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어마어마한 악당이나 최종보스가 등장하는 것처럼
지연이가 문을 여는 모습을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줬다.
그리고 등장한 북소리.
흡사 전쟁이라도 할 것 같은 북소리였다.
[너희들 무슨 일이야.]
지연의 등장에 아이들이 얼음이라도 된 것처럼 멈췄다.
정지 영상을 보는 듯한 장면에 보고 있던 해수와 엄마가 꺄르르 웃었다.
“너희들 걸릴 줄 알았다.”
팔짱을 낀 지연이 아이들 앞에 당당하게 섰다.
성적표를 받은 날 엄마에게 성적표를 내미는 아이처럼.
사고치고 선생님 앞에 선 학생처럼.
둘이 서로 시선을 힐끔 주고받으며 지연의 앞에 쭈그렸다.
[뭐야, 왜 싸우는데.]
개와 고양이가 똑같은 얼굴로 지연의 눈치를 봤다.
-니가 말해
-아니, 니가 말해.
성우의 나레이션이 인절미와 모짜의 심정을 적절하게 묘사했다.
[말 안 한다 이거지?]
끄어우엉
-아니, 누나 있잖아요. 쟤가 먼저.
냐냐, 먕
-저기, 언니. 나는 말이야.
[됐어. 변명 따윈 안 들을 거야. 지한아!]
[왜에?]
지연의 부름에 방에 있던 지한이 나왔다.
누나 앞에 얌전히 앉아있는 두 녀석을 본 지한이 웃음을 빵 터트렸다.
[너희들 또 뭐 잘못했구나?]
아왕왕왕
-형! 형! 나는 억울해.
애애앩
-오빠, 언니 좀 말려줘.
지한의 등장에 아이들이 억울하다는 듯이 짖었다.
자신의 편을 들어줄 이가 등장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지연의 눈치를 보던 둘이 작게 꿍얼거렸다.
[진실의 방으로.]
컹컹컹!
냐아아앙!
[그러게 왜 둘이 싸웠어. 넌 언니 좀 보자.]
지연이 모짜를 품에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지한이 웃다가 인절미의 목줄을 들고 왔다.
[PD: 누나가 많이 화났나 봐요.]
[네? 아니에요. 둘이 화해할 수 있게 해 주려는 거예요.]
[PD: 화해한다고요?]
[네.]
-도대체 어떻게 화해시키려고 하는 걸까?
진실의 방이라니 궁금하네요.
성우의 말과 함께 지연이가 들어간 방이 비춰졌다.
화면이 전환되자 보고 있던 해수와 엄마가 웃음이 빵 터졌다.
“아하하하하학!”
“저게 뭐야. 하학, 아이고 배야.”
[어허. 앞발 내려온다.]
애앵앵애앩
모짜의 솜방망이 같은 앞발이 하늘로 향해있었다.
아이들이 벌 받는 것처럼 앉아서 앞발을 들고 있는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해수 너도 어릴 때 저렇게 혼났었는데.”
“엄마 언제적 얘길 하는 거야?”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야기를 하고 있지.”
“어서 잊어버리시지요. 어머니.”
TV를 보고 있던 이들이 적당히 웃음을 멈췄을 때, 지연이 팔짱을 풀고 말했다.
[왜 싸웠어.]
깨애애앩
[말렸는데 인절미가 말 안 들었어?]
냥
[그런데도 인절미가 계속해서 화가 난 거고?]
냐냥
[으이구. 말린 건 잘했는데 그렇다고 화가 나서 동생이랑 싸우면 어떡해.]
왜오오오오옭
모짜의 말을 들은 지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쭈그리고 앉아 모짜의 머리를 쓰다듬자 기분이 좋아진 듯 모짜가 골골송을 불렀다.
[손 내려. 다음에는 싸우지 말고 언니한테 이르러 와.]
냐앙
골고로로로로록
화면에서 한 인간과 한 마리의 동물이 화해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지연이는 어떻게 모짜의 말을 알아들었을까요?
그냥 적당히 한 말일까요?
그래서 화면을 돌려보기로 했습니다.
◀◀
되감기 표시와 함께 화면이 돌아갔다.
그리고 문제의 발단이 되는 장면이 재생됐다.
지연이와 지한이가 대본 연습을 위해서 방으로 들어가자 거실에는 제작진과 동물들만 남았다.
잠시 제작진이 숨어 있는 곳을 돌아다니며 킁킁 냄새를 맡던 인절미가 모짜가 누워있는 소파로 다가왔다.
-누나 같이 놀아요.
-저리 가라.
모짜가 앞발로 인절미의 코를 콩 때렸다.
누나의 거절에 인절미가 시무룩한 얼굴로 물러났다.
“어이구 아파쪄?”
“누나한테 거절당해서 시무룩해쪄?”
해수와 홍 여사가 자체 더빙을 하면서 꺄르르 웃었다.
방에 있던 해수의 아버지가 사이좋게 TV를 보고 웃는 모녀를 보고 피식 웃었다.
“뭐 봐.”
“‘애니멀팜’보지.”
“재밌어?”
“어. 재밌어. 당신도 말 걸지 말고 봐.”
해수네 가족들이 나란히 TV앞에 앉았다.
한편 화면에서는 모짜에게 거절당한 인절미가 티슈곽에 시선을 고정하는 것이 비춰졌다.
-어어? 이 녀석. 안 되는데.
하지만
하지 말란다고 안 하면 개가 아니죠?
얏호
광란
인절미가 티슈곽을 물고 신나게 흔들어 제꼈다.
애앩
-하지 마
안들려
왜애애애옹!
-하지 말라고 했지!
모짜가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앞발을 휘둘렀다.
신나게 놀다가 누나한테 맞은 인절미가 억울한 표정으로 항의했다.
그렇게 사건의 전말이 재연되자 제작진이 지연에게 물었다.
[PD: 아니 어떻게 아셨어요?]
[뭘요?]
[PD: 모짜가 우는 소릴 듣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셨잖아요.]
[아아. 그건 얘들이 하도 자주 이렇게 싸워서 안 거예요. 설마 제가 동물 말을 알아듣겠어요?]
[PD: 그렇죠?]
아이들이 동물의 울음소리로 어느 정도 감정을 알아듣는다는 것을 모르는 제작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아무튼 각자의 방법으로 아이들을 달래준 남매가 둘을 데리고 마당으로 나섰다.
나무 그늘이 진 평상 위에 남매가 앉고 모짜와 인절미를 잔디 위에 풀어놨다.
앙왕
-누나 미안
냐앙
-나도 미안
눈치를 보던 두 동물들이 몇 번 울고 나서 서로 머리를 비비고 핥았다.
-이 녀석들. 화해했나 보네.
꼭 붙어 있던 아이들이 이내 마당을 뛰어다녔다.
싸웠던 것은 잊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본 남매가 빙그레 웃었다.
짹.
지한의 머리 위로 참새가 내려앉았다.
마치 키우는 새 마냥 지한의 머리에 얌전히 내려앉은 참새와 그걸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아이들을 보고 성우가 황당해하며 물었다.
-아는 녀석이에요?
[아아. 우리가 마당에서 쉬고 있으면 가끔 이렇게 지나가던 새들이 구경 와요.]
-구경이요? 허허 이 동네 참새들은 사람을 안 무서워하는가 봐요.
먉
또 다른 고양이가 담 위에서 울었다.
턱시도 모양의 까만 고양이가 폴짝 뛰어서 지연의 다리에 몸을 부볐다.
-아니, 너는 또 어디서 온 애니? 아는 고양이예요?
[아니요. 지나가던 고양이들도 우리 집에 자주 와요.]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동물들이 자발적으로 오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을 모르는 듯한 얼굴이었다.
태연하게 말하는 아이들을 보고 성우가 허탈하게 말했다.
-허허허. 이 집에 뭐가 있는 모양이네요.
‘뭐가’라는 말에 아이들 머리 위로 화살표가 깜빡였다.
“동물들도 예쁜 애들은 알아보는 건가.”
“이런 외모지상주의 세상 같으니라고.”
“엄마. 나도 고양이.”
“네 얼굴로는 택도 없어 이것아.”
“아, 엄마!”
어느새 시간이 다 되었는지 다음 화 예고편이 나왔다.
제작진과 지능싸움 2탄이 예고된 다음 화를 보니 다음 주도 재밌을 것 같았다.
* * *
[HOT] 얘들아 내가 우리 애 프로필 뽑아왔어
작성자 지한FOREVER
우리애_웃는_사진.jpg
인절미와_함께.jpg
예쁜애_옆_잘생긴애.jpg
이름: 오지한
나이: 11세(94년생)
생일: 8월 11일
소속사: 탑엔터
직업: ★할리우드 스타★
특징: 디지니 공주님, 월드컵 응원곡 부름(with 조수경), 4대천왕 비주얼, 얼짱새싹
더 추가할 거 있으면 수정할게
└사진 감사합니다.
└사진 더 풀어주세요ㅠㅠㅠㅠㅠㅠ
└아, 아아.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
└└행성아 제목에 실명주의라고 해 줄래? 우리 애들 얼굴 보고 내가 그만 눈이 멀어버렸잖아.
└└└당연히 선글라스 끼고 글 봐야 하는 거 아님?
└└└└나약한 행성이는 행성이가 될 자격이 없다. 강한 자가 되어 돌아와라.
└└└└└너무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디지니 공주님 뭐얔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거 맞지. 우리 애 공주님이잖아.
└└내가 그걸 몰랐네ㅋㅋㅋㅋㅋㅋㅋㅋ
[HOT] ‘애니멀팜’ 제작진 뭐야
작성자 오씨남매012
사랑해.
‘치즈콩떡’ 100편, 1000편 해줘!
└받고 1000편 더
└다음 생에도 해 줘.
└└다음 생에도 행성 예약.
└└지한이랑 같은 곳에서 환생하려면 덕을 많이 쌓아야겠다.
└└└지한이 사진 걸어놓고 기도해.
└└└└그렇구나! 고마워 행성아!
└아니 다들 진정해. 내가 먼저 기도할 거니까 줄 서 줘.
└└왜 줄 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선착순으로 환생하지 않을까?
└└└└호오?
‘치즈콩떡’ 2편은 1편보다 더 대박이 났다.
제작진을 이겨 먹는 똑똑한 동물들도 좋았지만 이번에는 각자의 캐릭터가 확실히 보였기 때문이다.
사고 치는 막내, 인절미
말리는 언니, 모짜
군기반장, 지연이
포용하는 오빠, 지한이
게다가 다음 화에 예정된 제작진과의 머리싸움이 시청자들의 흥미를 이끌었다.
생각보다 더 열정적인 반응에 회사는 ‘치즈콩떡’의 장기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물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는 죽어나가는 결정이었다.
“내가 살다가 디지니 실존 인물을 보게 될 줄이야.”
“누구?”
“누구긴 누구겠냐. 너희들이지.”
방송국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서 영훈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래 언젠가 우리 애들의 비상한 모습을 보여줄 날이 올 줄 알았지.
그런데 이런 식으로는 생각도 못 했다.
“고 팀장님도 알고 계셨어요?!”
“그럼 몰랐을까요? 사장님도 알고 계신 일입니다.”
“수호 씨도 익숙해지세요. 우리 애들 진짜 대단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