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전국모평. 상위 20% 안에 들게.”
“해수야?!”
“야, 너 진정해.”
친구의 무리한 딜에 소희와 서림이 한 팔씩 잡으면서 말렸지만 눈이 돌아간 해수는 이미 보이는 것이 없었다.
“훗. 해수 네가?”
“엄마 딸이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겠어.”
“두고 보면 알 일이지. 그런데 못 하면? 전국모평은 꽤 남았고, 방송은 당장 이번 준데?”
“못 넘기면 내 머리카락을 잘라도 좋아.”
“히엑?!”
“해, 해, 해수야. 진정해. 너 지금 눈 돌아갔어!”
“콜.”
“어, 어머님!?”
“어머니 진정하세요!”
급발진하는 두 모녀를 말리기 위해서 소희와 서림이 애써봤지만 이미 두 사람은 각서까지 나눠 쓴 뒤였다.
“나는 몰라.”
“우린 최선을 다했어.”
부디 친구가 졸업식에서 가발을 쓰는 일은 없도록 소희와 서림은 정리 노트를 열심히 베꼈다.
부디 해수가 이 노트를 보고 20% 안에 들기를!
* * *
해수가 성적과 모발을 담보로 시청권을 얻어 낸 <애니멀팜>의 방송이 시작되었다.
SBC에서 기를 쓰고 홍보한 덕분에 보는 이들만 보던 <애니멀팜>의 시청률이 시작부터 고공행진을 하기 시작했다.
“방송국 놈들. 역시 우리 애들 코너를 제일 마지막에 보여주는군.”
분하지만 당할 수밖에 없다면서 팬들이 부들부들 떨었다.
화면에서 MC가 해맑은 얼굴로 마지막 코너를 소개했다.
[네에. 잘 봤습니다. 이제 모두가 기다리던 시간이죠?]
[바로 할리우드 스타인 오지한 군과 괴물신인 오지연 양이 반려동물과 함께 출연하는데요 기대되시죠?]
[정말 기다렸어요. 빨리 보여주세요.]
[자, 그럼 시작합니다!]
야한 농담을 좋아하는 MC 아저씨의 말에 인상을 쓰던 팬이 허리를 당겨 앉았다.
-서울의 한 가정집. 이곳에 심상치 않은 녀석들이 있다는데?
화면에 호화로운 2층 저택이 보였다.
잔디로 뒤덮인 넓은 마당.
마당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거실창.
거실 창 앞에 나와 있는 발코니.
그리고 마당을 걸어 다니고 있는 치즈고양이?
냐앙
치즈태비로 불리는 고양이가 하품을 쩌억 했다.
-무려 유명한 사람들이 머문다는 이 집에 함께 사는 녀석들이 있다는데.
[안녕하세요. 저는 오지연입니다. 얘는 모짜구요.]
[안녕하세요. 저는 오지한이에요. 얘 이름은 인절미!]
“꺅, 흡!”
갑자기 화면에 잡힌 두 아이들에 둘의 열렬한 팬은 자신의 입을 막아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삼켰다.
[PD: 그런데 두 분 왜 아이들을 꼭 안고 계신 건가요?]
[아! 아까 애들이 진흙탕 밟았거든요.]
[애들 목욕시킬 거예요.]
-허허. 이 녀석들 밖에서 뭘 하고 왔길래 흙투성이가 됐어?
그런데 개랑 고양이는 씻는 걸 안 좋아할 텐데 둘이서 씻길 수 있겠어요?
[우리 잘 씻길 수 있어요.]
아이들이 큰 대야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딱 봐도 인절미용, 모짜용 욕조였다.
[아이 착해.]
[금방 씻겨줄게.]
-생각보다 녀석들이 얌전한데?
얘들 원래 이런가요?
[맞아요.]
[밖에서 쫄딱 젖었으니까 어쩔 수 없죠.]
[모짜도 산책을 좋아해서 맨날 둘이 이렇게 씻겨요.]
-아니 고양이도 산책을 한다는 말인가요?
[모짜도 산책하고 왔어요.]
-아니, 이 녀석 언제?
카메라 확인 결과.
이 녀석 진짜로 나가네?
[모짜가 원래 길냥이라서 산책을 좋아하더라구요. 그래서 마당에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문을 만들어 줬어요.]
미래에서 고양이 문이라고 불리던 걸 기억하고 지연이 주문 제작한 물품이었다.
마당이 넓으니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기 편하라고 거실창에 달아주었다.
[그런데 인절미도 거기로 나가는 거 같던데.]
[인절미 몸에도 맞나?]
[조금 끼긴 하는데 잘 맞나 봐.]
[너희들 너무 멀리 가면 안 된다? 우리가 없을 땐 마당에만 나가야 해.]
왕
냐앙
[아이 착해.]
-허허. 녀석들 대답은 잘 하네.
그런데 그런다고 해서 얘들이 정말 밖으로 안 나갈까요?
[안 나가요.]
[맞아요. 얘들 똑똑하거든요.]
-에이. 개랑 고양이가 똑똑하다고 해도 사람 말을 알아듣겠어요?
[알아들어요.]
[너무해. 사람 말을 못할 뿐이지 다 알아 듣는다구요.]
남매가 너무하다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 움찔했으나 제작진은 지지 않고 테스트를 준비했다.
-그래서 <애니멀팜> 제작진이 준비했습니다.
얘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한번 볼까요?
제작진이 3개의 컵을 준비하고 그중 한 컵에 사료를 숨겼다.
인절미와 모짜 앞에서 사료를 숨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무작위로 섞었다.
다 섞고 카메라가 아이들 품에 안겨 있는 인절미와 모짜를 비췄다.
어쩐지…가소로워하는 표정이었다.
“저거 진짜 개랑 고양이 맞아?”
TV를 보던 사람들이 절로 뱉은 말이었다.
인절미와 모짜는 손쉽게 사료가 든 컵을 골랐다.
피흉
앩
조금 더 어려운 걸 내 보라고, 닝겐.
그렇게 말하는 듯한 얼굴에 불이 붙은 제작진이 조금 더 어려운 테스트를 준비했다.
나란히 앉은 지연과 지한, 제작진이 보였다.
각자 한 번씩 아이들 이름을 불렀다.
[모짜]
[인절미]
[인절미야]
이름이 불린 아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른 주인의 품에 안겼다.
한 번 더.
[인절미]
[모짜]
[모짜]
이번에는 이름을 다른 사람들이 불렀다.
모짜와 인절미는 이번에도 아이들 품에 안겼다.
[PD: 애초에 지연이와 지한이는 빼고 테스트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PD가 이의를 제기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이들을 빼고 작가와 PD가 나란히 앉아 아이들을 불렀다.
[모짜야.]
[인절미야.]
킁
깱
자신들을 부르는 소리에 인절미와 모짜는 배를 깔고 엎드려 힐끔 쳐다보더니 앞발에 고개를 묻었다.
당황하는 제작진이 아무리 불러도 개와 고양이는 주인이 아닌 사람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야. 똑똑하네. 아니, 지조가 있는 건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팬이 감탄했다.
결국 제작진들이 항복을 외치고 다른 방에 숨어 있던 아이들이 나왔다.
둘이 나오자 인절미와 모짜가 꼬리를 흔들며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앙왕!
[에궁. 심심했어?]
냐아앙, 냥, 냥.
[그랬어?]
품에 안겨서 우는 모습이 꼭 자신들을 두고 어딜 갔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투정을 받아준 남매가 동물들의 입에 뽀뽀를 쪽쪽 해줬다.
“크흑! 부러워.”
뽀뽀를 받는 동물을 팬이 질투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치사량을 넘는 귀여움에 가슴에 손을 올리고 신음을 뱉은 팬이 다짐하듯이 말했다.
“나도 다음 생에는 인절미랑 모짜로 태어날 거야.”
* * *
[HOT] 너희들 ‘치즈콩떡’ 봤냐?
작성자 다음생엔치즈콩떡
혹시 집에 개나 고양이 키우는 애들은 한번 확인해 봐라.
걔들 사람말 할지도 몰라.
└진짜로
└나 고양이 키우는 사람인데. 치즈콩떡보고 우리집 냥님한테 진지하게 사람말로 물어봄
└└주인님 반응은?
└└└이 인간이 드디어 미쳤구나 라는 표정으로 쓱 보고 지나감.
└인간적으로 다른 애들은 몰라도 모짜랑 인절미는 사람말 할 줄 아는 거 아니냐. 저게 어딜 봐서 그냥 개랑 고양이냐.
└└맞음. 저게 어딜 봐서 그냥 개랑 고양이야22222222222
└└└저게 어딜 봐서3333333333333
└└└└나보다 더 똑똑한 거 같던데44444444444444
└└└└└나보다도555555555555555555
카페에 ‘치즈콩떡’ 후기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81. 프린세스 오지한
<애니멀팜> 제작진의 입에 미소가 찢어져라 걸렸다.
하도 웃고 다녀서 다른 예능팀들이 귀신이라도 본 듯이 멀리 피해 다닐 정도였다.
눈가가 진한 사람들이 귀까지 입이 찢어져라 웃고 다니는데 완전 납량특집이 따로 없다나?
아무튼 게스트도 호의적이겠다. 지원도 빵빵하겠다.
<애니멀팜> 제작진은 매일 ‘치즈콩떡’을 편집해도 희희낙락이었다.
물론 다른 예능 제작팀들의 분위기는 이들과는 정반대였다.
“저 팀은 뭘 잘 먹어서!”
“우리도 오지한이랑 오지연 출연시켜 주면 시청률 잘 뽑을 수 있다고.”
“네 프로는 너무 자극적이어서 애들이 출연하기에 좋지 않잖아.”
“새로 코너를 짜면 되지.”
“그것보다 역시 내 프로그램에.”
“아니야, 내 프로에!”
방송국에서 <애니멀팜>을 부러워하는 자들이 넘쳐났다.
그놈의 개를 찍어서 뭐가 재밌냐고 뭐라 하던 이들까지 태도를 바꾸고 아이와 동물 조합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며 아까워했다.
다른 사람들의 질투와 부러움을 받으며 <애니멀팜> 제작진들은 다음 방송을 기대했다.
“역시 난리죠?”
“당장 다음 편 내놓으라고 난리네요.”
“다들 너무 귀엽대요. 동물들이 제작진 이겨 먹는 모습이 더 보고 싶대요.”
후후후.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 중에 개랑 고양이보다 못한 제작진이라는 글도 많았다.
“다음번에는 더 어려운 걸로 준비하죠.”
“제가 이번에 개의 지능테스트 결과물을 좀 받아왔는데요. 이거 써 볼까요?”
“고양이가 귀엽기만 하고 지능은 부족한 놈들이란 걸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그때 컵에 사료를 숨기고 열심히 섞던 자신들을 비웃었던 개와 고양이 놈들이 떠올랐다.
그건 분명 비웃는 얼굴이었다.
주위에 자문을 구한 교수들에게 동물은 사람보다 안면근육이 덜 발달해서 풍부한 표정을 지을 수 없다고 하던데 전부 멍멍이 소리였다.
우리가 찍은 그 영상은 무엇이란 말인가.
“자. 다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우리가 기 써서 이기려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보기 안 좋으니까 말이야.”
“그럼요. 이거 다 재미로 하는 거예요. 애들이 똑똑하다잖아요?”
“메인 작가님 말이 맞아요. 우린 그저 애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테스트하려는 거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박사님께 자문을 구해 온 지능 테스트가 있습니다!”
“다음 촬영 때 꼭 써 보자.”
“물론입니다.”
제작진이 개와 고양이를 이기기 위해서 머리를 맞댔다.
지나가던 이가 이 모습을 본다면
‘너희들이 걔들을 이기려고 하는 순간 진 거다.’
라고 말했을 광경이었다.
* * *
천년과도 같은 기다림 끝에 ‘치즈콩떡’ 2편이 방영됐다.
2편에서는 1편과 다르게 평범한 개와 고양이의 일상이 방영됐다.
“애들이 계속 나온다는 거 알았으면 조건을 더 거는 건데.”
“엄마. 낙장불입 몰라?”
“어이구. 네가 고3이기는 한 갑다. 그런 고급어휘를 다 알고?”
일요일 오전부터 해수네 모녀가 사이좋게 티격댔다.
그래서일까.
화면 속에 나온 인절미와 모짜도 사이좋게 으르렁애옹 했다.
누가 개와 고양이 아니랄까 봐.
컹! 컹!
왜애애애애옹!
개 짖는 소리와 고양이 우는 소리에 <애니멀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성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쿠 이 녀석들이.
자꾸 티슈곽 물면 안 될 텐데.
너희들 이러면 혼난다?
[누나 애들 싸우나 봐]
[이 녀석들이]
지연이 단호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고 제작진이 지연에게 부여한 역할은 군기반장.
제작진은 지연을 말썽쟁이 아이들에게 단호한 조교처럼 편집했다.
둥-! 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