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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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누군지 알았으니 제 제안이 얼마나 좋은지도 아시겠죠? 저 아이들은 재능이 있습니다.”

“압니다.”

“네. 모르셨겠, 알아요?”

자신이 처음 알아낸 재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보호자가 알고 있다고 말하니 매튜가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어흠. 흠. 그러면 아이를 가수로 데뷔시킬 생각이십니까? 그럴 거면 저에게 맡기시죠. 제가 잘 갈고닦아,”

“이미 데뷔했습니다.”

또!

아이들에게 손을 내민 것이 자신이 처음이 아니란 소리에 매튜가 울컥한 얼굴로 반문했다.

“저렇게 재능이 넘치는데 도대체 어떻게 관리했기에 아직도 가요계에 소식이 없는 겁니까. 그 재능을 썩힐 거면 차라리 저에게 맡기시죠.”

“무슨 오해를 하신 건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의 소식이 없을 만도 하죠. 미국에서 데뷔한 게 아니니까요.”

바다 건너 있는 작은 나라에서 데뷔한 애들을 빌보드 작곡가가 알 리가 없지.

영훈이 짜게 식은 눈으로 매튜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매튜가 잠시 움찔하더니 애들에게 말을 걸었다.

“미국에서 데뷔한 게 아니라고요? 그럼 설마 다른 나라에서 데뷔했단 말입니까? 아이들은 미국에 이민 온 거 아니었어요?”

“아니에요.”

“그런데 어떻게 나랑 LA, 시카고에서 만납니까?”

“저도 그게 신기해요.”

“우리 미국에 일 있을 때만 오는데 신기하게 아저씨랑 만났네요.”

“나는 쉬러 간 곳마다 너희들이 있던데.”

“이게 인연이라는 건가 봐요.”

“인연?”

“음. 운명(Destiny)?”

지연의 말에 매튜의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운명이라니!

그렇게 환상적인 울림을 주는 말이 있던가?

역시 이 아이들은 신이 내게 내려보낸 뮤즈가 틀림없어!

매튜가 반하기라도 한 것처럼 애들을 보자 옆에 있던 형석과 지은이 아이들 눈을 가려 매튜의 시선을 차단했다.

“그렇게 보지 마시죠.”

“아가씨, 도련님. 위험합니다. 저 사람과 만나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아아! 날 뭘로 보시는 겁니까?”

“…변태?”

“그런 거 아닙니다!”

누굴 뭘로 보고!

“나는 다 큰 성인 여성이 좋습니다! 이성이 좋아요!”

“…그런데 조금 전에는 왜 그런 눈을 했습니까.”

하마터면 위험인자인 줄 알고 머리통을 후려칠 뻔하지 않았습니까.

형석이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며 생각했다.

그 시선에 움찔한 매튜가 다시 아이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연의 말대로 우린 운명이 틀림없어. 지연과 지한. 너희들과 음악적 교류를 하고 싶은데 괜찮니?”

“음악적 교류요?”

“그때 짧은 만남에 내 곡의 문제를 알아차렸잖아. 그걸 보면 너희들이 이쪽에 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지. 이미 가수로 데뷔했다니 내가 더 해 줄 말은 없다만 음악적 부분에서 교감을 하고 싶어.”

“어떻게 하는 건데요?”

“그냥 내 곡을 듣고 어떤지 감상을 알려줘도 되고, 내가 만든 곡을 한 번 불러주는 것도 되고.”

그 정도면 괜찮은데?

지연이 긍정적인 기색을 보이자 매튜가 더 신이 나서 이것저것 떠들었다.

“그때 너희 덕분에 완성했던 곡이 있는데 한번 불러볼래? 사실 너희들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는데 다른 가수가 불러버려서 아쉬웠거든. 머릿속에 있던 곡의 이미지가 조금 바뀌었달까. 너희가 불러주면 다시 그 이미지로 변할지도 몰라.”

“그런데 누나 말고 저도 불러요?”

“그래. 너도 노래 잘 부르잖니.”

“히힛. 좋아요. 누난 어때?”

“나도 부르는 것 정도면야.”

나는 그냥 악보 보고 부르는 것만 할 줄 아는데.

“나는 매튜 아저씨 말 찬성이야. 예전에는 누나가 직접 노래도 만들어서 불러주고 그랬는데 요즘은 안 그래서 아쉬웠거든.”

그랬던 적도 있었지.

생각해보니 내가 만든 자장가가 엄마들 사이에 알음알음 퍼져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 있었다.

나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멜로디 라인 정도는 직접 생각할 수 있는 거였는데.

데뷔를 위해서 곡을 전부 받아서 채우다 보니 이번에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꽉 막혀 있었다.

“고마워 지한아.”

“응? 뭐가?”

“네 덕분에 머리가 상쾌해졌어.”

이번에 돌아가면 황 팀장님이랑 의논해 봐야지.

“지연이 노래도 만들었습니까? 역시 작곡에도 소질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매튜가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매튜가 말한 음악적 교류라는 걸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오빠. 나 매튜 아저씨랑 같이 음악적 교류라는 거 해 볼게.”

“앗! 나도나도. 형, 나도 할 거야.”

저렇게 나온 이상 말릴 수 없었다.

영훈이 한숨을 푸욱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마워.”

“형, 고마워!”

“예쓰!”

매튜가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로 뻗으며 환호했다.

그 행동을 본 영훈이 ‘역시 말려야 하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일단 사장님께 보고하자.’

아이들이 미국에서 빌보드 작곡가를 낚았다고.

98. 뜻밖의 재회(3)

전시 때문에 왔던 미국행이 뜻밖의 여정을 맞이했다.

매튜는 음악적 교감을 나누자며 헨리의 집을 수시로 방문했다.

그 때문에 헨리 선생님한테 밉보인 것 같지만 엠마는 아이들과 순수하게 음악적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매튜를 기꺼이 받아주었다.

“이건 뭐예요?”

“작곡 프로그램.”

“복잡해.”

“하하. 너희도 곡 만드는 거 하려면 이런 프로그램은 다룰 줄 알아야 할걸?”

“곡을 만들어요?”

“아마 너희가 먼저 만들고 싶어 할 거야. 네 안에 있는 멜로디를 온전히 꺼내고 싶어질 테니까.”

매튜가 확신한다는 듯이 아이들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지한이 매튜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끄덕였다.

“알았어요.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필요할 거란 말이죠?”

“지한이 네가 너만의 뮬란을 만들었다가 밖으로 끄집어내고 싶어지는 거랑 같은 거야.”

“아항! 이해했어요!”

눈높이에 맞는 설명에 지한이 활짝 핀 얼굴로 대답했다.

단박에 동생을 이해시키는 지연의 화법에 매튜가 휘파람을 불며 감탄했다.

“지연, 넌 정말 대단하다니까. 막힌 걸 속 시원하게 뚫어주는 것 같아.”

“뭘 이 정도로.”

지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아이를 보고 매튜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런 자신감 좋아. 무릇 음악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생각이 확고해야 해. 그리고 그걸 당당하게 내보일 줄 알아야지. 동양인들은 자신의 실력을 너무 드러내려 하지 않던데 너희들은 달라서 좋아.”

“사람마다 다른 법이죠. 그리고 동양에서는 겸손이 미덕이기는 해요. 이곳과 문화가 다르니까.”

“맞아. 그래서 난 더 너희들에 대해서 알고 싶어.”

매튜가 아이처럼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지연과 지한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제는 이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인지 안다.

‘한쪽은 혜성처럼 떠오르는 할리우드의 어린 배우. 한쪽은 무지막지한 예술적 재능을 갖춘 천재 가수. 정말로 뮤즈의 환생이란 말인가?’

매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각각 배우와 가수로 데뷔하여 이름을 알리고 있다는 것에 한 번

갤러리에 그림이 걸려 있다는 것에 두 번

작년에 오스카에서 상을 받았다는 것에 세 번

이 모든 일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에 네 번 놀랐다.

생각해보면 에릭이 작년에 괜찮았던 영화가 있다며 추천해줬는데 그 영화가 바로 지한이 출연한 바이러스였다.

그걸 보고 와서 계속 천사는 실존한다면서 인간을 단죄할 날이 올 거라며 말하고 다녀서 기억하고 있었다.

단단히 홀리고 온 에릭을 보고 자신은 그 영화를 보지 않겠다고 했었지.

지금 와서 생각하면 아깝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때 그 녀석의 말을 듣고 영화를 보러 갔으면 더 일찍 뮤즈를 만날 수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진짜 그 녀석이 메신전가?”

“뭐가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내 친구가 생각나서.”

“따라다니면서 잔소리하는데 묘하게 다 도움이 된다는 그 친구요?”

“맞아. 따지고 보면 그 친구 덕분에 너희를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은인이라고 해야 할까?”

“은인이라면서 왜 인상을 찌푸려요?”

“싸웠어요?”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내가 고맙다고 하면 그걸 갚으라며 고마운 거 배로 부려먹을 녀석이라서.”

“사이좋은가봐요.”

“그러게.”

“무슨!”

아이들 말에 매튜가 반박하며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누나가 친구는 싸우면서 크는 거라고 했는데.”

“맞아. 싸울 만큼 친한 친군가봐.”

“그 녀석이랑 오래 친구였긴 하지만 사이가 좋은 건 절대 아니야.”

이번에야 뮤즈를 만나게 해 줬으니 고마워하는 거지만 그 녀석이 나를 얼마나 부려먹는 줄 알아?

사람이 작업을 하고 있으면 좀 내버려 둘 것이지 시시때때로 찾아와서 이건 했냐, 저건 했냐. 이 작업은 얼마 남았고, 저 작업 마감은 언제까지다.

아주 지긋지긋했다.

“엄청 좋은 친구네.”

“그러게. 친구가 착하다.”

“아하?! 지금 얘길 어딜 봐서?”

“솔직히 가족도 아니고 남인데 매튜를 계속 챙겨줬잖아요.”

“마자마자. 따라다니면서 잔소리 하는 게 전부 매튜를 위한 거였어.”

“내 작업물을 재촉하러 온 빚쟁이가 아니고?”

“마감있는 일이라면 제 시간에 해야죠.”

“어쩐지 너네들이랑 에릭이랑 잘 맞을 거 같네….”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다.

“됐고. 이 노래 들어봐. 그때 너희들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노래야.”

“오!”

“오!”

남매가 관심을 보이자 매튜가 조금 전 상황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채 노트북을 재생했다.

꼭 작업을 하기 위해서 들고 온 건 아니지만 노트북을 습관적으로 챙긴 매튜는 그러길 잘했다며 자신을 칭찬했다.

♬♪♬

재생되는 노래에 아이들이 눈을 감고 감상했다.

확실히 중간에 자신들이 제시했던 멜로디가 삽입되어 있었다.

그 멜로디 덕분에 노래가 막히지 않고 매끄럽게 흘러갔다.

어느새 재생이 끝난 노래를 듣고 아이들이 감탄했다.

“우와.”

“좋다. 그치?”

“응! 내가 불렀던 부분이 들어가 있어.”

“그러게. 역시 지한이야.”

“히힛!”

누나의 칭찬에 지한이가 엉덩이를 들썩였다.

“여기 가사도 있어.”

매튜가 창을 열어 가사를 불러왔다.

아이들이 머릿속으로 멜로디 위에 가사를 삽입했다.

“한번 불러볼래?”

“좋아요.”

“혼자 말고 동생이랑 같이 불러봐.”

“좋아요! 누나랑 같이!”

매튜의 제안에 지한이 기뻐 날뛰었다.

누나랑! 같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뻔히 보여서 지연이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너희는 진짜 사이가 좋구나. 서로를 좋아하는 게 눈에 보여.”

매튜의 말에 지연이 동생을 바라봤다.

사이가 좋다라.

돌아오기 전에는 파국으로 치달았던 관계였다.

피를 나눴지만 남보다 못한 사이.

오히려 원수에 가까운 사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세상에 둘도 없을 사이었다.

아마 각자 가정을 꾸리게 되더라도 우리 둘 사이에 있는 끈끈한 유대를 끊지는 못하겠지.

그래서 좋았다.

이 세상에 서로가 있음으로서 자신들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걸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다니는 부평초같이 살아왔는데 지한이가 나를 이 세상에 묶어두고 있었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내가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어서.

나도 이곳에 살아있다고 확인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하나뿐인 내 동생이니까.”

무심코 한 말에 진심이 담겨 나왔다.

누나의 말을 들은 지한이 감동받은 얼굴로 지연에게 안겨들었다.

“누나! 나도 누나가 좋아. 엄청 좋아!”

“나도 그래.”

갑자기 서로간의 애정을 확인하는 남매를 본 매튜가 둘을 말렸다.

“여기서 이러지 마. 내 곡을 불러줘.”

“알았어요.”

“네!”

지한이 잔뜩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의욕 MAX인 모습을 본 지연이 가사를 훑었다.

동생이랑 같이 부르는 건데 누나로서 잘 이끌어야지.

눈빛으로 신호를 주고받은 지연이 매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

간주가 흘러나왔고

지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 * *

“남 비서.”

“네. 사장님.”

“우리 애들은 정말이지 신이 사랑하는 아이들인 게 아닐까?”

“….”

주민의 집안이자 HJ그룹의 오너 일가인 공 씨네를 보필하기 위해서 무수한 경쟁자들을 이기고 하루하루 자신을 갈고닦았던 남 비서는 주민의 말에 처음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뭐라고 할 것인가.

아이들이 운이 좋긴 하지만 신의 사랑이니 어쩌니 하는 건 너무 과한 반응이라고 할까?

그랬다가는 지금 당장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실실 웃고 있는 주민의 얼굴이 차가운 서리가 내려앉은 것처럼 바뀌게 될 것이다.

그의 주접에 대꾸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답이겠지.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지. 나 원. 내가 도와주려고 해도 혼자서 모든 장애물을 다 해결하는 아이들이라 키우는 수고를 느끼지도 못하겠군.”

사장님이 직접 키우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떻게 갤러리 전시를 하러 가서 그런 귀한 인맥을 얻은 걸까? 정말이지 우리 애들은 보통 대단한 게 아니라니까.”

정확하게는 그때 만난 인연이 아니라 스키장에서 만났던 것이 인연이 되었습니다만.

사장님께서 아이들을 데리고 스키장으로 놀러가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우리 애라니요.

사장님은 아직 미혼이십니다만.

40살 되기 전에 장가가신다면서요.

“매튜를 통해서 지연이가 새 앨범에 수록할 곡을 받아온다면 더 좋겠군.”

“제가 고 매니저에게 전달하겠습니다.”

“듣기로는 그쪽에서 아이들을 데뷔시켜 주겠다느니 그런 말을 했다지? 곡비는 잘 챙겨줄 테니 지연이와 같이 앨범작업을 해 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라고 해.”

“알겠습니다.”

남 비서가 고개를 숙이고 사장실을 나서려고 했다.

그가 등을 돌리자 주민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아! 지연이 그림. 무조건 내가 낙찰받을 거야. 대리인 보내서 일 처리하도록 해.”

“네, 사장님.”

달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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