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모양인데?”
범인으로 확정되자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견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어른들의 칭찬에 아이들이 헤벌쭉 웃었다.
건우가 얼떨결에 합류한 현우를 보고 말했다.
“이게 다 현우 네 덕분이야.”
“나, 나?”
“네가 저 아저씨 수상하다고 해 줬잖아.”
“건우 말이 맞아.”
“현우 너 대단하다. 어떻게 저 아저씨가 두리번거리는 것만 보고 알았어?”
그야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때문에 시선에 조금 민감해져서 그런 건데.
“네가 저 아저씨 눈빛이 수상하다고 해서 잡을 수 있었던 거야.”
정말 대단해.
난생처음 듣는 칭찬에 현우의 눈이 감동으로 일렁거렸다.
꾸욱
현우가 옷자락을 쥐고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삼켰다.
범인을 경찰차에 실은 경찰이 아이들에게 다가왔다.
“얘기는 들었다. 너희들이 저 범인 잡았다면서? 대단한데?”
“엣헴! 이 정도야 별 거 아니라구요.”
“건우가 다 같이 붙잡자고 했어요.”
“그래도 다음에는 경찰아저씨를 꼭 불러줄래? 위험했어.”
“네에!”
“잘했어!”
“너희들 너무 대견하다.”
“얼굴도 잘생긴 애들이 용감하기까지 하네.”
짝짝짝짝짝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를 받았다.
이런 기분이구나.
현우의 얼굴이 상기됐다.
88. 전시 요청
화면에서 <햇살마을 수비대> 4화가 흘러나왔다.
반에서 일어난 사건과 빈집털이범을 잡은 아이들은 마을을 순찰하기로 한다.
마침 뉴스에서 아동납치, 유괴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던 참이라 자신감에 가득 찬 아이들이 직접 이 마을을 수호하자고 한 것이 계기였다.
“이 마을은 우리가 지켜야지!”
혜림이 외쳤다.
그리고 우리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은 건우뿐이라고 제안한다.
“좋아.”
호기심과 자신감이 가득한 건우가 혜림의 제안을 받아들자 정민이 자동으로 합류했고, 건우의 스카웃에 지아와 현우가 참여했다.
“자, 그럼 가볼까?”
사실은 수비대지만 마을 이곳저곳을 탐험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처음으로 정해진 구역은 문방구집 아들이자 정민의 집이 있는 구역.
“어? 저 아저씨 우리 아파트 707호 아저씬데, 왜 저기서 나오는 거지?”
정민이 수상한 아저씨를 발견했다.
“수상한데.”
“수상해.”
“얘들아 그냥 누구 만나러 저 아파트로 갈 수도 있지.”
“아니야 눈빛이 범죄자 같아, 현우,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 나? 나는.”
“네 생각은 어때?”
“그러니까. 조, 조금 수상한 거 같아.”
혜림의 기세에 밀린 현우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혹시 빈집털이범이 아닐까?”
“저 아저씨는 배가 튀어나왔는걸.”
“빈집털이를 하기에는 뚱뚱한 거 같은데.”
수상한 707호 아저씨의 뒤를 쫓던 아이들은 그 아저씨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고 더욱 수상해했다.
“왜 저렇게 살피지?”
“수상해! 수상해!”
건우의 말에 혜림이 계속 수상해만 외쳤다.
아파트에 들어가기 전 그 아저씨가 잠시 골목에 숨었다.
나란히 신호등처럼 골목에 고개를 빼꼼 내민 아이들은 그 아저씨가 가방에서 향수를 꺼내 온몸에 뿌리는 것을 보았다.
“왜 저러는 거지?”
“알았다! 분명 몸에 배인 냄새를 지우려고 하는 거야!”
“무슨 냄새?”
“호, 호, 혹시 살인?!”
“내 추리로는 살인은 아니야. 그러니까 진정해 얘들아.”
“하지만!”
“내가 명탐정 쿠난에서 봤는데 살인사건이라면 범인도 피를 엄청 뒤집어썼을 거래.”
“휴우.”
그때 707호 아저씨가 향수를 넣으려다가 들고 있던 가방을 떨어트렸다.
툭-
떨어진 가방에서 붉은 천이 보였다.
파랗게 안색이 질린 아이들이 입을 틀어막고 뛰어갔다.
파출소로 뛰어간 아이들이 경찰 아저씨 앞에서 떠들었다.
“그 아저씨가 자기 집 말도 다른 곳에서 나오는 걸 봤는데요!”
“피, 피!”
“갑자기 골목에 들어가서 향수를 뿌리더니 가방에서 피가!”
“살인사건! 이건 살인사건이에요!”
“그 아저씨 지금 당장 체포해야 해요!”
“얘들아 그게 무슨 말이니.”
갑자기 달려온 아이들의 증언에 결국 경찰이 아이들과 함께 707호로 향했다.
문을 열고 나온 아저씨가 경찰을 보고 당황했다.
그 모습을 더욱 수상히 여긴 아이들이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봤다.
“그러니까 여기 애들이 당신을 저어기 새봄 아파트에서 205호에서 나오는 걸 봤다는데 사실입니까?”
“넵?! 제가 거길 왜 가요?”
그렇게 말한 것치고는 아저씨의 동공이 팝핀을 추고 있었다.
경찰도 수상한 아저씨의 반응에 그를 추궁했다.
“선생님 여기 본 눈만 다섯입니다. 왜 가셨는데요?”
“아, 거 간 적 없다니까.”
“거짓말! 우리가 다 봤어요!”
“맞아! 거짓말이야!”
“저 아저씨 가방에 분명 피가 묻은 옷이 있었어요!”
“아니야!”
아이들의 말에 아저씨가 문을 닫으며 도망치려 했지만 경찰이 재빨리 문을 열고 현관으로 들어갔다.
집에서 막 귀가한 아저씨의 가방은 소파에 있었는데 귀가하자마자 던진 건지 내용물이 조금 흘러나왔다.
거기서 붉은 천을 본 경찰이 더욱 아저씨를 몰아붙였다.
“이건 뭐죠?!”
“그건 내 팬티야!!!!!!”
경찰이 붉은 천을 들어올렸다.
“…팬티?”
“꺅!”
“어머.”
“빨간 팬티네.”
“팬티가 빨간색이네.”
아이들 앞에서 팬티색을 공개한 아저씨의 얼굴이 팬티처럼 빨개졌다.
“아, 아니. 팬티를 왜 들고다니는….”
“아무튼 나는 죄 없어! 다들 나가!”
“하지만 왜 새봄 아파트에 가셨는지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난 안 갔다니까!”
“…여보?”
“여, 여보.”
열린 현관문으로 장을 보고 왔는지 웬 아줌마가 장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여보라고 하는 걸 보니 저 아저씨 아내인 것 같았다.
“경찰? 우리 집에 경찰이 왜 왔죠?”
“이 아이들이 수상한 점을 제보해서 찾아왔습니다. 저분이 새봄 아파트 205호에서 나왔다는데 집에 들어오기 전에 골목에서 몰래 향수를 뿌리질 않나, 가방에 붉은…팬티를 가지고 다니질 않나. 수상해서 잠시 물어보던 참이었습니다.”
“새봄 아파트, 205호?”
경찰의 말을 들은 아줌마는 무시무시한 얼굴이 돼서 남편을 쳐다봤다.
“히끅.”
“무, 무서워.”
“쉿. 조용히 해야 해.”
“….”
“다들 조용히.”
귀신같은 얼굴에 아이들이 경찰의 뒤로 숨었다.
“야. 너 또.”
“여, 여보. 그게 말이야.”
“야 이 개-새-끼-야-!!!!!!!!”
사자후가 터졌다.
아이들 앞에 서 있던 경찰의 볼이 음파에 에어샷을 맞은 것처럼 푸들푸들 떨렸다.
그 뒤에 숨어서 고개를 내밀고 있던 아이들의 머리카락이 강력한 바람을 맞은 것처럼 뒤로 젖혀졌다.
사자후를 맞은 남편의 몸이 뒤로 붕 날았다.
쿵-
“너! 그년 더 이상 안 만난다며-!!”
쓰러진 남편 위로 아줌마가 나비처럼 날아올랐다.
그녀의 발이 남편의 후덕한 배 위로 꽂혔다.
“푸헉!!!”
“오, 오오.”
훌륭한 착지에 아이들이 10점 팻말을 들어올렸다.
짜악-!
마운트에 기술에 들어간 아줌마가 손바닥으로 잽을 날렸다.
남편의 강냉이가 슬로우 모션으로 날아갔다.
“어, 어오. 아오태(여, 여보 잘못했) 쿠헥!”
“싸물어!”
조르기가 들어갔다.
이대로 가다가는 진짜 살인사건이 날 것 같은 상황에 경찰이 당황하며 아줌마를 말리러 갔다.
“사, 사모님. 진정하시, 억!!”
막으러 오는 경찰을 다리로 제압한 아줌마가 남편의 숨통을 졸랐다.
바닥에서 뒹구는 세 사람을 본 아이들이 얼음처럼 굳어 있을 때 건우가 수신호를 했다.
‘쉿. 여기. 탈출.’
끄덕끄덕
아이들이 까치발을 들어 탈출했다.
닫히지 않은 문 너머로 애절하게 손을 뻗는 경찰이 보였지만 아이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 *
드라마의 시청률은 순조롭게 상승했다.
인터넷에서 ‘바람을_피면_안_되는_이유.gif’로 돌아다는 짤이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주부들 사이에서 그라운드 기술을 배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아이들이 하고 나오는 옷, 신발, 가방 전부 유명해졌으며 특히 건우가 사용한 필기구는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BEST] 우리 수비대들 영원히 함께해.
작성자 지한사랑
사랑해_햇살마을_수비대.jpg
햇살레인저.jpg
└감사합니다. 선생님.
└앗, 이 영롱한 그림이란.
└오늘도 그저 감사할 따름. 기도합니다. 선생님.
└지한사랑님 기다렸어요! 꺅
└레드 건우, 블루 정민, 그린 현우, 옐로우 혜림, 핑크 지아 + 블랙 한별이까지 너무 멋져요!
└└역시 블랙은 따로 놀아야지.
└└└그러다 레드한테 감겨서 합류하는 거까지 완벽해.
지한의 성공적인 복귀에 플래닛들도 난리였다.
갱신되는 게시글이 10페이지를 넘어갔고 네임드 팬의 활약으로 팬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 * *
오전에 회사에서 다음 앨범에 들어갈 곡을 고르고 온 지연이 지한의 촬영장에 도착했다.
첫 앨범으로 무려 2주 연속 1위를 했음에도 지연은 아쉬웠다.
다음에는 대진운이 안 좋았다는 것으로 넘어가고 싶지 않아서 회사에서 열심히 연습하던 지연은 앨범 활동이 끝나고도 쉴 틈이 없던 지연에게 회사는 강제로 휴식을 주었다.
“도착!”
“누나!”
지연의 등장에 지한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더 좋은 앨범을 만들기 위해서 까다롭게 곡을 고르고 또 골랐지만 지연은 만족할 수 없었다.
허기지고 텅 빈 마음이 지한이를 보자 가득 차올랐다.
“누나 힘들었어?”
“아니. 이제 괜찮아.”
역시 네가 내 오아시스다.
밖에서도 꼭 껴안고 있던 둘 사이로 허둥지둥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 지연 선배님! 안녕하세요!”
“언니 안녕하세요!”
지수와 한성이 서로를 밀치며 달려왔다.
절대 지지 않으려는 몸과 지연을 환영하는 환한 얼굴이 모순적이었다.
“안녕? 지수랑 한성이었지?”
“네, 언니!”
“넵!”
어쩐지 추종자가 생긴 기분인데.
품에 안긴 동생이 두 사람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을 모른 채 지연이 동생을 등에 달고 걸어갔다.
“오늘 촬영은 뭐야?”
“훈이가 납치되는 장면.”
“아아. 그래서 저렇게 신이 난 얼굴이구나.”
“응. 엄청 기대된대.”
일종의 놀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잔뜩 들떠서 범인 역의 배우와 얘기하는 훈이를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정훈이는?”
“훈이 형은 조금 늦는데.”
“그래? 뭐, 제 시간에는 오겠지.”
“누리는?”
“누리는,”
“지한아아아!”
“저기.”
멀리서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달려오는 누리가 보였다.
아이스크림 사러 갔나?
아니지, 지금 화제의 중심인 배우가 직접 사러 갈 리가 없으니 받아온 모양이군.
“이, 이거 먹을래?”
“응. 고마워.”
자신과 똑같은 아이스크림을 건넨 누리가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삼켰다.
‘커플 아이스크림!’
봉지를 뜯을 생각도 안 하고 좋아하는 누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