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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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

“네. 어떤 일로 오셨나요?”

“<애니멀팜>에서 나왔습니다. 오늘 여기서 미팅하기로 했는데요.”

“확인했습니다. 5층으로 가시면 됩니다. 엘리베이터는 저쪽이에요.”

“감사합니다.”

로비에 있는 직원의 안내로 엘리베이터를 탄 제작진은 5층에 도착하자마자 자신들을 반기는 고 매니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애니멀팜>에서 오셨죠? 저는 고영훈입니다.”

“반갑습니다. 직접 뵙는 건 처음이죠?”

“네. 김광진 PD님 맞으시죠?”

“네에. 네.”

“이쪽으로 오세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대스타가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에 제작진들이 숨을 들이쉬었다.

허업! 우리가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기다리게 하다니!

막내 PD는 아이들을 곧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입을 막았다.

“하하. 아이들이 평소에도 <애니멀팜> 잘 보고 있어요.”

애들이 우리 프로그램 잘 본데!

“이번에도 우리 애들이 직접 출연하고 싶다고 말한 거예요. PD님께 직접 연락 드리고 싶었는데 연락을 안 받으시더라구요. 그래서 국장님께 연락 드렸습니다.”

그랬어?!

직접 전화 받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김 PD가 절호의 기회를 놓쳐 극도로 아까워했다.

“애들은 시간만 된다면 자주 출연하고 싶은 거 같아요.”

그렇다면 혹시 고정으로?!

두 번 다시 없을 기회에 영훈의 뒤를 따라가는 제작진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예능이며 CF며 자주 출연하지 않는 아이들 덕분에 두 사람을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던가.

팬들은 물론 방송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지한이는 SBC 최초 출연 아닌가?!’

‘드라마국 놈들. 자신들이 지한이를 볼 가능성이 더 높다며 콧대를 높이더니!’

‘지연이는 아쉽다. 벌써 <인기무대> 출연했었지? 우리 프로그램으로 먼저 나와 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고정출연, 고정출연, 고정출연, 고정출연, 고정출연.’

제각각의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할 때 영훈이 멈춰섰다.

“그럼 들어가실까요?”

영훈의 말에 <애니멀팜> 제작진들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가 문을 여는 것을 바라봤다.

엘리베이터보다 더 빨리 열리는 것일 텐데도 어쩐지 느려보였다.

열린 문 사이로 빛이 보였다.

“형? 왔어요?”

“오빠 어디 갔다 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흐읍!”

막내 PD가 새어나오려는 환호성을 막기 위해서 입을 막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한곳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손님 모시고 왔어. 인사해. <애니멀팜> 제작진분들이셔.”

“안녕하세요. 오지연입니다.”

“안녕하세요. 오지한이에요!”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제작진들에게 인사했다.

그 모습에 영훈의 뒤에 서 있던 광진이 자신도 모르게 영훈을 밀치고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김광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혜림이에요. 메인 작가입니다!”

“저는 권재관입니다. 막내 PD예요.”

갑자기 다가와 손을 내미는 어른들에 아이들이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웃으면서 모두와 악수를 했다.

“잘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아이들의 모습에 제작진의 광대가 내려올 줄 몰랐다.

어흑. 생각했던 것보다 더 착해. 귀여워. 사랑스러워.

이래서 다들 오지한, 오지연 했구나.

<사람극장> 시청자 게시판이 왜 난리 났는지 알겠네.

눈물까지 흘릴 것 같은 어른들을 보고 아이들이 난감해하고 있을 때 영훈이 타이밍 좋게 아이들을 꺼내줬다.

“일단 다들 앉으시죠.”

“네에…!”

“그래요.”

대답은 잘하면서도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모습에 영훈이 그들을 손수 의자에 앉혀야 했다.

“어흑!”

“괜찮으세요? 여기 물 드세요.”

영훈이 어딘가 목이 막혀 보이는 막내 PD에게 미리 준비한 생수를 건넸다.

재관은 아이들과 악수한 손이 오염되지 않게 악수하지 않은 손으로 생수를 받았다.

“안 드세요?”

“제가 지금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라서요.”

“아, 네.”

방송하는 놈들은 죄다 어딘가 특이한 점이 있다고 하던데 저 사람도 그런 사람인가?

영훈은 검은 화염이라도 휩싸여 있는 것처럼 한쪽 손을 들고 감동한 얼굴을 한 막내 PD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80. 저거 사람일지도 몰라.

정신없어 보이는 제작진을 진정시키고 본격적으로 미팅을 시작한 건 꽤 지난 뒤였다.

“‘말괄량이 오씨네’는 어떠십니까?”

“촌스러워.”

“이상해요.”

자신만만하게 코너 제목을 말한 메인 PD가 아이들 말에 풀이 죽었다.

이거 내가 짠 제목인데.

메인 작가가 비웃을 때 말 들을걸.

하지만 나는 <애니멀팜> 메인 PD야.

가장이 이런 데서 무너질 순 없지.

그 모습을 본 메인 작가가 피식 비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치즈콩떡’은 어떻습니까?”

호오? 그거참 먹음직스러운 제목이군요.

지연이가 동생을 돌아봤다.

동생도 누나를 마주 봤다.

“지한아 너는 어때?”

“나는 좋은데. 누나는?”

“나도 좋아.”

게스트의 긍정적인 반응에 코너 제목을 제안했던 메인 작가가 뿌듯한 얼굴을 했다.

이혜림 작가가 광진 PD를 슬쩍 봤다.

‘봐요. 괜찮죠?’

‘고마워. 내가 앞으로 이 작가 말 잘 들을게.’

출연진의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두 사람이 촬영 진행 시 주의사항에 대해서 설명했다.

“일단 저희는 기본적으로 두 분의 일상을 관찰하는 거니까 편하게 있으시면 되고요. 되도록 카메라는 의식하지 말아 주세요.”

“아! 그리고 혹시 강아지나 고양이의 장기 같은 게 있나요?”

“장기?”

아이들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인절미랑 모짜의 장기라.

“우리 애들 장기? 다 잘하는데요. 그치?”

“맞아요. 우리 애들은 똑똑하거든요.”

동물을 키우는 주인들이 으레 하는 ‘내 새끼 천재야.’ 모드에 제작진들의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할리우드 스타에 괴물 신인이라고 해도 반려동물 주인들은 다 똑같구나.

어쩐지 한결 편한 마음으로 촬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애니멀팜> 촬영이 준비되는 동안 지연은 또 한 번 1위를 차지했다.

아이들이 촬영한 광고는 계속해서 TV에 나왔고, 7월 말 방영 예정인 지한의 새 드라마 <햇살마을 수비대> 역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대본리딩도 끝났고 촬영도 다음 주로 예정되었다.

바쁜 아이들의 일정을 고려해 <애니멀팜> 촬영은 빠르게 준비되었다.

“안녕하세요. 오지한입니다.”

“안녕하세요. 오지연입니다.”

아이들의 집에 촬영팀이 왔다.

사전미팅에 간 세 사람의 증언 때문에 더욱 치열해진 촬영팀은 치열한 혈투(가위바위보) 끝에 서브 작가와 막내 PD, 그리고 베테랑 촬영감독으로 선정되었다.

“아, 안녕하세요! <애니멀팜> 서브 작가인 윤주영입니다.”

“오랜만이죠? 막내 PD인 권재관입니다!”

“VJ담당인 허준성입니다.”

촬영팀 안에서 익숙한 얼굴을 본 아이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재관이 날뛰려는 몸을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그래도 반가운 마음을 숨길 수 없어 강아지 꼬리처럼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시나요?”

“오늘은 <애니멀팜> 촬영이 다예요.”

“영훈이 형이 오늘은 하루 종일 <애니멀팜>만 촬영한다고 했어요.”

바쁜 아이들을 배려해서 고 팀장이 하루를 통째로 비워준 모양이다.

‘고 팀장님 감사합니다.’

‘아아. 앞으로 매일 감사인사를 올리겠습니다.’

‘고 팀장에게 잘 해야겠어.’

각자 마음속에서 고 팀장에 대한 평가가 상승했다.

“그럼 바로 촬영하겠습니다.”

집안 이곳저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VJ가 촬영을 준비했다.

무려 할리우드 스타의 집을 최초로 공개하는 게 아닌가.

잘 찍어야 했다.

물론 애들 얼굴, 아니. 동물들 위주로 잘 찍어야지.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윤 작가의 신호에 아이들이 카메라를 보았다.

품에 인절미와 모짜를 각각 안은 아이들이 앞발을 잡아 흔들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지연입니다. 얘는 모짜구요.”

“안녕하세요. 저는 오지한이에요. 얘 이름은 인절미!”

잘 부탁드립니다.

귀엽고 예쁘고 잘생긴 아이들과 말랑말랑한 털뭉치들의 조합은 최고였다.

렌즈 너머로 그 조합을 본 준성이 입을 헤 벌렸다.

“그런데 두 분 왜 아이들을 꼭 안고 계신 건가요?”

“아! 아까 애들이 진흙탕 밟았거든요.”

“애들 목욕시킬 거예요.”

어쩐지 발바닥이 시커멓다고 했다.

만날 때부터 품에 꼭 안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더라니 그런 이유였구나.

어쩐지 사고를 치고 시선을 피하는 것 같은 개와 고양이들을 품에 안고 만반의 준비를 한 아이들이 개구지게 웃었다.

“어른들 없이 혼자 할 수 있어요?”

“우리 잘 씻길 수 있어요.”

“맞아요. 그리고 누나가 데려온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 거라고 했어요. 우리가 데려왔으니까 우리가 얘들을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씻겨야 해요.”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말치고는 범상치 않았다.

그것보다 목욕이라.

처음부터 난이도가 높았다.

카메라맨은 초조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지켜봤다.

인절미는 꽤 큰 편에 속하고 모짜는 물을 싫어하는 고양인데 아직 어린아이 둘이서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카메라맨의 걱정은 기우였다.

“이게 뭐여….”

카메라맨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뱉었다.

눈앞에 있는 광경을 믿기 힘들었다.

세상에 고양이가! 개가!

자신의 눈이 잘못되었는가 싶었는데 카메라에도 똑같은 장면이 찍히고 있었다.

“아이 착하다.”

“너희들 진흙 묻히고 오면 뭐라고 했어. 바로 목욕시킬 거라고 했지?”

“그래도 인절미랑 모짜가 거실 더럽히지 않게 발코니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그건 잘했어.”

왕!

골골골골

지연의 칭찬에 두 짐승들이 응답했다.

물속에 빠져 있는 모습이 묘하게 온천을 즐기는 어른들 같은 모습이었다.

특히 퍼져 앉아 대야에 고개를 기대고 있는 저 고양이는 어릴 때 보던 아버지의 목욕 모습이랑 똑같았다.

“손!”

지연의 말에 모짜가 손을 내밀었다.

앞발을 받아든 지연이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꼼꼼하게 거품칠을 했다.

‘저 고양이 사람 말 알아듣는 거 같은데? PD님 우리 코너 이름 잘못 지은 거 아닐까요!?’

카메라맨이 소리 없이 절규했다.

* * *

배우 오지한의 복귀 첫 예능.

<사람극장> 이후 처음으로 남매가 같이 찍은 예능이란 타이틀을 두고 가만히 있을 수 없던 SBC에서 빠르게 보도자료를 냈다.

[‘애니멀팜’에 할리우드 스타 오지한 출몰!]

[오지한·오지연 ‘애니멀팜’에서 키우는 개와 고양이 최초 공개]

[1년 동안 두문불출하던 배우 오지한의 하우스는?]

팬들은 지한이의 예능 출연 소식에 기뻐했다.

하물며 누나인 지연과 함께 출연한다니!

최근에 지연의 가수 데뷔 소식과 지한의 차기작 소식이 들려왔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을 더 자주! 더 많이! 한 화면으로! 보고 싶었다.

“후, 후후. 드디어 이날이 왔군.”

“그러게. 이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는 이날이 오기를 기다렸어.”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은 세 명의 여학생들이 음산하게 웃었다.

탁-

“앗.”

“눈부셔!”

“크흑. 이것은 정화의 빛?”

“놀고 있네. 불 꺼 놓고 뭐 하는 거야? 어둡게.”

해수의 엄마 홍 여사가 해수의 방에 불을 켜고 아이들을 타박했다.

이것들이 공부한다고 해서 과일 깎아왔더니 엉뚱한 짓이나 하고 있었구만.

해수의 방에 모인 해수와 소희, 서림이 눈을 깜빡이며 빛에 적응했다.

“아아! 엄마!”

“왜 이것아!”

“우리 지금 중요한 얘기 하고 있었는데.”

“허이구. 고3이 중요한 게 공부 말고 뭐가 있냐? 난 또 열심히 공부하는 줄 알았더니 불 꺼놓고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우리 지한이랑 지연이가 오랜만에 출연한다는데!”

“지금 네가 그걸 볼 때야?!”

짝!

홍 여사의 손바닥이 해수의 등짝을 때렸다.

찰진 소리에 해수가 비명을 지르며 불판 위의 오징어처럼 꿈틀거렸다.

“아악! 엄마, 아파!”

“그럼 아프라고 때리지! 네가 지금 TV를 볼 때야?”

“엄마! 수험생이라고 맨날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하는 건 줄 알아? 가끔 휴식도 필요하다고!”

“그럼 수능 끝나고 해! 수능이 며칠 남았다고!”

“아, 본방송 꼭 챙겨야 한다고!”

“엄마가 챙길 테니까 너는 공부만 해.”

홍 여사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치사하게 혼자 재밌는 걸 보겠다는 엄마의 말에 해수가 분하다는 듯이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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