 통화를 하고 오겠다며 나갔다.

“애런까지 필요해?”

“미국에서 활동은 전적으로 그의 에이전시와 일하기로 했으니까.”

“오랜만에 애런 보겠다.”

“그런데 오빠 우리 곧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잖아. 괜찮은 거야?”

“그러게. 그냥 전시에 참가하러 온 건데 어째서 앨범을 만들게 되었을까.”

“앨범 활동은 못 할 거 같은데.”

“지연이 너는 여기서 데뷔도 안 했는데 어쩌겠어. 녹음하는 것만 신경 쓰고 나머진 매튜랑 애런한테 맡기자.”

“고생이 많네 오빠.”

“그래도 나 녹음은 해 보고 싶었어.”

“그렇데. 우리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미안. 일을 만들 생각은 아니었어.”

“뭘 새삼. 너희들이랑 있는데 이 정도는 큰일도 아니지.”

영훈이 세상 다 산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앗, 영훈 오빠한테서 낼모레 칠순인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매튜를 만난 건 우리 의지가 아니었다구.

앨범을 만든 것도 매튜가 우릴 보고 영감이 계속 떠오른다고 한 거란 말이야.

아무튼 우리 잘못 아님.

“얘들아 준비 다 끝났어!”

어느새 장비를 만져 녹음 준비를 끝낸 매튜가 손을 붕붕 흔들며 아이들을 불렀다.

“복잡한 일은 우리한테 맡기고 너흰 녹음하고 있어.”

“알았어.”

“형 힘내!”

아이들이 영훈을 꼭 안아주고 부스로 들어갔다.

[아아-너희들 잘 들려?]

“잘 들려요.”

“네에.”

[그럼 일단 편하게 한번 쭉 불러볼까?]

“좋아요.”

“뭐부터 해요?”

[뱀파이어부터 부탁해.]

“알았어요!”

“예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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