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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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도 귀신이라고 볼 수 있나?”

저승사자의 정체성 논란에 남매가 갸우뚱했다.

“어쨌든 그 저승사자라는 사람이 리퍼처럼 죽은 사람을 데리러 간다는 거지?”

“이렇게 들으니까 꽤 비슷한 존재들이 많네요. 신기하네.”

“그만큼 옛날 사람들이 죽음이나 자연현상 등을 보고 공통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는 거겠죠.”

“그런데 그 저승사자가 죽은 사람을 데려가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로 데리러 온대요.”

“어머 그거 낭만적이다.”

“그쵸? 그리고 데려갈 이의 이름을 세 번 부른대요.”

“왜 세 번이나 부르는 거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혹시 못 들었을까 봐 세 번 부른 게 아닐까? 그게 아니더라도 한국 사람들은 3을 좋아하니까.”

“그랬니?”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이라는 말이 있구요. 천지인이라는 것도 있고, 또….”

“아무튼 3을 좋아하나 봐요.”

“그렇구나.”

엠마가 중간중간 호응을 해 주며 아이들 말을 들었다.

“아!”

“?”

“? 매튜 왜 그래요?”

“혹시 귀신이라도 본 건가요?”

엠마가 호호 웃으며 말했지만 귀신이라는 말에 지연은 자신도 모르게 동생을 뒤로 숨겼다.

“아니 죽은 자의 이름을 세 번 불러서 데려간다는 게 꽤 흥미로워서요.”

귀신을 본 게 아니라 또 곡에 대한 영감을 받은 모양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지연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매튜, 매튜! 나도 노래 부르고 싶어요.”

“조오아써! 그럼 이번에는 지한이 곡을 만들어 볼까?”

“아니요.”

“엥?”

“나는 누나랑 같이 부르고 싶은데.”

“아아.”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는 게 아니라 이번 곡을 듀엣으로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었구나.

하하. 나도 참.

매튜가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고 지한의 요청에 응답했다.

“조오아써! 이왕 이렇게 된 거 할로윈 특집으로 간다!”

할로윈 특집은 무슨 특집인데.

“오오! 멋져요!”

“동서양 유령들의 화합의 장인가요?”

“그렇습니다! 꽤 재밌을 거 같지 않나요?”

“저야 잘 모르는걸요. 매튜 씨가 잘 만들어 주시겠죠?”

“하하하. 물론이죠!”

엠마가 매튜를 부추겼다.

은근슬쩍 잘 만들라고 압박한 거 같은데.

“지한, 지연! 나에게 그 유령 얘기 조금 더 해 주지 않겠어?”

“네!”

“…알았어요.”

사서 고생을 하겠다는데 내가 무슨 수로 말리겠나.

그것보다 할로윈이 이제 2주 정도밖에 안 남은 거 알고 하는 말이겠지?

지연이 주먹을 불끈 쥐고 ‘오오오오’ 기합을 넣는 매튜를 불안하게 바라봤다.

헨리의 집에 시체 한 구 치우기 전에 옆에서 잘 지켜봐야겠다.

100. 백귀야행(1)

지연은 생각했다.

이 매튜라는 사람은 만약 에릭이라는 친구가 없었다면 굶어 죽었을 거라고.

‘도대체 며칠째야.’

할로윈 특집이라는 말에 설마설마했는데 매튜는 진짜로 동서양의 괴물들을 모티브로 곡작업을 하고 있었다.

잠도 안 자고 먹지도 않고 노트북 화면만 바라보는 매튜를 보고 지연과 지한은 그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지켜봤다.

“몇 시간째지?”

“우리 자기 전이랑 똑같은 거 같아.”

“그럼 벌써 13시간짼가.”

엠마도 말리기를 포기하고 매튜가 작업하는 거실 테이블 위에 쿠키와 샌드위치를 가득 챙겨놨다.

그것도 거의 줄어들지 않은 것을 보아 허기져서 손이 떨리기 전까지 곡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귀신 얘기 해주지 말걸 그랬어.”

“그러게. 누나 미안.”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네 첫 영화가 공포영화였고 네가 거기서 끝내주게 무서운 귀신으로 나왔다고 말한 내가 잘못이지.”

덕분에 지한이는 오랜만에 동자귀를 연기해야 했다.

지한의 첫 배역이 다시 등장하자 지연은 묘한 그리움에 차 동자귀의 살벌한 미소마저 반갑게 보였다.

동자귀를 눈앞에서 본 매튜는 흠칫하며 물러났지만 그의 시선은 동자귀를 연기하는 지한이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집요한 시선에 지은 언니랑 형석 아저씨가 매튜를 떨어트리려고 했지만 내가 나서서 간신히 둘을 막았다.

하마터면 매튜가 쌀쌀한 날씨에 밖으로 쫓겨날 뻔했지.

“아. 손 떤다.”

“배고픈가 봐.”

아이들이 매튜의 이상을 눈치채고 재빨리 샌드위치를 들어 그의 입으로 가져갔다.

자신의 입에 뭐가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그는 살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오물오물

“지한아 주스도.”

“어어. 마시려면 고개를 젖혀야 하는데.”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한 매튜가 주스를 입에 갖다댄다고 해서 쉽게 마실 것 같지 않았다.

“할 수 없지. 빨대 있을까?”

“엠마한테 물어보고 올게!”

지한이 후다닥 식당으로 달려갔다.

어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람.

“에릭이란 사람. 불쌍해. 어쩌다 매튜랑 친구가 돼서 고생을 했을까.”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에릭을 동정할 만큼 지연이 매튜를 걱정했다.

“누나! 가져왔어!”

“잘했어.”

지연이 빨대를 받아들고 컵에 넣었다.

컵을 들고 빨대를 매튜의 입에 물려주자 다행히 그가 뱉지 않고 천천히 주스를 빨았다.

“휴우.”

“다행이다.”

매튜의 끼니를 챙긴 아이들이 떨림이 멈춘 손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당이 필요할지 모르니 초콜릿을 가져다 놔야겠다.

할로윈이 다가와 엠마가 초콜릿, 사탕을 많이 사다놓아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사러 나갈 뻔했다.

“어휴. 이게 무슨 일이야.”

“매튜 조금 귀찮아.”

오죽하면 지한이가 지친 얼굴로 매튜를 원망스럽게 바라봤다.

자신들을 뮤즈로 부르면서 영감이 치솟는다고 곡 작업을 하는 이를 매정하게 그냥 둘 수도 없고.

좀 적당히 먹을 거 먹어가면서 일 하면 안 되나?

지친 동생의 얼굴을 본 지연이 살짝 화가 나 매튜를 째려봤다.

두 아이들이 자신에게 조금 질렸다는 사실도 모르고, 매튜는 말없이 마우스를 달칵거렸다.

“매튜랑은 자주 만나지 말자.”

“응. 매튜는 가끔 만나면 좋겠어.”

* * *

“으그그그극. 다했다.”

몇 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작업을 한 매튜가 드디어 마지막 곡을 끝내고 기지개를 켰다.

“이제 끝난 거예요?”

“끝났어요?”

아이들이 피곤한 얼굴로 매튜에게 물었다.

지쳐 보이는 그 얼굴에 매튜가 의아해했다.

“너희들 얼굴이 왜 그래?”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아저씨 때문이에요.”

매튜의 물음에 아이들이 원망스럽게 말했다.

이번에 작곡한 곡들이 전부 동서양의 괴물들을 모티브로 만들어서일까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귀신’을 떠올린 매튜가 흠칫하며 몸을 뒤로 뺐다.

“매튜는 왜 그렇게 극단적이에요?”

“응? 내가?”

“맞아! 먹지도 않고 씻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아아. 내가 한 번 작업에 몰두하면 주위를 좀 안 돌아보기는 하지. 하하하.”

“웃음이 나와요?”

“지금 몇 신지 알아요?”

“그러다 픽 쓰러져 죽을 거야.”

“옆에서 돌봐줄 사람이 없다면 절대 혼자서 곡 작업 하지 말아요. 그러다 구급차 실려가겠어요.”

“어라. 어떻게 알았어? 나 그런 적 있어서 에릭이 혼자 작업 금지시켰잖아.”

“그 말이 쉽게 나와요?”

“세상에. 누나 진짜 있었대.”

실화로 있었다는 말에 아이들이 경악했다.

이 사람 위험해.

다 큰 어른이 왜 자기 몸을 안 챙기는 걸까?

에릭이 없었으면 과로사했을지도 몰라.

지연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에릭한테 잘하세요.”

“응? 갑자기 얘기가 왜 그렇게 되는 거야.”

“아저씨는 에릭이란 분 없었으면 분명이 죽었을 거야.”

“매튜. 나는 매튜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녀석들….”

자신을 걱정하는 아이들의 말에 매튜가 코를 쓱 쓸었다.

“아직 우리 누나 앨범도 안 만들어 줬으면서 무책임하게 죽지 마세요.”

“지한아…!”

매튜가 좌절하며 고개를 떨궜다.

지한이가 자신을 챙기지 않고 일하는 매튜에게 단단히 삐진 모양이다.

솔직히 그 말을 들어도 싸지!

이 일주일간 일로 지한이의 호감도를 전부 깎아먹은 매튜를 매정하게 쳐다봤다.

주위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한테 우리가 뭐 예쁘다고 잘해주겠어?

지연과 지한이 팔짱을 꼈다.

아이들의 행동에서 자신에게 실망하고 토라진 마음을 읽은 매튜가 침울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었다.

“미안하다.”

“말로만 그럴 거예요?”

“우리 누나가 약속을 할 때는 확실한 증거를 남겨놔야 한다고 했어요.”

그럼그럼.

내 동생 잘 배웠구나.

지연이가 오랜만에 스케치북을 그 용도로 사용할 때라고 생각했다.

말로 안 해도 누나의 생각을 읽은 지한이 방으로 가 지연의 스케치북을 가져왔다.

“누나 여기!”

“그래. 잘했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지연이 스케치북을 폈다.

“자! 여기 서명하세요.”

“어, 으응?”

“말로만 하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어요. 그런 구속력 없는 약속은 믿지 않는다는 게 제 주의라서요.”

“어어. 그러니까 계약서? 합의서? 같은 걸 쓰자는 말이지?”

“네. 자 얼른 따라 써요. 나 매튜 스튜어트는 앞으로 다시는 몸을 안 돌보고 작업을 하지 않겠습니다.”

“나 매튜 스튜어트는….”

매튜가 얼떨결에 지연의 말을 받아썼다.

“여기서 몸을 안 돌본다는 것은 8시간 이상 숙면을 취하지 않는 것, 4~5시간마다 식사를 하지 않는 것 등이 포함된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니?”

“안 하면 매튜 두 번 다시 안 봐요.”

“이게 다 매튜를 위한 거라고요. 빨리 누나 말 따라 써요.”

여기서 자신의 편은 없었다.

자신을 위한 일임은 알지만 어쩐지 처량한 기분이 들어서 매튜는 눈에서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다.

각서를 쓰고 사인까지 마친 매튜를 보고 남매가 화가 조금 풀린 듯했다.

“그런데 벌써 다 만든 거예요?”

“곡이 원래 그렇게 금방 나오나?”

아이들이 궁금하다며 묻자 매튜가 다시 자신감을 되찾은 얼굴로 당당하게 말했다.

“사람에 따라 다른데 나는 영감을 받으면 뚝딱 나오는 편이지. 엣헴!”

“오오.”

“매튜, 대단하네!”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조금 전에 혼냈으니까 이제는 칭찬해 줘야지.

어찌 됐든 곡을 만든 건 대단한 일이니까.

과연 빌보드 작곡가라고 할 만했다.

들어보니 꽤 천재 작곡가로 유명하다는데 작업에 몰두한 매튜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납득이 갔다.

“그런데 이 곡은 이걸로 완성된 게 아니야.”

“넹?”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이들이 고개를 기울였다.

지금 매튜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이지?

매튜가 진지한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봤다.

“이 곡을 완성하려면 너희들의 힘이 필요해. 지연, 지한. 너희가 이 곡의 가사를 붙여줄래?”

매튜의 제안에 아이들이 눈을 깜빡였다.

우리보고 작사를 하라고?

“너희가 영감을 줘서 곡을 쓰긴 했는데 ‘저승사자’니 ‘동자귀’니 그런 것은 너희들이 더 잘 알잖아. 그러니까 가사를 써 줘.”

매튜의 말에 지연이 동생을 보았다.

허공에서 아이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어떻게 할래?”

“나는 재밌을 거 같아.”

“그런데 영어로 다 옮길 수 있을까?”

“안 되면 한국어 그대로 발음해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우리가 해 준 얘기를 보고 떠올린 건데.”

“맞아. 이거 발표할지 안 할지도 모르고.”

“다른 건 영훈이 형이나 사장님이 도와주시지 않을까?”

사장님 카드를 내민 지한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맞아. 사장님이 도와주시겠지.

뭐, <회장님 이용권 1회>도 남아있으니까 해볼까?

무엇보다 지한이의 말대로 재밌을 것 같았다.

지연이 고개를 돌려 매튜를 바라봤다.

“좋아요. 할래요.”

“히힛! 해볼래요!”

“그래.”

매튜가 아이들을 보고 신뢰가 담긴 시선을 보냈다.

* * *

매튜가 작곡한 곡을 지한이와 내가 나눠 가졌다.

물론 매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매튜가 맡은 부분은 뱀파이어, 늑대인간, 프랑켄슈타인

지한이가 맡은 부분은 동자귀, 악마

내가 맡은 부분은 저승사자, 구미호, 마녀였다.

‘이거 생각보다 더 재밌네.’

동서양을 대표하는 귀신들의 콜라보라니.

어느새 지연의 입가에는 자신도 모르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사각사각

종이 위로 지연의 펜이 움직였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이 흘러 넘쳤다.

심상을 캔버스 위에 옮기는 작업은 해 봤는데 글로 표현하는 작업은 처음이었다.

꽤 흥미로웠다.

“누나, 어떤 곡부터 하고 있어?”

“저승사자. 너는?”

“나는 역시 동자귀?”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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