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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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너! 내 아이들이 되어라!

“누나아!”

무대를 내려오자마자 지한이 지연의 품에 폭 안겼다.

“진짜. 진짜! 멋졌어.”

“당연하지. 누구 누난데.”

얼싸안고 감동의 해후를 나누는 남매들 사이로 축축한 음성이 들려왔다.

“훌쩍.”

“오빠 울어?”

“아니, 뭘, 킁. 이런 걸로.”

“형 엄청 울었어. 대성통곡함.”

동생의 말에 영훈이 잽싸게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모두가 영훈의 얼굴을 본 뒤였다.

오빠. 눈물 많은 건 여전하구나.

“고마워. 나 상 받았어.”

지연이 들고 있던 트로피를 앞으로 쑥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본 영훈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어흑. 우리 지연이가. 1등으으을.”

“팀장님. 팀장님! 여기 사람들 많아요.”

팀장의 추태에 은주가 당황하며 영훈의 얼굴을 가렸다.

어. 음.

저렇게 가리면 숨도 못 쉬지 않을까?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없애겠다는 마인드일까?

“은주 매니저님 그러다가 고 팀장님 죽겠습니다.”

수호가 은주의 팔을 떼어내 떨어트렸다.

파하! 하고 영훈이 숨을 들이쉬는 게 보였다.

살았네.

“아무튼 우리 축하파티해요!”

“지한아. 미안한데 파티는 내일로 미뤄야 할 거 같아.”

“왜에? 왜 미루는데?”

영훈의 말에 지한이 눈물을 흘릴 듯 글썽글썽해졌다.

“아아니! 그런 게 아니라. 회장님이 너희들 축하해 주고 싶다고 부르셔서.”

“회장님?”

“그러니까 우리 사장님 아버지.”

사장님 아빠!?

진짜 회장님이네?

아이들과 매니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금 전에 사장님한테서 문자 왔어. 형석 씨와 지은 씨가 너희들 바래다줄 거야.”

“우리만 가는 거야?”

“형은 여기서 스태프들한테 한턱 쏴야 하거든.”

“왜?”

“음. 일종의 관습? 전통? 같은 거지. 1위 한 가수 매니저가 스태프 밥 쏘는 거는. 그러니까 너희들은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와.”

“응. 알았어. 오빠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은주 누나랑 수호 형도 맛있는 거 먹어요!”

“올 때 택시 타거나 대리 부르고!”

“술 먹고 운전하면 안 돼요.”

“알았다. 알았어. 그리고 차는 너희들이 타고 가야지. 우린 택시 타고 갈 거야.”

엄마처럼 잔소리하는 아이들을 저지한 영훈이 경호원 두 사람에게 눈짓했다.

두 사람이 아이들 옆에 나란히 섰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지연아, 다시 한번 축하한다.”

“축하해, 지연아.”

“축하드립니다!”

아이들은 매니저들의 배웅을 받으며 세트장을 떠났다.

* * *

“사장님!”

“사장님이다!”

경호원들과 함께 한남동 공 회장네 저택에 도착한 이들은 집 앞에 마중 나온 주민을 보고 달려들었다.

아이들을 두 팔로 받은 주민이 묵직해진 무게에 감격스러워했다.

우리 아이들이 벌써 이렇게 컸구나, 크흑!

“우리 기다렸어요?”

“같이 들어가려고요?”

“어. 같이 들어가려고. 형석 씨와 지은 씨도 안에 들어와서 기다리시죠.”

“알겠습니다.”

“네. 사장님.”

주민이 아이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안에서 다들 기다리고 계십니다.”

회장댁을 관리하는 전주댁이 현관에서 주민을 맞이했다.

양손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주민이 식당으로 향했다.

“어. 주민이 왔냐. 너희들도 와서 앉아라.”

가족모임에 얼떨결에 끼게 된 아이들이 눈치를 봤다.

지난 설 때야 할머니 집에 내려갈 수 없어서 따라왔지만

오늘은 온전히 가족끼리 축하해야 하는 자리 아닌가.

아이들이 나란히 서서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서서 뭐 해?”

장손이자 주민의 큰조카인 선우가 아이들에게 손짓했다.

“가자.”

주민이 아이들의 어깨를 토닥이고 먼저 발을 옮겼다.

그의 뒤를 따라 지연이 지한의 손을 잡고 빈자리에 앉았다.

“오늘 주민이 생일이라고 전주댁이 솜씨 좀 발휘했다. 다들 들자.”

가족들끼리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 외부인인 우리가 껴도 되려나?

“지연이 너는 이거 좋아하지? 지한이는 이거 좋아하고.”

지연이의 앞에는 잡채를 지한이의 앞에는 갈비찜을 밀어 준 주민이 편하게 먹으라면서 아이들 앞에 이것저것 가져왔다.

흡사 아기 새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는 어미 새 같은 모습에 공씨네 식구들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이 녀석아. 너는 우리들 생일도 그렇게 챙겨봐라.”

“아버지 생일이야 엄마가 잘 챙겨주잖아요. 아니면 재롱이라도 떨까요?”

“말 잘했다. 네가 밥을 잘해, 안부 인사를 잘해. 쓸데없이 돈 쓰지 말고 내 생일날에 노래나 불러봐라.”

“아버지 꼭 그렇게 청각 테스트를 하셔야겠습니까. 제가 차라리 건강검진을 시켜드리겠습니다.”

태산의 말에 장남인 욱민이 정색하고 말했다.

“형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노래 못하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집 식구들 모두 다 안다는 소리지.”

그랬어?

회식 자리에서도 공 사장에게 노래를 시킬 간 큰 인간은 없었기에 주민의 노래 실력은 모르고 있었는데.

가족 피셜로 ‘주민 노래 못함’을 확인해 버렸다.

잡채를 먹던 지연이 웃음이 터지지 않도록 입을 가렸다.

저번 설 때도 느꼈는데 사장님네 식구들은 가족들끼리 사이가 좋구나.

이래서 드라마는 믿을 게 못 된다니까.

나왔다 하면 죄다 회장 자리를 놓고 다투기나 하고 이래서 직접 보고 들은 것만 믿어야 해.

공 회장은 나이가 들었음에도 철없는 막내아들을 보고 한마디 했다.

“그래서. 너는 언제 결혼할 거냐.”

“안 그래도 슬슬 할까 해요.”

“뭐?”

“어?”

“음?”

이때까지 듣던 말과 다른 반응에 모두 눈을 크게 떴다.

그렇게 언제 결혼할 거냐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물었을 때는 죽어도 안 하겠다고 하더니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다.

주민의 큰형, 욱민이 물었다.

“너, 정말이야?”

“어. 이제 할 때 됐잖아.”

“아니, 할 때는 진즉 지났지.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결혼한다는 거야.”

“애들 때문에.”

“애들?”

식탁에 앉은 이들의 시선이 남매들에게 몰렸다.

조용히 앉아 전을 뜯어 먹고 있던 아이들은 갑자기 쏠린 시선에 씹던 것도 멈추고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우리?

“지한이랑 지연이?”

“응.”

“애들이랑 네 결혼이랑 무슨 상관이라고.”

내 말이 그 말.

지연이 오물오물 씹던 것을 꿀꺽 삼키고 조용히 수저를 내려놨다.

“애들 보니까 나도 가족을 가지고 싶어져서.”

주민의 폭탄발언에 모두 입을 떡 벌렸다.

“네가 이제 철이 들려나 보다.”

“아버지!”

“이 녀석이 어디서 소릴 높여?”

태산이 인상을 찌푸렸다.

딸꾹!

큰소리에 놀란 지한이 딸꾹질을 했다.

“지한아, 물.”

토닥토닥

동생에게 물 잔을 건네주고 등을 쓸어준 지연이 주민을 보고 한마디 했다.

“사장님. 밥상에서는 큰소리 내는 거 아니라고 했어요.”

“미안하다.”

“그리고 다들 축하해주러 왔는데 왜 화를 내는 거예요? 사장님 나빠요. 못됐어.”

“저기. 지연아. 그게.”

“여기 있는 사람들 다들 사장님 축하해주러 모인 거잖아요. 이렇게 맛있는 밥도 준비했는데 너무해요.”

“…딸꾹. 사장님 화내지 마요.”

“내가 잘못했다….”

“우리한테 할 게 아니라 여기 있는 가족들에게 하셔야죠.”

“죄송합니다.”

주민이 결국 아이들 앞에서 사과했다.

아이들에게 꼼짝도 못 하는 막내를 보고 그동안 주민 때문에 고생했던 가족들이 속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풉, 큭. 크하하하하하!”

“아하학, 하하하학. 너. 너흐흐흑.”

“크흠. 흐. 흐흠.”

“까하하하학. 너, 너. 아학, 애들 말이 맞네. 다 큰 어른이히히히힉!”

아직 어린 티도 다 못 벗은 아이들 앞에 고개를 숙인 주민을 보고 공씨 식구들이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내가 너 임자 만날 줄 알았다. 하하하. 이거 우리 집에 복덩이들이 들어왔구만.”

“흐흐흐흑. 난 찬성. 으흑. 흐하하학.”

“나, 나도. 찬 하하하하하하.”

“다들 웃든지 말하든지 하나만 해. 아님 밥이나 먹지.”

“너 말버릇이 그게 머흐흐, 야.”

“호호, 호호호호.”

웃음을 그칠 기미가 안 보이는 가족들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포기한 주민이 입을 내밀고 숟가락으로 밥을 펐다.

적을 해치우는 것처럼 살벌한 숟가락질에 모두 눈가에 눈물이 찔끔 맺힐 정도로 웃었다.

한참 후 겨우 진정한 식구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주민이 너는 진짜 애들 만나서 사람 됐구나.”

“내가 그 전에는 사람이 아니었나?”

“그전에는 말괄량이 공주님이었지.”

“형!”

“그만해라. 애들 또 딸꾹질할라.”

작은형, 현욱의 만류에 주민이 아이들을 힐끔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매는 서로의 숟가락 위에 반찬을 올려다주며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만하자.

애들 앞에서 체면 다 상했네.

“더 늦게 해도 좋으니까 좋은 사람부터 만나라.”

“네에.”

말은 네라고 하지만 아직 불만이 있는지 입을 삐죽 내민 주민을 보고 태산이 숟가락을 꽉 쥐었다.

이걸 던져 말아?

그때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사장님 결혼할 거예요?”

“어? 어어. 언젠가?”

“잘됐다! 우리가 노래 불러줄게요.”

“난 좋아.”

“어어.”

“사장님은 좋은 사람이니까 좋은 신랑, 아빠가 될 거예요.”

“맞아요. 사장님은 착한 사람이야.”

“얘들아.”

아이들의 말에 주민의 눈이 촉촉해졌다.

어쩜. 언제 애들이 커서 이런 말을 다 하게 됐을까.

우리 애들 너무 착해.

“애들이 어른보다 훨씬 낫구만.”

“그러게요. 주민이보다 훨씬 낫죠?”

“지연아 나중에 크면 아저씨네 며느리 할래?”

“아버지. 저는 찬성입니다.”

남매의 대견한 말에 회장부부와 장남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들의 동의까지 받은 욱민이 진지하게 생각하는 척을 할 때 주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형은 또 무슨 소리야!”

“뭐가. 철없는 네 녀석보다 지연이가 훨씬 어른스럽구만.”

“결혼하고 싶다고 해서 철 좀 들었나 했더니.”

“놔둬 오빠. 쟤가 철들려면 아직 멀었어. 정신 나이로는 도진이랑 비슷할걸?”

아영의 아들이자 집안에서 제일 어린 도진과 자신을 비교하자 주민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이쿠, 이제 그만 놀려야겠구만.

공씨네 사람들이 빠르게 눈빛을 주고받았다.

물론 지연도 그 눈빛을 캐치했다.

다들 재밌게 노시네.

오늘 사장님 축하해주려고 모인 게 아니라 놀리려고 모인 거 아니야?

“자, 밥 먹자. 후식으로 케이크도 준비했다.”

“생일축하 노래도 불러요.”

“그거 좋지. 그러면 오늘 1위 한 가수님에게 불러달라고 할까?”

주민의 생일파티에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합류시킨 태산을 보고 지연이 싱긋 웃었다.

“선곡 받습니다!”

와아!

아직 어린 3세들이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 * *

공 회장댁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 아이들은 거실 장식장에 지연의 트로피를 넣어두고 감상했다.

지한이가 받은 2개의 상 옆에 나란히 놓인 지연의 상을 보고 아이들이 눈을 반짝였다.

“누나 나 상 더 많이 받고 싶어.”

“누나도.”

“우리 더 열심히 해야겠네?”

“그래.”

지연이 동생을 옆구리에 끼고 머리를 볼로 부볐다.

옆구리에 쏙 들어오던 동생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컸지.

자신도 그렇지만 지한이도 키가 쑥쑥 자랐다.

돌아오기 전에 나는 160도 못 넘었고, 지한이는 173이었는데 지금은 조금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

난 벌써 154cm니까!

지한이도 이대로 몸매 관리만 해 주면 더 클 거 같고.

지금도 성장판 검사라는 걸 할 수 있으려나?

왕왕!

냐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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