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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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지만 따라온 지한이는 무슨 죄란 말인가.

떼어 놓고 가고 싶어도 절대 따라오겠다고 하니 별 수 있나.

얼음물을 잔뜩 챙겨갈 수밖에.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네.”

“나 벌써 활동한 지 그렇게 오래됐나?”

연습실-방송국-집-연습실-방송국-집

이게 반복이었던 거 같은데.

음악 방송 촬영 없는 날에도 라디오며 방송이며 촬영을 계속해서 정신이 없었다.

거기다 지한이 촬영 때문에 스케줄 관리며 CF며 관리하느라 영훈 오빠는 결국 로드를 들였다.

사실 진작 들였어야 했다. 명색이 팀장인데.

“누나. 누나는 언제 1등 해?”

“그러게. 쉽지 않네. 누나가 더 힘낼게.”

“지연이 네 잘못이 아니야. 워낙 대단하신 분들이 많이 나와서 그런 거야.”

그러면서 영훈 오빠가 이번달에 1위 한 사람들을 읊었다.

내가 돌아오기 전에도 여전히 가수로 활동하고 계셨던 레전드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그중에는 병역 문제로 사라진 사람도 있었지만.

새삼 들어보니 나 전설들이랑 붙고 있었구나.

“그래도 다음 달에는 1위 후보에 올라갈 거라고 예상하고 있어.”

“1위는 무슨. 나 아직 신인인걸.”

“올해 너 말고도 괴물 같은 신인그룹이 데뷔해서 1위도 했는데 너라고 못하겠냐. 그리고 기회는 다음 달밖에 없어.”

“왜?”

“일본을 휩쓸고 온 폭풍이 상륙할 거거든. 어찌 보면 지연이 네 직속 선배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영훈의 말에 지연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일본을 휩쓸고 온 내 직속 선배라.

직속? 같은 소속사에는 없으니까 나와 같은 유형?

그렇다면 여성 솔로 가수란 건가?

혹시 그 사람?

지연이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물었다.

“혹시 KM엔터에 있는 그 사람이야?”

“맞아.”

우와아아앙악!

어떡해! 맞대!

지연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반응에 옆에 있던 지한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뭐야. 뭔데? 누군데?”

“누구긴. 아시아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지.”

“누나 왜 그렇게 좋아해?”

“응? 아아. 그 사람을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라서. 가수하고 싶다고 했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

“저기. 지연아? 너도 대한민국에서 유명하기로 빠지지 않는 사람인데.”

화제성으로는 밀리지 않을 걸?

영훈은 누나의 반응에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 있는 지한을 보고 눈치를 살폈다.

오늘따라 눈치가 없는 지연을 보고 영훈이 식은땀을 흘렸다.

“빨리 봤으면 좋겠다.”

“형. 집에 빨리 가자.”

“어. 어어. 그래.”

영훈이 새로 온 로드를 보챘다.

빠르게 하지만 규정 속도는 지키고!

차가운 핫초코를 가져오라는 주문을 받은 것처럼 로드의 얼굴이 미묘해졌다.

* * *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지한이가 들어갈 드라마는 SBC에서 제작된다.

지연의 첫 음악방송 데뷔가 SBC였던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예능국장은 이게 다 자기 덕분이라고 말하고 다닌단다.

드라마국장에게 거들먹거린다는데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이지.

아무튼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다니는 만큼 인기무대에서 지연에 대한 취급은 훨씬 더 좋아졌다.

“누나. 어디가?”

“응? 인사하러.”

오늘도 역시 누나를 따라와 같은 대기실을 쓰고 있는 지한은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누나를 바라봤다.

챙 있는 모자를 써 작은 얼굴이 가려졌지만 동생의 눈빛을 못 알아챌 리가 없는 지연이 동생에게 물었다.

“왜 그래?”

“오늘은 나도 같이 가.”

“?지한이 너도 인사하려고?”

“응.”

지한의 폭탄 발언에 영훈의 안색이 싹 사라졌다.

영훈이 형석에게 손짓했다.

“오늘 지한이 심기가 좋지 않네요. 꼭 붙어 있읍시다.”

“알겠습니다.”

동생의 부탁을 거절할 리 없는 지연이 고개를 끄덕이고 지한의 손을 잡고 나섰다.

지한이에게서 전쟁을 앞둔 장수와 같은 비장함이 서렸다.

“안녕하세요, 신인가수 지연입니다.”

“네. 안녕, 헙!”

“…흐허억!”

“네. 네네넨.네.”

모자를 썼다고 해서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데뷔부터 배우 오지한의 누나로 유명한 지연.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남자아이.

깊숙이 쓴 모자로도 가릴 수 없는 톱스타의 아우라.

오늘따라 숨길 생각도 안 하는 기세에 다른 사람들이 지연의 인사를 받지도 못하고 놀라 말을 더듬었다.

“오늘따라 다들 이상하네. 더위 먹었나?”

“다른 이유가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봤니?”

“지한이? 내가 지한이 누난 대한민국 사람들은 다 알 텐데. 아! 우리 지한이가 너무 대단해서 그런가 보다.”

“그래. 그렇지.”

눈앞에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은 배우가 나타났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 배우가 뿜어내는 무거운 기세도 놀라는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긴 네 눈에는 그냥 귀엽고 잘생기고 연기도 잘하고 똑똑하고 예쁜 동생이겠지.

영훈이 쓰린 배를 쓰다듬었다.

이제는 구경거리가 된 아이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뒤에 달고 한 대기실 앞에 섰다.

“후우.”

“….”

긴장하는 누나를 보고 지한이가 입술을 앙 물었다.

똑똑

“네에. 들어오세요.”

지연이 문을 열었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손질받고 있던 이가 등을 돌렸다.

천천히 허공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슬로우가 걸린 것처럼 느리게 보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이번에 데뷔한 신인가수 ‘지연’이라고 합니다.”

VoA다.

세상에 내 눈앞에 진짜 VoA가 있어.

독서실에서 들었던 플레이리스트의 대부분은 VoA의 곡이었다.

“네가 지연이구나. 많이 들었어. 세상에 나보다 어린 나이에 데뷔한 사람은 처음 보네. 올해 몇 살이야?”

“13살이에요.”

“초등학교 6학년이네!”

“학교는 안 다녀요.”

“왜? 아. 하긴. 나도 학교 잘 못 나갔었지? 그래도 대단하다.”

“선배님이 더 대단하세요. 존경합니다.”

VoA가 어린 가수를 보고 웃었다.

자기도 어린 나이에 데뷔했는데 그보다 더 어린 아이가 데뷔하다니.

그때 날 보던 사람들이 이런 심경이었을까?

신기하고 대견하고 걱정스러웠다.

“지연아.”

꾸욱

은주가 지연을 불렀다.

다른 곳에도 인사를 가야 했다.

거기다 지한이의 얼굴이 심상찮았다.

지한의 얼굴이 믿지 못할 광경이라도 본 것처럼 충격으로 물들었다.

더 있고 싶은데.

동생의 얼굴을 보지 못한 지연이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인사하고 내 대기실로 놀러 올래?”

“!그래도 돼요?”

지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꽃처럼 피어난 얼굴에 VoA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물론이지. 나도 예쁘고 귀여운 후배랑 같이 있으면 안 심심하고 좋지.”

“꼭! 꼭! 올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어어. 천천히.”

말할 틈도 없이 대기실을 나선 지연을 보고 VoA가 이를 보이고 웃었다.

“쟤 정말 귀엽지 않니?”

“VoA야. 그래도 다른 소속사 앤데.”

“오빠. 나보다 어린 애 가지고 너무 그러지 말지? 쟤가 그렇게 똘똘하다며? 일본 활동 할 때, 저런 애랑 같이하면 진짜 좋을 텐데.”

“저렇게 어린데 무슨 도움이 되겠어.”

매니저의 말에 VoA가 얼굴을 찌푸렸다.

“오빠. 내가 어리다고 무시하지 말라고 했지. 어린애들도 뭐가 옳고 그른지 다 알아. 나 못 봤어? 내가 어리다고 얼마나 무시당했는지 알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미안하다. VoA야.”

VoA의 말에 매니저가 금세 사과했다.

어리다고 무시하는 건 VoA가 싫어하는 것 중 하나였다.

“이따가 애 오면 주게 먹을 것 좀 사 줘요.”

“알았어. 갔다 올게.”

매니저에게 심부름을 시킨 VoA가 인상을 풀었다.

중요한 날인데 인상 쓰고 있을 순 없지.

* * *

VoA의 대기실을 나온 지연이 후다닥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하러 갔다.

빠르게 그러면서도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나온 지연을 보고 지한이가 물었다.

“누나. VoA가 그렇게 좋아?”

“응! 좋아. 내가 좋아하는 가수 중 하나야.”

“누난 다른 연예인들한테 관심 없잖아.”

“으음. 그렇지? 그런데 VoA는 노래도 잘 부르고 대단한 사람이잖아. 지한이 너처럼 어린 나이에 데뷔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욕도 많이 먹었는데 실력으로 전부 이겨냈어. 그게 너무 멋있어!”

돌아오기 전에 독서실에서 시험장에서 혼자 있으면서 VoA의 노래는 많은 위로가 되었다.

고생했다고 마중 나온 가족들에게 달려가는 고시생들.

2번째였던가? 3번째였던가?

점심때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우산을 미리 챙겨오지 않았다.

나는 천둥 번개가 치는 날씨를 보고 제발 끝날 때는 비가 그치기를 빌었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하늘은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지.

끝나는 시간까지 비는 그치지 않았고, 마중 나올 이도 없던 나는 역까지 비를 맞으며 뛰어갔다.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VoA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부러움과 수치, 그리고 외로움에 가라앉은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자신이 아니라 다른 연예인을 좋아하는 누나를 본 지한의 안색이 시커매졌다.

상반된 얼굴을 한 남매를 본 영훈이 상황을 수습하려고 입을 열었다.

“VoA가 그렇게 말했지만 찾아가는 건 안 좋아할지도 몰라.”

“정말로? 가고 싶은데.”

“자기도 어렸을 때 엄청 고생했으니까 너도 같이 고생해 봐라! 라는 심정일지도 몰라.”

“그런 사람 같지 않던데.”

지연은 큰 사건 사고 소식이 없던 VoA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영훈 오빠가 뭐라고 하든지 나는 내가 본 것만 믿을래.

“누나!!”

지한이 울상이 돼서 지연의 품에 폭 안겼다.

동생의 얼굴을 보지 못한 지연은 왜 갑자기 이럴까 생각하며 동생을 두 손으로 끌어안았다.

“어이구 왜 그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봐서 그래?”

도리도리

“그럼 우리 동생이 왜 그럴까?”

“누나 안 가면 안 돼?”

“선배님이 인사하고 와도 된대. 그래서 갈려고 했는데.”

“싫어! 누나…그렇게 VoA가 좋아? 나랑 안 있고?”

지한이 누나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지연을 꼭 끌어안았다.

그 말에 그제야 동생이 왜 이러는지 알아챈 지연이 웃음을 터트렸다.

“지한이 너도 참. 아하학! 왜? 누나가 지한이 너보다 더 좋아할까 봐?”

“아, 아니! 누가!”

정곡을 찔린 듯이 파드득 고개를 저은 지한이지만

내가 널 모르겠니.

이래 봬도 내가 널 업어 키웠단다.

귀여운 동생의 반응에 지연이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걱정 마. 누나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지한이 너니까. 이건 세상이 무너져도 변하지 않을걸?”

무려 2021년에서 돌아온 사람이 하는 말이니까 믿어도 좋아.

계속 등을 쓸어주는 누나의 손길을 느끼며, 진심을 느낀 지한이 품에서 얼굴을 떨어트렸다.

어이쿠 내 동생.

눈이랑 볼이 빨갛구나!

지연이 지한의 눈에 맺힌 눈물을 닦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떨어진 모자를 다시 씌운 지한에게 지연이 손을 내밀었다.

“자! 손!”

“또 그 사람한테 갈 거야?”

“응! 계속 같이 있기로 했잖아. 지한이 너도 같이 가자.”

“…응.”

뭔가 내키진 않지만 누나가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킨다는 말에 한결 기분이 풀린 것 같았다.

으이구 걱정 마라.

내가 아무리 VoA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건 뭔가 동경? 선망하는 마음이지 다른 마음이 있는 건 아니다. 지한이 널 좋아하는 거랑 전혀 다르다고.

설사 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해도 널 버리고 좋아하겠냐.

지연이 말랑말랑한 동생의 볼을 쓰다듬고 손을 꼭 잡았다.

“가자!”

77. 생일 축하합니다.

지한이 편성이 정해졌다.

7월 말 방송 예정이란다.

지연의 활동과 더불어 지한의 활동까지 신경 써야 하는 영훈 오빠가 죽어 나갔다.

“오빠 괜찮아?”

“어어. 응.”

콕콕

아이들이 시체처럼 엎어져 있는 영훈을 콕콕 찔렀다.

인절미랑 모짜가 남매를 따라서 똑같이 영훈을 앞발로 찔렀다.

꾹꾹

작다고 무시하기에는 묵직한 앞발에 영훈이 힘없는 소릴 냈다.

“그만해애.”

“죽었나 봐.”

“그러게.”

“너희들이 너무 잘 나가서 그래.”

신인이지만 이미 다른 스타 못지않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던 지연.

오스카에서 상을 받고 1년의 공백기를 가졌던 지한.

두 사람을 찾는 이들로 영훈의 휴대폰은 불이 날 것 같았다.

“그런데 왜 날 영훈 오빠한테서 찾아? 은주 언니 있잖아.”

“은주 씨는 일반 매니저잖냐. 출연협상이랑 CF 같은 거는 나한테 물어봐야 하니까.”

“으음. 그렇구나. 파이팅!”

띠리리리리-

“으어어어어.”

기절하기 직전으로 보이는 상태임에도 벨소리가 울리자마자 일어나는 자여!

매니저란 힘든 직업이구나.

아이들이 태평하게 고개를 저었다.

“영훈이 오빠는 다른 사람들 더 못 맡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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