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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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 전자발찌1호 연예인.’

돌아오기 전보다 더 앞당겨진 미래에 더 이상의 피해자는 없을 것이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더 잘 나가기 전에 미리 해치우니 속이 다 시원했다.

조용히 촬영장 한쪽에 있을 때, 스태프들 사이에서 그럴 줄 몰랐다느니, 여자를 조금 밝히긴 했어도 사고는 안 칠 줄 알았다느니. 등등.

여러 말들이 들려왔다.

“사람들이 웃기는 게 범죄자들 얼굴만 보고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둥, 멀쩡하게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왜 그러겠냐는 둥 하는 거라니까.”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사람을 얼굴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야. 중요한 건 내면이라는 말이지.”

“그렇구나.”

“지한이 너도 확실히 알아 둬. 사람은 얼굴이 다가 아니야.”

“지연이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을까?”

이미 될 성 푸른 떡잎이라며 미래의 미남, 미녀 스타 반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아이 입에서 얼굴이 다가 아니란 말이 나와 봤자.

다른 사람들이 퍽이나 그 말을 믿겠는가.

“왜? 오빠. 나는 얼굴로 뜬 게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엄밀히 말하자면 얼굴이 아니라 동생 덕분에 떴지.

“그리고 지한이도 얼굴로 뜬 게 아니고.”

“그렇지.”

지한이는 어린애 같지 않은 연기력으로 떴다.

물론 귀여운 얼굴이 한몫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전 국민을 연기력으로 울려버린 것이 지한이 유명해진 계기였다.

“조영욱 얘기 들었어?”

“우리 보도국이 먼저 터트린 거라며?”

“어휴. 사람이 그럴 줄 몰랐는데.”

“됐어.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고 했어. 저러다가도 몇 년 자숙하면 다시 돌아오겠지.”

지나가는 스태프들이 조영욱에 대해 떠들면서 지나갔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만히 있던 형석이 대답했다.

“뭘요?”

“사장님께서 가만히 두지 않으실 거니까. 걱정하지 마시란 뜻이었습니다.”

“우리 사장님?”

“사장님이 왜요?”

아이들의 대답에 형석이 살벌하게 웃었다.

그도 이 일의 배후에 공 사장님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조형욱 경계경보를 직접 전해 들은 사람이니까.

“사장님께서 나섰는데 순순히 복귀할 수 있게 일을 처리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적은 철저하게 밟는 것이 HJ그룹의 모토라면서 형석이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역시 우리 사장님.

일 처리에 빈틈이 없다니까!

지연이 형석을 마주 보고 활짝 웃었다.

* * *

조영욱에 대한 소식을 들은 공 사장이 보고를 받으면서 차갑게 물었다.

“일은 잘 처리된 모양이군. 우리와 연관성은 없겠지?”

“네. 제보도 저희 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수고했어. 제보한 피해자들에게는 약속한 대로 상담치료와 법률적 지원을 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보다 피해자들이 돈이랑 다른 걸 다 두고 강력한 처벌만 바랄 줄은 몰랐네요.”

“그만큼 마음의 상처가 컸겠지. 곧 그 기자가 추가 보도 한다고 했지?”

“네. 피해자 인터뷰가 나갈 겁니다.”

“목소리 변조했겠지? 화면에 실물이 나가서는 절대 안 돼. 그건 피해자들 두 번 죽이는 일이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 친구도 프로입니다.”

“그래. 뭐 잘하겠지. 우리가 피해자를 설득하는 데 도움을 주긴 했어도 거기까지 파낸 건 그 기자 친구 혼자 해낸 거니까.”

“그쪽에서도 더 이상의 지원은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일단 사회부 기자로서의 프라이드가 높은 친구여서요.”

“더 좋군.”

만족스러운 일 처리에 주민이 웃었다.

아무튼 거슬리는 놈을 처리했다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이제 대기실에서 지연이 그딴 놈이랑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니 속이 다 후련했다.

그동안 진척 없는 상황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는데, 피해자를 설득하는 데 도움을 준 것만으로도 일이 이렇게 순식간에 처리될 줄이야.

마지막까지 안심할 순 없지만 사건 배정받은 판사와 검사를 성범죄에 자비 없는 놈으로 배속되도록 손을 써 두었으니 결과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덕분에 가요계 쪽 보강도 했으니 예방접종 맞은 셈 쳐야지. 이제 곧 지연이 후속곡 활동하지?”

“네, 사장님.”

“지금 1위 상대가 만만찮지만 지금 지연이 활동을 끊어가기 애매하니 그대로 진행해.”

“알겠습니다.”

본부장이 인사를 하고 사장실을 나섰다.

문을 닫고 나갈 때 얼핏 콧노래가 들린 것 같았지만 착각이겠지.

‘저렇게 들쑥날쑥한 게 노래일 리 없잖아?’

자신이 착각했을 거라면서 임 본부장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83. 아역배우의 고충

모든 배우들이 분장을 마치고 스탠바이 상태로 대기했다.

<햇살마을 수비대>는 주인공의 동급생 친구들이 우연히 반에서 일어난 사건을 해결하고, 그 뒤 엉뚱한 발상으로 마을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우정! 용기! 사랑! 이 이 드라마의 주제라고 할까나?

‘꽤 재밌는 내용이었지.’

드라마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폭력적이고 무거운 내용이 주였는데 서서히 만화 원작을 각색하거나 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었다.

지연은 <햇살마을 수비대>가 드라마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정통 로맨스가 로맨스 코미디로 진화하는 것과 같은 변화 정도?

조금 더 유쾌하고 만화 같은 전개가 각광받게 될 거라며 지연이 자신했다.

“자아. 준비하시고. 씬 넘버 13, 컷5, 테이크1. 레디 액션!”

교실로 꾸민 세트장에서 어린아이들이 화기애애하게 모여 있었다.

쉬는 시간 공 차러 가자며 떠들썩한 사이 한 무리를 이끌고 있는 여자아이가 당당하게 걸어왔다.

자신의 앞에 선 여자아이를 보고 지한이 고개를 들었다.

“건우야. 이거.”

여자아이가 수줍게 손으로 쓴 편지를 내밀었다.

건우 역을 맡은 지한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 나 편지 안 받기로 해서.”

쩌적

웃는 얼굴 그대로 여자아이가 망부석이 된 것처럼 굳었다.

모두의 앞에서 거절당한 아이를 두고 건우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여자아이를 두고 교실을 나섰다.

“컷! 아아. 다들 너무 잘하는 거 아니야?”

무사히 첫 씬을 끝낸 아이들을 보고 김 PD가 기분 좋게 웃었다.

이거 잘 될 거 같은데?

* * *

“자, 다음 씬 준비하겠습니다.”

교실 세트장에서 찍을 장면이 끝나자 다음 세트장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지한이가 안 찍는 장면이니까 잠시 쉬어야지.

“지, 지지, 지한 선배님!”

지한이에게 편지를 줬던 여자아이 역을 맡은 배우가 다가왔다.

말을 더듬는 모습이 딱 고백할 거 같은 모먼트 아니냐?

지연이 다가오려다가 멈춰 서고 흥미로운 얼굴로 둘을 쳐다봤다.

“저, 저저. 저는 김누리라고 합니다!”

“알아요. 우리 말 편하게 해요!”

“정, 정말요? 서, 선배님도 편하게 말해주세요.”

“응. 그래. 그런데 누리는 몇 살이야?”

“11살이요.”

“동갑이네!”

동갑인 후배를 보고 지한이 반갑게 웃었다.

호의적인 지한의 반응에 누리가 달아오른 얼굴로 팔을 붕붕 흔들었다.

“어? 저도 11살이에요.”

같이 출연하는 또 다른 아역배우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김훈! 입니다.”

“네. 한별이 역할을 맡은 김훈 배우죠? 우리 동갑이니까 말 편하게 해도 돼?”

“넵! 편하게 말해 주십쇼. 선배님!”

“응. 훈이도 편하게 해. 그런데 그 말투 어디서 배운 거야?”

“우리 아빠가 선배님한테 하는 말인데 이상해?”

“훈이랑 안 어울려서. 훈이네 아빠는 무슨 일 하는데?”

“우리 아빠는 태권도 관장님이야.”

누리와 훈과 대화하던 지한이 멀리서 부러운 듯이 보고 있는 다른 아이들 발견했다.

휙, 휙

이리로 오라는 듯이 지한이 손을 흔들자 아이들이 반색하며 보호자들을 돌아보더니 허락을 받고 달려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수예요.”

“저는 문정훈입니다.”

“대본리딩 때부터 말하고 싶었어요.”

“뭐를?”

“서, 선배님 연기 엄청 잘하세요! 배우고 싶습니다.”

“저도 선배님한테 말 걸고 싶었어요. 너무 멋져요!”

앞다퉈 지한이에게 말을 거는 아이들이 눈이 초롱초롱했다.

아이들의 중심에 선 지한이 한 명씩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었다.

그 모습에 지연이 눈을 빛냈다.

역시 내 동생.

유치원 최고 인기쟁이가 어디 간 거 아니구나.

“훗.”

“갑자기 왜 웃어?”

“오빤 모르는 게 있어.”

“?”

지연의 말에 영훈이 옆에서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뭔가 좀 부족해 보이는데.

<햇살마을 수비대>에 등장하는 주요 아역들은 지한이를 제외하고 5명 아닌가?

저기 있는 애들은 4명.

나머지 1명은 어디 갔지?

“아, 저깄다.”

그런데 모습이 조금 묘한걸.

엄마한테 양팔을 붙잡혀 무슨 말을 듣고 있는 아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꽤 오래 그러고 있다고 아이 엄마가 팔을 풀어주자 아이가 힘겹게 발걸음을 옮겨 지한이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저, 저기!”

“아? 안녕하세요. 최한성 배우, 맞죠? 저는 오지한이에요.”

“네? 네에. 절 아세요?”

“지한 선배님 대단해. 우리 이름 다 알고 있어.”

“맞아.”

“드라마 끝날 때까지 같이 촬영하는 동료잖아. 당연히 알고 있어야지.”

지한이의 말에 아이들이 ‘오오’ 하면서 감탄사를 뱉었다.

눈이 반짝거리는 게 꼭 좋아하는 스타를 보는 것 같았다.

“지한 선배님은 스태프분들 이름까지 다 안대.”

“아직 다는 못 외웠어.”

“그럼 저기 저 사람은?”

수비대에서 한 송이 꽃을 맡은 지아가 한쪽을 가리켰다.

헤드폰을 쓰고 있는 스태프였다.

“오디오를 맡고 있는 양수찬 감독님.”

“그럼 저 사람은?”

“조명팀의 박성호님.”

“오오오오.”

“우와아아.”

“진짜야? 진짜 맞는 거야?”

“가서 물어봐도 될까?”

우물쭈물하는 아이들에게 지나가던 스태프가 말했다.

“맞아요. 양수찬 감독님이랑 성호.”

“앗! 진짜요?”

“네. 그나저나 이제 옆 세트로 이동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왓!”

“꺅! 어떡해.”

“어서 가요. 대신 뛰면 안 돼.”

모여서 이야기하는 사이 촬영 준비가 끝났다.

서둘러 가려다 지한이 말에 억지로 빠른 걷기를 유지한 아이들이 다음 세트장으로 향했다.

“같이 가자. 아! 말 편하게 해도 돼? 혹시 형이에요?”

“나, 난 초등학교 5학년이야.”

“앗, 형이다. 히히. 형이라고 부를게요. 한성이 형, 어서 가요.”

지한이 마지막으로 온 한성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성이 소심하게 손을 잡고 지한의 뒤를 따랐다.

“흐음.”

“왜 그러냐. 설마 지한이가 쉬는 시간에 너한테 안 왔다고 섭섭한 건 아니겠지?”

“그런 거 아니야. 오빠는 날 뭐로 보는 거야.”

“뭐기는 천하제일 가는 동생바라기로 보지.”

“흥.”

멀리서 모든 것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지한의 움직임에 따라 다음 세트장으로 이동했다.

영훈의 옆구리를 콕 찔러준 지연이 앞서 걸어가는 동생과 한성을 바라봤다.

‘저 한성이라는 애.’

현우라는 배역에 딱 맞지만 그게 더 마음에 걸렸다.

내성적이고 소심하고 가난해서 한별이란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역할.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연기를 하겠다고 마음먹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마도 십중팔구 누군가가 부추겼겠지.

지연의 시선이 멀리서 자신의 아들을 뚫어져라 노려보는 아이의 엄마에게 향했다.

* * *

“이번에는 현우가 넘어지는 장면이 있으니까 조심하자. 현우야. 한별이가 밀치면 매트 쓰러지는 거야. 알았지?”

“네에.”

“좋아. 한별이도 그냥 손을 툭 얹는 느낌으로 하는 거야. 알았지? 너무 세게 밀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

“네!”

소심하게 대답하는 한성이와는 다르게 훈이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내가 힘이 많이 들어가면 말해줘.”

“어, 으응.”

“아, 말 놔 버렸다. 미안합니다.”

“아니 괜찮아요.”

촬영장에 들어오는 순간 나이보다 경력이 더 중요하니 깍듯이 선배님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한성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엄마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어떡해 들었나 봐.’

엄마의 시선이 부리부리했다.

화가 난 엄마의 얼굴을 확인한 한성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럼 씬 넘버 22 컷 1 테이크 1, 레디 액션!”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는데 감독님의 신호가 떨어졌다.

한성의 상태를 모르는 훈이는 금세 한별이가 되어 몰아붙였다.

“야, 너 왜 내 앞에 서 있는 거야.”

“그,”

한성의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걸 보고 있던 충환은 대사를 하지 못했지만 현우라는 캐릭터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촬영을 멈추지 않았다.

감독의 신호가 없자 훈이가 알아서 다음 대사를 쳤다.

“내 말 안 들려? 비키라고.”

한별이 현우를 밀쳤다.

어깨를 살짝 밀면 넘어져야 하건만 머릿속이 하얘진 한성의 몸은 딱딱하게 굳어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컷! 한성아?”

“어어.”

“한성아, 괜찮아?”

“네,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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